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만대법제자 허라이친(何來琴)
【명혜망 2005년 12월 6일】
1) 처음으로 지난(濟南)에 가서 법을 듣고 9일 학습에 참가하다
1994년이었다. 당시 나는 거의 30년 동안 편두통으로 고통을 받아 매일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하여 도처로 다니면서 많은 양의사와 중의사들에게 진찰을 해보았지만 아무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시에 사는 한 친척이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이곳에 장백산에서 오신 리훙쯔(李洪志) 대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난치병을 개선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 6월 21일 산둥성 지난에서 학습반을 여신다고 하니 당신들도 빨리 와서 수속을 밟아보라!”
이리하여 남편과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대만에서 지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는 ‘제2차 지난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4,000석의 강당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강의 도중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대만에서 두 명의 수련생이 왔다.” 그런 다음 자원봉사자들에게 우리에게 책을 주라고 부탁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굉장히 놀랐다–우리가 그곳에 있던 것을 선생님께서 어떻게 아셨을까?
9일 학습반 기간에 우리 부부의 신체는 신속하게 정화되었으며, 우리는 또 많은 기적이 발생하는 것을 보았다. 스승님께서 첫날 강의를 하실 때, 세 살 난 어린아이가 내 앞 통로에 누워 있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수련생들에게 물어보니 이 아이는 식물인간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아이는 둘째 날에도 여전히 그곳에 누워 있었다. 셋째 날 강의 하실 때는 반응이 없었던 그 아이가 뛰면서 노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학습반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정말로 오묘하며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친지는 내게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 부인이 목에 종양이 있었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 체육관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사부님께서 체육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시려는 것을 본 부인이 “리 선생님! 리 선생님!”하고 소리쳤다. 사부님께서는 당시에 고개를 돌려 이 부인을 힐끗 보기만 하셨는데 오래지 않아 그녀의 목에 있던 종양에서 작은 구멍이 생겨 피 같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고 그런 다음 종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연속 9일 간의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는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아랫배에 통증을 느꼈는데 곧이어 설사와 열이 났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청리해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8, 9일 후에 회복되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쇼핑을 할 때 장바구니가 예전처럼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 누군가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이 매우 가벼워졌다. 내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이후, 27년간 나를 괴롭히던 많은 병들이 사라졌다. 나는 환골탈태하였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었는데 진심으로 사부님의 구도에 감사를 드린다.
2) 다시 광저우에 가 강의를 듣고 견정한 정념으로 기적이 일어나다
1994년 중국에 있던 친척이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리 스승님께서 12월 21일에 광저우에서 강의를 하시는데 이것이 마지막 학습반이다. 광저우는 대만에서 아주 가까우니, 부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비행기 예약을 끝낸 바로 직후, 남편은 아랫배에 예리한 통증을 느껴서 타이베이에 있는 룽민(榮民) 병원으로 보내졌다. 검사 결과 담결석이었는데 담즙이 모두 흘러 나왔다. 의사들은 즉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수술날짜가 강의가 시작되는 12월 21일로 잡혔다. 우리는 이 일을 의논한 후 광저우 강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퇴원 동의서에 서명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으며, 다음날 나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남편을 부축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우리의 일념은 오로지 법을 듣는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남편은 좀 나아진 것 같았고 과자도 좀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광저우 비행장에 내렸을 때 남편은 이미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전혀 병자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체력도 완전히 회복되어 혼자 걸을 수도 있었다.
3) 老수련생들이 표를 양보하고 수십 명이 파룬을 친견하다
그때 광저우에서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던 장면은 현장에 참석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 수승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묘사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참가한 수련생은 약 6,000명에 달하여 체육관에서 다 수용할 수 없었다. 많은 老수련생들은 씬씽(心性)이 높아서 주동적으로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우리 부부와 내 친척을 포함)에게 자신들의 표를 양보해주었다. 우리 역시 이 때문에 표를 구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표를 양보해준 그 동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사부님께서 강의하실 때도 여전히 몇 백 명의 수련생들은 체육관 밖에 앉아 강의를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친히 밖에 나오셔서 수련생들을 보시고는 동시에 밖에서 듣는 것도 효과는 똑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광저우는 물가수준이 중국의 다른 도시들보다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곳에서 온 일부 대륙 수련생들이 라면으로 매 끼를 대신하는 것을 보았다. 일부 수련생들은 매일 찐빵 한 두 개로 지냈다. 신장에서 온 한 수련생은 광저우에 일주일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돈을 다 써서 결국에는 찐빵을 살 돈마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밤이면 나무 밑이나 길가에서 잠을 잤다. 베이징에서 온 어떤 수련생이 이를 알고는, 먼 곳에서 온 그들에게 100원씩 주어 그들이 안심하고 차분하게 사부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하시는 기간에 여관에 투숙한 일부 수련생들은 저녁이면 옥상 위에서 연공을 했다. 어느 날 우리가 연공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하늘에 파룬(法輪)이 있다.” 내가 올려다보니 아주 큰 파룬이 정반 양 방향으로 돌면서 광저우 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안에 있는 卍자 부호와 태극이 자전하고 있었다. 지붕에는 대략 50명의 수련생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이것을 보았다. 그들은 흥분해서 소리쳤다. “파룬, 파룬, 나는 파룬을 보았다!”
학습반 마지막 날, 각 지역 보도소와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생화와 현수막을 바쳤다. 증정식은 90분 동안 진행되었으며 생화와 현수막이 강단 전체를 가득 채웠다. 식이 끝난 후에도 모두들 사부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박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작아졌다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많은 수련생들이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떠났다.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2/6/1159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