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장리잉
장리잉(姜麗英,여,45세) 산둥성 자오위안(招遠)시 대법제자. 장리잉은 2001년 1월 19일 불법으로 재산을 몰수 당했고, 진상자료 출처를 밝히지 않아 2001년 1월 25일 현지 공안에게 고문당해 사망했다.
장리잉, 산둥 자오위안시 링룽(玲瓏)진 장자(姜家)마을 거주, 학력은 중졸. 어려서부터 한쪽 다리 장애로 걷기에 불편했던 그녀는대법을 배운 뒤 많은 이득을 보았다.
1999년 7월 20일 사악이 박해를 시작한 당일, 그녀는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다 톈진시에서 현지 공안에게 걸려 자오위안시 링룽진 정부로 보내졌다.
2000년 1월 1일, 장리잉은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갔으나 천안문광장에서 공안에게 잡힌 뒤 자오위안시 공안이 황금조사대대(黃金稽查大隊)로끌려가 현금 300위안을 불법 강탈당했다.그 뒤다시 자오위안시 링룽파출소쇠창살에 7일간감금 당한 채1500위안을 그녀의 가족에게 강제로 받은 뒤석방했다.
2000년 10월 11일, 장리잉은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라이저우시 사허(沙河)진에서 현지 경찰에게 잡혀 저녁에 자오위안시 공안이 순경대대로 싣고갔다. 이튿날 링룽진 파출소는 그녀는 데려다 심문하고 당일 형사구류한 뒤 30일 후 링룽진 파출소에서 하루 가두고 가족에게 500위안을 강제징수한 뒤그녀를 석방했다.
2001년 1월 19일 오전 8시경, 자오위안시 공안 리구이보(李桂波), 류원칭(劉文慶)이 장리잉네 집으로 불법침입해대법자료와 대법서적을 몰수하고 수감소로 데려갔다.
21일 오전, 장리잉은 수감소에서 610전문사건팀으로인계되어 심문을 받았다. 끝까지 자료출처를 밝히지 않아 여러가지 혹형을 당했다. 경찰은그녀에게 폭행을 가하고전기곤봉으로 충격을 가했으며, 강판으로 가슴을 집고 쇠망치로 강판을 내리쳤다. 혹형은 하루 밤낮 계속 되었다. 23일 수감소는 장리잉을 링룽분국으로 보내 밥을 주지 않고 가족도 면회도 금했다.
24일 오후 5시, 분국에서 가족에게 면회하라고통지했다. 가족이 도착했을 대 장리잉은 혼수상태였고 두 손은 검은 색이었다. 가족이 석방을 요구하자 공안은상급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며 기다리라고 했다.마침내 인민병원으로 데려가라는 허락을 받았지만결국 그녀를 구하지 못한 채1월 25일 오전 10시 장리잉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링룽분국 국장 롼더칭(欒德青)은 직접 살인은 지휘했고 범인은 현재 시 610사무실로 전근되어 갔다.
갱신일: 2010-8-5 10:50: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7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