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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작] 신앙을 말하다 

글/ 수정(守正)

​[밍후이왕] ‘신앙’이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단어로 주로 종교적 범주에서 사용된다. 동양에서는 불교 경전 ‘화엄경’에 신앙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신앙은 또 ‘앙신(仰信)’이라고도 하는데,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三寶)를 의심치 않고 흠모하는 것을 뜻한다. 즉,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공경이다.

서양에서 신앙이란 말은 흔히 초자연적인 것(예: 하나님, 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 완전한 의존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로써 신앙은 종교 문제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한다.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자이자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는 “신앙의 창조는 하나님의 신의 은총이며, 인간의 마음에 작용해 지성을 인도하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근대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도 신앙은 인간 의지의 결과라고 믿었다. 사람은 의지가 작용해 행동을 통해 사실을 이해할 수 있고, 신앙의 대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며 신앙의 대상이 존재함을 긍정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믿음은 지식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위의 두 신앙은 모두 종교적 신념에 속하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생명을 우러러보는 것이다. 종교 신앙의 목적은 세상을 벗어난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짧디짧은 몇십 년 인생에서 정수와 의의를 얻는 것이다.

2천여 년 전, 동서양에서는 많은 정신적 스승과 그들의 학설이 생겨나 훌륭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 동시에 등장했다. 노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 공자의 유가 정신, 묵자의 겸애비공(兼愛非攻) 등 백가쟁명(百家爭鳴) 학설은 고대 선비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제공했다. 인생은 더 이상 막막하지 않았고 군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목표와 행동 준칙을 주는 동시에,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억제하는 역할도 했다. 이것이 중화권 전통 신앙이다.

이처럼 고대 중국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에 기초한 전통 신앙의 영향으로 노자, 공자로 대표되는 동양의 전통 신앙 체계가 생겨났다. 이런 전통 신앙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갔다. 1987년 ‘뉴욕타임스’가 고금의 10대 작가를 선정했을 때 중국 작가 노자가 1위에 올랐다. 약 5천 자로 이뤄진 ‘도덕경’은 수천 년을 넘나들며 여전히 인류 사유와 인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16세기에 이미 독일에 전해져 그 영향력이 막대했다. 1870년 첫 독일어 번역본 이후 ‘도덕경’의 독일어 번역본은 102종, 노자 사상 연구 단행본은 700여 종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전 독일에서는 독일 가정 네 가구마다 도덕경이 한 권씩 있었고 철학자 헤겔이 존경하는 철학자도 노자였다.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복희황로[伏羲黃老: 복희씨, 황제(黃帝), 노자]의 음양(陰陽) 학설에 따라 이진위(二進位) 사상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중국 ‘하도낙서(河圖洛書)’ 라틴어 번역본을 처음 본 뒤 ‘우주 최고의 신비’라며 놀라 태극, 음양, 팔괘에 서양식 이름인 ‘변증법’을 붙였다. 노자로 대표되는 복희황로 학설이야말로 진정한 변증법의 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수백 년간 서양어 번역본이 500종에 육박하고 유럽어 17종으로 번역된 ‘도덕경’은 외국어로 번역된 세계문화 명저 발행 부수에서 ‘성경’이 1위, ‘도덕경’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서양에서 노자와 그 사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예로부터 철학적 명제로 여겨져 온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이 최초로 제기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은 누구나 세상의 희로애락 속에서, 애환 속에서 이 영원한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서양에서 동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자, 사상가는 세속적인 차원이든, 종교적인 차원이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종교에 입문한 사람은 정교(正敎)에서 자신의 답을 찾았다. ‘나는 우주에서 왔고 이번 생의 나는 전생의 업과 복의 대응체다. 나는 사람의 윤회 고해를 벗어나 저 너머의 영원한 행복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각종 정교 체계에서 신도들은 서로 다른 법리와 교리를 따르고 있지만, 정교라면 신도들에게 분명한 답과 목표를 주면서 동시에 그들의 행동을 구속하고 마음을 닦고 선행을 하게 한다. 따라서 신도들도 정신적 지원을 주는 교리에 대한 경건한 믿음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

2018년 국제적으로 발표된 전 세계 종교인 수를 보면 기독교 신자 수는 약 23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32%, 불교 신자 수는 약 4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7%를 차지하고 있다. 유가 사상을 믿는 사람은 약 700만 명이다. 2022년까지 전 세계 무신론자는 12억 명에 불과하고 인구의 80% 이상이 신앙을 갖고 있으며, 기독교, 불교, 유대교, 중화 전통신앙 등 몇몇 정교의 인구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신앙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았다.

반면 중국의 종교인 비율은 7%로 세계 최하위였다. 신앙이 결핍한 나라에 대한 표현은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아서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말이 가장 적절하다. “생명은 욕망이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괴롭고, 충족되면 지루하다. 인생은 고통과 지루함 사이에서 흔들린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는 것이 요즘 많은 중국인의 이른바 ‘신앙’이 됐다. 시기적절하게 행복을 가져다주면 바로 그것을 ‘신앙’한다. 학식, 과학, 돈, 관직, 미녀 등등 적지 않다.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신앙’은 수시로 바뀌는데, 출발점은 오직 하나 ‘사욕’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사리사욕을 만족시키는 것이면 바로 그것을 ‘신앙’한다. 이러한 무신론에 기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즐기는 신념 추구는 우리가 묘사하는 신앙 범주에서 당연히 제외된다.

위에서 언급한 유신론에 바탕을 둔 어떤 신앙이든 그 기점은 모두 인간에 대한 선(善)과 영원한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구의 93%가 신을 믿지 않는 중국에서도 신불(神佛)을 믿고 ‘진(真)·선(善)·인(忍)’을 믿으며 파룬따파(法輪大法)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로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신앙 속 사람들은 각 계층, 각 업종에 흩어져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사회적 역할로 남에게 보여주든지 항상 매사에 ‘진선인’으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요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도처에서 도덕의 모범이 되고 있다. 더욱 경외스러운 것은 큰 재난이 오기 전에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시골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리고, 말세의 재앙이 닥쳤을 때 목숨을 구해준다는 진언(真言)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진선인’의 신봉자이자 실천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

신앙은 위대한 힘이다. 신앙의 힘은 한 영혼의 고귀함과 위대함을 불러일으킨다. 오직 경건함만이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지탱할 수 있고, 가장 심각한 어려움 앞에서도 경건함이 우리를 승리하게 할 수 있다.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이런 신앙의 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남을 위하고 자아가 없는 진정한 자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어떠한 사(私)와 관련된 명리정(名·利·情)도 없고, 어떻게 해서 자신을 윤회생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계산도 없으며, 오직 ‘진선인’을 준칙으로 존재하며 중생의 행복을 위한 견지만이 있다. 큰 재난이 닥쳤을 때 자신과 관련된 모든 명리정애(名·利·情·愛)를 버리고, 직장을 잃거나, 가족과 헤어지거나, 눈총을 받거나, 심지어 붙잡히거나, 구타당하거나, 실형을 선고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에 나와 거대한 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려준다. 이 말세에 이런 큰 사랑과 신앙을 가진 사람이 또 있는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 이 위대한 힘은 파룬따파에서 나왔고 파룬따파 창시자 리훙쯔 대사의 제자들에게서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신앙,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원문발표: 2022년 9월 1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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