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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일을 하는 가운데서 수련하다

글 / 해외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월 26일】영문(英文) 명혜망 관련 일에 참여한지 4년이 넘었는데, 이 과정 중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였으며 이것은 확실히 수련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정성을 들여[靜心] 회고(回顧)에 관한 총결을 만들지 못하고, 단지 간단하게 몇 가지 옅은 체득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대법의 필요[需要]에 따라 선택하다

99년 명혜망이 창설될 때, 어떤 사람이 나를 추천하여 이 일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나는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영어실력이 비록 아주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자면 실제상에서는 부족하였으며, 작문(作文) 또한 내가 중학교 때 가장 골머리를 앓던 일이었다. 그러나 대법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하에서 혹시 일시적으로 다른 합당한 사람을 찾기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나는 응낙하였다.

99년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명혜망은 대법의 사이트로서, 중국의 그 악(惡)의 우두머리가 통제하는 전체 국가의 선전(宣傳)도구들이 쏟아 붓는 거짓 선전을 막아냈다. 4년 동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들이 받은 박해 상황을 제일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여 폭로하였는데, 이 모두가 또한 명혜망을 통하여 세계로 전달하였는데, 정보봉쇄 하에 있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사이에 상호간의 정황을 알기가 매우 힘든 중국대륙으로 전달하는 작용도 포함되었다. 아울러 중문 명혜망의 자료는 또 영문 명혜망을 통하여 영문으로 번역한 후 발표되어야 세계의 비(非)중국어권 사람들이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제일 중요한 이런 자료들은 비단 현재의 사람들이 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할뿐더러, 미래에도 역사적 자료로서 사람들더러 반복적으로 회고하게 할 수 있으며 심각한 역사의 교훈을 남겨둘 수 있다. 그러므로 영문 명혜망의 책임은 중대하였고 장기간 작업량이 중하였다.

영문 명혜망을 꾸리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어려움이 매우 많았다. 일손이 부족하였고 번역을 해줄 중국 수련생을 찾자니 찾기가 힘들었고, 서양인 수련생을 찾아서 편집과 윤색작업을 하자니 더욱 힘들었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사이트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를 몰랐다는 것이었는데, 더욱이 서양인 독자(수련생과 속인을 포함하여)를 상대로 하자니 더욱 그러하였다. 차차 “나는 명혜망 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한 시기에 마침 그 당시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또한 급히 도움이 필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때 영문 명혜망과 관련된 작업을 다른 수련생에게 맡겨주고 사람을 바꾼다면 혹시 영문 명혜망의 국면을 개변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원래 작업의 어려움[難度]이 컸고 일손이 부족했으며, 특히 명혜망 작업의 특성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찾아 금방 일에 착수하게 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자신의 이탈 때문에 이토록 중요한 일이 손해를 보고 동시에 동수들에게 작업의 어려움[難度]을 증가시킨다면 확실히 법(法)과 동수(同修)에 대하여 책임지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재빨리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명혜망 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대법이 필요로 하고 수련생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법을 위하여 책임지고자 하는 진수제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후에 정법노정의 추진에 따라서 갈수록 많은 대법 일을 해야 했다. 만약 지식 배경이나 혹은 개인의 흥미에 따라한다면 확실히 수많은 일들은 영문 명혜망보다 내게 더욱 적합하였고 동시에 이러한 것들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몇 번에 걸쳐 모두 하나의 사고(思考)과정을 통하여 과연 내가 영문 명혜망을 계속 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였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은 결론을 얻었다. 즉, 만약 나의 이탈로 인해 사이트 관련 작업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면 마땅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였다.

명혜망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적막하였다. 하루하루가 거듭되고 한 달 또 한 달이 거듭되었다. 안전에 대한 고려 때문에 맡은 일 또한 더 많은 동수들과 교류할 수 없었다. 기타 대부분의 진상 알리기는 효과가 좋고 나쁜지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한 장의 전단지를 배포하면 받는 사람이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거나, 중국에 전화 한 통을 했을 때 “잘 알았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성취감이 들도록 하고 그 속에서 고무(鼓舞)받게 하지만 명혜망 관련 작업은 비교적 적은 반응을 얻었으며, 반응이 있어도 대부분은 역시 동수들이 발견한 착오이거나 혹은 같지 않은 의견을 제출하거나 혹은 비평하는 의견이었다. 한편의 문장이 수련생들에게 얼마나 큰 계발과 고무가 되는가? 얼마나 많은 세인들이 이로부터 구도될 수 있는가? 사악에 대하여 거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단번에 알기가 매우 힘들었다.

후에 수련인의 제일 큰 고생은 바로 적막이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도 대근기지인(大根基之人)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함께 사이트관련 일을 하는 동수들과 서로 격려하였으며 아마도 우리는 바로 대근기지인처럼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자신의 공(功)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막론하고, 오로지 줄곧 자신이 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나는 이미 더없이 확고해졌다. 나의 능력이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 시간이 길거나 혹은 길지 않거나, 그리고 하는 일이 단조롭게 보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를 볼 수 있든지 없든지를 막론하고 기왕에 대법이 필요로 한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선택이다.

2. 자아에 대한 집착을 닦아 버리다[修去]

우리 대법제자들은 법을 실증[證實]하고 있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님을 갈수록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어떤 때에 출발점이 좋다하더라도 말하거나 일을 할 때 매우 많은 “나[我]”, “사(私)”가 끼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하는 일이 바로 정법의 일이기 때문에 수많은 마음을 자세히 느껴보지[體察] 않는다면 발견해내기가 매우 어렵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한 매 사람들의 관점은 아마도 같지 않을 수 있기에, 대법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관점을 제출하는 것은 물론 마땅하지만, 늘 그 속에 수많은 “사(私)”의 성분이 끼어 들어간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제일 명확한 것은 다음과 같다. 타인이 자신의 관점에 동의했을 때 마음속에서 잔잔한 환희(歡喜)가 물결친다거나, 타인이 제출한 이의(異議)에 대해선 비록 타인이 한 말에 도리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유쾌한 기분이 없어지게 되며, 타인의 비평(批評)에 대해선 더군다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聞過則喜]”을 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마음이 나의 몸에서 반영되어 비록 대법에 어떤 분명한 큰 손실을 가져왔는지는 보지 못했으나 “사(私)”의 성분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일에서나 자신이 진정으로 대법을 첫 자리에 놓을 수 있음을 엄중하게 저해하게 될 것이며, 전면적이고 객관적인 관점[眼光]으로 문제를 볼 수 있음을 엄중하게 저해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의식하게 되었다. 일부 어떤 일들은 원래 잘 할 수 있었거나 혹은 더욱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로 인해 잘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손실은 아마도 매우 클 것이지만 단지 표면상에서 보아낼 수 없거나 혹은 잠시 보아내지 못할 뿐이다.

3. 시시각각 어느 곳에서나 모두 닦아야 한다

일부 사건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늘 자신을 일깨워 정념(正念)을 발하도록 하며 마음상태를 순수하게 한다. 이 한 점은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정말로 시시각각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체득하였다.

어느 한번, 일부 동수들이 하나의 중요한 항목에 관한 한편의 문장에 대해서 같지 않은 의견을 갖고 있었는데 나 역시 관련된 수련생들과 교류하러 갔었다. 그때 당시 자신은 대법을 출발점으로 하였기에 마음은 좋은 것이라고 느꼈으며, 말을 할 때 반드시 마음이 순수해야 비로소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나는 최대한도로 마음상태를 순수하고 깨끗하게 유지하였다. 그러나 두어 마디도 못하고 한바탕 비평을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 몇몇 동수와 큰 소리로 다투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좋은 합의를 보지 못하고 흩어졌다. 나는 급기야 매우 속상함을 느꼈다. 수련한지 7년이 되었건만 수련의 초기에도 이토록 심성을 지키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설사 수련하기 전에도 이러한 현상은 극히 보기 드물었다. 나는 자신에게 무엇 때문인가를 물어보았다. 분명 좋은 동기로부터 출발하였고 자신이 느끼기에도 마음상태가 순정(純淨)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었단 말인가? 이렇게 오래 수련하였고 정법도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놀랍게도 나에게 심성이 이토록 낮을 때가 있단 말인가?

속이 어떻게 괴롭던 막론하고, 그러나 법리에서는 긍정적으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매우 똑똑하게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다른 사람의 칭찬을 좋아했고 타인의 태도가 나쁜 걸 싫어했기에 매번 타인의 태도가 좋지 않을 때면 나의 참음[忍]은 진정한 수련자의 참음이 아니라 강제적인 참음이었으며 표면상에서는 충돌이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불복하였다는 것을 후에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동안 다음 번에 이러한 일이 또 생긴다면 나는 큰소리를 질러서 눌러 없애버리겠다는 하나의 생각이 은은하게 축적되고 있었다. 바르지 못한 이런 하나의 생각으로 인해서 관건적인 시각에 사악으로 하여금 빈틈을 뚫을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나는 심각하게 체득한 바가 있었으니, 정념을 유지하고 마음상태를 순수하고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은,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매일같이 누적하는 공력[功夫]을 들여야 하며 시시각각 어느 곳에서나 모두 최선을 다해야만 비로소 이후에 후환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관건적인 시각, 돌발적인 상황하에서 한 사람의 평소 공력[功夫]과 진실한 심성을 보아낼 수 있다.

4. 사악의 교란을 타파하고 제거하다[破除]

중요한 일이 있기만 하면 우린 사악의 교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함께 발정념하여 제거한다. 사실 사악의 교란은 우리 대법 일 속에 있으며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다. 일에서의 소홀함, 동수 사이의 모순 역시 모두 교란이다. 다시 말해서 도처에 우리가 가서 타파하고 제거해야할 교란이 있다. 아울러 사악의 교란을 타파하고 제거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대법에 따라서 진정으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자신이 응당 해야 할 그 한몫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매번 동수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소홀함이 발생한 것을 볼 때마다 만약 나의 마음속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고 심지어 말로 질책한다면 아마도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조성하게 될 것이며 심지어 가로막는 막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러면 역시 교란이 조성된 것이다. 만약 내가 묵묵히 동수의 소홀함으로 인해 빚어진 누락을 보충해주고 거기에 덧붙에 선의(善意)로 일깨워 준다면 그 사악의 교란은 역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동수의 태도가 좋지 않을 때 만약 내가 그와 다투고 모순을 조성하며 이로부터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를 남겨둔다면 사악은 목적에 도달한 것으로서 역시 교란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드넓은 흉금(胸襟)으로 아직 수련되지 못한 동수의 그 부분을 포용해 주면서 송곳으로 솜을 두드리는 식으로 만들어준다면 그 역시 사악의 교란을 타파하고 제거하는 것이다.

자신과 동수 사이의 모순에 대해선 법리상에서도 똑똑하며 어떻게 괴롭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동수들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 나는 늘 표면적으로 일을 논하는 현상이 많았다. 마음속에서 자신의 표준에 따라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판단하였고 심지어 불평(不平)을 막아 나서며 원망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는데, 단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아마도 이런 반면적인 물질마당을 동수들의 모순 속에 강제로 덧붙여 놓았을 수도 있는데, 이러면 사악의 교란도 또한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경험에서도 증명하다시피 예전에 내가 했던 조절작용이 좋은 효과를 거둔 경우가 매우 적었다. 후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지 말며 자신은 어떻게 했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사부님의 원래 말씀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다)을 갈수록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수들 사이에 모순이 생겼을 땐 만약 자신이 일을 좀 더 많이 하고 정보의 교류와 오해를 소거하는데 있어서 좀 잘해본다면 기타 동수들 사이에 아마도 그러한 모순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적극적으로 나부터 시작하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사악의 교란을 타파하고 제거하는데 더욱 좋은 것 같다.

이상은 급하게 써낸 일부 옅은 체득이니 여러분들께서 바로 잡아주시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문장 완성시간 : 2004-1-18
문장 발표시간 : 2004-1-26
문장 갱신시간 : 2004-1-26 11:38:10 AM

문장분류 : 【조사세간행】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4/1/26/658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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