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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류즈펀

류즈펀(劉志芬), 여, 60세. 쓰촨(四川) 청두(成都), 충저우(崇州) 대법제자. 2001년 2월 4일(음력 정월 12일) 쓰촨충저우수감소에서 박해받아 사망.

류즈펀은 쓰촨(四川)성 충저우(崇州)시 충양(崇陽)진 싱탄(興曇)촌 8조에 살았고,충저우시 원화둥제(文化東街)에서 재봉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위장병, 풍습을 달고 살며 기타 병까지 있던 그녀는 약을 먹어도 호전이 되지 않자 97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여 온 몸의 질병이 사라짐과 동시에 사람도 많이 젊어졌다.

2000년 5월 류즈펀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경찰에게 체포되어 베이징파출소, 베이징주재사무처, 청두칭양계독소에 차례로 갇혔다. 이 기간에 경찰은 류즈펀에게 수갑을 채우고, 따귀를 때렸으며, 온몸을 구타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충저우공안국은 그를 충저우시구치소에 15일 구류했다. 구류기간에 경찰은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여 타협하라고 협박했지만 류즈펀은 강하게 거부했다. 충저우공안1과 경찰은 류즈펀의 아들을 협박해 서명하게 했으며, 아들에게 류즈펀의 소위 ‘생활비’와 ‘차비’ 수백 위안을 내라고 했다.

2000년 6월 23일, 류즈펀은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경찰에게 잡혔다. 베이징수감소, 베이징주재사무처에서는 류즈펀의 옷을 강제로 벌거벗기고 몸을 수색했으며, 뙤약볕 아래 세워놓고, 또 심하게 구타한 다음 충저우시공안국으로 데려갔다. 충저우시공안국에서 17일 불법수감한 뒤 충저우수감소로 옮겨서 또 20일 구류했다. 이 기간에 교관 장위전(張玉珍)은 류즈펀에게 뒤로 수갑을 채웠다. 류즈펀은 6일간 식사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으며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사주받은 한 여자 죄수는 류즈펀을 때리고 욕했다. 류즈펀은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단식을 하면서 불법박해에 항의하여 석방되었다. 석방될 때 경찰은 류즈펀의 아들에게 생활비, 차비 수백 위안을 또 내라고 했고 또 다시 아들을 협박해 수련을 포기한다는 ‘보증서’에 서명을 하게 했다.

2000년 10월, 류즈펀은 밖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붙이다 충저우시 경찰에게 불법으로 체포되어 구치소에서 2일 감금되었다. 경찰은 류즈펀의 아들에게 ‘보증금’ 500위안을 받고 서명하게 하여 보증을 한 뒤에야 류즈펀을 석방했다.

2001년 1월 6일, 충저우시공안국 청관파출소 경찰 몇 명이 류즈펀의 집에 뛰어들어 이유도 말하지 않고 류즈펀을 충저우시수감소에 감금했다. 경찰은 계속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고 류즈펀은 강하게 거부했다. 새해가 오자 교관은 류즈펀과 기타 감금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중앙방송국에서 기획한 조작된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을 보라고 했다. 류즈펀은 사건의 음모를 간파하고 단식하며 악도들의 강제 세뇌에 항의했다. 악도는 더욱 미친듯이 류즈펀을 끌고 가서 머리를 벽에 박고, 구타하며 강제로 물과 음식물을 주입하며 괴롭혔다. 강제로 입을 벌려 음식물을 주입하여 류즈펀의 이가 모두 흔들거렸고 목구멍과 식도에 상처가 났다. 류즈펀은 정신과 육체적으로 시달림을 받으며 2월 4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망하기 전 류즈펀은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고, 머리에는 혹이 하나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조금밖에 남지 않았고 입은 다물지 못했다. 사망하기 전 류즈펀은 다른 파룬궁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결가부좌를 마지막 순간까지 견지하여, 세인에게 파룬궁 수련자의 수련의지는 영원히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2월 4일 오후 2시경에야 경찰은 류즈펀의 자녀들에게 파출소로 오라고 통지했다. 경찰은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류즈펀의 아들 딸에게 “류즈펀은 연공하여 주화입마해 죽었다”고 고함을 질렀다. 가족은 비통해 하며 “당신들이 살해한 것이야”라고 말했다. 가족은 이 일을 추궁하겠다고 하자 경찰은 “이미 화장터에 보냈다. 장쩌민(전 주석)을 찾아 가거라!”고 고아댔다. 가족은 화장터로 가서 가죽과 뼈만 남은 류즈펀의 시신밖에 보지 못했다. 악도는 즉시 시신을 화장하라고 명령했다. 법의 감정은 커녕 가족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살인범은 소식을 엄밀히 봉쇄하고 가족에게 소문을 내지 말며 장사를 치르지 말라고 위협했다. 파출소는 사복경찰을 파견해 장례 치르는 상황을 감시하며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을 통제해, 류즈펀의 많은 지인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충저우시공안국은 살인 진상을 은폐하고 또 악독하게 ‘류즈펀은 연공하고 약을 먹지 않아 죽었다’고 모함했으며 충저우텔레비전방송에 방송해 충저우 사람들을 기만했다.

갱신일: 2010-7-17 22 :07: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5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