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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冠州)대지에 불광이 널리 비추다 2

-사부님께서 관현(冠縣)에 오시어 법을 전한 14주년 기념-

글:산동(山東) 관현(冠縣)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2월 22일】

목차

머리말

3. 사부님께서 두 번째 관현에 오시다
4. 사부님께서 세 번째 관현에 오실 준비를 하시다
후기

3, 사부님께서 두 번째 관현에 오시다

1993년 5월 12일 사부님께서는 린칭(臨清)에서 학습반을 꾸리시는 기회를 이용해 다시 한 번 관현 제자들을 보러 오셨다. 오후 두 시가 넘어 관현 양조공장 회의실에서 제자들을 위해 한 시간 넘게 설법을 하셨다.

중국 기공과학연구회의 신청푸(辛成富)는 린칭 사람으로 관현의 한위안(韓玉安)과 같이 고덕 대법을 고향사람들에게 추천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린칭 시 기공협회의 요청으로 5월 7일 오전에 린칭으로 오셔서 린칭 시 정부 초대소(지금의 린칭호텔, 사부님께서 예전에 투숙하신 작은 층집과 학습반에서 설법하신 대강당, 관현제자와 함께 식사하신 곳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투숙하셨다. 8일 저녁 시초대소(린친 시위원회 초대소) 회의실에서 시의 관련 간부들과 공작인원들이 환영식을 거행했다. 시 기공협회의 리(李) 회장이 환영사를 했고 동시에 다음과 같은 한 수의 시를 읊었다. “관현 린칭현 탑현(塔縣), 전답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 함께 모여 기쁘게 새로운 공을 배우니, 뭇 사람들 法輪(파룬)따라 도네.”

장룽카이(張榮楷)가 린칭 시 각계 인사들을 대표하여 “린칭에 경을 전하고 보배를 가져다준 리 선생님을 열렬히 환영한다.” 고 했다. 관현에서도 30여 명이 환영식에 참가했다. 환영식이 끝나자 사부님께서는 한 차례 기공 보고회를 하셨다.(첫 강의로 신청푸와 한옥안도 참가했다)

8일 오후 관현 제자들이 시 초대소에 차례차례 도착했다. 그 중 관현 교통국의 리펑(李峰, 가명)도 왔는데 그는 반신불수라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 어느 중년 여인의 병을 사부님께서 치료하여 나은 것을 보고, 그의 가족들이 그를 데리고 린칭에 와서 사부님께 병을 치료해 달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바쁘셨으므로 관현 제자들은 류 씨 아주머니를 찾았다. 그녀는 사부님을 도와 공과 법을 전하고 있어서 사부님께서 병을 치료하는 공능을 주신 상태였다. 그녀가 초대소 안에서 리펑의 신체를 조절하는 동안 관현 제자들이 둘러 서 있었다. 그녀는 힘차게 리펑의 병소를 두드려 병을 흩어지게 한 다음, 좋지 않은 물질들은 밑으로 끄집어냈다. 한참 지나 리펑은 정상적으로 걷게 되었는데 그는 너무나 기뻐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리펑과 그의 처 쑨칭칭(孫青, 가명)은 9일 사부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리펑은 현재 수련을 견지하지 못해 결국 속인의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배회하고 있는 수련생들과 속인에게 일깨워 주고 싶다. 기연을 정말로 잃었을 때 어떤 후회라도 쓸데없는 것이다.

9일 일찍부터 관현 제자들은 초대소 안에서 조용히 사부님을 기다렸다. 사부님께서 오시자 관현의 노제자들은 공원에서 연공할 장소를 선택해 달라고 했고, 사부님께서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셨다. 여러 사람들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어린애처럼 사부님을 따라갔다. 다리 건너 대중(大衆)공원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옛 건축이 있었다. 처마 밑에 편액이 있었는데 현대인의 흔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그 옆에서 노래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계속 앞으로 가시다가 죽림(竹林)을 지나 동쪽으로 꺾어져 일부 사람들이 손발을 움직이며 고함을 치고 연공하는 것을 보고는 한 번 미소를 지으셨고, 아무 말 없이 한바퀴 돌아보시고는 마지막으로 옛 건축 남쪽 자리를 선택해 주셨다.

공원에서 나와 린칭 시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포장마차 앞에서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불러 아침 식사를 하라고 권하셨다. 사부님께서 앉으시자 관현 제자들이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 사부님께서는 계란 지짐(작은 것, 안에 계란이 하나 들어 있다), 만두 하나(5개가 한 근 정도 됨), 순두부 한 그릇을 주문하셨다. 관현 제자들이 계산을 하려 하자 사부님께서 만류하시면서 류 씨 아주머니에게 계산하게 하셨다. 결국 사부님께서 수십 명 제자들의 아침식사를 챙겨 주신 셈이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사부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하겠다.

아침을 먹은 후 사부님께서는 또 관현 제자들을 불러 박물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주셨다. 나중에 류 씨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린칭 백성들에게 최대한 빨리 대법을 알리기 위해 백 명에게 병 치료 자문을 해주시기로 하셨다. 사부님께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관현 제자들은 가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사부님께 인사드린 후 학습반에 참여하지 않는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1992년 11월에서 1993년 5월 반년 동안 관현 제자들은 백여 명에서 3백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여 명만 학습반에 참가하고 기타 사람들은 사부님과 작별한 후 돌아갔는데, 이렇게 된 원인은 주로 ‘수련’에 대한 인식이 얕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간 사람들이 사부님께서 린칭에 계신다고 하자 관현 제자들은 사부님이 매우 뵙고 싶어 관현에 다시 한 번 오실 것을 부탁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의 소원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 5월 12일(수요일)오전에 관현에 오셨다. 미리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일찌감치 라오다이의 집에 가서 기다렸고 곧이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모두들 평소 사부님께 많은 것을 여쭙고 싶어 했지만 막상 사부님을 뵙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거실 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제자들이 제출한 문제에 대해 해답해 주셨다.

이번에 사부님을 모시고 관현에 온 사람들은 류 씨 아주머니, 샤오리쯔(小李子)와 린칭의 몇몇 동수들이었다. 점심은 현 위원회 초대소 북쪽에 있는 작은 식당(지금은 존재하지 않다)에서 부현장 치위펀(齊玉芬)이 특별히 찾아와 대략 30여 명이 사부님과 함께 식사했다.

식사 전에 사부님께서는 “관현에 온 것은 내 고향에 온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셨다. 제자가 “사부님의 고향은 장춘이 아닙니까?”라고 여쭙자, 사부님께서는 “나는 이전 한 생에 관현에 산 적이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당시 많은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법공부와 실제 수련을 거친 후에야 그 속의 함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중에 장춘제자들이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관현에서 사실 때 속인 중에서 밥을 동냥하셨다.”라고 했다. 그제서야 관현 제자들은 비로소 사부님께서 관현과 특수한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부님께서 이곳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해 애쓰시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때 식당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많은 제자들은 주불(主佛)의 은혜에 흠뻑 젖어들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약 두시쯤 사부님께서 관현 양조 공장[지금은 관이춘(冠宜春) 양조 유한회사]에 오셨다. 많은 제자들이 일찍 나와 사부님을 환영했다. 그 중 당시 현위원회 부서기였던 스융자오(史永朝)와 일부 과장 및 국장급 간부들도 있었다. 비가 갑자기 내려 먼 곳의 제자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강단에 오르시자 실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하라고 하신 후 우리에게 설법을 하셨다. 많은 제자들은 반년 전과 마찬가지 느낌을 받았다. 사부님께서는 우선 간단하게 반년동안 法輪功(파룬궁)의 발전정황을 소개하셨고 동시에 법공부와 마음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동시에 관현 제자들에게 막 출판한『중국 法輪功』을 린칭 학습반이 끝난 뒤 백여 권을 주셨다. 또 린칭 학습반에서 설법하신 녹음테이프를 관현 제자들에게 한세트 주기로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일부 제자들의 질문에 해답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친히 여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셨다.(왜냐하면 막 들어온 사람 및 일부 속인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역시 그들의 연분이자 복이다).

사부님께서는 강단에서 왼손으로 마이크를 드신 채 사람들에게 자신이 없애고 싶은 병을 생각하면서 느슨한 자세로 두 눈을 감고 서 있으라고 하셨다(만약 자신이 병이 없으면 친인의 병을 생각하면 된다). 사부님께서 커다란 손을 한번 흔드신 뒤 전체 사람들을 향해 “좋아졌습니까?”라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은 좋아졌다고 했으나 어떤 사람은 아직 아니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병을 제거할 테니 잘 서있으라고 하셨다. 오성이 좋은 사람은 많은 덕을 보았다. 왜냐하면 병이란 마음대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잡으시자 대다수 사람들의 병이 좋아졌지만 극소수 사람들의 병은 낫지 않았다.

아래 좌석에 친척인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 중 한 할머니는 20년 앓고 있던 B형 간염으로 복수(腹水)가 차서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한양방 의사들이 모두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는데, 말하자면 시한부 인생이었다. 오전에 그녀의 아들이 사부님을 찾아와 정황을 말하자 사부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바나나 두 개를 뜯어 두 손으로 쥐고 있다가 아들에게 주었다. 그녀의 아들이 “저는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부님께서는 “당신더러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녀의 아들은 즉각 말씀을 알아들었다.

사부님께서 강의하시기 전, 이 할머니는 사부님께서 공을 내보내신 바나나를 먹었고, 사부님께서 병을 잡을 때 한 번 손을 흔들자 우측 간부위에서 한줄기 싸늘한 기운이 오른쪽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부터 B형 간염이 사라져버렸다. 이 할머니는 지금도 견정하게 수련하고 있는데, 사부님의 요구대로 자신을 수련하면서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고 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학력임에도 대법 서적을 능수능란하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제자들이 관현에는 적지 않게 있다.

사부님께서 떠나려 하시자 많은 제자들은 대문 밖에서 사부님께서 타신 차가 멀리 가는 것을 보며,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서서히 흩어졌다.

사부님께서 린칭으로 돌아가신 후 일부 제자들이 15일(토요일) 린칭으로 사부님을 뵈러 갔다. 사부님께서는 선물을 받지 않으시며, 술이나 차도 마시지 않으신다.[관현에서 어떤 사람이 마오타이주(茅台酒)를 사부님께 드리자 사부님께서는 완고히 거절하셨다]. 오후에 도착한 제자들이 사부님 방에 들어가자 사부님께서는 린칭의 왕 씨 부인과 이야기하고 계셨다. 샤오리쯔(小李子)가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권했고 매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주면서 귤을 권했다. 사부님께서 손님을 배웅하시고 우리와 담화를 나누시면서 차와 과일을 권하셨다. 사부님께서도 차를 드셨다. 우리가 무슨 차인지 여쭈었더니 사부님께서는 라오루이를 가리키시면서 저 사람 것이라고 하셨다. 라오루이는 한쪽에서 웃고 있었다. 원래 차를 드시지 않던 사부님께서 예외적으로 라오루이가 공양한 차를 한 봉지 받으신 것이다.

라오루이는 사부님께서 스웨터를 입고 가부좌하신 법상(法像)과, 막 출판한『중국 法輪功』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책의 속 표지에는 사부님께서 써주신 서문, “한마음으로 정법을 수련하여 더 한 층 높이 올라가자.”가 적혀 있었다.(나중에 이 책은 섬서의 한 수련생이 본다고 가져갔고 나중에 관현 공안국 악경에게 빼앗겼다). 기타 제자들도 사부님의 새로운 법상을 요청 드렸다. 사부님께서 이번 학습반에 가져오신 책을 학습반이 끝나자 대부분 관현 제자들에게 주셨다.

오후부터 보슬비가 한참동안 내려 공기는 매우 맑았는데, 일부 제자들은 사부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몇을 불러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라오루이가 과일 쥬스 한 상자를 사왔는데 마셔보니 마음속까지 달았다.

저녁 식사 후 마지막 강의를 하시기 전에 간단한 수료식이 있었다. 유방암을 앓던 한 여자 수련생은 의사가 이미 불치병이라 했지만 학습반에 참석한 뒤 암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강단에서 감동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마음에 새겨진 듯 잊히지 않는다.

수련생들의 발언이 끝나자 사부님께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해주셨다. 우리들 중 몇 사람은 몸이 아주 뜨거워졌는데 너무 더워서 땀을 흘리느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 정신력이 강했던 공안 간부도 천천히 눈이 감겼고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래도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들었다.

5월 16일(일요일) 아침, 이날은 사부님께서 북경으로 돌아가시던 날이다. 린칭 수련생들이 버스를 한 대 빌렸는데, 관현 제자들은 일찌감치 정원 안에서 사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위층에서 내려오시어 관현 제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셨고 제자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사부님께서 차에 오르시는 것을 보았다. 차가 대문을 나섰을 때 제자들은 참지 못하고 급히 사부님이 떠나시는 대문 밖을 향해 뛰어갔다. 한 여자 수련생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다른 제자들도 눈에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다. 사부님을 태운 차는 천천히 떠나 멀리 사라졌다.

4. 사부님께서 세 번째 관현에 오실 준비를 하다

1994년 1월, 사부님께서 산동성 단교(團校)에서 法輪功(파룬궁) 제남 제1기 학습반을 꾸리셨다. 27일(목요일)아침 7시 무렵 라오루이(老瑞), 라오다이(老戴)와 과학위원회 주임 두(杜) 선생과 제반 학습반 주최 측에서 5,6명이 제남 서부역으로 사부님을 마중 나갔다. 제남 관계자들은 사부님의 얼굴을 몰랐다. 라오루이와 몇 사람이 역 입장표를 사서 기다리다가 사부님께서 기차에서 내리시는 모습을 보았다. 여럿이 사부님을 도와 짐을 들고 역 밖으로 향했다. 라오루이와 두 선생에게 차가 있었고 주최 측에도 차가 있는데 사부님께서 어느 차를 타셔야 하는가? 라오루이가 사부님께서는 그래도 주최 측 차에 타셔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차가 앞에서 달리는데 속도가 빨라서 라오루이는 뒤에서 급하게 따라갔다. 차가 십자로 동쪽 성 위생청 초대소에 도착하자 사부님께서는 4층으로 가셨다. 모든 수속이 끝난 후 라오루이가 사부님께 오늘 관현에 가시어 함께 점심을 드시자고 청했다. 사실 주최 측에서도 사부님을 오찬에 초대하고 싶어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라오루이의 말을 듣고 즉시 주최 측에 점심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최 측에서는 예의 바르게 관현에 양보했다.

사부님께서 일체를 잘 배치하신 후 곧 길 북쪽 ‘산동 단교(團校)’ 회의실에서 약 10시쯤 한 차례 기공 보고회를 진행하셨다. 회의실은 ‘소강당’으로 남향이었고 학교 정문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약 6백 개의 좌석이 있었는데 관현제자들은 그중 40여 개 의자에 앉아 사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강당은 후문과 측문이 없어서 출입할 때 오직 정문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은 자연히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10시가 되자 사부님께서 오셨고 사부님의 영애도 함께 왔다. 관현 제자들이 마중을 나가자 사부님께서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시고는 강연대로 향하셨다. 관현 제자와 노제자들 외에는 제남에서 法輪功(파룬궁)과 사부님을 아는 사람이 적어 박수소리가 열렬하지 못했다. 이때 관현 과학 위원회 주임도 강연대에 올라 관현 대법제자들을 대표하여 사부님께 숭고한 경의를 드렸다. 동시에 간단하게 法輪功(파룬궁)이 관현에서 발전한 정황과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한 후 사람들의 심신건강에 변화를 가져다준 일부 사례들을 들었다. 동시에 관현 제자들의 축하 편지를 드리면서 제남 法輪功(파룬궁) 제1기 학습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축하했다. 그러자 회의실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사부님께서는 한 시간 넘게 설법을 하셨다. 보고회는 한 사람당 5위안씩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보고를 듣고 즉시 돌아가려던 생각을 바꾸어서 잇달아 강의표를 샀다. 열 번 강의에 매 사람마다 40위안씩 받았고 노수련생에게는 20위안을 받았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 방면에서 장XX와 그 무리들이 사부님께서 고액의 수업료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날조한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강의를 마친 뒤 사람들이 나가자 사부님께서는 제일 마지막으로 강당 정문을 나가셨다. 리쉐슈(李學修 가명)가 처음으로 사부님을 뵙고 아는 체 하자 수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 法輪功』책을 들고 사부님께 서명해달라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부님께서는 펜을 꺼내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차례차례 신수련생들에게 서명을 해주셨다. 라오루이의 차는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서명을 다한 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 차에 오르셨다. 이때는 이미 12시 반이 되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열 몇 시간 동안 휴식할 틈도 없으셨던 것이다.

차는 십자로에서 동쪽으로 향하다가 연자산(燕子山) 아래에서 북으로 굽이돌아 한동안 가다가 길 동쪽에 있는 식당(이름은 생각나지 않음) 앞에 섰다. 라오루이와 관현 과학위원회 및 현 기공협회에서 연합으로 사부님을 위한 환영회를 준비했는데 두 상을 차려 10여 명의 제자들이 사부님과 함께 오찬을 함께했다.

식사를 마친 후 리쉐슈가 사부님 앞에서 식당 문을 열어드렸고 사부님께서 계단을 내려가시자 또 사부님을 위해 차문을 열어드렸다. 사부님께서 기사 뒷 쪽에 앉으신 후 이학수가 차문을 닫자 사부님께서는 창문을 내리시면서 그에게 알려주셨다. “관현 제자들의 공(功)은 안정적으로 상승하고 있다.”(혹은 위로 자라나고 있다고 하셨는데 기본적으로 사부님의 원 말씀임). 식사 할 때도 라오루이에게 “관현은 도시의 상공이 온통 붉다.”라고 하셨다.

초대소에 돌아온 후 리쉐슈는 과학위원회에서 사부님께 드리는 사과 한 상자를 4층에 옮겨놓았고, 여러 사람들은 사부님과 작별하였다. 라오루이가 마지막으로 가게 되자 사부님께서 2층까지 그를 배웅하셨다. 그는 사부님께 더 나오시지 말라고 만류했는데 말을 하면서도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사부님께서도 그를 보내는 것을 아주 아쉬워하셨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사부님을 뵌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영암사에 가신 것을 대부분의 관현 제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학습반에서 몇 명의 제자들도 영암사에 가서 사부님께서 걸으신 길을 한 번 더 더듬어 보았다. 이 몇 사람은 저녁강의가 끝나자 사부님을 뵈러갔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바쁘신 와중에도 이 몇 명의 제자들을 만나주셨다. 동시에 샤오리에게 배(학습반 첫날 관현 제자들은 사부님께 천진에서 사오신 발공한 꽈배기를 먹었다)를 가져다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 중 한 제자가 “저는 이 배를 먹지 않겠습니다. 대신 저희 모친의 몸이 좋지 않으니 사부님께서 공을 발해주시면 제가 집에 가져가 모친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배를 받아 두 손으로 쥐고 계시다가 제자에게 주면서 또 다른 배 하나를 주어 그에게 먹으라고 주셨다. 여러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사부님을 둘러싸고 배를 먹었는데 사부님께서 아주 기뻐하셨다. 그 중 세 사람이 직장 사정상 아침 일찍 집으로 가야 한다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중 두 사람은 일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한참 침묵하시다가 “그럼 가고 싶으면 가도록 하라.”라고 하셨다.(사부님께서는 이 몇 사람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 중 한 제자가 이를 보더니 즉각 “그럼 저는 또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모두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사부님과 작별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문밖까지 나가서 서 계시다가 사람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에야 방안으로 들어가셨다.

학습반을 연지 나흘 째 되는 일요일이었다. 이 날은 원래 사부님께서 관현 제자들을 세 번째로 만나보려고 하셨던 날이다. 사부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관현 제자 아화(阿華 가명)가 그 자리에서 즉각 “사부님께서 가시기로 결정하시면 저는 즉시 관현에 연락해 차를 불러오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태산(泰山)과 천불산(千佛山)에 모두 사부님께서 처리하실 일이 남아 있어 사부님께서 관현에 오시려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1996년 겨울 어느 날 저녁 관현 한 제자의 꿈에 사부님께서 트럭을 타고 오셨는데, 차가 서자 사부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지 않으셨다. 이 제자의 꿈에서 라오첸(老錢, 첸 씨 성을 가진 제자에게 지프차가 있었다)이 차문을 열고 사부님께서 차에서 내리시길 청하자 사부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면서 차는 동북방향으로 갔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연공장의 제자가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어제 저녁 한단에서 제남으로 가시던 도중 관현을 지나가셨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으셨다.”라고 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세 번째로 관현에 오신 것인데 제자들의 수련에 영향을 주실까 봐 그렇게 묵묵히 오셨다 묵묵히 가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매 하나의 제자를 걱정해주신다.

사부님께서는 단 한 사람의 제자도 낙오되지 않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연장해주신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일을 잘 해야 하며,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 자신의 서약을 실천하고 사전 큰 소원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니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성한 신앙과 반석과 같은 정념만 있다면 조사정법, 중생구도는 반드시 성공한다. 그 어떤 힘도 중생이 회귀하는 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사부님, 관현 제자들은 기필코 사부님의 간절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사부님께서 맡겨주신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할 것입니다!

2007년 새해가 도래하는 시점에 이 문장을 발표하는 기회를 통해 관현 전체 대법제자들이 우리 위대하신 사부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사부님께 설 문안을 드립니다. 관현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을 너무나도 그리워합니다.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관현에 오시길 희망합니다.

후기

이 문장은 관현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의 은혜를 회억한 것으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제자들이 반복하여 회억하고 토론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쓴 것이다. 이 글은 역사의 원래 면모를 재현하는 한편의 문장이다. 특히 시간, 장소와 인물 등에서 관현의 다른 제자들이 쓴 문장 중에서 이 글과 같지 않은 곳이 있다면 이 문장을 기준으로 하기 바란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관현에 오신 시각, 제1차 기공보고회의 시간 등이다.

현재 형세와 조건의 제한으로 본문에서 담은 내용은 아주 적은 것이다. 결점과 부족한 점이 많을 텐데, 많은 동수들 특히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현 대법제자들이 보충 의견을 많이 제출하고, 이후 보충하고 수개하는 중에 더욱 충실히 할 것을 희망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2/24/14946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