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하북(河北)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8월 7일】 박해가 지속된 지 8년이나 되었고 또한 우리 대법제자들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때가 되었다. 되돌아보면 확실히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박해를 결속할 여러 번의 기회를 우리는 모두 놓쳤다. 정법이 결속될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반드시 최후의 길을 잘 걸어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유감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야 한다. 아래에 개인의 작은 인식을 말해보고자 하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1. 박해는 마땅히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4.25’사건이 발생한 후 사부님께서는 1999년 6월 13일 하루에 『위치』와 『안정』이란 두 편의 경문을 발표하셨다. 『위치』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한 행위를 긍정하셨고 아울러 말씀하셨다. “나는 능히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고험 속에서 걸어온 대법 수련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내 생각에 많은 동수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원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사람 마음으로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사람에서 걸어 나와 북경에 가야 원만할 수 있구나. 그럼 다음번에 유사한 일이 있으면 나도 북경에 가고, 나도 천안문에 가야겠다.’ 이 얼마나 강렬한 집착인가! 이런 집착이 너무나 강렬하여 우리는 마치 사부님께서 이 구절 앞에서 하신 말씀을 전혀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한 위대한 수련자는 바로 중대한 고험 속에서 능히 자아(自我), 속인의 일체 사상에 이르기까지 내려놓을 수 있다.” 더욱이 같은 날 발표하신 『안정』에서 말씀하신 “전 한시기 사건의 교란을 받지 말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정상적인 연공, 법공부를 회복하고 정진실수(精進實修)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라.”라는 가르침을 소홀히 했다.
구세력(舊勢力)의 기세등등하고 시끄러운 한바탕 소란 속에서 우리는 암암리에 큰 난이 임박할 징조라고 느꼈다. 이때 우리는 마땅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진지하게 법학습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고 “자아와 속인의 일체 사상에 이르기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에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의 그 사람마음은 모두 층차를 제고하고 원만하려는 생각에 너무나 조급했다. 그런 마음으로는 더 이상 고요한 물처럼 조용해질 수 없었고 “관(關)을 넘기가 쉽지 않아” 마치 우리가 원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길로 된 것 같다. 당시 우리 많은 동수들은 잠재의식 속에서 이 한 ‘관(關)’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가? 한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두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며 이렇게 많은 동수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이는 하나의 강대한 파동과 강대한 집착을 형성한 것이 아닌가? 구세력이 보고 나서 마침 그것이 일찍이 계획했던 안배를 진행했다. 그것은 구실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층차의 제고와 원만에 집착하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난(魔難)을 구하고 마난을 원하는데 그럼 당신들에게 하나의 큰 난을 주겠다!” 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깨닫기에 사부님께서 『위치』와 『안정』 2편의 경문을 발표하신 목적은 우리더러 법리를 분명히 알고 이 사건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心性(씬씽)을 대조하며 자아의 층차에 집착하고 자아의 원만에 집착하는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고 진정하게 “자아와 속인의 일체 사상에 이르기까지 내려놓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결코 우리더러 모두 한바탕 보다 큰 마난을 겪도록 하신 것이 아니며 더욱이 대법제자들이 반드시 마난을 겪어야만 원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우리가 당시에 모두 법에서 바르게 깨달을 수 있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진지하게 법을 학습하며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하고 철저하게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 동시에 각종 형식의 착실하고 착실한 진상 알리기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그럼 구세력이 어떻게 안배했든지 상관없이 그것 역시 이번 박해를 발동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대법제자들이 모두 길을 바르게 걸었다면 이번 박해는 본래 마땅히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2. 박해는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박해는 이미 발생했다. 잠시 동안의 광적인 열기와 혼란을 겪은 후 우리는 모두 점차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번 마난을 반성했다. 우리는 이번 마난은 사부님께서 설치하신 관이 아니라 완전히 깡패식의 박해임을 인식했다. 정법을 교란하는 것은 구세력이고 대법제자의 몸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업력, 관념과 집착을 틀어쥐고 고험을 구실로 대법제자를 와해(瓦解)식으로 검증했다. 비록 사부님께서 이 법리를 분명히 말씀하셨고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이런 안배를 ‘승인하지 않으신다’고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으며 우리더러 정념을 강하게 하여 “그것들을 부정하고 구세력의 일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라!”(『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고 말씀하셨음에도 말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많은 제자들이 사람마음에 이끌려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부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부님의 설법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우리가 누락 없이 수련해야만 박해는 비로소 자연히 사라질 거라고 인식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개인수련의 상태로 정법수련을 대했고 박해가 나타났음에도 여전히 개인이 제고하는 길로 여겼다. 발정념도 마치 박해를 감소시키기 위한 일종의 보충이자 일종 어쩔 수없이 박해를 감당할 때 물에 빠진 사람이 잡는 지푸라기로 간주했다. 심지어 수련생이 박해를 받을 때에도 우리는 그에게 누락이 있다고 하면서 구세력을 대신해 구실을 찾았다. “그의 어디에 집착이 있어 박해를 받은 것인가?” 그러면서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당신이 우리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철저히 해체하자!”라는 확고한 정념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안을 향해 찾음은 한 정정당당한 대법제자의 자비로운 수련상태이지 결코 구세력의 안배에 빠져 너무 소심한 군자가 되어 이리저리 재면서 살얼음판을 걷듯이 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당당하게 구세력에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분명 일부 업력이 있고 관념과 집착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수련중의 사람이며 비로소 인간세상에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모두 그렇게 순정(純淨)하다면 우리는 이비 佛道神이 아닌가? 다시 말해 우리의 수련이 어떠하든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데 당신 구세력이 어찌 상관한단 말인가?”
수련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각종 방식으로 우리를 자비롭게 점화하셨고 동수들도 서로 교류하면서 제고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끊임없는 법학습을 통해 자신을 대조하고 “마음을 닦고 욕심을 끊으며 집착을 제거”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수련형식이다. 구세력은 너무나도 비루하고 사악한 수단을 사용해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을 와해시키려 하는데 목적은 바로 그것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이다. 근본은 바로 구우주의 생명이 패괴(敗壞)된 후의 心性(씬씽) 체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그것들의 이런 사악한 안배를 승인한단 말인가?
바로 우리가 사악의 안배를 묵인했기 때문에 사악은 비로소 지금과 같이 흉악해질 수 있었다. 만약 대법제자들이 모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철저하게 그것들을 부정했다면 박해가 설사 발생했다 할지라도 정념정행 하는 대법제자 앞에서는 역시 아예 발붙일 수 없는 것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박해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8년이 지났다.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납치 감금되었고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집을 떠나 떠돌았으며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의 가정이 깨지고 사람이 죽었는가.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혹형과 시달림을 당했고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 중에서 소중한 사람 몸을 잃었는가! 가장 비루하고 뻔뻔하며 잔혹한 박해 하에서 대법제자들은 宇宙大法에 대한 확고하여 꺾을 수 없는 정념으로 인간세상에서 대법의 형세를 힘 있게 안정시켰으며 미래 각자(覺者)의 무상한 위덕을 성취했다. 가히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을 감동시킬 만 했다. 그러나 우리가 곧 이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지금 많은 동수들의 상태는 바로 미국수련생이 ‘즉각 박해를 종결시키자’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하나하나의 실제적인 문제의 도전에 직면하여 일정 정도 반박해(反迫害)를 어려움이 큰 하나의 정의로운 사업으로 여기며 비록 아주 고생스럽긴 하지만 마치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는 듯이 구세력(舊勢力)이 안배한 사악한 고험 속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고 ‘자부’하면서 수련하고 있다.”
그렇다, 대법제자들이 반박해중에서 한 일체는 확실히 대단하다. 사부님께서도 긍정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박해에 반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청성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명을 지니고 왔으며 우리의 사명은 중생 구도이다. 그러나 구세력이 안배한 이번 마난은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는데 대해 하나의 거대한 장애이다. 우리가 반박해중에서 위덕을 세울 수 있다고 하여 자신의 근본 사명을 망각해선 안 된다.
『미국수도설법』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늘 한 마디 말을 하는데, 최후 결과가 어떠한지 나는 그리 중하게 보지 않으며 정법 중에서 완성해야 할 그것은 모두 필연적이라고 나는 말한다. 정법 중에서 어떻게 아슬아슬하든지 막론하고 결과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그리 중하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과정이다. 생명의 일체 과정이야 말로 비로소 이 생명의 정체(整體)이다. 정법의 전반 과정은 가장 소중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주의 일체이며, 이것이 가장 대단한 일이다. 정법 이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 때문에 구세력(舊勢力)이 함부로 참여하게 할 수 없다. 특히 정법으로 말한다면 내가 가려는 길을 내가 왜 이처럼 견지하는가 하면 그것은 미래를 창립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주 중에서 한 그 일체, 그것은 가장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내가 장래에 긍정하고 내가 승인할 것이다. 내가 가지려고 하지 않는 그것은 승인할 수 없으며 긍정할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치욕이다.”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반복적으로 통독하면서 나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구도하시려는 것은 모든 중생이며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곧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해야 한다. 우리가 철저하게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부정할 수 있고 우리의 정념으로 이번 박해를 즉각 결속 짓고 사람을 벗어나는 신이 인간세상에서 박해받지 않는 길을 창립하며,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을 창립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길을 바르게 걸은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부님의 정법에 보다 큰 어려움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단지 자신의 층차 제고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는 곧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구세력의 안배 중에서 수련하고 마난 중에서 ‘제고’하는 것으로 실질상 우리가 세상에 내려오기 전의 약속을 위배한 것이다.
팔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다. 우리는 확실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더욱더 이지적이고 더욱더 청성(淸醒)해졌다.”(『미국수도설법』) 이번 박해는 단지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중생에 대한 박해이다. 대법의 위엄을 실증하기 위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이번 박해는 마땅히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된다.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이 함께 “대법을 파괴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철저히 해체하고 깨끗이 제거하여 즉각 이번 박해를 종결시키자!”는 강대한 정념을 발출하도록 하자.
문장발표 : 2007년 8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8/7/16024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