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안휘(安徽)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4월 13일】 사부님께서는 안휘성 합비(合肥)시에서 두 차례에 걸쳐 법을 전하셨다. 첫 번째는 1993년 11월 20일 안휘 농업대학 강당에서 한 차례 보고회를 하신 공식적으로는 11월 21일부터 학습반을 여셨다. 이 학습반에는 500여 명이 참석했다. 두 번째는 안휘성 당교(黨校) 강당에서 1994년 4월 16일부터 열렸는데, 약 1,200여 명이 참석하여 만원을 이뤘다.
나는 인연이 있어 사부님의 두 차례 학습반에 다 참석할 수 있었다. 특히 두 번째 학습반에서는 사업일꾼으로 사부님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는데, 직접 사부님의 홍대하신 자비와 불은(佛恩) 속에서, 대법의 신기함과 위덕을 목격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한데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금년 4월 16일은 사부님께서 합비에서 제 2기 학습반을 여신지 12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는 자신의 회억을 기록하여 역사적인 증명으로 삼고자 한다.
*法輪大法가 강회(江淮) 지역에 널리 전해지다
사부님께서 안휘에 대법을 전하신 것은 안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法輪大法가 전해진 것은 다른 일반적인 것과는 달리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안휘 사람들은 ‘法輪大法好(파룬따파하오)’를 알고는 성 정부에서 사부님께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시도록 초청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1993년 11월과 1994년 4월 두 번에 걸쳐 학습반을 연 후에도 안휘 사람들은 세 번째와 네 번째 학습반을 요청했었다. 1994년 7월 우리는 북경에 사람을 파견하면서까지 또 학습반을 열고자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바쁜 일정 때문에 다시는 안휘에 오실 수 없었다.
* 사부님의 검소하고 여유로운 생활 방식
안휘에서 법을 전하실 때 사부님께서는 강당과 가깝다는 이유로 ‘젠궁(建工) 빌딩’이라는 아주 평범한 여관에 숙소를 잡으셨다. 방안은 매우 간단해서 시설이라고는 두 개의 침대만 있었고 조건이 좋지 않았다. 또 여관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강당에 가려면 걸어서 가야만 했다. 여관에 식당이 있긴 했지만 매일 저녁 강의가 끝나면 9시가 넘어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가까이 있는 식당이나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나는 몇 차례 사부님을 간이식당 입구까지 배웅해드린 적이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수행원들과 함께 들어가서 식사를 하시곤 했다. 나는 또 사부님을 모시던 수행원들이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 노점에서 밀가루 빵과 꽈배기를 사는 것을 보기도 했다.
* 사부님께서는 매번 일찍 강연장에 도착하셨다
두 번째 학습반이 열리는 동안 나는 사부님을 숙소에서 강의실까지 모시는 임무를 맡았다. 우리는 조건이 아주 열악하여 사부님을 모실 자동차도 없었다. 그래서 걸어가야 했는데 대략 20분 정도 거리였다. 첫날 나는 사부님을 모시러 20분 일찍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부님께서는 계시지 않으셨다. 나는 겁이 나서 ‘내가 첫날부터 어찌 이렇게 일을 그르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길도 모르실텐데!’ 나는 정말 당황하여 사부님께서 도착하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강당으로 달려갔다. 입장권을 받는 사람을 포함해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사부님을 뵙지 못했다는 것이다. 뒤쪽으로 얼른 가보니 사부님께서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누구도 사부님께서 어떻게 도착하셨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한 점에 사부님께 사과를 드리자, 사부님께서는 이미 전날 강연장을 방문하셨기 때문에 길을 익혀두었다고 말씀하셨다. 합비 여행에 많이 지치셨을 텐데도 아침에 도착하신 뒤 오후에 강연장을 미리 둘러보셨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중생들이 법을 잘 얻도록 하기 위해 주변을 청리하셨다.
둘째 날 나는 어제보다 일찍 숙소에 도착했지만 또 사부님을 놓치고 말았다.
셋째 날 나는 40분 일찍 숙소에 도착한 뒤 호텔 직원에게 사부님께서 아직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이 놓였다. 방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 휴식하시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신 것처럼 즉시 문을 여시고는 “왜 그곳에 서 있습니까?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씀하셨다.
* 문을 나서자 비가 바로 그쳐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아무런 원고도 지니지 않으셨다. 다만 간단하게 몇 줄 적은 종이 한 장만을 꺼내놓고 말씀하셨는데, 각 강의는 한 시간 반 가량 걸렸다.
어느 날 비가 와서 나는 우산을 두 개 가져갔다. 하나는 사부님을 위해 준비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우산을 사용하려 하지 않으셨다. 문을 나설 때 나는 사부님께 우산을 씌워드리려 했으나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비가 그쳤다. 당시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회상해 보니 이 역시 사부님의 위덕이었다. 뭇신들이 모두 법을 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 사부님의 관심사는 제자들을 대법 수련으로 이끄는 것
대법에서는 가짜 기공에 관한 문제를 말한다. 나는 예전에 다른 기공수련을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부님께 이 문제와 관련해 말씀해 주십사 요청 드렸더니, 사부님께서는 대답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일입니다. 다만 (위험한)때가 되어 ‘사부님, 저를 보호해주십시오,’ 라고 청하기만 하며 나의 법신이 곧 당신 주위에 보호막을 씌워 보호해 줄 겁니다.”라고 하셨다. 때문에 이후 기공활동 중에서 늘 사부님의 사진을 지니고 다녔더니 사문왜도에서도 나를 어쩌지 못했다.
수련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중시하는데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공법을 포함해 적지 않은 종류의 기공수련을 배운 적이 있다. 그런데 근기가 부족해서인지 그들 중 일부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사부님께 여쭈어 보았다. “저는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기공을 수련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法輪功(파룬궁) 수련에만 전념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매일 아침에 안마를 하고 있는데 아주 좋습니다. 계속해도 될까요?” 사부님께서는 나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반문하셨다. “왜 아직도 안마를 하고 있는가? 당신이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하면 다른 모든 문제들은 해결된다.” 사부님께서 그 점을 지적하신 후, 나는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후 다른 모든 기공수련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모든 가짜 기공 서적들을 없앴으며 가짜 기공과는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또 사부님께 말씀드렸던 “저는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처음 나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다. 무심결에 한 말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대법수련을 결심하고 반본귀진(返本歸眞) 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나의 명백한 일면이 사부님께 태도를 표시한 것이다.
* 불안(佛眼)으로 가짜 기공사를 간파
사부님께서 합비에 막 오셨을 때 기공협회의 책임자가 사부님께 아무런 상황도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간단하게 누군가의 사진을 보여드리며 여쭈어보았다. “리 대사님, 당신께서 보시기에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사진을 들어 흘끗 보시고는 아주 단정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는)뱀 부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농촌에서 진흙 못을 파다가 공을 얻었는데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나중에 합비로 와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진료소를 열었고 다른 사람을 찾아 함부로 가짜 치료 수법을 만들고는 무슨 공법이라는 명칭을 갖다 붙여 사람을 해쳤다.
사부님께서『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가 공을 내보낼 때 그 작은 뱀 대가리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병이 있는 곳과 혹이 자라는 곳을 혀로 핥고 또 핥는다. 이런 유의 것은 상당히 많으며, 이런 사람들의 부체는 모두 그 자신이 구하여 온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고 공을 가르치는 것을 보라.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법신께서 제자들의 가정환경을 청리하도록 돕다
60대의 동수 A는 아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아들은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 수련생 A가 첫 강의에 참석한 뒤 어느 날 저녁 그녀의 침실에 있던 서가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서가를 덮고 있던 헝겊부터 타기 시작해 불은 마루로 내려와 시멘트 바닥에 검은 자국을 남겼다. 그럼에도 서가 위에 있던 성냥갑은 타지 않았고 책들도 그대로 멀쩡해서 그녀는 이 사실을 정말로 믿기 어려웠다! 그녀는 학습반에서 사부님께 이에 대해 여쭈어보아 달라고 내게 요청했다. 내가 이 말씀을 드리자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가 그녀 집을 청리해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른 공간에서 당신에게 무엇이든 모두 청리해 주며 당신 집안의 환경 역시 청리해 준다. 환경을 청리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것들이 당신을 교란하기에 당신은 어떻게 연공하겠는가?”
70대의 동수 B는 기공 애호가였다. 그는 한때 개인적으로 절에서 기공을 배웠는데, 그 공을 배워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공에 대해 사부님께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사부님께서는 “그것 역시 정법(正法)이고 당신이 배울 수는 있지만 나는 그래도 당신이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할 것을 건의합니다.” 라고 하셨다. 그러자 수련생 B는 “저는 전쟁 중에 다리를 다쳐 가부좌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5장 공법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여쭈었더니 사부님께서 대답하셨다. “괜찮습니다. 가부좌를 틀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다음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셨다. 수련생 B는 사부님의 지시를 따르면서 마침내 가부좌 자세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 B의 집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수련생 B는 아내와 둘이 맨 위층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식사를 할 때 국그릇에서 5푼짜리 동전 두 개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놀라서 말했다. “내가 직접 채소를 뽑았고, 직접 씻어서 음식을 만들었으며 우리 집에는 아이도 없는데 이 동전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또 한 번은 부부가 집에 있을 때 한 움큼의 일푼짜리 동전들이 어디선지 모르게 떨어졌는데 모두 14개나 되었다. 그들은 맨 위층에 살고 있었고 창문과 문은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이상했다. 누가 그 동전을 던졌단 말인가? 사부님께서 제남(濟南)에서 설법하실 때, 수련생 B는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사부님께 동전들을 보여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귀들의 교란이며, 내가 이것을 청리하자 좋아졌다.” 사부님의 법신께서 수련생 B의 집을 청리한 후 B의 집은 평화롭고 조용해졌다.
* 사부님께서 보기만 하셨는데 업이 제거되고 병이 나아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많은 수련생들은 예전에 내가 속인에게 병을 치료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손을 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좋아졌다. 당신을 볼 때 어떤 것을 내보냈는데 나는 내 신체의 어떠한 한 부위로부터도 모두 신통을 내보낼 수 있다. 내보낸 후 당신의 그곳은 즉시 좋아진다.”
사부님께서 합비에서 법을 전하시던 기간에, 이곳에서도 신기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그 중 두 가지만 이야기해보겠다.
60대의 동수 C는 다리가 아파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서도 한 걸음 떼어놓을 때마다 쉬어야 했다. 첫 강의 중에 그녀는 사부님께 갔다. 사부님께서 지팡이를 짚은 그녀를 보시고는 물어 보셨다. “지팡이는 왜 들고 있습니까?” 그녀가 다리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을 드리자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팡이를 버려보세요, 걸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확신이 없었지만 사부님의 고무격려에 힘입어 지팡이를 내려놓고 한 발을 떼어 보았다. 첫 걸음이 좋았고 두 번째는 아주 확실했다. 그녀는 황홀했다! 기적이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녀에게 난간을 잡지 말고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갔다가 위층으로 걸어올라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대법을 수련하자, 그녀는 마치 젊은 사람처럼 빠르게 걸을 수 있었다.
내 친구 중에 기공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에게는 아주 심한 위통(胃痛)으로 고생하던 어린 딸이 있었다. 그는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방방곳곳을 다녀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기공으로 딸의 통증을 치료해 보려고도 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사부님께서 합비에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주 행복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지 말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뒤 가게에 가서 아주 잘 생긴 사과를 하나 샀다. 그는 단 하나만 샀는데 부르는 대로 깎지 않고 샀다. 그런 다음 이것을 새 손수건에다 쌌다. 그는 사부님과 가까이 하는 기회를 틈타 딸의 상태를 말씀드리면서 사부님께 사과를 건네 드렸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두 손으로 사과를 잡으시고는 아무 말씀도 없이 이내 사과를 그에게 돌려주셨다. 그는 사과를 건네 받고는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즉시 집으로 가서 딸에게 사과 전체를, 씨와 속까지 전부 먹게 했고 딸의 병이 정말로 좋아졌다.
* 사부님의 끝없는 법력(法力)으로 기적이 발생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나 여기에서는 병 치료를 이야기하지 않거니와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병이 있는 몸을 가지고는 수련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신체를 정화(淨化)시켜 주려고 한다. 신체를 정화시켜 줌은 오직 진정하게 공을 배우러 온 사람, 진정하게 법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만 국한된다.”
나는 일부 수련생들이 법을 얻은 후 그들의 신변에서 일어난 몇 가지 신기한 현상들을 말해보고자 한다.
50대의 여자 동수 D는 뇌혈전(중풍)을 앓아 입이 비뚤어졌고 제대로 걷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합비 제1기 학습반에 열성적으로 참석했다. 첫날은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자전거에 태워 학습반에 데려왔다. 하지만 학습이 끝난 후 그녀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대법의 이렇게 신비한 효과를 본 다음 대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또 어느 농촌에서 온 20대의 젊은 동수 E가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거의 90도 각도로 등이 굽은 꼽추였다. 어느 날 밤 그는 황색가사를 걸친 거대한 부처님 꿈을 꾸었다. 이틀 후 그는 우연한 기회에 시내에 들렀다. 마침 대법이 전해진다는 것을 알고는 곧장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는 뒷줄에 앉아 있었는데 큰 강당에는 설법하시는 사부님을 볼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중에 휴식시간에 그는 강단으로 갔다. 아! 사부님께서 바로 그가 꿈속에서 보았던 거대한 부처님이 아니신가! 그의 등은 학습반에 참가한 후 곧게 펴졌다. 사부님께서는 그의 등이 아주 심하게 굽어 있었기 때문에 펴기가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강력한 공으로 뼈를 세차게 내리치셔야 했고, 뼈는 내리치는 동안에 다시 연결되었다. 뼈를 내려치실 때 사람들은 “으드득, 으드득” 뼈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 차 상자
사부님께서는 거의 한시간에서 두 시간 동안 강의를 하셨는데 중간에 거의 물을 드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간혹 끓인 물을 마시곤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천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안휘에 오셨는데, 강회(江淮)지역 사람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해 복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휘성은 본래 차로 유명한 곳으로 마침 봄에 생산되는 차를 마시는 계절이었음에도, 우리는 사부님께 차를 올리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아주 죄송스럽게 느껴져, ‘후오산 황아(霍山黄芽)’라고 불리는 작은 차를 한 상자 사서 특별히 사부님께 드리기 위해 한 잔을 만들었다. 차는 향이 깊은 녹차 종류였다. 마침 사부님을 수행하던 사람이 지나가기에 그녀더러 이 차를 사부님 방에 갖다 드리라고 부탁했다.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가 사부님을 뵈러 갔을 때 그 수행인도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내게 빈 차 상자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자에 넣어두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야 여행 도중에도 이를 마실 수 있다고 했더니 그녀는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상자를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우리 집에는 차가 많으니 그녀가 이것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그녀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더러 당신께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아직도 이곳에 앉아계시는데 당신은 대체 왜 그러십니까?” 나는 무언가 심오한 이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상자를 받았다. 무의식중에 상자를 열어보니 한 장의 작은 종이가 있었다. 크기는 대략 가로 세로가 10cm, 3cm 정도였다. 나는 매우 기뻐서 당장 읽어보려고 하다가 현장에서 보는 것은 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 집에 가져가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었더니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것을 읽어 보았어야 했는데, 어쩌면 사부님께서 나를 깨우치게 하려고 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 이후 지금까지도 차 상자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 영원한 기억과 잊지 못할 작별인사
사부님께서는 매번 강의실 밖으로 나가시거나 강의가 끝난 뒤 강당을 떠나실 때면, 악수를 청하거나 질문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이곤 하셨다. 그들은 모두 사부님의 말씀을 좀 더 듣고자 했고 종종 사부님을 가시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자신의 책임을 고려해 사람들에게 사부님께서 가실 수 있게 해드리자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말씀하셨다. “괜찮으니, 잠깐 머뭅시다.” 사부님께서는 자비하신 미소로 모든 이들과 악수를 하셨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어떤 수련생들은 이런 즐거운 시간들을 사진으로 찍어 기념으로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큰 기쁨이라고 느꼈다. 학습반에 참가한 모든 수련생들은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길 수 있기를 원했다. 인원이 너무 많은 관계로 조직을 맡은 사람들이 크게는 40명, 작게는 30명 씩 나누었다. 사부님과 단체로 사진을 찍었는데 오후 시간을 모두 보내야 했다. 일부 수련생들은 사부님과 가까이서 사진 을 찍고 싶어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밀지 마세요, 어디에 서서 찍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연세 드신(흰 수염을 가진 80여세의 할아버지) 분을 이곳(사부님 옆)에 모셔 앉게 하세요.”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합비를 떠나셔야 했고 우리는 사부님을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렸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리자 사부님께서는 친히 출입구까지 나오셔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신 채 우리와 악수하셨다. 나는 너무도 감사하고 감동되어 기차가 떠난 후에도 플랫폼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가 플랫폼을 떠나면서 고개를 돌려 기차를 바라보니 사부님께서는 그 때까지도 출입구에서 우리가 떠나는 것을 보고 계셨다. 나는 즉시 사부님께 두 손을 허스(合十)하며 존경을 표했다. 그러자 뜻밖에 사부님께서도 허스로 답해주셨다. 나는 당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것은 완전히 내 마음속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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