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더원(陳德文, Chen,Wende), 남, 57세, 랴오닝(遼寧)성 수이중(綏中)현 거자(葛家)향 천(陳)촌 사람이다. 2001년 3월 11일 랴오닝성 후루다오(葫蘆島)시 교양원 경찰에게 전기방망이 폭행을 당해 치사했다. 하지만 경찰은 천더원은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진실을 왜곡했다.
천더원은 96년에 법을 얻었다. 99년 4.25 전에 주변의 몇몇 향에서 파룬궁을 널리 알렸고 기타 수련생들을 도와 법학습을 이끌어주기도 했다. 99년 5월 13일 중공(중국공산당)의 극도로 심한 압력 하에서 법회를 열었다. 99년 7.20때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많은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는데 가는 길에 촌장에게 발견되어 천더원 자신이 촌장을 붙잡고 있으면서, 다른 수련생들로 하여금 이 틈에 빨리 벗어나 가게 했다.
99년 10월 30일 오전 그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는데 그 후 수이중 교도소에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모진 매를 맞아 10일 후 두 눈가에서 피가 흘렸으며 후에 후루다오 교양원에 보내져 감금당했다.노동교양소에서는 장기적으로 엄격한 감시를 실시했는데 10센티미터 넓이, 1미터 높이의 긴 걸상에 천더원을 앉히고 장기간 학대를 가했다. 장시간 앉아 있어 둔부에 크고 깊은 구멍이 생겼다.
한번은 사오(邪悟)한 배신자가 와서 보고를 하였고 게다가 많은 사악한 무리의 두목들이 와서 참가했다. 사오한 자가 금방 발언이 끝나자 천더원이 곧 일어서더니 “내가 두 마디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깜짝 놀란 악경(흉악한 경찰) 류궈화(劉國華)는 즉시 얼굴색이 변하더니 황급히 그를 자리에 눌러 앉혔다. 그 이후부터 사악은 굴함이 없이 당당한 그를 다시는 어떠한 활동에도 감히 참가시키지 못했다.
2000년 11월 말 천더원은 강제 세뇌를 당하였는데 사악한 무리들은 대법을 공격하는 내용의 녹음을 틀어놓았다. 그는 맨 먼저 일어서서 제지하였다. 이로 인해 연속 4일간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다른 수련생이 매를 맞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천더원은 떨리는 손으로 그를 부추겨 일으켰으나 그 후 자신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또 일어서며 대법제자는 쓰러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천더원은 후기에 잠을 아주 적게 잤다. 시시각각 사부님의 법을 암송했고 또 기타 수련생들을 독촉해 법을 학습하게 했다. 어떤 수련생이 잠을 자면서 법공부를 하지 않자 천더원은 그를 깨워 법공부하게 했다. 훗날 여러 동수들은 그때 법공부하도록 독촉했기에 큰 수혜를 얻었다면서 당시 상황을 상기했다.
2001년 11월 29일 후루다오 교양원 1층에는 25명의 대법제자가 모여 단체단식으로 무조건석방을 요구했고 동시에 사부님의 결백함을 밝혔다. 29일 오전, 교도관과 과장 장푸성(張福聖) 등 사람이 왔는데 사오한 배신자 류궈화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조작한 가짜 경문을 읽어 그 자리에서 대법제자 텐찬량(田贊良)의 호된 제지를 받았다. 오후 류자원(劉加文)대대장은 텐찬량을 불러내었다. 후에 텐씨를 식당 2층에 데려가 교도관과의 악경들이 전기방망이로 수 시간 심한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텐씨는 맞아 반신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늑골이 맞아 부러졌으며 기침할 때도 다른 사람이 늑골을 받쳐주어야 비로소 기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치료도 해주지 않았다. 대법제자 충궈즈(叢國志)도 면담한다는 구실로 불려나갔다. 기타 수련생들은 충궈즈가 또 혹독한 매를 맞을까 봐 강력히 항의하면서 충씨를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교양원은 이 사실들을 상급부문인 시 당위원회에 보고했다.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저우펑밍(周鳳鳴)이 직접 지휘하여 전투경찰을 투입시켜 30일 저녁 일층 서쪽 방의 8명의 대법제자를 잠자는 이불 속에서부터 직접 연행해갔다. 많은 이들이 겉옷도 걸치지 못하고 신발도 신지 못했다. 동쪽 방에 있던 3명의 대법제자도 교양원의 뭇 악경 들의 혹독한 매를 맞으며 강제로 연행되어 갔다. 수련생 런샤오베이(任小北), 위창원(於長文)은 손수건으로 입이 틀어 막혀 끌려갔다. 이렇게 11명의 대법제자가 후루다오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대법제자 런샤오베이, 저우워이성(周維生)은 이튿날 가장 큰 철수갑을 채인 채 강제 음식물주입 고문을 당했다.
같은 시각 후루다오 교양원은 나머지 단식 대법제자에 대해 미친 듯이 혹독한 매를 가했다. 원장의 직접적인 지휘하에 30대의 고압전기방망이를 동원하여 대법제자에게 고문을 가했다.
후루다오 교양원 의사이며 경찰인 왕다루(王大陸)는 특히 사악했다. 2001년 3월 박해로 치사한 대법제자 천더원 등 4명에게 강제음식물주입 고문을 가할 때 그는 4명의 수련생에게 주입하는 음식물에 한 근(500g)의 식염을 넣었다.
이번 박해에서 모든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사람을 해친 흉수들 중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교도관과의 왕성리(王勝利), 장푸성(張福勝), 숭(宋) 간사, 궈(郭) 간사, 1대대의 리젠(李劍), 숭(宋) 대장 및 보통 교도 2대대의 양(楊) 대장, 왕주전(王住真), 장궈주(張國柱), 그 밖에 생활과의 양(楊) 과장, 추이샤오둥(崔小東) 등 20여 명이다.
2001년 2월 말, 교양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에게 강제로 운동복을 입혔는데 이에 앞서 수련생들은 사람을 해친 흉수들을 엄격히 징벌할 것을 요구하며 접견권리를 줄 것을 요구했으나 원장은 허락하지 않았다. 운동복을 입는 것은 그들에게 타협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천더원은 입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교도관은 그를 또 밖으로 끌고 가 그의 옷을 다 벗기고 운동복을 강제로 입혔다. 그래도 천더원은 수갑을 찬 손으로 강제로 입힌 옷을 벗으려고 아래로 잡아 끌었다. 후에 혹독한 매를 맞고 전기방망이 충격을 당했으며 그 후 그는 단식으로 항의했다. 강제 주입하는 옥수수 죽에 흉악한 의사는 소금 한 근(500g)을 넣었다. 강제음식물 주입을 당한 4명의 수련생들은 종일 구토를 하였는데 입 안의 살이 다 빨려 들어갔으며 그 고통은 사람이 가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수련생들이 물을 마시기 시작하자 천더원은 물을 마신다면 절대 단식이라 할 수 없다며 그는 계속 단식을 견지해나갔다. 후에 정신을 잃자 병원에 보내졌으나 영원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소식이 폭로되자 후루다오시 교양원의 경찰은 외부에 대해 천더원은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 했다. 하지만 당시 현장의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천더원과 함께 학대를 당했던 그 중의 한 수련생이 경찰에게 천더원이 심장병이 있었다면 절대로 전기방망이로 때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질문하자 이에 대해 경찰은 아무런 일언반구의 변명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9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