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즈유(張志友), 남, 45세, 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시 웨이청(濰城)구 위허(于河)진 사람. 부인 리링윈(李玲雲)도 대법 수련자다. 두 사람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어 동네에서 신임이 높았다.
1999년 7월 21일, 이들 부부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진(鎭) 정부에 잡혀와 혹독한 구타를 당한 후, 압박에 못 이겨 한 사람당 1700위안을 바쳤다. 1999년 10월 부인 리링윈은 또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고, 진 정부는 남편 장즈유를 사법부에 끌고 가서 하루 종일 구타했다.
2000년 4월, 부인 리링윈은 또 한 차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웨이팡으로 압송되어 진 정부 하수인에게 구타 당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 하수인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다른 대법제자에게 삼륜차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라고 했다. 장즈유는 한 달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집에 왔지만 진 정부는 놓아주지 않고 또 그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그는 온몸에 멍이 들었고 두 달 후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서 숨도 감히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진정부는 또 부부에게 8000위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들은 도처에서 빚을 내어 생활이 매우 힘들어 졌다.
2000년 10월 4일, 그들은 파룬궁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5일 천안문에서 사복경찰에게 속아 베이징주재 웨이팡사무소로 이송되었다.
6일 새벽 압송도중 장즈유는 위허진으로 압송되면 맞아 죽지 않아도 심한 고문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중앙’의 새로운 파룬궁 탄압, 박해 정책을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 정부가 사악의 새로운 사주 하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차가 창저우(滄州) 구간에 들어섰을 때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대법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경찰이 잠든 사이 다른 수련생 4명과 함께 열차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그는 사망했고 10월 8일 창저우에서 강제로 화장되었다.
로이터통신, AFP, 중앙통신사, 세계일보는 2000년 10월 10~19일 이 일에 대해 보도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6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