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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자오진화(趙金華)

자오진화(趙金華), 여, 42세, 산둥성 자오위안(招遠)시 장싱(張星)진 타이터우 조가(抬頭趙家)촌 사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1999년 9월 27일 장싱진 파출소에 불법 납치당했고 10일 후인 10월 7일 박해로 사망. 자오진화는 중국에서 첫번째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다. 당시 세계적으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고, 장XX 집단의 폭행은 정의의 국가와 각국 선량한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다.

1999년 7월부터, 자오위안시 당위원회, 시 610, 시 경찰국은 전력을 기울여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에게는 법률을 말하지 않고, 때려죽여도 책임을 묻지 않고, 때려죽이면 자살로 친다”는 밀령을 내려 자오위안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미친 듯이 박해했다. 1999년 7월부터 2003연말까지 4년 동안, 산둥성에는 파룬궁 수련자 96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그 중 옌타이(煙台) 지역 15명, 자오위안 6명이다. 그들은: 자오진화(趙金華), 쑨사오메이(孫紹美), 장리잉(姜麗英), 장린(張林), 쑤이쑹자오(隋松嬌), 푸시빈(傅希彬) 이다.

자오진화는 1995년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했다. 수련 후 그녀는 ‘진(眞), 선(善), 인(忍)’에 따라 생활했고, 신체가 건강하며 도덕이 승화해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명의를 이용하고 국가의 모든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동원하여 비열한 수단으로 파룬궁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진압을 시작했다. 전국 각급 정부 부문을 박해에 참여하도록 협박하여 자오위안시, 진, 촌 3급 정권과 경찰을 완전히 장쩌민의 하수인으로 이용했다. 자오진화는 장싱진 정부와 파출소에 불법 납치되어 구타당하고 벌금까지 냈으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자오진화 납치되어 혹형의 고통을 겪다

99년 9월 27일 오후, 자오진화는 땅콩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장싱 파출소의 한 무리 흉악한 경찰(아래 ‘악경(惡警)’으로 표시)이 기세등등하게 밭으로 찾아와서 다짜고짜 그녀를 납치했다. 그날 오후 또 다른 4개 마을에서 4명의 파룬궁 수련자를 납치했다. 그녀들은 모두 농촌 주부로 각자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악경들은 수련자 5명에게 파룬궁에 대한 인식을 쓰라고 핍박했다. 그녀들은 파룬따파는 사회와 심신건강에 어떻게 유익한지 사실대로 썼다. 그녀들이 참말을 하여 악경소장 왕치더(王其德)는 기타 악경에게 그녀들을 박해하라고 명령했다: 그녀들을 핍박하여 서 있는 벌을 주거나 쪼그리고 앉아 큰 소리로 파룬궁을 비방하는 출판물을 읽도록 강요했다. 읽지 않으면 때리고 읽는 소리가 작아도 때렸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머리를 쳤으며, 제멋대로 구둣발로 찼다. 그녀들은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하게 오후 내내 박해받았다. 저녁에는 방 안에 가둬놓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악경과 경찰서에서 고용한 하수인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면서 눈을 감기만 해도 밤새 때렸다. 이렇게 박해는 밤낮으로 4일을 지속했다.

악인들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선량한 그녀들을 마음대로 때리며 더욱 행패를 부렸다. 그녀들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왜 법을 어기고 불법으로 사람을 구타하고 때립니까?” 하고 물었다. 악경들은 그녀들이 불법으로 모인다고 말했다가 또 각자 집에서 연공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사람을 체포한 ‘이유’였다. 사실 그들은 아무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다. ‘누구를 체포하고 싶으면 체포한다’ 이것이 이른바 “중국 인권이 가장 좋은 시기”다.

1999년 10월 1일 저녁 8시경, 그녀들이 가부좌하고 연공하는 모습이 당직자에게 발견되었다. 부소장 쑨스쉰(孫世勳)은 악경 허우신저우(侯新周), 하수인 푸원후이(傅文會)(장싱진 가이링(蓋嶺)촌 서기의 아들) 등 4, 5명을 거느리고 강도처럼 방에 뛰어들어 그녀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고무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푸원후이는 미친개마냥 자오진화의 머리를 잡고 마구 때렸다. 그녀는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흉악범들의 고무 몽둥이에 심하게 맞았다. 푸원후이는 특히 지독했고 급소 부위만 때렸다. 그들은 때리느라 힘이 빠지자 자오진화를 끌고 당직실에 가서 전기 고문까지 가했다.

자오진화가 끌려갔을 때 이미 한 수련자가 전기고문으로 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전기 고문은 손으로 돌리는 전화기의 2개 선을 피해자 손가락, 귀와 기타 민감한 부위에 동여매고 손으로 전화기를 빨리 돌려 전기고문을 한다. 고문을 받는 사람은 온몸의 근육이 한데 오그라드는 것 같으며 살아있는 것이 죽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학대로 사망

악경 장하이(張海)는 부하들을 시켜 전화기를 빨리 돌리게 한 후 자오진화에게 또 수련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녀는 수련한다고 말했다. 악도들은 그녀를 전기고문하여 기절하면 다시 때려서 깨우고 또 고문하기를 4,5회 반복했다. 이 수련하겠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그녀는 불법감금당해 밤낮없이 혹형을 받았다. 악경들은 형벌을 마치고 또 자오진화에게 맨발로 시멘트 바닥 위에 서있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일어설 힘이 없어 벽에 기대섰다. 후에는 벽에 기댈 힘도 없었다. 그녀는 얼굴이 노래지고 호흡이 촉박해지며 두 눈을 꼭 감고 바닥에 쓰러졌다

악경들은 유유히 떠나갔다. 기타 수련생들의 강렬한 요구에 따라 그들은 한편으로는 ‘싸다’고 욕하면서 한편으로 그녀를 차에 실어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했다. 당직 여의사는 자오진화에게 주사를 1대 놓았고 악경들은 그녀를 또 파출소로 데려왔다.

돌아온 후, 자오진화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호흡이 곤란했고,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었으며, 온몸이 쑤셨고, 소변에 피가 나왔다. 그녀는 밥을 먹지 못했고 복부아래 피부는 자주색과 검은색을 띄었으며, 엉덩이가 맞아서 검은색이 되어 아픔을 참기 어려워했다. 걷지도 못했고 앉지도 못했으며 서지도 못했고, 화장실에 가도 쪼그리고 않지도 못했다.

10월 7일 오후 4시경, 자오진화는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나서자마자 휘청거렸다. 수련자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당직 악경은 “혼자 가게 놔둬라”고 표독스럽게 말했다. 자오진화는 벽을 짚고 몇 발자국 가다가 곧 넘어졌다.

수련자 3명이 쫓아가서 그녀를 부축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악경 빙화춘(炳華春)은 악을 쓰며 “싸다. 자초한 것이다”고 했다. 3사람이 있는 힘껏 그녀를 일으켰을 때 그녀는 이미 바지에 실수를 했다. 악경들은 욕을 하면서 그녀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의사가 심전도 검사할 때 그녀는 이미 반드시 눕지 못했다. 검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호흡을 멈췄다.

시 당위원회와 경찰, 사망 진상을 조작하고 목격자를 위협

오후 5시, 병원 측은 경찰더러 가족에게 통보하라고 했다. 악경들은 상급에 보고하여 어떻게 사실 진상을 감출 것인지만 열중하고 사망자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시신은 자오위안(招遠)시 인민병원으로 보내졌고, 후에 옌타이(煙台) 법의가 해부를 했다. 보고는: 머리 이외, 외상 여러 곳, 120 x60센티미터 범위 내, 피하에 어혈이 있다. 결론은: 여러 곳에 연한 물체의 타격으로 사망.

사람을 죽인 후, 장싱진 정부는 시 당위원회에 보고했다. 시 당위원회, 공안은 함께 진상을 은폐했다. 시위서기 처우산챵(仇善強)(현임 옌타이시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시 당위원회 부서기 둥시빈(董希彬)(현임 룽커우(龍口)시 당위원회 부서기), 시 정법위원회서기 장중친(姜中勤)(현임 시 당위원회 부서기)와 공안국장 차이핑(蔡平)은 자오진화가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고 조작했다.

자오진화가 사망한 당일저녁, 자오진화를 죽인 주범 쑨스쉰(孫世勳)은 목격자에게 자료를 위조해서 자오진화는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고 사인하라고 했다. 장싱진 정부간부 자훙쥐(賈洪巨)는 진상을 말하지 못하게 위협하며 또 다른 “자오진화는 심근 경색으로 사망” 했다는 가짜 증명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수련자들이 사인을 하지 않으면 그녀들을 풀어주지 않았다. 몇몇 수련자가 의문을 제기하며 당시 상황을 반영했으나 오히려 위협만 받고 불법 수감 시간만 늘어났다. 소문이 날 까봐 가족과 접촉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들은 인질로 40여일 갇혀있었다.

장싱진 정부는 소문이 날까봐 외부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며 파룬궁 수련생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인이 자오진화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여러 통로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 아래 온 몸이 까만 색

10월 7일 저녁, 소식을 들은 자오진화의 친구와 마을 사람들이 병원에 사실을 확인하러 갔다. 병원에는 장신진 정부인원들이 길목을 지키며 파룬궁 수련자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무엇이 두려웠을까? 당시 부시장 직에 있던 장구이펀(張桂芬)(나중에 시위원회 부서기직에 임해 파룬궁 탄압을 주관)이 병원에 도착해 진압을 지휘했다. 가족들은 이때서야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가족의 거센 항의로 두 사람만 들어가게 했다. 들어간 후 가슴을 찢는 울음소리가 전해졌다. 뒤이어 70 여세의 노인이 몇 사람에게 끌려 나왔다. 노인은 비통하여 서있지 못하고 바닥에 뒹굴며 울었다. 그는 울면서: 나는 자오진화의 시아버지다. 우리 며느리는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고 병도 없었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밭에서 일할 때 경찰에게 잡혀가서 맞아 죽고, 10 여세 되는 작은 손자를 두고 갔다. 억울하다! 이 말은 현장의 경찰들도 다 들었다. 선량한 사람들은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

악행이 드러나자 악인들은 급하게 군중을 해산시켰다. 몇몇 악경은 노인을 승합차에 끌고 가서 차에서 내리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다. 들어갔던 다른 한 사람은 자오진화의 오빠였다. 그는 쫓겨나온 후 복도에서 비통함을 억지로 참으며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한 사람이 자오진화는 어떤지를 물었다. 그는 비통해하며 “자오진화는 맞아 죽었다. 얼굴 피부만 제외하고, 목 아래로 온몸이 새까맣다. 어떤 곳은 껍질이 벗겨졌다. 너무 비참하다!”고 말했다.

‘자오진화가 맞아 죽은 것’이 ‘국가기밀’이 되어 내막을 아는 사람까지 수감되다

파룬궁 수련자 몇 명이 시와 장싱진 정부 간부에게 국민의 생명안전에 책임지고 자오진화를 죽인 살인범을 엄중히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경찰 스차이더(史才德), 리젠광(李建光)은 경찰 한 무리를 데리고 에워싼 후 욕을 하면서 그들이 “모여서 소동을 일으켰다”며 야만스럽게 그들은 내쫓았다.

자오위안의 시 당위원회, 시정부, 시 경찰서는 당일 저녁 모든 병원에 찾아가 본 사람을 미행하고 감시했다. 누가 자오진화가 맞아 죽었다는 이 “기밀”을 누설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그들은 경찰력을 동원해 10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매 팀은 적어도 6명이었다. 그들은 의심되는 모든 파룬궁 수련자를 마음대로 납치하고 고문하며 공직에서 해고시키고 불법으로 근 100명을 감금, 노동교화시켰다. 그들 중 70여 일까지 수감된 사람도 있었다. 노동교화의 죄명은 ‘국가기밀 누설 죄’와 ‘사회치안교란죄’였다.

2003년, 자오진화가 학살된 지 4년이 넘었다. 살인범과 그 배후의 사주자는 줄곧 법망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행동하고 있다. 살인범들은 현재 장씨의 앞잡이가 되어 더욱 잔혹하게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한다. 사람을 죽이면 오히려 공을 세우는 것이 되고 승진하는 선례가 되자 자오위안시는 더욱 사악해졌다. 몇 년간 수련자 6명이 박해 받아 사망했고 박해로 생사를 오가는 사람이 몇 십 명 된다.

2002년 5월, 악경 린타오(林濤)는 부하 한 무리와 파룬궁 수련생 쑨제잉(孫潔英)을 고문할 때:“당신이 만약 (자료출처)를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오위안의 제5번째가 될 것이다”며 협박했다(그때 자오위안처럼 희생당한 수련자가 이미 4명이었다). 실제로 자오진화와 기타 수련자가 맞아 죽은 것은 무슨 ‘기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비밀을 은폐하지 않고 누설’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있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b/i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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