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구이잉(謝桂英), 여, 30세, 안후이(安徽)성 화이난(淮南)시 촨산공상소(泉山工商所) 직원.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2000년 10월 17일 저녁 8시경 안후이성 화이난시 차오양(朝陽)구 파출소 경찰은 이유없이 대법제자 셰구이잉의 집에 와서 수색을 했다. 경찰은 대법서적을 가져가려 했고 셰구이잉은 뺏기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여 많은 구경꾼이 모였다. 경찰은 가족을 속여 구경꾼을 보내게 하고 셰 씨의 머리카락을 잡고 그녀를 구타한 후 강제로 파출소로 끌고가 감금했다.
이튿날 새벽, 셰구이잉은 중상으로 시 인민병원에 실려 갔다. 목격자는 당시 셰 씨가 얇은 옷을 입고 나무판에 이불도 없이 누워서 온몸을 떨고 있었고, 입술이 갈라 터져 매우 고통스러워 했지만 말을 하고 물을 마실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경찰 3명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는데 아무런 응급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10월 18일 오전 10시경 셰구이잉은 사망했고, 경찰은 오후 4시에 장례식장에 보냈다.
차오양구 파출소는 책임을 회피하고자 셰구이잉이 투신자살 했다고 거짓말 했다.
셰구이잉의 어머니 신궁화(辛公花)는 3년 동안 사람만 만나면 울면서 딸이 비참하게 사망한 사실을 알렸다. 시장, 백화점, 아파트 단지에서 셰구이잉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녀가 박해 받아 사망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아래는 셰구이잉의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알린 딸의 억울한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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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셰구이잉의 어머니 신궁화다. 내 딸이 박해 받아 사망한 상세한 내용은 이러하다.
2000년 10월 17일 저녁 7시, 나는 딸 셰구이잉과 함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더니 회사의 보안 황스차이(黃世才)가 흉악한 경찰 5명을 데리고 집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집을 마구 뒤지다가 딸의 침대에서 파룬궁 서적 두 권을 찾아내고는 딸아이를 파출소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딸은 가지 않겠다고 했고, 책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건강해졌다.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고 죄도 짓지 않았다. 나는 파출소에 가지 않겠다.”
경찰 몇 명이 거실에서 내 딸을 둘러싸고 있었고, 10여 명의 경찰이 더 왔다. 그들은 우리 집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딸을 구타하고 머리채를 잡아 경찰차로 끌고 갔다. 딸은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쳤고, 며느리는 흉악한 경찰들에게 사람을 납치하면 안 된다고 했다. 흉악한 경찰은 딸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 조용해졌다. 며느리는 딸이 경찰에게 납치되어 차오양 파출소로 보내졌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일어나서 파출소에 딸을 보러 갔다. 딸에게 줄 옷을 가지고 파출소 문에 들어서자마자경찰에게 한 대 맞아 문밖 먼 곳에 떨어져나가 넘어졌다. 나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와서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나는 딸과 함께 집에 가려고 파출소 문 앞에서 기다렸다. 파출소 당직자가 나를 봤는지 새벽 1시에 딸을 문 앞에 데리고 왔다. 딸은 “어머니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세요.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딸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여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먹을거리를 사 들고 새벽 5시 반에 다시 파출소로 갔다. 파출소 경찰은 여전히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문 앞에서 조급한 마음으로 9시가 넘을 때가지 기다렸다. 이때 한 사람이 와서 “당신 딸한테 일 났어.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빨리 인민병원에 가 봐.” 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급히 병원에 갔다. 정형외과 3층 복도에서 딸을 보았다. 그렇게 추운 날씨에 딸은 홑옷을 입고 테이블에 누워있었다. 손과 발은 차가웠다. 딸은 목이 마르니 물을 갖다 달라고 했다. 딸에게 왜 이렇게 됐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급히 물을 사왔다. 딸은 물을 반 병 마시고는 허리와 배가 아프다며 일으켜 달라고 했다. 이때 차오양 파출소 장 소장은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와서 나에게 보이며 딸의 요추만 골절되었을뿐 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이때 딸이 갑자기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배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흉악한 경찰은 나에게 돈을 내고 딸을 입원시키라고 했다(중국 병원은 돈을 미리 주지 않으면 입원시켜 주지 않는다). 나는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딸은 입원하기 싫고 집에 가고 싶다며 나에게 저 사람들한테 풀어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파출소 소장은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딸이 집에 간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때 딸은 먹다 남은 물병을 파출소 소장에게 던지며 “당신은 정말 독한 사람이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테이블에 엎드려 보증서를 쓰기 시작했다. 몇 자 적지도 않았는데 딸이 갑자기기절했다. 나는 의사를 불러서 응급조치를 취했다. 의사는 딸에게 링겔을 맞혔다. 나는 약이 아주 빨리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이때 갑자기 흉악한 경찰(이하 악경) 몇 명이 들어와 나를 다른 방에 끌고 가서 가뒀다. 10여 분 후 풀려났는데 딸이 보이지 않았다. 악경은 나에게 딸이 다른 병원에 치료받으러 갔다고 했다.
악경은 나를 3층에서 끌고 내려와 경찰차에 태우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두 팔을 뒤로 묵었다. 악경은 오후에 나를 파출소의 한 방에 가두었다. 두 하수인이 나의 팔을 잡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게 했다. 저녁에 그들은 우리 가족을 한 호텔에 모아놓고 딸이 ‘투신자살’했다고 말했다. 3일후 경찰분소 소장과 의사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딸이 ‘투신자살’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의사는 경찰차가 실고 갔다고 했다. 오전 10시 이전에 실고 가서 오후 4시가 넘어서 영안실에 실고 갔다고 했다. 그 사이 6시간 동안에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이 만나지도 못하게 했으며, 병원측의 사망증서도 없었다. 나는 재차 딸의 행방을 물었다. 살아 있으면 사람을 만나야겠고, 죽었으면 시신을 봐야겠다고 했다. 4일 후에 그들은 우리 가족을 영안실에 데려가서 딸의 시신을 보게 했다.
영안실은 캄캄했다. 나는 등을 좀 켜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켜지 못하게 하며 한 무리 악경이 따라와서 지켰다. 나는 딸을 더듬었다. 며칠을 얼린 딸의 시신은 아직도 부드러웠고 얼굴은 잠자는 듯 했다. 나는 성(省) 소재지 법의에게 딸의 시신을 검증해달라고 했다. 검증결과 딸의 오른쪽 늑골 7대, 왼쪽 늑골 5대가 부러졌고, 후복부 부종, 아랫배 안에 핏덩이 2600그램, 흉부에 계란만한 어혈이 있다고 했다. 법의가 검사한 결과를 발표하자 구치소 경찰들은 놀라더니 모두 가버렸다. 딸의 늑골이 10대나 부러졌는데 엑스레이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나중에 경찰은 딸이 “파룬궁을 수련하여 죄가 두려워 투신 자살”했다고 말했다. 내 딸은 파룬궁을 수련하고 건강해졌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 아이는 아무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죄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내 딸이 투신자살했다고 하지만 왜 딸은 외상을 하나도 입지 않고 내상만 그렇게 심한가? 그들은 내 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데려간다고 하면서 때리고 차면서 끌고 갔다. 그래서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밤에 파출소까지 따라 갔던 것이다. 새벽 1시에 그 아이를 볼 때는 아무 일 없었다. 또 경찰 여러 명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데 그 애가 어떻게 자살하겠는가? 나는 딸이 보고 싶다. 내 딸은 억울하게 죽었다.
(신궁화, 60세, 완화이톈(皖淮田)구 천자강(陳家崗)에 거주)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7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