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이밍(慧明)
[밍후이왕] 중국의 유구한 전통문화에서 경천보민(敬天保民)은 사람들이 줄곧 전승해 온 미덕이다. 공자는 일찍이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했다. 즉, 정치란 천하를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예부터 백성들은 국민을 위해 집권하며 강직하고 사심이 없는 관리를 ‘청천(青天)’이라 불렀고 법을 어기고 국민을 억울하게 만드는 관리를 ‘간신(奸臣)’이라 불렀다.
상고시대부터 순(舜)임금은 신하 고요(皋陶)를 선택해 사법을 관장하고 ‘구덕(九德)’을 행했다. 고요는 천하에 죄를 재판함에 억울한 사건이 없게 해 ‘옥신(獄神)’으로 불렸다. 중국 첫 통일 왕조인 진나라에 이르러 ‘위리지도(為吏之道-관리로서 지켜야 할 근무 태도 등을 기록)’를 제정했다. 관리가 된 자는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사람을 헛되이 죽지 않게 했다. 악(인)을 징벌하고 선(선량한 사람)을 선양하도록 요구하는 ‘이위민강(吏為民綱)’을 명확히 제기했다. 다시 당나라의 정관지치(貞觀之治)에 이르러 당률(唐律)을 공포해 ‘예(禮)’와 ‘인(仁)’을 주지(主旨)로 삼았다. 당나라의 법률은 천 년 동안 이어져 청나라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당나라의 법률을 근거로 삼았다.
역대 왕조는 모두 공정하고 청렴하여 후세에 모범을 보인 유망한 관리들을 남기는 동시에 역사는 권리로 사욕을 도모하고 법을 어기며 국민을 억울하게 만든 무능한 관리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받은 기록도 남겼다.
사건 위조를 거부한 장성헌(張成憲) 승진하여 복보를 받다
‘이견지(夷堅志)’의 기재에 따르면, 송나라 때 허난(河南) 진주(陳州)에 장성헌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완추(宛丘)현의 현위(縣尉-경찰, 옥사 등의 관직)를 대리하면서 두 패의 강도 15명을 붙잡았다. 옛 현위가 귀임한 후, 이 소식을 듣고 죄수가 일정 수에 이르면 경성으로 전근되어 관리가 될 수 있었기에 두 사건을 하나로 합칠 것을 제기했다.
이 일은 군수에게 보고됐고 군수와 옛 현위는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웠다. 장성헌은 의견을 물었더니 장성헌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현위가 이 일로 상을 받고 승진하는 것에 자신은 이견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을 돌보지 않고 공문서를 속임수로 고쳐 두 가지 사건을 하나로 말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무중생유(無中生有,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적의 실책을 유도함)이고 죄명을 꾸며내는 것이오니 처리할 수 없음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12년이 지난 뒤, 장성헌이 강회(江淮) 지역의 발운사(發運司)라는 기구에서 관직에 종사할 때, 꿈속에서 대전에 이르렀는데, 대전에는 염라대왕이 앉아 계셨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진주에서의 일을 아직 기억하는가?”라고 묻자, 장청셴은 “아직도 눈에 선해 감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게 지금 증빙할 수 있는 공문서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여기 문서에 모두 기재되어 있으니, 자네가 무슨 공문서를 제공할 필요는 없네.”라고 알려줬다.
그가 대전을 나설 때, 또 두 명의 저승 관리가 그에게 한 필의 무늬 비단을 주면서 “이것은 자네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줄곧 아이가 없었던 장성헌은 그 해 일남 일녀를 얻었다. 7년 후, 그는 대부[大夫, 경(卿)과 사(士) 사이의 귀족] 신분이 되었고 임종 전에는 이미 직비각(直秘閣)으로 진급했다.
관리가 관리의 도를 잘 지킨다면 마땅히 있어야 할 복을 받을 수 있지만, 만약 관리의 도를 벗어나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한다면 결국 악보를 받게 된다.
이승의 공문서는 저승에서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이견지’에는 진회의 동생인 진체(秦棣)가 선주(宣州)에서 지주(知州)를 역임할 때, 불법적으로 술을 빚는 마을 사람을 잡으러 관원들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은 강도인 줄 알고 사람을 동원해 이들을 붙잡았다고 기재돼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 ‘강도’를 주부(州府)의 관아에 압송했을 때, 진체는 즉시 이 관리들을 풀어주고 불법적으로 술을 빚은 손자와 조부모 세 사람을 잡아들여 밧줄로 어깨부터 발끝까지 꽁꽁 묶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100대의 장형을 받았고 그들을 묶은 밧줄을 풀었을 때는 이미 모두 죽었다.
관아의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진체의 형 진회(秦檜)가 재상(宰相)이고 지위가 높으며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감히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불과 1년 뒤, 진체는 갑작스레 지주를 역임하던 곳에서 죽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선주의 지주는 양원중(楊原仲)이라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오전, 그가 관아에서 업무를 보던 중 몇 사람이 온몸에 족쇄를 찬 범인 한 명을 데리고 관아로 온 것을 보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우리는 하촌(何村) 사건의 공문서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갓 부임한 양원중은 ‘하촌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몰랐다. 그가 다시 명확히 물어보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이미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서리(書吏-옛 하급 관리)를 불러와 물었더니 “이것이 바로 진대제가 당시 지주로 있을 때, 일어난 부잣집 양주 사건입니다.”라고 알려줬다. 그가 공문서를 가져와 양원중에게 훑어보도록 청을 드렸다. 양원중이 본 후, 매우 놀라 그에게 반듯하게 한 번 필사하게 했고 또 10만 명전(冥錢-저승에서 쓸 돈)을 사서 그 공문서들과 함께 태웠다.
이 세상에서 행한 부당한 사건은 저승에 가면 다시 한번 거쳐야 하는 모양이다. 진체는 급사한 후, 저승에서 심문을 더 받아야 했다. 그가 잔혹한 고문으로 마을 사람한테 복수하여 죽게 만든 것은 천리가 용납하지 않으며 죄와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을 선고하기 위해 80세의 할머니의 나이를 5살 줄이다
2020년 9월, 충칭(重慶)시에 천구이펀(陳貴芬)이라는 80세의 파룬궁 수련생이 있었는데,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형을 선고하기 위해 사법 관계자는 나이를 5살이나 줄였다. 판결문에서 천구이펀의 나이는 고쳐져 75세가 되었다.
80세로 하면 천구이펀은 감옥에 수용될 수 없었고 나이를 75세로 고치면 ‘모함하여 투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여 년 이래, 중국공산당(중공) 법정에서는 법률을 장난감처럼 주무르며, 법정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믿기 어려운 불법적인 법정 심문을 연출했다.
2003년 9월 5일, 지린성(吉林省) 주타이(九台)법원에서 비밀리에 7명의 파룬궁 수련자를 대상으로 법정을 열었다. 법정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을 법정에서 발언하거나 변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파룬궁 수련자가 입을 열기만 하면 전기봉으로 충격했다. 뤼야쉬안(呂雅軒)은 치아 한 개가 빠지고 파룬궁 수련자의 신체 곳곳에는 전기 충격으로 상처가 났다.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는 동시에 또 전기봉이 망가질 정도로 구타했다.
2005년 9월 12일 오전, 싱룽타이(興隆台)구 법원에서 신민둬(辛敏鐸)를 불법 재판했다. 법정에서 그의 집을 수색해 나온 1100개 CD를 제시하며 그가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가 “당신은 서명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납치돼서부터 지금까지 한 글자도 적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 경찰관이 집에서 CD를 촬영한 증거라며 사진을 제공하자 그는 “우리 집은 바닥이 타일입니다. 사진 속 CD는 나무 바닥 위에 있습니다.”라고 말하여 그 자리에서 부정했다. 판사는 법정에서 말문이 막혔으나, 이후 비밀리에 13년 형을 선고했다.
법정은 공정과 정의에 대한 최후의 보루이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중공은 무신론으로 국민을 억압하지만 천리(天理)는 공정하기 때문에 어느 한 정권으로 인해 바꿔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선과 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天理)’이다
허베이(河北) 잔황(讚皇)현의 기율 검사 위원회 상무위원 화하이잉(滑海英)이 청관진(城關鎮)에서 파룬궁을 박해를 아주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2002년 2월 10일 오후, 화하이잉의 장남 화헝(滑恆)은 18세의 나이로 오토바이를 타다 원인 불명의 충돌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셋째 고모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입을 열고 말할 때 목소리가 변하면서 “저는 아빠와 말할래요! 아빠를 오라고 하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혼이 셋째 고모의 몸에 붙은 것이었다. “아빠, 앞으로 파룬궁에 개입하지 말아요.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正法)이에요! 들으셨어요!” 화하이잉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침묵을 지켰다. 이때, 그의 혼이 붙은 셋째 고모가 화하이잉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며 큰 소리로 반복해 말했다. “앞으로 파룬궁에 개입하지 말아요, 파룬따파는 정법이에요! 들으셨어요! 들으셨냐고요!” 이때, 한쪽에 서 있던 화하이잉의 친척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빨리 대답 안 해요!”라고 말하자, 깨달은 바가 있는 듯 “알아들었어. 그래, 그래, 그래, 내가 약속할게.”라고 말했다.
이 일은 현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파룬궁이 광적으로 박해받고 있어 사람들의 관심이 파룬궁에 집중된 데다가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 현지에서의 파급효과는 컸다. 이 일은 파룬따파 밍후이왕에 의해 밝혀진 후, 허베이성 내의 믿기지 않았던 고위 관리들은 사람을 보내어 진위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들이 화하이잉을 찾아가 정황을 묻자, 화하이잉은 큰 압력을 무릅쓰고 사실을 털어놓은 뒤 결국 사표를 던졌다. 진위를 조사하던 성내의 고위 관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현지인들에게 파고들어 암암리에 조사해본 결과, 모두 밍후이왕의 보도와 상당히 일치했다.
사실 고서에서나 민간에서나 막론하고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왔고 선에는 선한 응보가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는 정당한 이치는 사람들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비록 중공의 무신론의 장기적인 주입과 미혹하에 많은 사람이 길을 잃었으나, 5천 년의 문명이 중국 땅에 남겨준 정신적인 자산이 어찌 어느 정당이나 개인에 의해 한꺼번에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정의는 반드시 사악을 이긴다.’ 비록 정의가 늦게 올 수 있지만, 반드시 찾아온다. 중공 공검법(公檢法, 공안 기관, 검찰청, 인민법원의 합칭) 관계자들은 양심을 지키며 지혜롭고 선의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대하고 중공의 총잡이가 되지 말기를 권고한다!
원문발표: 2021년 9월 3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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