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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사부님을 뵙고 법을 얻어 용맹정진

글/ 마샤오(馬曉) 현재 싱가포르 거주

【명혜망 2004년 5월 7일】 최근, 많은 동수들이 사부님과 함께 했던 한 막 한 막의 정경들을 쓰고 있는데, 나는 읽을 때마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 대법이 널리 보급된 지도 이제 거의 12년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부처님의 호탕하신 은혜는 도처에 남아있다. 나는 사부님의 결백함에 또 하나의 증언을 함과 아울러 동수들과 서로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과거의 내 경험을 여기에서 말하고자 한다.

내가 사부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1994년 8월 20일부터 27일까지, 지린성 옌지(延吉) 시에서 열렸던 전수반 때였다. 그 당시, 나는 단지 속인 층차에서 수련을 막 시작했기 때문에, 내 머리에는 현대인들의 복잡한 관념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친구로부터 파룬궁이 정말로 좋다고 들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창춘에서 옌지 시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나는 옌지 기차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 학습반에 참가하기 위해서 아주 많은 사람이 중국 전역에서 온 것에 주목했고, 그리고 학습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사부님의 학습반은 10회 강의로 나뉘어져 있었고 한 강의는 세 시간 가량 걸렸다. 나는 참가비로 50원(元)을 냈고 나중에 7원을 돌려받았다. 결국 10회 강의에 내가 낸 총 비용은 겨우 43원이었다. 매번 강의가 끝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새로 배운 연공을 연습하고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천천히 전체 체육관을 다니시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동작을 수정해 주셨다. 체육관이 커서 천명 이상이 있었지만 모두들 아주 조용했다. 나는 사부님의 부드러운 눈빛이 우리 모든 사람들의 몸을 주시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학습이 시작되기 전, 많은 노수련생들은 체육관 밖에 나가 사부님께서 도착하시기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이 시간이 얼마나 보람찬 것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마지막 강의 중에, 나는 현지 조선족 동수들이 다채로운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모든 질문에 대답하신 후에, 사부님께서는 진지하게 연설을 하셨고, 그 다음 갑자기 일련의 수인을 하셨다. 바로 그 순간, 내 가슴은 마치 무엇인가 찌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눈이 따뜻해지면서 저절로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나는 왜 그렇게 감동을 받았는지 설명 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제부터는 내게도 사부님이 계신다는 것이었다.

창춘으로 돌아와서, 나는 법공부를 했고 그곳에 사는 많은 노수련생들과 함께 법학습과 교류를 했다. 나는 아주 빨리 제고되었고 신체적인 변화 역시 매우 컸다. 1994년 11월, 천 명의 수련생들이 창춘 시에서 가진 교류회에서, 한 수련생은 8월 옌지 시에서 있었던 전수반에서 자신이 천목으로 사부님께서 우리들의 몸을 청리해 주시는 것을 관찰했고 파룬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눈송이처럼 내려앉았다고 회고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부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혜택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었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1994년 12월 31일, 다롄(大連)에서, 나는 두 번째로 사부님을 뵈었다. 이때, 나는 자신이 수련인임을 분명하게 알았다. 사부님께서 체육관에 나타나셨을 때, 6천 명이 넘는 군중들은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다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내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이 회의에서, 사부님께서는 세 시간이 넘게 강의를 하셨다. 이틀 전인 12월 29일에는 광저우 시에서 또 다른 학습반을 막 끝내시고 쉬지도 못하시고 곧바로 다롄으로 오셨던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992년 5월 13일부터 1994년 12월 21일까지 각지 기공과학연구회의 초청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두 54회의 학습반을 개최하셨고 매 학습반은 대략 10일이 걸렸다. 연인원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짧은 이 년 동안에, 매달 평균 한개 내지 두개의 학습반을 여신 셈이다. 사부님께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감당하셨는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1995년 이후, 중국에 있는 대다수 동수들의 말에 따르면 더 이상 사부님께서 직접 설법하시는 것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 法輪大法은 해외에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1998년 7월 26일, 사부님께서는 지린성 각 지역에서 온 책임자들과 창춘 지역 보도원 800여 명에게 설법을 하시고 질문에 해답해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전에 사부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전에 한 번도 사부님을 뵌 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거의 4년간 사부님을 뵙지 못했다. 당시 사부님께서 회의장에 나타나셨을 때, 밀물과도 같은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이 박수소리에는 기복이나 변동이 없었고 간격도 없었다. 이것은 수련생들의 눈물, 행복, 놀라움 그리고 무한한 감격이 녹아들어간 것으로 박수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이런 광경을 평생 본 적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사업일꾼들에게 의자 위에 다른 하나를 얹어 포개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그 위에 앉으셔서 말씀하셨다,

“오늘 나는 주로 여러분들을 보기 위해서 왔다. 많은 사람들도 나를 보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좀 높이 앉았다.”

이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매 사람의 매 하나의 일념(一念)까지도 알고 계셨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시작하시자 전체 마당이 커다란 자비로 둘러싸였다. 그 느낌은 뭐라 형용할 방법이 없었고 행복감과 평온함으로 충만했으며, 아무런 불순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앉으신 의자들이 포개어진 모양으로 보아, 사부님께서는 뒤로 등을 기대기도 불가능하셨고, 강의 테이블이 아주 낮았기 때문에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실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테이블 위로 양팔을 뻗으셨다. 사부님께서는 분명 편안하지 않은 자세로 앉아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부님께서는 쉬지 않고 네 시간 넘게 강의를 하셨다.

수련생들의 질문 중 어떤 것은 정말로 좋지 않았다. 그것들은 진정한 보도원이 물을만한 질문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를 이런 질문을 듣고 조급해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도리어 인내심 있게 모두 다 해답해주셨다. 그 마당에서 모든 동수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았고 또 모두들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10분 휴식을 제안하셨다. 사부님께서 강단에서 내려오시자, 동수들은 사부님을 둘러싸고 질문을 더 했다. 사부님의 큰 키 앞에서, 우리는 모두 작은 아이들처럼 보였다. 둘러싸이신 채, 사부님은 아직도 미소를 지으시며 몇 개의 질문에 대답을 하셨다. 그런 다음 사부님께서는 강단으로 올라가셔서 다시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질문에 대답하셨다. 전체 5시간 동안, 사부님은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으셨고, 단 일 분도 쉬지 않으셨다.

그 날 마지막에,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희망하건대 여러분들이 더욱 용맹정진(勇猛精進)하고…….”

문장발표 : 2004년 5월 7일
문장분류 : 대륙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5/7/740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