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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타오훙성


대법제자 타오훙성  

타오훙성(陶洪升), 남, 46세, 허베이(河北)성 안전청4처(安全廳四處) 출입국비자업무담당자. 정과장급, 1994년 공군에서 허베이성 안전청으로 제대. 집주소: 허베이성 안전청기숙사 2동 2단원 501호, 집전화: 031-361-8132

1999년 12월 25일 타오훙성은 천안문에서 ‘법륜불법(法輪佛法)’이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들었다는 이유로 직장과 당적에서 해고되고, 노동교화 3년 형을 받고 스자좡(石家庄) 시 노동교화소 2대대 201중대에 수감됐다.

2000년 7월20일 짱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탄압한 민감일이 다가올 무렵, 스자좡시 노동교화소는 파룬궁수련자 중 “중요인물”과 “핵심” 인물을 대상으로 박해를 강화했다. 작은 독방 (노동교화소에 수감된 사람이 자유와 자유공간이 없는 곳) 감금. 작은 독방(노동교화소 2층)에 근 2개월 갇힌 사람은 타오훙성과 우빈 (스자좡시 18중학교 교사), 왕진[스자좡시 가오자오(高教)구]과 또 다른 신지(辛集) 대법제자이다.

노동교화소는 이들에게 더러운 야채, 곰팡이 핀 음식을 먹여 반찬에서 약 3센티미터 가량의 벌레가 나오기도 했다. 노동교화소에서는 8월 하순 파룬궁수련생 다수가 설사를 하기 시작해 현재 한 달 동안 지속되고 있다. 타오훙성도 설사가 멈추지 않고 혈변까지 나와 근 20일 동안 누워서 먹지도 못한채 온몸이 부어 호흡도 곤란하다.

건강이 갈수록 악화된 타오훙성은부어서 실눈이되었고, 수시로 혈뇨, 혈변을 봤다. 그의 부인인 위펑윈(于鳳雲)은 노동교화소에 면회를 갔지만 타오훙성이 박해 당한 모습이 들킬 까봐 두려워한 노동교화소는 면회를 거절하면서 타오훙성이 설사를 조금 했지만 좋아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9월13일 노동교화소는 누가 면회 왔다는 거짓말로 타오훙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강제로 수갑을 채운 후 허베이성 제2비뇨기과로 데려갔다.

부인 위펑윈이 통보를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전의 건강하던 남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창백한 얼굴에 목소리도 겨우 알아들을 정도로 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링겔과 산소호흡기를 꽂았지만 이러한 “인도주의 구급조치”는 20분마다 혈변과 혈뇨를 보는 타오훙성의 건강상태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음식은 먹자마자 그대로 배출되었다.

타오의 생명이 위급할 무렵 허베이성안전청 처장급 2명이 영양제를 들고 병문안을 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허베이성 안전청, 노동교화소, 병원 측은 24시간그를 감시하면서소식을 봉쇄했다. 9월18일 허베이성안전청과 노동교화소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석치료서류(보석치료 기간은 2001년 3월 16일까지)를 만들었다.

그것들은 의미 없는 보석치료를 하라며 9월17일 타오훙성은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이는 노동교화소가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긴 것이다.

9월 20일 오후 1시 10분경 타오훙성은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가 부인과 두 딸을 남기고 떠나던 날, 스자좡시는 먹구름에 뒤덮여 비가 왔으며 하늘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타오훙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허베이성안전청은 그의 장례를 책임지고 치렀다. 그러나 한 처장은 “사회에 여론을 조성하지 말라”며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해 끝까지 소식을 봉쇄하려 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5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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