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단계마다 같지 않은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사람의 일부 정황이 표현된다. 이런 정황이 표현되는 것은 수련생과 대법제자가 식별할 수 있게 하고, 법 중에서의 수련을 배우게 하려는데 있으며, 일에 봉착하면 언제나 수련을 출발점으로 삼아 배우게 하여 대법에 동화해 사람을 많이 구도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지, 사람 마음을 끊지 않고 늘 사람 마음에 좌우지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륙의 특정된 환경 속에서 언제나 일부 사람의 출발점은 수련을 첫 자리에 놓지 않으며,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마땅히 해야 하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 마음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일부는 자아가 팽창되고 자심생마에 빠졌으며, 일부는 다른 사람을 떠받들어 마(魔)로 되게 했음에도 자신은 모르고 있으며, 또 일부 사람은 명, 정, 색욕심을 버리지 않고 도덕의 최저선을 넘어섰으나 떠받들리고 있고 다른 사람보다 재간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일부 사람은 늘 인위적으로 더욱 쉽게 모종의 형세를 만들어 큰일을 하거나 공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표면에서 들뜨고 있으며, 대륙의 환경과 대륙 제자가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특정한 환경을 포함한 일체를 모두 신이 정하고, 하늘이 정하며, 사부님께서 주재하고 계심을 잊었다.
또 일부 대륙 수련생은 늘 해외에 나가면 어찌할 수 있으며, 혹은 해외에서 책을 출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등 생각이 있다. 정법의 배치는 사람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대륙 수련생이 해외에서 책을 출간하지 못하게 함은 대륙 수련생이 대륙의 환경과 조건 중에서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며 서약을 실천해야 비로소 마땅히 성취해야 할 것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정황은 다른 배치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의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바로 큰 파도가 모래를 이는 것과 같은데, 모래를 말끔히 쳐내면 남아 있는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금(金子)이다. 얼마나 많은 금이 남을 수 있는가,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가에 달렸다.” 여기에서 만약 우리가 수련의 환경을 용광로에 비유하면, 금과 모래가 섞여 있는 정황에서 금은 불 속에서 용련(熔煉)될 수 있고 모래도 역시 불에서 녹고 탈 수 있으나, 용광로를 거쳐 나온 것이라 해서 모두 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선양(瀋陽)의 리쉬펑(李旭鵬)이 일으킨 작용은 이미 마(魔)로 논할 수 있으나 각 지역에서 아직 적잖은 수련생들이 떠받들고 있다. 리쉬펑이 만약 현재 즉시 개과천선할 수 있다면 아직 수련과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비참하고 침통할 것으로 스스로도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기타 휘말려든 수련생은 왜 십여 년의 고험 앞에서 아직도 식별을 배우지 못했는가? 일에 봉착하면 출발점이 수련과 사람을 구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과 사람 마음을 위한 것인가? 매번 미혹 앞에서 자신은 과연 어떤 배역을 맡았는가?
정법에서 남은 시간은 절대로 안일(安逸)과 사람 마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희망컨대 여러분이 두뇌를 똑똑히 하여 정말로 법을 마음에 놓고 자신의 언행을 지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비로소 인간 세상에서 진선인(眞善忍)의 위력을 실증할 수 있다.
밍후이편집부
2015년 2월 17일
문장발표: 2015년 2월 17일
문장분류: 밍후이편집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17/30490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5/2/18/1486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