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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왕아이링

왕아이링(王愛玲), 여, 51세. 허베이성 장자커우(張家口)시 대법제자.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인쇄공장 직원. 시 제일부속병원가족단지에 거주. 베이징에 여러 번 청원하러 갔고 6번 체포되었으며 2001년 5월 15일 박해로 사망. 2000년 10월 6일 베이징에 갔다가 체포되어 1만 위안의 벌금을 강제로 부과 당했고, 2000년 2월 베이징에서 잡혀와 4천 위안의 벌금을, 2001년 1월 1일 다시 잡혀와 1천 위안의 벌금을 강제부과 당했다.

1999년 10월 24일 왕아이링은 베이징 천안문 국기아래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중 경찰에게 잡혀 천안문파출소에서 구타당하고 장자커우시 차오시(橋西)분국에서 불법수색을 당해 현금 600여 위안을 약탈 당했다. 그 뒤 쉬안화(宣化)수감소로 보내져 불법감금되고 단식으로 자유를 요구하다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음식물 강제주입 후 의자에 묶여 다른 8명과 마당에 일자로 줄 세워졌다. 죄수와 교도관이 에워싸고 욕하고 비웃었다. 현장에 차오시분국 린(林)과장도 있었다..

2000년 4월 24일 왕아이링은 다시 청원하러 갔다가 융딩먼기차역에서 역전파출소로 잡혀가 격리심문 당하고 쭈그리고 앉는 독방에 갇혔다. 그 뒤 쉬안화 수감소에 불법수감, 단식으로 자유를 요구하다 생명이 위독하여 아들이 집으로 업고 갔다.

2000년 10월 6일 왕아이링은 베이징에서 체포되어 장자커우시13리수감소에 불법수감 되었다.

2000년 12월 23일 왕아이링은 베이징천안문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쳤는데, 경찰에게 현수막을 빼앗기고 창핑수감소에 감금되었다. 24일 오후 정신병원으로 보내졌고 대법제자 10여 명이 단체단식으로 항의했다. 저녁에 베이징둥청구수감소로 보내져 이틀간 수감되었다. 불법적인 단독 심문시 경찰은 욕하면서 양쪽 따귀를 때렸다. 장자커우시로 돌아온 뒤 쉬안화수감소에서 다시 단식하여 위급한 상황에서 강제로 불법적인 벌금을 부과 당했고 2001년 2월에야 석방 되었다. 왕씨는 집으로 돌아온 뒤 몸이 회복되지 않아 숨이 가쁘고 몸이 부어 제대로 눕지도 못했다.

2001년 4월 25일경 밍더베이(明德北)파출소 경찰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며 “봐라. 당신은 연공해서 이렇게 되었다”라고 조소했다. “이것은 연공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박해한 결과다.” 경찰은 대답하지 못했다. 5월 왕아이링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몸이 불편한 남편과둘째 아들(고2년)은 그녀를 돌보지 못했고, 큰 아들은 베이징에 있기에 수련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간호했다.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어 혼절하거나, 소변을 지리는 실수를 하거나, 숨이 짧고 부종 등 현상을 보이다가 나중에 혼절하여 깨어나지 못했다. 2001년 5월 15일 장자커우시 제일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갱신일: 2010-7-1 10:16: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20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