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융장(尹永江, 남, 37세)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시 대법제자. 사람들은 그를 양산(揚善)이라 불렀다. 1999년 7월 사악한 악도는 사부와 대법을 공격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했다. 인융장은 수 차례 불법수감 되고 사악에게 장기간 수배까지 당했는데, 그는 목숨을 내놓고 대법서적을 보호했고, 또경찰이 두려워 타협했던 적도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곳곳으로 다녔는데 어떤 때는 혼자 다른 현으로 갔는데 그날은 전단지가 온 현에 퍼졌다. 나중에 그는 또 자료를 인쇄하는 일을 했는데, 그가 인쇄한 전단지 수량은 란저우시 시민이 한 사람당 한 장을 가져가도 되는 숫자였다.
1999년 7.20 부터 2002년 6월까지 적어도 420여 명의 대법제자가폭행치사 당했고, 수십만 명이 불법수감, 노동수용 판결되었다. 장쩌민(江澤民)、뤄간(羅幹) 정치 망나니 집단의 사주하에 간쑤 경찰은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 중 박해로 사망한 일부 수련생 명단이다. 인융장(尹永江)[란저우시 청관(城關)구)], 야오바오룽[란저우시 안닝(安寧)구], 황싱진(黃星瑾) [우웨이(武威)시 량저우(涼州)구], 리파밍(李發明)[룽시(隴西)현)], 류란샹(劉蘭香)[우웨이시 민친(民勤)현], 쑹옌자오(宋延昭)(우웨이시 량저우구),장펑윈(張鳳雲)[란저우시 시구(西固)구],위안장(袁江)[란저우시 청관구].
2000년 12월 26일인융장은 동수 몇 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차에서 그는 동수에게 “나의 생명을 한마디로 응결해 나의 선혈로 현수막에 적을 것이다. 그 다음 나는 당신의 어깨 위에 서서 현수막을 펼쳐 사람들이 모두 ‘사부에게 결백을 돌려달라’라는 글을 보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사악의 오랜 추포(追捕) 박해로 그의 생명은 이미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27일 오전 10시 그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약 1천 밀리리터를 토했을 때 동수들은 그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가지 않겠다며 죽어도 천안문 광장에서 죽어 법을 실증하겠다고 말했다. 2천 밀리리터를 토했을 때 그는 “나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남아있다면 나는 천안문에 가서 ‘사부에게 결백을 돌려달라’고 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피를 약 3천 밀리리터 토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사부’라는 두 글자만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27일 저녁 10시 반 양산은 그의 모든 정력과 선혈을 다 소모하고 세상과 영원히 이별했다.
그는 천안문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갔다.
동수들은 한 밤에 그를 천안문으로 데려갔다. 그의 주머니에는 동수가 ‘파룬따파 하오’라고 쓴 현수막이 있었다. 아니다. 그것은 그가 전부의 생명으로 온 몸의 선혈로 응결한 한마디 “사부에게 결백을 돌려달라”였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03.ht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0-10-06 22:03:25 박해사망사례1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