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쥔(賴志軍), 남, 35~40세. 광둥성 둥완(東莞)시 대법제자. 2000년 3~4월 싼수이(三水)노동교화소(중국에서는 노동교양소라고 함. 이하 노교소)에서 박해받아 사망.
라이즈쥔은 광둥성 둥완시 펑강(鳳崗)진 전 부진장겸 인민대표부주임, 우수당원. 1999년 설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심신에 큰 변화를 일으켜 대법을 수련하는 길을 선택하고 현지에서 책임감을 갖고 대법을 홍보했다. 1999년 장씨 집단이 대법을 박해하여 그도 수많은 대법제자처럼 12월에 혼자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천안문광장에서 연공하던 그는 경찰의 이성을 잃은 구타를 당하고 둥완시로 압송되어 모모진의 한 수감소에 갇혔다. 수감소에서 박해받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낼 방법이 없다.
둥완시에서 파룬궁을 탄압하던 지도자는 그가 둥완에서 유일한 공무원이 청원하러 가서 둥완시정부의 체면을 구겼다고 여겨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수감소에서 4개월 가량 가두고 2000년 3월 싼수이노교소로 보냈다. 3일째 단식으로 박해를 거부했으나 며칠 뒤 박해받아 사망했다. 가족이 통지를 받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살아있는 그를 볼 수 없었다. 노교소는 가족에게 병사라며 400위안을 주고 일을 마무리하고 밖에 소문내지 말라고 했다.
싼수이노교소에 불법 수감된 적이 있던 한 광둥대법제자의 폭로에 따르면, 라이즈쥔은 교도소에 간 뒤 연공을 견지하여 경찰에게 잔혹하게 맞고 전기충격을 당했다. 그는 연공을 요구하기 위해 단식으로 항의했다. 자궈둥(賈國棟), 천젠궈(陳建國), 쉬융성(徐永生)도 함께 단식했다. 그들은 모두 구타와 전기충격을 당했고 라이즈쥔만 남겨두고 모두 다른 대대로 보내졌다. 라이즈쥔은 연공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구타와 전기충격을 받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감옥에서 이 과정을 목격한 경찰 천루이훙(陳瑞洪)도 라이즈쥔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에 그는 파룬궁 수련생을 집중 박해하는 중대로 전근되었다. 싼수이노교소소장 마씨의 비서는 라이즈쥔의 사망은 그들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라이즈쥔은 2000년 3~4월에 사망했다. 그의 집에 여러 번 전화했으나 받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상황이 험악하여 우리는 더 많은 상황을 알아보러 가지 않았다. 현지 대법제자 중 우리가 아는 사람은 라이씨 밖에 없었다. 얼마 후 우리도 노교소로 납치되었다. 라이즈쥔이 체포되고 박해 치사한 과정을 아는 사람은 진상을 세상에 공개하기 바란다.
갱신일: 2010년7월3일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2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