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후(寅虎-중국)
[밍후이왕] 중공이 진선인(真·善·忍)을 타격해 모두가 피해자가 되게 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1. 80년대 후의 사회 갈등 스케치
80년대, ‘문화대혁명’에서 살아난 중국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으나, 도덕 수준은 거의 정상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만에 사회 전반 풍조와 상태는 크게 달라졌다. 이 기간은 바로 중국 사회가 도덕의 회생을 가장 갈구하고 있던 시기였다.
홍콩 중문대학 중국연구서비스센터에서 공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8년~1982년, 법원에서 처리한 내신내방(來信來訪) 민사소송 건수는 총 8만3700건(회차)에서, 1998년~2002년, 4224만 건(회차)으로 약 504배 가까이 늘었다.
2. 원인탐구
90년대 말~2000년 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중국 사회는 마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진 것 같았다. 위의 데이터가 실증하는 것은 또한 다음과 같다.
관련 부서의 통계에 따르면, 1993년, 중국에서 집단 사건이 약 8700건 발생했고, 1994년에는 약 1만 건, 2003년에는 6만 건에 달했다. 다시 말해서 2000년부터 집단 사건(100명 이상의 충돌사건)이 몇 배로 급증한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후, 우리가 이 한 기간의 역사를 조사했을 때, 1999년부터 중공의 공권력이 급속하게 팽창하기 시작하여, 중국 사회 여러 계층으로 급속히 번져 나가는 명확한 맥락을 발견했다. 1999년 이후 20년 동안, 중국 사회는 도대체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가? 그 발단은 공권력, 특히 정법위가 중국 사회의 경제·사법·사회환경 등에 끼친 재앙이다.
2-1. 사건의 발단
80년대, 중국에서 기공 붐이 일어나기 시작해 90년대에는 아침마다 중국 곳곳의 공원과 도로변, 광장에서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룬궁은 또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 부른다. 1992년 5월,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창춘(長春)에서 정식으로 전하기 시작했는데 진선인을 원칙으로 하여, 다섯 가지 부드럽고 느린 공법이 있었는데, 병을 치유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도덕 수준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아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1998년, ‘양성만보’, ‘북경 청년보’, ‘의약 보건보’ 등 중국 언론도 모두 매우 좋은 정면 보도를 하였다. 미국·프랑스·스웨덴 등 나라에서도 배우고 연마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장쩌민 깡패무리는 질투로 파룬궁을 타격하며 “3개월 내 파룬궁을 소멸하겠다”라고 함부로 지껄였다. 그러나 파룬궁에 대한 사회 각계의 호평에 따라 대부분의 성시에서 파룬궁을 탄압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2. ‘610’ 조직의 출현 및 역할
장쩌민은 2000년 말, 한 회의에서 파룬궁 타격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각 지역 공안국에 직접 ‘610사무실’을 설치하라고 명령했는데, ‘ 610’은 장쩌민이 설립한 파룬궁 박해 전담기구다.
이후 정법위의 각 체계에 ‘610’이 설치되면서 공안 겸직 ‘610’이 양산됐고, 성시급에서는 같은 급의 정법위 서기나 부서기가 ‘610’을 겸임하고, 정법위 서기는 공검법사(公檢法司)를 관장했다. 정법위 서기는 또 같은 급의 중공당위 상무위원을 겸임하는데 이는 ‘610’이 동급의 공안·국안·사법·검사·법원 시스템을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법위가 공검법 체계 위에 군림하면서 중국 법제는 전에 없던 균열이 생겼다. 박해 초기 각급 정부는 파룬궁 박해를 가장 중요한 ‘치적’으로 삼고 승진을 하려면 파룬궁에 ‘독수’를 뻗쳐야 했다. 이로 인해 중공 사당 관리들과 경찰들이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물건을 훔치고 빼앗는 걸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파룬궁을 연마하면 안 된다”라고 공공연히 떠들어댔다.
정법 시스템에서 경찰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법을 집행하는 자는 법을 어기면서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진선인 수련자를 때린다. ‘밍후이 20주년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7월 20일부터 2019년 7월 10일까지 20년간 중국에서 중공에 붙잡힌 파룬궁 수련생 한 사람이 여러 차례 잡혀 박해받은 사람은 최소 250만~ 300만 명”이라고 한다. 벌금, 재물 탈취, 공직 제적, 노동교양, 형벌, 학살, 심지어 파룬궁 수련생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볼 수 없었던 사악과 마의 행위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앙갚음’에서 “죄악의 행위에 대해 가만히 내버려 두고 벌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무형의 묵인이다.”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세상의 중대한 죄악은 굶주림이 아니라 방자함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사회적 인과관계를 밝혔다.
3. 결과탐구: 공권력의 방종은 사회와 국민을 위태롭게 한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가혹한 박해는 곧 정법·사법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 중국의 전체 공안 체계에서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어기고 난법하는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중국 법학 전문가의 연구에 의하면, 1999년~2003년, 최고검찰청과 대법원 보고서 등에 따르면 중국의 일반 범죄율은 400분의 1, 국가기관 인원 범죄율은 200분의 1, 사법기관 인원 범죄율은 100분의1.5다.
공검법사는 사회정의를 지키는 법 집행자여야 하는데도 끊임없이 권력을 방종하고 재물을 탐하는 가운데 일사철리로 패괴되고 있고 경찰이 양심인사를 감시하고 탄압하고 폭정의 싸움꾼 노릇을 하며 피비린내 나는 강제철거 중에 약탈자의 앞잡이가 되었다…. 참혹한 인명안건과 억울한 사건을 양산해 사회 전반에 걸쳐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있다.
강제 환지철거의 경우 중공 장쩌민 집단이 공권력을 전례 없이 장악해 ‘토지 재정’을 벌이면서 돈을 챙겼고, 이로 인해 강제 환지철거가 대량으로 존재했다. 중국 국가정보센터에 따르면, 2001년~2010년, 지방정부의 토지 양도금 수입은 1296억 위안에서 2조9000억 위안으로 증가했고, 지방재정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6.6%에서 76.6%로 상승했다.
강제 환지철거에서 정법위는 주요 하수인으로 무장경찰과 공안을 이용해 맨주먹인 농민을 때렸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칭화대학의 통계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중국에서 18만 건의 항의와 소란 등 집단 사건이 발생했는데, 주로 강제 환지철거에 따른 분쟁이었다. 이 시기에 ‘안정을 유지한’ 비용은 국방비를 능가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농민들이 땅을 잃고 청원을 하면 정법위 통제 아래 있는 법원은 법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중국청년보’가 2011년 8월 1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고등법원의 내부 문건은 성내 법원에 지령을 내려 농림토지분쟁 관련 사건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전국적으로 마찬가지여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소송에서 이겼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중공의 법 유린은 사회 질서를 그르치고 범죄율을 높였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간한 2010년 ‘법치청서’에 따르면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범죄율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2009년까지 중국의 범죄 건수는 20년 동안 유지돼 온 보합세를 깨고 대폭 늘었다. 이 가운데 강력범죄, 경제범죄 등이 크게 늘었다.
‘좌전(左傳)․희공(僖公)24년‘에 “덕을 버리고 간악함을 높이는 일은 가장 큰 재앙이다”라고 썼다. 도덕을 버리고 간사한 것을 방임하면 큰 화를 초래하게 된다!
지난 20년간, 사회, 도덕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한다. 오늘날 중국 사회를 보면, 물욕이 넘쳐 흐르고 도덕이 무너져 노인이 넘어져도 부축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차에 치이면 기사는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가속 페달을 밟아 부상자를 깔아 뭉갠다.
만약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무리한 탄압이 없었다면, 인권을 유린한 악당 장쩌민이 모든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진선인을 탄압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마음속으로 요구했을 것이고, 노인이 넘어진 걸 보고 부축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이난(海南)성 사법청 원 청장은 한 회의에서 “현재 범죄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범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단속한다면 정부의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겠는가, 공산당은 제2의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는데 다른 신앙을 하나 더 갖게 되면 죄수가 한 명이라도 적어지는데 이는 사회나 국가에 좋지 않겠는가?”라고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맺음말
중국은 예로부터 발전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불행이 극에 달하면 행운이 온다고 했다. 어떤 일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반드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공검법사들이 20여 년에 걸쳐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상을 말하고 중생을 구한 감화 아래 진실을 깨닫고 이성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중공의 거짓말에 현혹된 사람들은 중공의 ‘제로화(清零)’ 정책에 따라 여전히 파룬궁 수련생들을 무지하게 박해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2021년 1월까지,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악인 명단’에 현재 47명의 ‘성부급'(일명 ‘중관’) 정법계 낙마 고관의 이름이 올라 있다. 2021년에 또 30여 명의 중공정법위원회 서기가 낙마했다.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박해, 이 악행은 역사의 치욕이며, 기둥에 못 박힐 수밖에 없다.
진선인을 타격해 사회 전반에 큰 상처를 입히고 씻을 수 없는 상해를 조성했다. 우리는 “파룬궁의 결백을 되돌려 세계에 기적을 남길 것”을 호소한다.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미래에 중공 사당이 없어진 중화 대지에서 전통이 되살아나고 인심이 선해지고 도덕이 되살아난다면 이는 얼마나 희망으로 충만한 신천지가 될 수 있겠는가!
원문발표: 2022년 1월 2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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