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신(王立新), 남, 32세, 지린성 지린시 대법제자. 2000년 12월 3일 지린시 제3수감소에서 경찰과 죄수에게 구타당해 사망.
왕리신은 2000년 11월에 대법자료 100부를 복사하다 공안국에 잡혀갔다. 그는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으려고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수감소 측과 죄수들은 그를 ‘대법제자’라 불렀다.
지린시 제3수감소 5호 감방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와 대법에 대한 비방에 항의하기 위해 왕리신은 단식을 했고, 단식 2일 후 6호 감방으로 보내졌다. 마피아라 자칭하며 10만 위안을 강탈한 죄로 감옥에 들어온 반장 펑나이우 (馮乃武)는 갖은 방법으로 왕리신을 괴롭히고, 모욕하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단식 4일 후 8호 감방으로 보내졌다. 반장 양하이룽(楊海龍)은 왕리신을 협박하고 회유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펑나이우는 성이 양가인 교도관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주도적으로 왕리신을 6호 감방으로 데려갔고, 사람들 앞에서 양 교도관이 때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떠벌렸다. 그들이 왕리신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할 때 왕리신은 숨이 막혀 혼절했고 입을 강제로 열어 피가 많이 났다.
펑나이우는 두 명의 죄수(15, 6세)를 시켜 울며불며 왕리신에게 밥을 먹으라고 말하게 했는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 두 사람을 때렸다. 왕리신은 펑의 수법을 알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펑은 밤에 일하는 9명에게 왕리신을 자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죄수 장췬(張群)은 한 주먹에 다른 사람의 콧대를 부러뜨려 감옥에 들어왔다. 권투를 10여 년 연마한 그는 펑의 지시에 적극 협조했다. 왕리신이 금방 눈을 감자 그는 생수병으로 그에게 물을 부었다. 다시 눈을 붙이자 그는 왕리신을 치고 박고 하며 그를 갖고 권투 연습을 했다. 단식 5일째 양 교도관과 장 교도관은 하수인 몇 명을 불러 강제로 수갑과 족쇄를 찬 왕리신을 교도관실로 데려가 소금물 1근을 주입했다. 장 교도관은 소금물을 주입한 생수병을 들고 득의양양 해 하며 6호 감방을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생수병에 담긴 농도 높은 소금물이 죽처럼 걸쭉한 것을 보았다. 6일째 저녁 왕리신은 또 학대를 당해 한잠도 못 잤으며 소금물의 강제주입을 견뎌야 했다.
단식 7일째 점심 왕리신은 몸이 허약해지고 정신이 맑지 않았으며 말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다. 펑나이우, 장췬, 샤오훙(小紅, 마피아 분열, 총살 사건으로 감옥에 갇힘)은 교대로 왕리신을 구타했다. 그 장면을 양 교도관과 장 교도관은 창문에 엎드려 2분간 구경한 뒤에야 감방 문을 열고 그들에게 왕리신을 교도관 실로 데려가라고 했고 동시에 왕리신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반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왕리신을 6호 감방으로 데려왔다. 왕리신은 수갑이 뒤로 채워져 있었고, 입에는 흰 수건이 물려져 신음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이튿날 왕리신은 병원으로 보내졌고 이틀 후(단식 10일째)에 사망했다.
장췬이 저녁에 왕리신을 자지 못하게 하고 구타할 때 한 순찰하던 노 교도관이 보고 제지했다. 이튿날에 그 과정을 칠판에 적어놓았으나 양 교도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노 교도관을 대놓고 적대시하여 펑나이우 일당이 더욱 거리낌없이 굴었다(현재 펑나이우는 아직도 집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린시 사법국은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 경찰소장과 6호 감방을 주관하는 교도관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6호 반장과 두 하수인도 그 전에 처리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3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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