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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왕이신

왕이신(王益新),남,65세,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시 팡쯔거우(坊子溝) 시(西)진 궈자(郭家)촌 사람. 수련 전에 병이 많아 행동이 불편했는데 수련한 뒤 자전거를 타고 수십 리를 가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2000년 6월 30일 진(鎭) 당위원회 부서기 쑹창춘(宋長春)은 부하를 시켜 왕이신을 데려가서 버스정류장에 40여 일을 감금했다. 노인은 매일 시멘트 바닥에서 잤고 유일하게 땅에 깔았던 옷마저 뺏겼다. 매일 되풀이 되는 학대를 감당할 수 없어 그는 단식으로 2일 항의를 했고 3일째 석방되었다. 집에 온 후 노인은 식사도 하지 못했고, 얼굴이 노래서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던 중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왕즈허(王之合), 여, 62세, 왕이신 부인, 15일 구류된 후 남편 왕이신, 아들 왕성윈(王升雲), 며느리 탕슈메이(唐修美) 및 기타 수련생 6명과 함께 버스정류장 안에 갇혀 집에는 14세 된 손자만 남았다.

수감기간 쑹창춘은 수하를 데리고 두 번이나 수련생을 혹독하게 구타했다. 저녁에 불을 끄고 마대에 담아 마구 때렸다. 그리고 여자 수련생의 허벅지 안쪽을 꼬집고 때리며 발로 찼다. 맞은 수련생은 모두 멍이 들었고 쑹창춘은“모모당은 사람을 때려죽여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외쳐댔다.

왕성윈 자술

나는 왕성윈(대법제자)이고 39세 남자이며 중학교를 졸업한 농민이다.

우리는 부친 왕이신(박해로 사망), 모친 왕즈허, 부인 탕슈메이, 아들 왕신웨이(王心偉)와 나 이렇게 다섯 식구다. 모두 97년에 대법을 얻었고 대법을 얻은 후 우리 가족은 건강해졌으며 사상경지가 크게 제고되었다. 부친은 법을 얻기 전에 추간판탈출증, 골질증식이 있었고 손에는 골의 양성종양이 났었다.

99년 7월 20일부터 장모모(장쩌민)의 파룬궁에 대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한다’와 ‘때려죽여도 자살로 친다’는 사악한 명령하에서 우리 가족은 파탄이 났다.

99년 7월 20일, 진 당위원회 부서기 쑹창춘은 파출소에 명령해 부친을 잡아가서 진 정부에 가두게 했다. 7월 20일 전에 부친은 우리 진 보도소 소장이었다. 오후에 부인도 잡혀갔고 이튿날 오전에 나도 잡혀갔다. 집에는 65세 된 어머니와 아들만 남았지만 진 정부에서는 사람을 보내 교대로 감시했다. 진 정부는 우리를 불법으로 일주일 가뒀다.

2000년 3월 부인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잡혀왔다. 쑹창춘은 파출소에 명령해 나까지 잡아갔다. 당일 저녁 ‘610(파룬궁을 전문적으로 탄압하는 초 법적 기구)’의 흉악한 경찰(이하 악경)은 우리 부부를 불법심문 했다. 당시 나는 “우리가 연공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무리 악경이 몰려와 나를 구타하며 넘어뜨렸다. 두 악경이 나의 머리와 목을 밟고 다른 악경들은 나를 발로 차며 구타했다. 그 후 그들은 나를 의자에 묶어 놓고 악경 장헝구이(蔣恆貴)가 나의 양쪽 따귀를 번갈아 가며 때렸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두 번을 당했는데 이번에는 불법으로 50여 일 갇혔다.

2000년 6월 나와 어머니는 대법을 위해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악인은 나를 잡아온 후 불법심문 했다. 그는 빗자루로 나를 때렸는데 빗자루가 너덜너덜해지자 구타를 멈추었다. 또 찬물을 나의 몸에 끼얹었고 철 의자에 수갑 채워 놓고 오전 내내 괴롭혔다. 나는 30일 구류를 당했고 어머니는 15일 구류 당했다. 내가 석방된 후 쑹창춘은 또 파출소에 명령해 나를 그가 사설한 개인 감옥에 한 달 동안 수갑을 채우고 가두었다. 나중에 내가 단식을 해서야 그들은 나를 석방했다.

매번 불법 구류한 뒤 악인들은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현금 300위안을 강제로 요구했다.

부친은 청원하러 가지 않았는데도 쑹창춘의 사설 임시감옥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했다. 쑹창춘은 부하에게 시멘트 바닥에 물을 붓게 하고, 부친에게 시멘트 바닥에 주무시게 했다. 그리고 마대에 나와 다른 수련생을 담고 몽둥이로 때렸다. 나의 여동생은 부친을 보러 갔다가 부친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을 보고, 바닥에 깔게 하려고 집에 가서 비닐을 가져왔으나 쑹창춘이 이를 내던져버렸다. 마음이 선량한 한 경찰이 부친의 몸이 너무 허약하다고 쑹창춘에게 풀어주라고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며칠이 지나 부친이 곧 숨이 끊어질 듯하자 쑹창춘은 책임이 두려워 부친을 석방했다. 부친은 65세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는 한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당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부친이 사망한 지 7일 만에 악인은 또 나와 아내를 세뇌반에 감금시켰다. 우리는 대법에 대한 확고한 마음으로 3일째 되던 날 세뇌반에서 정정당당하게 나왔으나, 지금까지 거처를 잃고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 매번 소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되면 악인은 밤 12시에 우리를 납치하려고 담장을 넘어 들어와 가족으로 하여금 평온하지 못하게 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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