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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 참사가 사람들에게 주는 반성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중공)이 집권한 70년간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시안(西安)시에서 봉쇄 기간 PCR 검사 문제로 임신 8개월의 임산부가 응급실에서 거부당해 유산한 사건이 발생했고, 심장병이 발작한 아버지가 병원 5~6곳에서 입원 거부를 당해 결국 사망한 사건, 협심증을 호소하던 39세 남성이 병원 세 곳에서 입원 거부를 당해 급사한 일, 신장 투석이 필요한 젊은 남성과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할 유아가 갈 곳 없는 일이 발생한 일, 화재가 발생했지만 대문이 방역으로 철사로 단단히 묶여 있어 소방대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가야 했던 일 등이 발생했다. 도시가 봉쇄돼 시민들은 기근에 빠졌는데 굶주린 젊은이가 찐빵을 사러 나갔다가 방역요원들에게 몰매 맞은 일, 반성문을 공개적으로 읽도록 강요당한 사람도 있었다.

이것들은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던 중공 정권의 뺨을 호되게 후려친 격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물질이 풍족하다는 지금, 왜 이런 인위적인 참극이 벌어졌는가? 왜 인심이 이렇게 냉혹해졌는가? 왜 국민이 서로 상처를 주는가? 많은 중국인이 의아해하고 분노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치료 지연으로 숨진 부친의 사망으로 비통에 잠겨 있는 딸 왕신(가명)에게 병원에서 치료비를 독촉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병원장에게 “저는 원장님에게 제 입장에서 느낄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동정심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이런 상황에서 계속 전화로 치료비를 독촉할 수 있나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전반 사건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비원은 자기 역할을 했고 간호사는 자기 역할을 했으며 병원은 자신들의 직책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역 통제 요청에 따를 뿐 사람마다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렇다, 도대체 누구의 문제인가? 그 주범은 중공 독재체제로서 줄곧 국민을 외면해 온 중공 정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내심 잘 알고 있다. 올림픽을 위해, ‘제로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한 중공 당국은 민간인 희생이 아무리 많이 일어나도 개의치 않는다. 바이러스가 성행하는 2년간 비슷한 참사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고 피해자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한 네티즌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중국에서 도시봉쇄로 1년간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많은 사람이 격리소에서, 만성질환 환자들이 치료 중단으로, 심장병 환자가 제때 병원에 들어가지 못해, 임산부들은 산전 검사 불능으로, 해열제를 제때 구매하지 못해, 독감이나 불가항력적인 실업과 파산으로 절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국은 더없이 자랑스럽게 코로나로 죽은 사람은 ‘제로’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공의 악행은 최근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집권 당시부터 사악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국민을 해치고 수천만 중국인을 살해해왔다. 그 범죄는 너무나 많아 이루다 써낼 수 없다.

그러나 원흉 중공을 제외하고 우리는 시안의 수많은 참극 속에서 일반인들의 냉담함과 잔혹함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슬프고도 마음이 아프다. 확실히 경비원·간호사·의사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중공의 지시를 따르는 방역요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선량함과 인애(仁愛)를 잊었다. 만약 그들에게 공감력과 측은한 마음이 있었더라면 위중한 환자를 문밖에서 가로막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동포를 이렇게 해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중국인을 이처럼 공감력을 상실하게 하고 이토록 냉담하게 만들었는가? 바로 중공이다. 70여 년간 중공은 연속되는 운동으로 지식인들을 탄압하고 전통문화를 철저히 파괴하며 무신론을 고취했고 가짜와 악, 폭력을 추앙하게 했으며, 중국인들의 도덕을 급격히 추락시켜 진정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 하게 했다. 특히 중공의 피비린내 나는 ‘6.4’탄압(천안문 사건) 이후 희망을 잃은 중국인들이 중공의 의도적인 유도에 따라 돈에 눈뜨기 시작하자 사회와 사람들은 점점 더 물질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했고, 도덕은 일사천리로 추락해 사람들은 막막함 속에서 혼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소중한 중국인을 버리지 않았다. 1992년 ‘진선인(真·善·忍)’을 믿는 파룬궁이 전해져 마치 ‘맑은 샘’이 사회에 주입된 것과 같았다. 많은 사람이 수련에 들어간 후 건강이 개선됐을 뿐만 아니라 돈과 명예를 담담히 보게 됐고 사람 사이에 조화를 이루어 도덕성이 향상됐다. 1억 명이 파룬궁을 배우자 전반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막대해 사회도덕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이후 탄압이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 사회는 더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도덕성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며, 시안의 참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설이 없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질투에 사로잡혀 중공과 결탁해 파룬궁에 대해 죄를 덮어씌우고 모함하는 탄압의 광풍을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박해는 그치지 않고 있다. 박해를 부추기고 적개심을 부추기기 위해 중공은 수많은 거짓을 살포했고, 특히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해 수십억 중국인을 속였다.

그뿐만 아니라 ‘진선인(真·善·忍)’에 대항하기 위해 ‘가악투(假·惡·鬪: 가짜, 악, 폭력)’를 조장하고, 이런 관리들을 등용해 정권을 더욱 부패시켰다. 사회는 도처에 모조품이 나뒹굴고 거짓말이 성행하고 있으며, 악습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마다 모두 조류를 따라 흘러가며 서로 해치면서도 자신도 모른다. 파룬궁으로 잠시 회복되던 사회도덕은 다시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탐욕과 욕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타락하고 있으며 밀폐된 공간에서 향락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중국인의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말살한 것이다. 그 결과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박해 중에 파룬궁수련자가 아니어서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떤 사람은 진상을 알리는 파룬궁수련자에게 “신앙이 무슨 소용인가, 돈처럼 쓸 수도 없는데”라고 말한다. 심지어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에게 코웃음을 칠 뿐 아니라 공격하고 제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사회가 더 이상 도덕, 양심, 선행이 아닌 거짓, 악과 폭력을 추앙하면 이 사회에는 도덕성이 사라지고 권력과 금전만 신봉해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위의 고위 관리부터 아래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시안의 인위적인 참극이 명백한 증거며, 이러한 사례는 우리가 우한(武漢) 봉쇄, 정저우(鄭州) 수해 등 재난 현장이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중국인에 대한 박해이기에 정작 피해를 본 것은 중국인들 자신이다. 중공의 속임수에 걸려 불법(佛法)에 큰 죄업을 지으면 모두가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공의 속임수에 넘어간 중국인들은 파룬궁수련자들의 선(善)을 권하는 진언을 잘 기억해 중공을 버리고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1월 2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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