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법륜대법수련자
[명혜망] 주: 이 편지는 이미 중공중앙지도기구의 책임자, 중앙군사위원회, 중공중앙직속기구, 국무원 부위(部位) 그리고 유관기구의 지도자와 책임자, 각 성의 주요 지도자, 전국인대(人大) 관계부서 등에 발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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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지를 쓰게 된 원인
나는 법륜공수련자이다. 1999년 4월 25일 중남해 국무원 신방판(信訪瓣)에 가서 청원에 참가하였다. 5월 22일 정치국 7명의 상위에게,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정확히 법륜공을 대해야 하는가”란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는 광범위하게 전달되었다. 7월 19일 “공산당원은 ‘법륜대법’을 수련할 수 없다에 관한 통지” 이후, 본 회사와 중앙 유관기관은 나에 대하여 한달 간의 “구원(挽救)”와 “방교(幇敎)”를 진행하였다. 이 기간에 강택민은 베이따이허(北戴河)에서 나의 이름을 지적하여 “중독이 아주 심하다”고 비평하였다. 그러나 803,000원을 소비한 “구원” 공작에는 부친과 여동생을 북경에 오도록 강박하여 방교 조와 함께 내게 “교육”을 실시했지만 나로 하여금 당국이 말하는 법륜공의 “본질”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장(江)xx가 아무 이유없는 법륜공 탄압에 대한 부동한 의견을 표달하기 위하여 1999년 10월 나는 법륜공 뺏지를 달고 출근하였으며 중선부(中宣部)를 강제로 떠나게 되었다.
나의 온가족은 모두 법륜공을 연마한다. 부친은 예전에 어느 시의 중급 법원에서 일급 경독으로 있었고 어머니는 시(市)건설은행에서 일하셨으며 여동생은 전에 그 지역의 사범 전과(專科)에 임직하였다. 남동생은 어느 이름있는 대학에서 졸업한지 얼마 안 되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법륜공을 수련한 후 몇 년 동안의 각종 질병들이 약을 쓰지 않고 나아져 매월 거의 1,000원에 달하는 의료비를 절약하게 되었다. 전 가족은 행복하고 화목하여 예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법륜공을 탄압한 후 우리 일가족은 산산조각의 가정이 되었다. 먼저 내가 연루되었다. 2001년 말, 어머니와 여동생이 북경에 가서 청원하다 공직에서 해임되어 모두 노동개조 3년형을 받았다. 집에서 진상전단지를 수색해냈다는 이유로 남동생도 체포되어 이미 3개월 감금되었으며 노동개조를 준비하고 있다. 부친은 당적에서 제적을 당했는데 현재 회사는 그 지역 610의 압력 하에 그의 공직을 제적시켰다. 나는 현재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을 방문할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비록 이렇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같은 이 일가족은 단지 중국 수천만 가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팽량(彭亮) 일가(一家)(주1)에 비하면 아주 다행이며 내가 듣고 목격한 대량의 정황에 비하면 많이 좋은 편이다.
내가 중선부에서 일할 때 그 당내의 엘리트들은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을 안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시끄럽게 들끓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크게 희망이 있다. 이는 역대 정치운동 교훈의 깊고 예리한 지견이었다. 단지 이 가없는 역사의 주기률은 타파되지 않았고 더욱이 자신의 몸에서 인증(印證)를 얻을 줄 몰랐다. 이전 한 단락 시간에 한 관리자가 파금(巴金)선생을 만나 뵙고자 하였다. 그는 병상에서 힘들게 말하였다. 공산당은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파로(巴老)의 말에 나는 같은 감촉이 있었다. 오늘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바로 각 대표들이 국가에 대하여 민족에 대하여 인민에 대하여 책임지는 양지(良知)와 용기로 법륜공이 박해를 받는 정황들을 진지하게 이해하여 아무 의미 없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번 민족의 큰 재해를 결속짓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만약 일부 대표들이 이번 박해정황에 대하여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면 나는 주해(附注) 부분에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여 참고하도록 하겠다. 만약 상세한 정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각 대표들께서 이홍지 선생님의 기본저작들을 조용한 마음으로 읽고 또한 명혜망 (http://minghui.org)에 들어가 유관 자료들을 보기 바란다. 비록 중국의 보통 군중들은 이러한 정보를 알 권리를 잃었지만 나는 민족의 희망과 중임을 짊어진 대표들은 마땅히 최소한의 “특권”을 향수하리라 믿는다.
2. 위대한 생명의 진리
법륜공에 대하여 쟁의가 있음은 의심할 바 없다. 어떤 사람은 법륜공의 일부 “과학적”이지 못한 곳을 지적함으로써 법륜공이 “잘못”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전법륜》의 매 한 마디 매 한 글자는 모두 위대한 것이다. 그는 어떠한 “잘못”도 없는바, 그는 한 부의 위대한 경전으로서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일체 서적들을 초월한다. 예컨대 법륜공에 대하여 기어코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며 과학을 절대적인 진리의 표준으로 대하지만, 사람들이 사용하고 평가하는 이 과학 자체는 진정한 과학인가는 도리어 사고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은 만유인력 법칙이 과학적이지 못함을 보지 않았는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역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질의하고 뒤집으려고 하지 않는가? 《전법륜》 속에서 사용하는 매 하나의 “과학”의 개념, 예를 들어 “광년(光年)” “취변(聚變)” 등등은 전혀 현대과학의 내포가 아니고 이 개념을 빌어 홍대(洪大)한 우주의 진정한 현실을 표달한 것이다. 인위적으로 과학표준을 써서 《전법륜》을 “평가”하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처지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불교인사들의 법륜공에 대한 이해 못함을 포함하여 역시 똑같은 도리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형제 둘이 어릴 때부터 먼 농촌에서 살다가 형은 분투를 거쳐 대도시에서 공부하고 아울러 유학을 가서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그가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척을 만났을 때 어떻게 미국의 생활들을 친척들에게 이해시킬 것인가? 유일한 가능성은 그 먼 농촌사투리언어, 생활습관 중의 사물로 유추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동생 역시 미국에 가게 되어 “개화(開化)” 되면 형이 원래 말한 것이 이러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이 이전에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형이 이전에 그에게 이야기해준 것이 이미 가장 표준적인 표달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배의 맛을 알려면 직접 맛을 보아야 한다. 조사를 하지 않고는 발표권이 없는 것이다. 이홍지 선생님이 가르치는 법륜공은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全新)적인 영역을 개척하셨고 사람들에게 깨우침(覺悟)으로 통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으며 생명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진실한 길을 얻게 하셨는데, 펼쳐주신 것은 위대한 생명의 진리이다. 의미 있는 역사·문화·종교 특히 철학·과학 등의 관념을 고집하면서 그를 가늠하면 어떻게 보면 어떻게 “어색”할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사상과 생명경지가 진정으로 승화되는 이 수련의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우주의 “진·선·인(眞·善·忍)”의 특성에 따라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먼 농촌의 남동생처럼 만약 자신을 “개화”하지 않으면 편협한 경험으로 그의 형이 무엇을 이야기하였는지를 영원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이해에 근거하면 수련계는 법륜공과 이홍지 선생님을 아주 존중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전에 다른 법문의 수련에서 후에 법륜공으로 들어온 사람들, 그들은 법륜공에 대하여 숭경(崇敬)하는 마음으로 충만되지 않은 이가 없으며 그의 위대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아울러 수련계, 각 나라, 민족이 남긴 많은 예언 중에는 법륜공이 널리 전해지는 이 위대한 역사사건을 정확히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다.
법륜공은 속인사회의 생활과 상태를 아주 존중하고 있다. 매 사람마다 모두 가정이 있어야 하고 사업이 있어야 하며 또한 일을 잘 해야한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든 모두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여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한다. 인류문화의 축적을 강조하고 현대지식 학습의 중요성에 대하여 특별히 지식문화의 파악을 강조하는바, 법륜공의 법리 이해에 도움이 된다. 고인이 이르기를, 대은(大隱)은 조정에 숨고, 중은(中隱)은 저자에 숨으며, 소은(小殷)은 들에 숨는다고 하였다. 법륜공의 수련은 완전히 현대 사회생활 중의 개인 일이며 불법진리에 대한 체인(體認)으로서 완전히 개체생명의 행위이다. 수련자가 이번 탄압을 제압하는 홍류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법륜공이 무슨 “조직”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그는 완전히 개인수련을 기초로 하는 군체(群體)이다. 여기는 “직업법륜공”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륜공은 개체로 조성된 흩어진 사람무리들이다. 매 사람마다 모두 자립적으로 돈과 재물을 모으지 않고 신앙을 생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는 바, 누구의 얼굴색을 보아서 일을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신앙의 고도의 순결을 유지하고 있다. 법륜공수련생들은 열심히 일하고 완전히 스스로 자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기타 조직·단체와 다른 것이다.
3. 법륜공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법륜공은 전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법륜공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가?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원인이 있다.
1) 당내(黨內) 투쟁 : 강택민은 1999년 4·25사건 이후 지도급의 간부에게 보내는 비밀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내는 법륜공에 대한 인식에 의견의 분분함(分岐)이 있다, 동시에 또 무신론은 유신론을 전승해야 하며 유물론은 유심론을 전승해야 한다. 이것이 공산당과 법륜공 사이의 경계선을 긋게 하였다. 강택민의 태도는 아주 명확했다. 누가 법륜공을 지지하면 누구는 “공산당”의 대립면에 서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내에서 대 살육이 빚어지게 되었다. 일부 투기정치를 하는 책임간부들, 일부 “문제가 있고” “공”으로 “과실”을 막고자 하던 사람들이 분분이 나서서 당내 정의의 힘을 타격하고 법륜공 반대의 “앞장”에 서서 걸었다. 바로 법륜공을 반대하는 무질서하게 모인 이 사람들이 그들의 사적인 목적을 숨기고 소위 말하는 법륜공이 “문제”가 있다고 만들어냈다.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2) 악독한 폭력거짓말 : 법륜공에 대한 탄압이 시작할 때의 특징은 여론 선전이 기세가 등등하다는 것이다. 보기에는 이치가 있는 것 같았고 또한 하늘과 땅을 뒤덮음이 끝이 없었다. 곳곳이 오랫동안 맹렬한 거짓말로 충만되었고 민중들로 하여금 심지어 일부 수련자들로 하여금 거짓말 속에 질식되어 판단능력을 잃게 하였다. 초강도의 거짓말 충격하에서 사람들의 법륜공에 대한 불만 정서를 부추겼다. 법륜공에 관한 뉴스보도는 하나의 정치 임무로서 누가 완성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게 되었다. 특히 후에는 법륜공에 관한 뉴스는 기밀성을 지닌 전문공작으로 되었고 610, 공안, 안전부문에서 통제하는 투기기자(投機記者)들이 완성하였다. 세인들을 독해하는 무수한 거짓말들을 만들어냈다.
3) “연좌(連坐)”의 운용 : 어느 곳, 회사, 파출소, 거리, 거위회(居委會) 등등에서 법륜공을 처리함에 “실직”하면 밥그릇을 잃게 되고 앞날(前途)을 잃어버리는 위험이 있게 된다. 어느 성에서 북경에 가서 청원하던 법륜공수련생들이 몇 명의 인원수(名額)를 초과하면 성위 서기가 검사를 해야 한다. 이런 흉악하고 무리한 작법은 역사에서 보기 드물다. 고압 하에서 법륜공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대립면으로 밀려졌고, 법륜공의 이유가 있는 항쟁도 “이유없음(無理)”으로 변하였다. 법륜공을 처리함에 있어서 힘을 쓰지 않아 밥그릇을 잃는 일이 적지 않았다. 특히 공안, 파출소간부들이다. 어느 사람 혹은 책임자가 적극적이지 못하면 어떤 사람이 기회를 보고 틈을 타는데 배후에서 신고를 해버린다.
4) “인식문제”의 정치화 : 정상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신앙할 자유가 있고 또한 신앙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며 연공할 자유가 있고 또한 연공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유신론, 무신론을 포함하여 이는 모두 복잡한 인식문제이다. 그러나 중국대륙의 장기적인 무신론교육 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련·기공·초상적인 현상에 대해 거부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늘 이러한 사람들 속에는 자만·경박·고집·제맘대로의 이러한 자들이 많다. 이번 법륜공에 대한 사나운 탄압 속에서 아주 많은 무신론자, “봐주지 않는 자”들, 제맘대로의 사람들도 뛰쳐나와 “의견”을 발표하여 우물에 돌을 던져 법륜공을 탄압하는 정치역량의 일부분으로 변화하였다. 사회에서 법륜공에 “문제가 있다”란 인상을 강화시켰다.
5) 정치에 대한 의지 심리 : 한 행인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옆의 사람이 아주 엄숙하게 그에게 이 물에는 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행인은 그리하여 목마름을 참으면서도 물을 마시려고 모험하지 않았다. 관방 매스컴에서 “정연(正經)스럽게” 법륜공이 어떻게 나쁘다고 말할 때, 어느 백성이 감히 모험을 하고 법륜공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였는가. 사람들은 기어이 텔레비젼의 것이 “정말”이라고 믿으려고 하면서 자신의 곁에서 법륜공을 연마하는 가족들의 충고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외에, 법륜공수련생들의 단호한 항쟁 하에 뉴스 여론은 오랜시간 동안 법륜공에 대하여 끝없이 비판함으로써 아주 많은 민중들이 집권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법륜공을 탄압하는 연약하고 무능함 속에서 깊은 통제를 잃은 느낌이 나타나게 하였다. “몸이 약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정권은 통제를 잃는 두려운 차후의 결과(後果)를 걱정하였다. 마침 이런 통제를 잃은 위기감은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법륜공이 “정부”와 맞대응하고 있으며 “일을 벌이고 있으며” “소란을 피우고” “일 없이 일을 찾는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6) 잔혹한 박해 : 법륜공수련생에 대하여 “명예상에서 더럽히고 경제상에서 무너뜨리며 육체상에서 소멸시키는” 정책을 펼쳐 “때려죽여도 자살로 간주한다” 비밀명령을 내림으로써 일부 수련생들이 수련 속에서 필연 나타나는 정상적인 의문을 법륜공에 대한 질의로 전화시킴으로써 고압 하에 고의적으로 법륜공의 “문제”를 만들어냈다. 특히 연마하지 않겠다는 한마디를 하면 석방될 수 있고, 계속 연마하겠다고 한마디 말을 하면 유죄판결을 받는데, 이런 악독한 작법이 일단 효과가 있어 일부 수련생들의 의지를 무너뜨린 후 곧바로 발걸음마다 긴밀히 핍박하여 결렬서를 쓰게 하고 회개서를 쓰게 하며 비평서 등등을 쓰게 하여 법륜공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로 한다. 그러나 진정한 수련생은 일단 고압 하에서 해탈되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용기를 내어 명혜망에 자신의 좋지 못했던 언행을 폐지한다고 성명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박해에 의지하고 전화에 의거하여, 법륜공에 “문제”가 있다고 조작한 것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것과 성질이 같은데, 강택민 등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흉악한 작법을 두드러지게 한다.
7) 직업화 공작 : 강택민은 법륜공을 처리함이 일시적인 “공”이 아님을 인식하였을 때, 이 “결정성의 승리”를 확고히 하는 것을 포함하여, 천안문 흉살사건(주13) 이후 610사무실을 전직기구로 변화시켜 가까이에서 힘을 바치게(親信劉京) 하였다. 그리고 610인원이 모이면 개인 앞으로의 진로는 법륜공탄압에 대한 성적과 한데 연결되었다. 이런 이해관계로 아주 많은 사람들은 법륜공의 “문제”를 만들었고 법륜공수련생을 박해하는 하수인이 되었다. 610은 온건하게 계통적으로 법륜공에 관한 “문제”를 만드는 한 기구로 되었다.
8) 엄밀한 뉴스 봉쇄 : 법륜공은 국외에서 자유로운 환경이 있으며 법륜공 모함에 관한 대량의 사실진상을 수집하고 모으고 발표할 수 있어서 만 천하의 거짓말은 쉽게 타파되고 강택민, 나간 등 사람의 추악한 죄행은 쉽게 만 천하에 공개된다. 바로 이러하기에 엄밀한 소식봉쇄, 네트워크 감독, 네트워크 파괴는 강택민 등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심지어 강택민의 아들 강면항(江綿恒)은 이렇게 큰소리쳤다. 세계 인터넷 외의 방대한 중국네트워크를 건립할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바로 모든 대륙중국인들, 각 대표들을 모두 포함하여 정보를 조금도 알 권리가 없는 이 “철조망” 속에 가둔다는 것이다. 그들은 법륜공수련생들이 전단지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은 수련생들이 말해낸 것이 모두 탄압자들이 회피할 수 없는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일단 진상이 천하에 폭로되면 그들은 숨을 곳이 없게 되고 막다른 길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상전단지를 배포하는 수련생에 대하여 총을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목적은 바로 그 취약한 거짓말을 보호하고 법륜공의 “문제”를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9) 서방국가에 대한 매수와 협잡의 진행 : 법륜공수련생들이 이번 박해에 대하여 단호하게 제지하여 강택민 등 사람들이 대량적인 인권을 짓밟는 사건을 만들 수밖에 없게 하였다. 아울러 법륜공이 강조하는 “진선인(眞善忍)” 준칙 그리고 일종 효과가 현저한 공법으로서 서방 국가인민의 긍정과 환영을 받고 있다. 서방국가가 인권문제, 법륜공문제에서 강택민을 “괴롭힘”을 제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중국의 경제이익을 미끼로 서방국가를 끌어 침묵을 유지하게 하였다. 아울러 정치, 경제협잡의 수단으로 서방국가가 법륜공에 대한 포상과 긍정을 대하게 하였다. 조폭, 야만, 무법천지의 방법은 중국의 대외형상을 엄중하게 파괴하였다. 그러나 서방국가의 일단락 시간 속의 종용(縱容)적 태도 또한 강택민 등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법륜공에 대하여 함부로 날조하고 마음대로 박해하도록 하였다.
강택민 등 사람들이 일으킨, 법륜공에 대한 이 탄압에 대하여 각종 수단을 다하여 각종 요소를 이용하여 끝내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륜공을 미워하게 하였고 법륜공의 대립면에 서게 하였다. 이리하여 민족 내부에서부터 해외 화교에까지 엄중한 분열이 조성되게 하였고 또한 광범위한 사회분열를 조성하였으며, 법제의 후퇴, 사회풍기의 큰 하락을 조성하게 하였으며, 대량의 사회비극과 불안정한 요소를 만들었다. 한 가까운 친구가 반 농담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죽이고서” 천상으로 제도하지 말라고 할 때, 실직자 혹은 범죄자들이 주저없이 책임을 법륜공에 전이할 때 나는 통철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피로 얼룩진 염치없는 수단으로 법륜공을 탄압한 “실적(成績)”과 “승리”를 자랑하면 전반 민족·국가존엄에 대한 전에 없었던 모독이다. 정의감이 있는 매 한 중국사람의 진정한 치욕이다! 아무 의미가 없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하는 이번 큰 재해는 반드시 결속되어야 한다!
4. “너는 죽고 나는 사는” 교량(較量)
법륜공 탄압, 강택민, 나간 등 사람들을 놓고 말할 때 한차례 후퇴할 길이 없는 “너는 죽고 나는 사는” 교량이었다. 전쟁, 정치 혹은 상업상의 기본수단은 상대방의 약점을 잡는 것이다. “명문(命門)”, “사혈(死穴)”을 통하여 맹렬하게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을 무너뜨린다. 만약 축적한 힘이 상대방의 약점 “사혈”을 칠 수 없다면 자신이 반대로 수동적 위험의 경지에 처하게 된다. 강택민, 나간 등 사람들이 법륜공에 대한 야만적이고 무리한 탄압에서 한번 또 한번 법륜공의 “문제”를 붙잡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한걸음 한걸음씩 만겁에도 회복할 수 없는 경지로 빠져들게 되었다. 농담을 하면 일을 저지른 사람은 법륜공이 “맥도 없고 혈도 없음(無脈無穴)”을 말한 것을 몰랐으며 또한 법륜공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마음대로 법륜공의 가르침을 왜곡하는데 다만 그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이다. 일을 저지른 자는 책임없이 “주관주의” 노선을 밀고 나갔으며 그들 스스로 범을 타고 내릴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되었다.
강택민, 나간 등 사람들은 무정하게 법륜공의 좋은 점을 무시하고 법륜공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아래에 몇년동안 그들이 어떻게 법륜공이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였는가를 보자.
1) 1999년 1월말 정치국회의의 격렬한 쟁론 속에서 강택민 등 사람들은 법륜공의 만연됨이 너무 빠르고 나중에 통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2) 강택민은 4·25사건의 비밀편지 속에서 법륜공은 우리 당과 군중을 빼앗으려고 다투고 있으며 사상진지(陣地)를 빼앗으려고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 이는 한차례 의식형태 영역이 투쟁이라고 지적하였다.
3) 중앙문건은 1999년 5월 1일 만 여명의 법륜공수련생들이 북경 향산에 가서 단체자살할 것이라고 전달하였다.(주4)
4) 4·25청원사건과 주 유고 대사관이 폭격당한 것을 연관지어 법륜공이 국제정치 배경이 있다고 하였다.(주5)
5) 법륜공은 사람에게 약을 먹지 않게 하여 1400명을 해쳤다.(주7)
6) 법륜공은 엄밀한 조직이 있고 국가와 장기적으로 대항하려고 망상하고 있다.
7) 법륜공수련생들이 중남해를 “포위공격”하였다.(주8)
8) “x교”란 정의를 내려, 교주를 숭배하고 정신통제와 돈과 재물을 모았다고 질책하였다.
9) 법륜공을 반동정치조직이라고 지정하였다.
10) 천안문 흉살사건 이후, “원만은 바로 자살”이라고 하였다.(주13).
11) 부옥빈(傅玉彬) 살인사건 이후, “원만은 바로 살인”이라고 하였으며 계열적인 살인사건으로 발전시켰다.(주11).
12) 법륜공을 공포조직이라고 정의를 내렸다.(주12).
위에 열거한 것은 단지 그 속의 일부분이지만 이미 충분하다. 이 모든 질책들은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 외에 어느 한 조도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가 위에서 말한 전반 내용을 분석해보면 순서가 뒤바뀌고 앞과 뒤가 모순되고 조금도 논리성을 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5), 10), 11)은 비로소 강택민이 탄압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구실이다. 무엇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서로 충돌되는 1), 2)를 이유로 하는가? 5), 10), 11)의 설에 따라 6), 7), 8), 12)의 출현은 또 어떻게 가능한가? 3), 8), 10), 11)의 설 중에는 전혀 정치적 목적을 포함하지 않는데, 그것은 또 어떻게 6), 7)과 특히는 9)와 일치할 수 있는가?
소위 이 “인정” 된 문제들은 완전히 법륜공을 “소멸” 시키기 위한 제멋대로의 함정이다. 끊임없이 법륜공 “약점” 중의 “시착법(試錯法)”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줄곧 법륜공의 “요해(要害)”를 찾지 못하였고 폭력과 거짓말을 만드는 중에서 그들의 “정확성”을 유지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강택민, 나간 등 사람들이 돌아갈 길이 없음이다. 이 길에서 그들은 끝까지 망가뜨리려고 하였고 그들은 유일하게 끊임없이 망가뜨리는 것과 유일하게 죽어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만이 비로소 그들이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리하여 주저없이 꼼꼼히 따질 여지가 없이 행동하여 법륜공을 탄압하였는데 당신은 그들과 도리를 말할 수 없다. 이 탄압자들은 넋빠진 무리들로서 표현된 행위들은 히스테릭한 발광이며 바로 전형적인 정신병상태이다. 전반 중화민족은 모두 그들의 이런 발광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법륜공문제에서는 흑백은 뒤집혀지고 판단이 완전히 잘못된 혼란상태에 빠져들었다.
5. 이번 큰 재해를 결속지으라
줄곧 찾고 있으며 만들어내지만 또한 시종 탄압의 “합법성”이 모자라는 이번 황당한 극은 마땅히 결속되어야 한다. 탄압자의 실패는 정해져있다. 그들의 탄압의 힘이 큰 만큼 그들의 죄악은 큰 것이며 세계 민족에 파급된 이번 재난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법륜공이 필경 어찌된 일인지를 한번도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3주일 처리하지 못하였으며, 3개월에 없애버리지 못하였으며, 3년이 지났어도 탄압자는 더욱 막다른 길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엄숙한 신앙에 대한 멸시와 짓밟음임을 완전히 모르고 있으며, 세간의 일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 수련은 피비린내 나는 탄압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강권(强權)만을 진리로 알고 있고 그들은 선(善)과 평화의 힘은 위대하고 항거할 수 없다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크게 힘을 쓴 만큼 그만큼 큰 감당을 당하게 하였다. 법륜공에 대한 탄압에서 그들은 사실상 한 치의 주동권이 없었다. 그들은 더욱이 그들의 이 일체 잔폭한 모든 행위들은, 바로 법륜공 이는 전신한 법리임을 엄격히 “검증”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반대로 이용되어 “진선인(眞善忍)” 신앙의 위대함을 성취하였고 그들이 얼마나 큰 힘으로 탄압하면 법륜공과 수련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덕을 건립한다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도 모른다. 생명으로 항쟁할 수 있는 법륜공수련자들의 요구는 그다지도 낮은, 단지 국가의 어떠한 투입이 없는 신앙자유뿐임을! 이 자유는 도리어 마땅히 중화민족의 매 한 사람의 구성원에게 속한다! 이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위하여 법륜공수련생들은, 전반 중화민족은 너무나 많고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가 아직도 “계속” 탄압하고 싶다면 누구는 마땅히 타도되어야 할 중화민족의 죄인이다!
1998년 말 교석(喬石)과 인대(人大)에서 퇴직한 부분적 노동지(老同志)들은 법륜공에 대하여 깊은 조사를 하여 강택민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썼다. “법륜공은 100가지 이익이 있을 뿐, 하나의 해로운 점도 없다.” 만약 이 결론에 대하여 그 당시에 마음 속으로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럼 지금 우리는 법륜공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법륜공은 철저한 신앙이고 개인의 수련이다. 가장 잔혹한 탄압속에서 법륜공수련생들은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소위 말하는 “xx당을 뒤엎자”란 구호를 부르지 않았다. 가장 불공평한 대우에서도 폭력으로 보답하지 않고 단지 한마디 “법륜대법은 좋습니다!”고 말하였다. 이는 진정한 위대함이고 대단함이다.
3년이 넘는 탄압 속에서 법륜공의 진실한 체현은 우리로 하여금 법륜공을 승인할 이유가 완전히 있게 하였는데 이로써 중국사회생활에서 의식형태 영역에서 한자리를 점하게 하였다. 그는 신임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하여, 중화민족에 대하여 100가지 이익이 있고 한 개의 해로운 점도 없다. 내가 “방교(幇敎)”를 시작할 때, 또 마침 “3강(三講)”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 그 당시 아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개별적인 영도에게 “3강”이 사람마음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당시 법륜공은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착해지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현대 중국사회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렵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어려운데 이는 중국사람들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생존환경이란 말인가? 법륜공의 중요한 의의는 그가 위대한 불가사의한 힘으로 사람에게 착해지도록 하며 좋은 사람이 될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여 더욱 고상한 경지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 어떤 때 나는 일부 온 입에 남도여창(男盜女娼)인 사람들을 만났는데 도리어 “재주가 넘치는” 박사들이다. 나는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중국의 사회를 지탱시키고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일어나게 한다고 믿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민주·법치의 이념을 견지하는데, 나는 이에 대하여 의견이 없다. 나는 단지 만약 한 무리 도덕적 품성이 저열한 사람들로 구성된 민주와 법치사회는 곧 어떠한 모양일까 하고 생각한다. 서방국가, 미국도 포함하여 아주 민주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중국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모두 기독교문명의 국가이고 신(神)에 대한 아주 깊은 신앙이 그들의 전설 속에 존재하고 있다.
3년 간의 탄압을 거치면서도 법륜공은 존재하여 왔고 아울러 세계 60여개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짧디 짧은 3년 동안에 이미 십 만 명에서 수십 만 명으로 발전되어 중국, 중국문화에서 많은 찬양을 가져왔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은 일체 탄압의 거짓말들을 반격하여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全新)한 눈빛으로 이 하나의 생명력이 아주 강한 새 사물을 보아야 한다. 이는 회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직도 법륜공을 수련하는 군중들은 신앙자유로, 그렇다면 진리를 견지함으로써 세간의 일체를 포기할 수 있고 신앙을 생명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이 한 무리 사람들, 이 한 무리를 “사회안정을 파괴하는” 수련인이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파리대가리 만한 작은 이익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나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집, 수표, 직위, 개인이익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툴 수 있겠는가? 그들이 관리자의 위치에서 탐욕스럽고, 부패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생활작풍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가정의 화목을 파괴할 수 있겠는가? 개인이익에서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는 수련인들이 바로 중국사회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그들의 언행은 사회로 하여금 아직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한다. 도덕적 기초가 있는 한 사회야말로 인성(人性)의 사회로서 비로소 물질의 이익 속에 미혹·상실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는 사회이다. 여기서 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법륜공의 수련은 인생의 실의(失意)와 불실의(不失意)와는 관계가 없으며 그는 진실한 생명의 체험이다. 이런 의론이 있는 이들은 항상 일부 인생로상의 “득의자(得意者)”들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득의(得意)”에 만족하며 더욱 넓은 눈빛으로 사물을 보지 못할 따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한다면 법륜공의 착오를 수정하는 것은 문화혁명 후의 억울함, 거짓, 잘못된 사건을 수정하는 것보다 더욱 쉽다. 이 민족의 동포들은 이홍지선생님과 법륜공의 결백을 되돌려 받기 위하여, 신앙의 자유를 얻음으로써 위안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물질이익상의 보상에 관용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더욱이 일종 너무나 많은 투입이 필요치 않은 정책상의 조정이며 이는 민족의 재난을 결속지음에 대하여, 민족내부의 대립을 없앰에 대하여 사회의 발전을 안정시키고 사회의 위기를 화해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보충하겠다. 신앙의 자유, 연공의 자유 / 신앙하지 않을 자유, 연공하지 않을 자유는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박탈할 문제가 없다.
탄압자는 자동적으로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권력이 필요하고 국가·민족·인민의 이익을 깡그리 없애 법륜공과 마지막까지 계속 완강하게 대항할 것이며 민족의 재난을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는 이 한 점에 대하여 충분한 사상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이 편지를 씀은 바로 각 대표들께서, 민족의 대의(大義)와 극히 개별적인 사람의 개인적인 이익사이에서, 중화민족의 아름다운 미래에 관계되는 관건적인 시각에 당신의 양지, 과감함과 용기를 내보내어 당신이 정의의 선택을 하시기 바라기 때문이다.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부강응 (傅江鷹)
2002년 11월 4일
(주1) 무한(武漢)의 팽량(彭亮) 일가족 박해 정황 : 팽량 일가족은 모두 법륜공을 수련하였다. 온가족이 전에 북경에 가서 청원하였다. 후에 남동생 팽민(彭敏)은 불법으로 감금되어 시달림을 받다가 2001년 4월에 사망하였다. 모친 이영수(李瑩秀)는 외부에 아들의 사망원인을 폭로하였다는 이유로 2001년 5월 중순 박해 받아 치사하였다. 부친과 여동생은 모두 감금되었다. 팽량은 미국변호사에 위탁, 미국에 가서 호북성(湖北省) 공안청청장 조지비(趙志飛)(폭력사회성질을 지니고 있는 610사무실 책임자이고 팽량 일가족의 처참한 사건을 만들어낸 주요 흉수)를 기소하였다는 이유로 후에 불법으로 체포, 감금되었다.
(주2) 법륜공을 수련하는 인원수. 강택민 등 사람들은 법륜공을 탄압하기 위하여 단지 230만 수련생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만약 단지 수련생들이 많기가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다면 전혀 강택민의 공포를 일으킬 수 없다. 1998년 말, 국가체육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원수는 7,000만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강택민은 1999년 1월말의 정치국회의에서 그리고 4·25이후 전 당책임간부로 하여금 법륜공을 다그쳐 처리하라는 비밀편지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원인으로 수련 인원수가 너무 많다고 하였다.
(주3) 이번 박해의 정황. 해외법륜공뉴스센터에서 실증한 바에 의하면, 이번 박해운동 중에서 증거가 있고 조사할 수 있는 사망 인원수는 500명을 초과한다고 한다. 그러나 2001년 중국공안 내부의 통계 숫자에 의하면 1,600명을 초과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중공 최고층 관원이 해외에서 출판한 이번 박해운동의 《세계 기만의 거짓말》의 통계에 의하면 7,000명을 초과하는 법륜공수련자들이 박해 중에서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불법으로 감금된 인원수는 몇 십만 명을 초과하고, 노동개조를 받는 이들은 10만 명을 초과한다. 수 천명이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일부 수련생들은 알지 못하는 약물의 엄중한 시달림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번 박해가 조성한 가정의 파탄, 사회의 기시, 법륜공수련생에 대한 대량의 협잡과 공갈, 그리고 연좌제의 형식은 각급 당정관원, 법륜공수련생이 있는 회사, 사회민중들을 모두 이번 박해 속에 휘말려들게 하였다. 아울러 양심이 있고 탄압자의 지령에 불복하는 자 역시 이번 운동을 투기하고 있는 “악인(惡人)”의 희생품이 되었다. 조성된 민족의 재난은 심지어 서방의 많은 국가와 지역에까지 만연되었다. 이번 착오적인 탄압의 위해가 저지른 반인류 죄행과 다른 죄행은 필로 다 기록하기 어렵다.
(주4) “향산 집단 대자살.” 1999년 4월말, 회의를 열어 중앙사무청 문건을 선포하였는데 수만명의 법륜공수련생들이 5월 1일 향산에 가서 단체로 자살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도 나는 이 문건에 대하여 놀라움을 느낀다. 나는 이것이 중공이 당을 건립한 이래 가장 적나라한 수치스럽고 악독한 문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중공 당내에서 어느새 담이 커서 마치 폭력사회의 두목같이 망나니짓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자살한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북경의 몇 십만 명의 수련생들이 중공 문건선전을 통하여 비로소 이 재미없는 “뉴스”를 알게 되었는가?
(주5) 법륜공이 국제정치 “배경”이 있다 함에 관하여 : 1999년 5월 유고슬라비아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이 폭격 당한 후이다. 강택민은 한 입에 법륜공이 국제정치세력의 배경이 있고 반화(反華)세력이 법륜공을 빌어 중국을 교란한다고 물어뜯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륜공에 대하여 크게 손을 쓴 후 베이따이허(北戴河) 회의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주 유고 대사관의 폭격이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륜공이 도대체 어떤 국제적인 배경이 있는가에 대하여 도리어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금년 7월 24일 미국국회는 420:0 표로 188호 결의안을 통과하였고 중국에 법륜공을 박해하는 이번 이유없는 탄압을 멈출 것을 요구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소수 국회의원이 법륜공문제에 대하여 중국을 반대하는 제안을 통과시켰다고 하였다. 내가 이 실사구시적인 188호 결의안을 보았을 때 나는 중국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 외국인들이 강택민보다 중국인민을 더욱 사랑하고 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었다. 각 당의 대표들은 이 문건을 볼 기회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주6) “세계말일(末日)”에 관해서. 법륜공과 이홍지 선생님은 여태껏 어떠한 “세계말일”이 발생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국가 TV에서는 무엇 때문에 법륜공이 “세계말일”을 말한다고 하는가? 비밀은, 이홍지 선생님은 ’98년 미국에서 설법하실 때, “나는 여기에서 엄숙하게 여러분들에게 말하는데, 모든 1999년에 지구가 무슨 재난이 곧 발생한다고 하는 것이나 우주가 멸망한다든가 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데에 있다. 그러나 국가 언론매체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법륜공을 “없애려는” 정치적 수요에 부합되기 위하여 뜻밖에도 이 “없다(不)”를 빼버리고 억지로 이홍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완전히 반대되는 뜻으로 변화시켰다.
(주7) 1400예 사망 건 분석. 1999년 7월 22일 오후 3시에 방송한 “전쟁의 선포(宣戰)” 프로그램에서 2가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으로 상당한 국민을 미혹시켰다. 그 중 하나는 목을 매어서 자살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할복 자살한 자이다. 목매어 자살한 사례의 상황은 이렇다. 이 사망자는 길림시 교외 외부에서 온 사람(농민)으로서 차 수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1998년 5월 정당한 영업 수속이 없었기 때문에 도시 관리 부문에게 차를 수리하는 도구를 압수 당하였다. 거대한 생활압력이 이 사람의 자살을 초래하였다. 이 사망자는 법륜공을 연마한 적이 없다. 가족들이 도시 관리 부문을 고소하려고 했을 때 현지 민정부문에서는 보상금을 좀 주고는 정부 부문을 대변해서 책임을 회피하였으며, 사망자가 법륜공을 연마한다고 말하였다. 공안부문은 술과 관련 서적을 놓고는 다시 새롭게 사망자에 대하여 녹화를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경찰은 법륜공에서는 술 마시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진에서 가장 중대한 허점을 남겨두었다. 소위 “할복” 안건은 더욱 저능하다. 사망자가 죽은 원인은 배를 가르고 “법륜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는다. 이 법률(法律)의 증거는 누가 제공한 것이고 누가 본 것인가,. 사망자가 사전에 이렇게 유언을 남긴 것인가, 아니면 사망자가 죽은 다음에 “귀신의 말”로 기자에게 알려준 것인가, 아니면 기자가 스스로 상상해낸 것인가,. 이것은 한 차례 더욱 노골적으로 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 1400예 중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과장(水分)”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이 숫자로 계산하더라도 또한 역시 법륜공이 초상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탄압자가 30배 압축하여 연공 인원수를 230만으로 계산할지라도 중국 연평균 사망률 65/10,000 명으로 계산해도 이 연공 단체의 1년 정상 사망률은, 230명×65/10,000=14,950명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 단체가 만약 1년에 15,000명이 사망하였다 하더라도 모두 정상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7년 동안에 단지 얼마나 많이 과장됐는지도 모르는 1400예 밖에 찾아내지 못했는데, 이것은 바로 법륜공의 신기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한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 또한 법륜공이 무엇 때문에 군중들의 깊은 환영을 받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어쩐지 일부 진상을 아는 백성들은, 병이 나으려면 법륜공을 배우라고 말한다. 그럼 법륜공이 사람들에게 약을 먹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해치는 것인가. 아니면 법륜공을 연마하여 사람을 구해서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인가?
(주8) 4·25 중남해의 “포위공격”에 대해서. “포위공격”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뜻인즉 우리의 당·정부가 법륜공의 “기세등등” 아래 억울함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자신의 행위를 “포위공격”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또한 한마음 한뜻으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정당이 자신의 인민을 두려워한다는 도리를 여태껏 들어본 적도 없다. 4·25의 직접적인 발단 원인은 하조휴(何祚 )가 천진에서 규칙을 어기고 완전히 사실과 부합되지 않게 법륜공을 모함하는 언론을 발표함과 동시에 사실을 설명하라는 법륜공 수련생을 체포하는 데로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내의 고위 책임자들로부터 알게된 바 그 당시 체포된 확실한 인원수는 45명이었다. 당내에서 법륜공에 대한 찬성하고 반대하는 의견은 이미 조절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으며, 천진사건은 자연적으로 “바로미터(기준)”가 되었으며, 천진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해서 아직 “명분이 당당하게 되지” 못한 법륜공의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되었으므로 절대로 작은 문제를 크게 보고 행한 것이 아니었다. 광대한 법륜공 수련자들은 모두 법륜공을 애호하는 태도에 근거하고 당과 정부에 신임하는 태도에 근거하여 중남해에 가서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하였다. 그 당시 제출한 요구는 3가지였다. 1) 천진에서 잡혀간 수련생을 석방할 것, 2) 법륜공에게 하나의 합법적이고 자유로운 수련환경을 줄 것, 3)《전법륜》 이 한 권의 수련경전을 공개 발행을 허가할 것 등이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 “간단한 요구”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중남해에 갈 필요가 있는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 수련자와 신앙자로서 이 세 가지 요구는 바로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이익이다. 우리는 광대한 인민 군중의 근본적인 이익을 대표한다고 늘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기왕 이렇게 많은 군중들이 왔는데, 보아하니 또 이렇게 간단한 요구 때문에 왔다. 그러나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강택민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간단한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가. 분명히 말하자면 그는 전혀 이런 군중들의 근본적인 이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의 출발점은 광대한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포위공격”이란 말은 다만 사람들이 법륜공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켜 타격하려는 몽둥이로 쓰이는데 불과하다. 만약 4·25사건이 없고 최전방에서 돌진하는 하조휴 등의 사람들이 없었더라도 여전히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어내 시종 법륜공수련자들로 하여금 진퇴양난의 지경에 처하게 한다. 왜냐하면, 법륜공의 사람수가 너무나 많고 증가도 빨라서 강택민으로서는 도저히 참아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4·25는, 다만 이렇게 빨리 발전하는 연공단체를 탄압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만약 이 구실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로 다른 구실이 있었을 것이인데, 이런 법륜공 수련자들에게 있어서 일단 “유죄”라고 인정되면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주9) 법륜공 서적의 비판에 대해서 : 1999년 출판한 관련 “비판” 서적을, 나는 기본적으로 다 보았다. 후에 나온 일부는 전문적으로 북경도서관 홀에 가서 찾아보았다. 내 말로 말한다면, 이런 서적의 목적은 단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치 보디가드의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이요, 둘은 정치운동을 이용하여 경제상에서 돈을 벌어 이익을 남기려는 것으로 그 속에서 절대로 법륜공의 객관적인 연구를 볼 수가 없으며 공평한 말을 할 수가 없다. 생각해 보자. 전혀 학술적 가치를 따질 필요가 없는 정치적 책자를 3-40원씩에 파는데 얼마나 많은 직장, 당 지부가 정치적 임무를 완성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가! 법륜공을 주제로 원고비를 건진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견해를 논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성실하게 진심으로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한 후 그들은 더 이상 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허영심과 원고비를 벌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였다. 《구시(求是)》 잡지사에서 편찬한 《”법륜대법” 열 가지 비판》을 공부하라고 나에게 요구한 적이 있는데, 나는 진지하게 필기를 하여 본 후 책임자들에게 말했다. “모든 문장을 나는 자세히 보았습니다. 주장하는 관점이 하나라도 성립되는 문장이 한 편도 없습니다.” 나는 이런 내용은 문자가 쓰레기이고 다만 정치운동에 복종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 쓴 것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였다.
(주10) 하조휴와 나간은 남자동서(같은 처갓집)지간이다. 1999년 8월 중국 선전부에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중공중앙의 하조휴와 나간은 동서지간의 관계를 고급비밀로 삼고 사회에 선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나는 너무나 가소롭게 느껴졌다. 만약 음모가 없다면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를 국가기밀의 높은 수준으로 승급시키겠는가. 나와 하조휴의 관계는, 우리는 모두 한 학술연구 영역에 있으므로 다른 학자를 통하여 그리고 그의 작품을 읽음으로 하여 그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 어떤 노교수가 나에게 알려주기를, 하조휴는 전국 자연변증법협회의 이사장이었는데, 후에 이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강퇴”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정말로 내놓을 만한 엄숙한 학술성과가 없었다. 나는 북경대학에 자주 초빙되어 아주 많은 각계 연구영역의 박사·석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활발한 인물들을 알게 되었다. 한 박사과정생을 알게 되었는데, 이 학생은 하조휴가 겸직하고 있는 북경대학과 사회발전연구센타의 학생이다. 그 당시 그는 졸업논문을 완성하고 있었는데, 제목은 하조휴가 지정한 가짜 과학 및 그의 검증 표준이었다. 나는 그와 교류를 했던바, 얻은 결론은 이런 논제는 전혀 성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박사과정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은 상사가 정한 것으로 나는 졸업을 해야 하지 않은가! 당신은 너무나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애석한 것은 내가 녹음기가 없어서 당신의 말을 녹음해서 연구논문 뒤에 부록으로 써서 금후의 연구방향으로 쓰지 못하는 것이 애석할 뿐입니다 라고 하였다. 1999년 4월 천진에서 부채질하여 사건을 만들고 점화시켜 4·25사건을 유발한 후 하조휴도 중공 선전부에 가서 활동하여 중공선전부 고급간부들에게 법륜공이 어떻게 나쁘다고 살을 붙여 말하였다. 나는 하조휴가 이런 한마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하조휴는, “나 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다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투쟁은 책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조휴가 법륜공 “문제”를 조작하는데 있어서 악랄한 역할을 한 것을 낮게 쳐서는 안 된다. 60년대에 이미 중공선전부에 있어본 적이 있는 중국과학원 “원사(院士)”의 지상(智商)을 낮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11) 부옥빈 살인 건 등. 1년 전 발생한 북경의 부옥빈이 친인들을 살해한 건은 그 “신기에 가까운” 연출에 수많은 민중들을 미혹시켰는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알고 보니 부옥빈은 1992년부터 정신질환에 걸렸던 것으로, 정신병이 발작하여 친인을 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 지식이 결핍한 사람으로서는 확실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행히도 전공에 필요하여 나는 전문적으로 한 정신병원에 가서 부동한 유형의 정신병환자들을 접촉하게 되었다. 일부 만나본 정신병 환자들의 표현 중 그 말을 잘하는 정도와 표정이 풍부한 정도는 부옥빈보다 더 잘했다. 내가 생각하는데 만약 이런 정신병자들을 이용하여 법륜공에 죄명을 뒤집어 씌운다면 그건 정말로 입이 있어도 변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법륜공에서는 명확히 규정한 바, 정신병환자는 법륜공을 수련해서는 안되므로, 부옥빈 사망 건은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법륜공에 죄명을 씌워서는 안 된다. 그 밖에 내몽고에서 발생한, 법륜공이 경찰을 살해한 뉴스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허위 날조이다. 이미 죽은 경찰 “영감”이 농번기 때에 법륜공 수련생을 납치하려고 하자, 여러번 애원하에서도 기어코 잡아가려고 하는 상황하에 법륜공을 연마하지 않는 남편이 실수로 경찰을 때려 죽였는데, 이것을 법륜공에다 누명을 씌우고 또 경찰을 열사로 인정하였다. 이 몇 년이래 뉴스에서 법륜공이 “살인” 했다고 거리낌없이 선전했다. 각양각색의 “살인방법”을 만들어 쌓아 놓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나간이 주도한 법륜공을 엄격히 타격하고 투쟁하는 고조 중에서, 어느 누구도 법륜공을 연마하여 “살인” 하여 총살당한 것도 보지 못하였으며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이 없다. 기왕 중국에서 현재 재판한 법륜공 수련생의 형량은 18년을 초과한 것이 없는데 그렇다면 다만 모든 뉴스가 죄명을 씌운 살인안건은 가짜가 아니면 정신병환자가 한 것이다.
(주12) 신노위성 “공격” 건. 일전 한 시기에 대만 법륜공이 신노위성을 공격했다는 뉴스가 방송에서 “생생”하게 보도되었다. 그러나 삽입한 내용은 무엇인가. 9월 8일에서 13일 기간에 방송한 내용에 대하여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는 《사과( 果)일보》 9월 11일자에서 증명한다. 천진교육TV방송국에서 9월 11일 나타난 것은 [일급비밀 – 강택민과 러시아가 협정한 조약에서 대만 백 개의 영토에 상당하는 토지를 팔아먹었다]로 부제목은 [언론의 자유는 천부적 인권이다]였다. 배경화면은 녹색의 산과 들속에 있는 만리장성이었는데 약 5분간 방송되었다고 한다. 분명히 이런 삽입요구로 보았을 때 법륜공 인사가 하기는 전혀 불가능하다. 동시에 전문가가 기술적으로 분석한 바, 이번 삽입 범위는 아마도 전국적인 교육TV방송국일 가능성이 많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일부 관중들이 이 시간동안 삽입한 다른 프로그램을 녹화하여 해외 사이트로 보내준 것으로, 하나는 7분 40초인데 제목은 ‘국가주석 매국, 강택민이 러시아와 비밀로 협정하여 국토를 팔아먹은 조약의 상황’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법륜공의 호소와는 관계가 크지 않으며 어쩌면 다른 사람이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만과 법륜공에 대하여 동시에 공격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국민들의 주의력을 돌리려는 것이고 강택민이 러시아에게 국토를 팔아먹은 죄를 짓고 제발 저린 것을 감추려는 표현이다.
(주13) 천안문 흉살 안건 분석. 나는 2001년 1월 23일 “분신자살 사건”을 천안문 흉살 안건이라고 부른다. 중앙TV방송에서는 조심하지 못해서 유춘령의 머리 부위가 타격을 맞아 사망된 확실한 증거를 박아놓은 것을 남겨두었으므로, 우리로 하여금 사건은 심혈을 기울여 꾸민 흉살 안건이라는 것을 보게 하였다. 이 안건의 계획자는 뜻밖에도 공안과 건달조직을 타격하는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나간이다!
우선 확인된 것은 나간 등 사람들은 사전에 사건이 필히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래의 몇 가지가 이를 증명한다.
1) 만약 사전에 명령이 없었더라면, 현장의 사복 경찰들이 어떻게 감히 그렇게 악독하게 손을 대어 유춘령의 뒤통수를 타격하여 살인의 책임을 감당하려고 하겠는가.
2) 불이 나서부터 1분 30초 이내에 바로 기념비 북측의 네 사람이 불을 끄는 임무를 완성하였다. 현장에 적어도 십 몇 명 이상의 경찰들이 직접적으로 불을 끄는데 참여하였으며, 그리고 현장에 있는 2대의 EVCO 경찰차에서 열 몇 개에서 이십 몇개에 이르는 소화도구를 꺼냈을 것이다. 만약 사전에 배치가 없었다면 해석할 방도가 없다.
3) 만약 돌발사건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풍부한 현장 화면을 볼 수가 없다. 원거리의 화면에서 똑똑히 보여준 바, 촬영 가방을 맨 중국인 한 명이 경찰들의 보호 아래 아주 여유롭게 근거리에서 “분신자살자”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이것은 우리 언론에서 말한 것처럼 화면은 미국의 CNN에서 촬영한 것이고 “우리”측이 한 것이 아니라고 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이미 사전에 “분신자살” 사건의 발생을 확정짓고 동시에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우리가 우선 물을 것은, 무엇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도록 하고 “제지” 하지 않았는가 함이다. 이것은 완전히 나간의 전가할 수 없는 책임이다. 그리고 살인을 조종한 사실은 죄를 더 가중시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각 대표 여러분들이 살인 흉수를 찾아서 엄격하게 처벌을 하며 심도있게 이 전체의 흉살 사건의 내막을 조사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바이다.
화면 속의 대량의 공안 경찰들이 신속하게 달려가고 힘껏 불을 끄는 장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공안과 정치 법률을 책임지는 나간은 결코 실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을 신속하게 끄는 공안 경찰들은 너무나 “잘하는데” 또 어찌 언론에서 선전하려는 분신자살의 비참한 비극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유일한 방법은 바로 흉살을 통하여 “분신자살”의 현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바로 TV에서 느리게 틀었을 때의 장면에서 똑똑하게 본 것이다. 우리가 완전히 보아낼 수 있는 것은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그 실질적인 것은 한차례 심혈을 기울여 음모하고 계획한 천안문 흉살안건에 불과하다. 나간 등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법륜공을 죽이려고 계획한 흉살안건으로 그는 전 중국의 국민들을 농간하였으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보기 드문 민족의 비극을 만들어 냈다.
부강응(傅江鷹), 남, 31세, 철학석사, 모 명문대학 철학계열 졸업, 90년 입학하여 모 현대화 군대에서 훈련, “여부 표창상 수상”, 재학기간 해마다 “모범학생(標兵)”으로 뽑히다. 졸업 후 본 학교 석사과정 연구생을 지냈으며 전공 연구는 과학기술철학이다. 석사과정 중에 해마다 학교의 우수 석사과정생 명예를 수여 받음과 동시에 학교의 “우수당원”과 “우수 석사생”을 수여 받았다. 연속 2년 학교 석사과정생 학생회 부주석을 지냈으며, 성급의 “우수학생회 간부”를 수여 받았으며, 졸업식에서는 학생대표로 발언하였다.
1997년 7월 공무원 모집에 따라 중공중앙선전부에 선발되었으며, 책임자들의 관심을 받고 키워주었다. 먼저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후에는 이론국(理論局)으로 옮겨갔다. 중공중앙선전부 공회의 식품감독위원회 부주임을 지냈다. 1998년 12월 10년에 한번 성대하게 열리는 11회 3중 전체회의 20주년기념 대형 이론연구토론회가 개최되었는데, 연구회에 쓴 논문이 회의에 채택되었어 가장 젊은 회의 대표가 되었다. 법륜공을 견정하게 수련한다 하여 1999년 10월에 당적·공직에서 짤리게 되었으며 집을 압수 당하였다. 지금까지 떠돌아다닌다.
성문시간 : 2002년 11월 5일
발표시간 : 2002년 11월 8일
문장분류 : 勸善度人(권선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