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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난추인

난추인(南初寅,남, 53세). 후베이(湖北)성 시수이(浠水)현 왕강(汪崗)진 메이산(梅山)향 장안먀오(張安廟)촌 3조 . 직업 의사. 난추잉은 장쩌민 집단에 박해당해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이다. 그는 유감을 띤 눈으로 그의 가족을 떠나갔다.

난추인 다섯 식구는 모두 대법제자로 대법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 그의 가정이 나날이 좋아질 때 장쩌민(중공 전 국가주석) 집단은 파룬궁(法輪功)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정의를 펼치기 위해 그들은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베이징 중앙정부에 찾아가 바른 말을 했으며, 단체 연공에도 참가하고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하기도 했다. 그 결과 난추인이 3번 감금되었고, 노동교양 1년을 받았다. 작은 딸도 노동교양을1년 반이나 받았다. 큰 아들은 시난(西南)석유학원에서 해고 된 후, 시수이 공안국에 아무런 이유 없이 수개월 감금되었다. 큰 딸도 3번이나 감금되고 그의 부인도 밖에서 연공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멀쩡하던 한 가정이 이번박해로 파탄이 되었다.

난추인은 신체를 단련하려고 1999년 7월 23일, 12월 25일 시수이광장에서 연공하다 두 번이나 체포되어 경찰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12월 25일 저녁, 경찰 샤서우쑹(夏壽鬆)은 손전등으로 대법제자 난추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고, 경찰 리 쉰화(李勳華), 간스타오(甘世濤), 양젠(楊儉)과 함께 난추인을 구타하고 구둣발로 바닥에 넘어진 그의 목을 밟았으며, 머리와 몸을 마구 걷어차 온 얼굴에 피가 가득했다. 시수이 제1수감소로 넘겨진 후 거의 매일 구타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모진 폭행으로 난추인은 혈변을 보기 시작하더니하복부가 점점 부어올랐다. 난추인은 2001년 2월의 어느 날 저녁에 대량으로 피를 토하다 세상을 떠났다.

수감기간 난추인은 여러 번 심문당하고 노동교양 결정을 받았다. 9개월 감금된 뒤 황스(黃石)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교양소는 그의 상황을 보고 일을 시키지 않았다. 1개월 후 그를 다시 기타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사양(沙洋)노동교양소로 보냈다. 장시간 부종, 혈변으로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아 한 대대에 감금되어 있던 수련생들은 난추인을 몹시 걱정했다. 사양노동교양소에서 1개월 가량의 교동교양 기한이 만료된뒤, 강요로 ‘3서’를 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대량의 혈변을 보고 토혈을 했다. 난 추인은 의사이기 때문에 구타당해 간이 파열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성을 말살한 경찰은 여러 번 그를 압박하여 수련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강압적으로 쓰게 했다.

갱신일: 2010-7-4 0:29: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5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