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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작] ‘인권이 없어도 행복하다’를 이야기하다

글/ 어우양페이(歐陽非)

[밍후이왕] 프랑스의 시장조사 회사인 입소스(Ipsos)가 온라인 조사를 통해 발표한 2020년 글로벌 행복 지수순위에서 중국인의 93%가 스스로 매우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나 중국이 1위를 차지했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외부인들은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접한 많은 국내의 친구들은 심지어 인터넷 웹서핑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권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한 가지 ‘자유’인바, 종교·언론·뉴스·집회의 자유이다. 서양인에게는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라고 하지만 중국인에게는 이런 자유는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공산당의 사유에 따라 문제를 생각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자유를 지향하는 것은 천성이다. 중국에는 또 5천 년의 경천봉신(敬天奉神)의 문화적 토대가 남아 있어, 사람마다 서방에서 온 공산주의 유령에 순종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독립적인 신앙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누군가는 나서서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예를 들면 인권변호사와 같은),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오래도록 일어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자유 지식인), 95%의 사람들이 5%에게 투쟁하게 하는 게 공산당의 정석이다.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없는 한편, 그 5%는 중공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자 이들 중 많은 사람이 5%가 겪는 비인간적인 고난을 애써 부인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의 한 사장이 미국에 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에게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이야기하자 그는 믿지 않고 공산당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자 나는 그에게 파룬궁 진상 CD 몇 개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이것은 자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올 것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그때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순되는 현상은 매우 보편적이다. 국내의 친구들은 걸핏하면 신문에서는 이제 파룬궁의 일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니 별일 없다고 내게 말한다. 나는 그들에게 ‘진선인(真·善·忍)’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톈안먼 광장에서 5분간 머무를 수 있는지, 거닐 수 있는지를 말하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분명 박해가 없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닥치면 왜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는가?

또 한 가지를 말해보자. 미국의 영주권이 있는 사람들은 영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서 매년 일정 기간 살아야 한다. 한 친구는 펜데믹 기간 바로 이렇게 미국에 거주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셋톱박스 하나를 가지고 다니며 국내 드라마와 뉴스 보도를 본다. 해외 중국어 보도를 보고는 그는 모두 ‘헛소리’로 치부했다. 우리는 늘 함께 많은 것을 말하는데, 한 가지 화제만은 대화가 안 된다. 바로 인권 문제다. 그의 관점은 매우 대표성을 띠는데 중국 인권을 거론할 게 아니라 미국 인권을 말해보자고 한다. 그런 다음 미국의 인권 범죄 행위를 한가득 열거하면서 미국을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인권 악당국가라고 한다. 그에게 왜 투자하여 이민했는지 물었다. “미국은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때문에 돈과 부동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법치 사회로 인권이 존중받는 나라.”라고 한다. 이때 미국은 또 인권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해 자신을 우마오당(五毛黨), 당주석의 인터넷 스타 ‘란샹(染香)’이라고 부르던 실명 위안샤오량(袁小靚)은 중공의 열악한 인권을 위해 변호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는 남편이 중공에 붙잡혀 소식이 없자 인권을 떠올리며 호주 정부에 자신의 남편을 구해달라고 도움을 호소했다. 위안샤오량의 행위는 일단 공산당의 철퇴를 맞고 나서야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인식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 미치지 않을 때는 중공을 중국과 혼동하고 중공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중국을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습관적으로 공산당의 입장에 서서 중공의 인권침해를 위해 변호하고 ‘인권이 없어도 행복하다.’라는 환각에 취해 있다. 오직 자신의 이익이 건드려지고 인권을 침해받는 피해자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 말을 한다.

사실 ‘인권이 없어도 행복하다.’라는 것은 인권에 대해 빚을 진 것이며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비록 당신이 5%가 되지 않았더라도, 인권침해에 따른 경제적, 법치적, 도덕적 대가는 이미 당신을 피해자로 만들었다.

인권의 경제적 대가

중국의 경제 발전은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 자금, 인재, 미국 시장의 대중국 전면 개방, 세계무역(WTO) 가입 등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미국은 중국의 잠재된 거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이고 경제 발전으로 중국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 개선을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이십여 년 동안 두 가지 목적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 인권을 볼모로 한 미국의 중공과의 교제 정책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미·중 탈동조화(decoupling)는 쟁점으로 떠올랐다. 중국인들이 자유를 희생하고 공산당의 인권침해를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그동안의 경제 발전으로 과거보다 생활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서방, 특히 미국의 자금과 기술, 시장이 없었다면 중국의 경제 발전은 큰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중국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을 억제하는 것은 바로 중공 자신인바, 열악한 인권이 사람들을 뒷걸음질 치도록 했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국제적인 큰 환경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데, 다시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친구들 사이로 돌아가 호구 노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중국인들이 바라는 개혁·개방이 아니라 중공의 인권침해에 따른 경제적 대가다. 정말 거기까지 가면 세월도 고요해지지 않고 행복도 더는 없을 것이다.

인권에 대한 법치의 대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 법치는 ‘나무 물통의 법칙’을 준수한다. 나뭇조각들을 엮어서 만든 물통에 얼마나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지는 높이가 가장 짧은 나뭇조각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중공의 일부분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중국은 법치가 없는 것이다.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바로 법치에서의 그 짧은 나뭇조각이다. 중공은 파룬궁 수련생이 고소한 사건을 접수하지 못하게 하면서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을 기소한 불법 재판은 해프닝으로 번지기 일쑤다. 판사는 공정한 수호자가 아니라 하수인이 됐다. 밍후이왕의 보도에서 수집한 중공 판사들의 황당한 발언들이 수두룩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신의 법정에서 스스로 변호하면 판사는 “한마디를 하면 1년 형기를 추가한다.”, “한 글자당 1년 형기를 추가한다.”, “공산당은 변호하지 못하도록 한다.”, “내게 법률을 이야기해서 무엇 하는가, 나는 당신과 정치를 이야기한다.”, “파룬궁의 문제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지도자가 하는 말이 곧 법이다.”라고 말한다. 판사는 이렇게 법을 알고 범법을 저지르다니 참으로 섬뜩하다.

파룬궁 박해는 중공 법치의 큰 산이 되어 박해를 멈추지 않고는 풀 수 없다.

공검법사(公檢法司)에 군림하는 메커니즘은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위한 한 세트가 만들어져 그 같은 패턴이 다른 집단에 적용되고 있다. 악행의 메커니즘이 아직 남아 있는 한, 다음 차례가 네 차례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권의 도덕적 대가

위조품, 유독 식품, 탐관오리, 죽음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 ‘샤오웨웨 사건’, 어르신을 부축하여 일으키지 못하는 현상, 전문가 교수들의 표절 거짓 조작 등 중국인들은 왜 이러는지? 라며 외국인들은 개탄한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사람은 신앙이 있고, 신에 대한 경외가 있으며, 선악을 믿고, 내면의 구속이 있는 것이 도덕을 지키는 길이다. 신앙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중국의 도덕성 추락의 근원이다. 엄밀한 디지털 모니터링은 신호 위반을 줄이고 도둑까지 차단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악한 욕구를 없애지 못해 도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덕을 더 타락시킬 수 있다. 원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 루웨이(魯煒)는 정보화 디지털화로 신용을 지키는 사회를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나 결과는 2년이 지나 부정부패로 체포되어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도덕이 없고 신용을 지키지 않는 사회는 누구나 피해자다.

중공의 인권침해를 위해 편들지 않는다

사실, 프랑스 회사의 온라인 조사에 응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회의 작은 집단일 뿐이다. 유엔도 매년 ‘세계행복 지수순위’를 발표하는데 평가 기준은 1인당 실질 GDP, 사회 지원, 건강 기대수명, 자유 등의 요소들이다. 150여 개국 중 중국의 순위는 중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은 6억 명의 월수입이 겨우 천 위안(약 19만 원)밖에 안 되고, 10억 명이 비행기를 탄 적이 없으며, 2억 명이 넘는 중국 가정은 수세식 변기가 없고, 실제 출국한 사람도 1억 명이 조금 넘을 뿐, 해외여행은 침묵하는 중국인 대다수와 무관하다.

중공의 통치 아래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가난하고 고생스럽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낙천적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이는 문제없다. 중공이 인민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자유를 쟁취하는 그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중공의 포악을 감추려는 사람이 있으니 문제다. 우리는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중공의 인권박해를 폭로할 때 혹시라도 다음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중공의 인권침해를 용인해서는 안 되고 중공의 악의 장을 부각시킬 필요도 없다. 진상 전화를 받고 전단 한 장을 받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번 들어보고 한 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진정한 자신의 선택이며 양심의 선택이다.

 

원문발표: 2022년 3월 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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