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베이(河北)대법제자 우청
【명혜망2009년11월16일】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국내외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6년 5월 법을 얻었으며 금년 57세이다. 나는 학력이 높지 않아 더욱 깊은 법인식이 담긴 이성적인 글은 잘 쓸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똑똑히 알고 있다. 제자로서 사부님과 대법이 모함을 당하고 있을 때 서슴없이 걸어 나와 진상을 똑똑히 알려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 게 대법제자의 가장 큰 책임이라는 것을. 아래 문장은 10년 정법수련 중에서 진상을 똑똑히 알려 사람을 구한 방면의 일부 경력과, 약간의 체득을 제6기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를 빌어 사존님께 회보하는 동시에, 동수들과 교류하므로 부족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질병의 고통 속에 빠져있을 때 사부님과 성스러운 인연을 맺다
10여 년 전, 나는 온종일 질병의 고통 속에서 발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환자였다. 그 당시 병원에서 한 번 수속하면 약봉지는 한 뭉치나 되었다. 허약하고 질병이 많아 성, 시 각 큰 병원을 다 돌아다녔고, 여러 가지 기공도 연마했으나 모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신체는 여전히 질병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으며 마음은 더욱 고통스러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96년 5월15일은 내 영생에서 잊어버릴 수 없는 날이다. 그 날에 나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을 걷는 행운을 얻었다. 법을 얻은 초기에 나는 마치 갓 입학한 어린아이처럼 대법의 고심한 법리에 이끌려 법 공부를 하거나 연공을 하거나를 막론하고 항상 제일 먼저 연공하는 장소에 갔다. 그리고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묵묵히 생각하기를, 창공에 눈이 있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좋은 대법과 연을 맺었기에 나의 생명은 희망적이었다. 그렇게 사해와 같은 부처의 은혜를 입은 13년 동안 대법의 박대정심을 마음깊이 느꼈으며, 이는 인류의 어떤 언어를 다 해도 표현할 수 없다. 다만 나의 심신의 변화가 사존님의 자비와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사부님과 성스러운 인연을 맺게 되었음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10년간의 정법수련 중에서 나는 여러 번 파출소에 불법으로 구금당했고, 구치소에는 2번 불법으로 갇혔으며, 노동교화는 1번 불법으로 당했다. 사악은 대법을 포기하도록 보름동안 비인간적인 행위를 가했으나, 그 어떤 행위든지 대법에 대한 나의 견정한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2, 진실을 말하고, 박해를 받고, 마난 중에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1999년 여름 “4.25”, “7.20”을 경과하면서 중공은 대법에 대한 탄압을 진일보 승급시켜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에서는 하늘땅을 뒤엎는 기세로 대법을 날조하여 모함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제자로서 절대 수수방관할 수 없음을 인식했는데,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정상적인 경로를 통하여 각급 정부 혹은 국가 지도자에게 반영할 수 있다.”(《정진요지2》〈안정〉고 하셨다. 제3차 북경에 가서 상방하고 돌아온 후 정부, 직장, 가정의 압력에 직면했다. 1999년 9월, 나는 법을 얻은 후의 수련체험을 기록해 정리했고, 대법을 수련하면서 얻은 이익을 써내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당시 법 공부를 제외하고 매일 저녁마다 밤이 깊도록 문장을 썼다. 문장을 다 쓴 다음 한부 한부씩 베껴, 직장 상사로부터 각개 과실까지 매 사람마다 한부씩 주었고, 거민위원회 판사처, 파출소부터 성, 시, 구 인대, 래신 사무실까지 보냈다. 일반적으로 모두 직접 전달했는데, 편지를 전할 때 나를 만난 사람에게는 대법의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나를 만난 사람에게는 정면으로 대법을 요해하게 하였다. 그 해 11월, 직장에서는 내가 상방을 갈까봐 두려워 사람을 파견해 24시간 감시했다. 하지만 나는 곧장 그런 기회를 이용해 순번으로 보초를 서는 직장동료에게도 진상을 알렸으며, 아울러 그렇게 하면 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해 주었다. 연말에 다시 북경으로 상방가기 위해 나는 대법을 실증하는 편지를 새롭게 썼다. (중앙 래신 사무실에 줄 것) 2000년1월24일, 나는 4번째로 북경에 갔을 때 래신 사무실 앞에서 현지 공안에게 납치되었다. 나는 이미 써 놓은 “나의 사부님의 청백을 되돌려 달라, 대법의 청백을 되돌려 달라, 즉시 구금한 대법제자를 석방하라.” 고 요구한 편지와 상방 편지를 공안에게 주었다. 현지에서 우리 지역으로 넘겨져 돌아온 후 만하루 동안 꼬박 경찰서에 갇혔을 때 7.8명의 형사범에게도 대법의 진상을 알려 주었고, 그들에게 몸에 수시로 가지고 다니던 사부님의《홍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다 본 다음 “당신들의 사부님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였다.
2000년 그믐 날 저녁, 나는 사존님의 제자로서 사존님을 생각하고 기념하고, 대법의 청백을 실증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대법의 작은 제자이다.) 연공하기 위해 연공장으로 가는 도중에 사회질서를 교란한다는 죄명으로 붙잡혔다. 한 해 동안 모두 100여명의 동수들이 체포되어 시와 주변 구치소에 가두었다. 내가 갇힌 구치소에는 20여 명이 있었는데, 우리11명은 벽돌로 쌓은 좁은 구들에 함께 갇혀 있었다. 우리는 단식으로 무고하게 마구 체포하는 불법행위에 항의했는데, 단식기간에도 많은 동수들이 관할 파출소에 불려가 추위와 폭행, 그리고 온갖 욕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는 사악의 박해 앞에서도 대법에 대해 진수제자들의 반석 같은 견정한 마음을 보았다. 우리는 구치소에서 매일 법 공부를 (어떤 동수들은 대법 책을 반입했다) 견지하고 연공하였으며《홍음》을 암기했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단체로 법을 실증한 사례 한 가지를 말하겠다. 어느 하루 숙직을 서던 악경이 두 명의 남동수를 불러 감방규정을 암기하라고 했다. 동수가 암기하지 않았더니 오후부터 저녁까지 벌을 세웠는데 당시 날씨가 매우 추웠다. 저녁9시 넘어 우리 방 사람들이 남동수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악경이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곧 단체로 《홍음》을 암기하기 시작했는데, 밖에 있던 남동수가 먼저 낭독하면 우리는 단체로 따라서 외웠고, 따라서 4개 감방에 있던 동수들이 일제히 함께 암기했다. 감방 안과 밖에서 서로 호응하면서 홍음 읽는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자 악경은 더욱 화를 냈다. 악경은 동수들 모두 바깥에 나와 서있게 했지만 우리는 계속 감방 안에서 법을 암기하며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이 겨울밤에는 비교적 일찍 잠들었고, 길가에는 이미 자동차 소음이 사라졌으며, 주변이 고요 속에 잠겨있어서 동수들의 『홍음』소리가 더욱 낭랑하고 우렁찼다. 단체로 홍음을 외우는 동수들의 목소리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아주 먼 곳까지 전해져 메아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반복해서 《법을 돕다》,《위덕》을 암송하였다. 그 당시 숙직을 서던 악경은 기겁하여 뜨거운 가마위 개미처럼 울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끊임없이 으르렁거렸지만, 홍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악경은 결국 구치소 지도원(이 사람은 선염이 있다)을 호출했고, 지도원이 이들을 방으로 돌려보내서야 상황이 평정되었다. 매번 그날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찬데, 당시 다른 공간은 기세 높이 정사대전을 했을 것이다.
15일의 구류기간이 끝났으나 사악은 여전히 사람을 내놓지 않았는데, 그날 마침 경문《도법》을 학습하였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계발 받은 나는, 동수들과 교류한 후 단체로 석방할 것을 요구하여 이틀 뒤 구류 소에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그리고 그 사건 후 이틀 동안 20여 명의 동수들은 담론을 통해 모두 일제히 나간 뒤 기본적으로 법공부를 잘하여 계속 대법의 일을 잘 수호하면서 견결하게 수련의 길을 잘 걸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북경에 가서 상방했다는 이유로 2000년 2월부터 직장에서는 나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다. 그래서 “쩐싼런” 신앙을 견지하여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사례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법률조항을 찾기 위해 나는『헌법』,『형법』,『형사소송법』,『공회 법』,『노동법』,『부녀아동권익 보호법』등을 사서 글을 적은 뒤 나의 신분증을 복사해 부친 것을 여러 부 복사해 직장상사에게 각각 한부, 각 부서 동료들, 직장 기숙사 두 동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층집을 포함해 대다수는 퇴직한 매집마다 배포하였다. 예전의 동료 직원들은 나의 처지를 알고 모두 동정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겠다고 하면 임금을 받을 텐데 집에서 혼자 가만히 수련하면 누구도 관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우리는 “쩐싼런”을 수련하는데 가장 먼저가 쩐(眞) 이므로 나는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은 전 직장에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고, 적지 않는 사람들은 정면으로 대법의 진상을 요해하게 되었다. 나는 또 총 공사의 동 사장과 서기를 찾아 그들에게 『헌법』에서 규정한 “공민은 신앙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당신들이 믿지 못하게 하고, 공민은 상방할 권리가 있는데 당신들이 가지 못하게 했고, 또 나의 생활비를 박탈했으니 내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법을 어겼다고 하였다. 따라서 나는 편지를 친히 구민위원회、판사 처、파출소、성시인대、총 공회、부련 회、또한 전문 직원들의 노임 문제의 시 중계위원 회, 시 공안국 전문 파룬궁 문제를 관할하는“610“ 사무실에 보냈다. 동시에 전국인대 전국 총 공회 전국부련에 편지를 보냈는데, 나의 편지는 사악을 폭로해 사악을 놀라게 하였으며 사악을 촉동시켰다. 2001년8월, 직장에서 나를 제명한다고 위협하면서 나를 제1기 세뇌반에 보내려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유리걸식하는 한 달 동안 나는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많이 걸었다. 아울러 그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파출소에 가서는 소장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리고 그해 ”임금요구” 때문에 진상을 알리러 성시인대、 내신 방 、부련 총 공회와 직장의 소유상사와 각 지능부문의 사무실、 파출소를 포함해 판사처와 거위회 등, 어디로 가면 어디에 가서 한 대법제자의 자비로운 흉금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2003년 여름, 3년 반 동안 중지됐던 임금이 풀렸으며 아울러 그동안 주지 않았던 일체 임금마저 복리로 일전도 차이나지 않게 모두 받을 수 있었다.
3,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고 조사정법의 서언을 체현하자
2002년6、7월 간, 밍후이망 편집부가 “광대한 인민에 향하여 진상을 알리자”를 제기한 후, 나는 자료를 배포하는 외에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박해받은 것을 알렸고,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도박을 하지 않으며 탐오 부패를 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수련하는 사람은 맞아도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으며, 천안문광장의 자살사건의 진상과 강택민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만행을 폭로하면서, 진수 대법제자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경찰에 체포되는 게 두렵지 않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쩐, 싼, 런을 수련하는 것은 정정당당하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라고 했다. 대법제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 잘되기 위한 것이고, 진상을 명백하게 알면 모두 하나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정진요지 2》〈북유럽 법회 전체 수련생에게〉문장에서 지적하시기를 “사회에서 접촉하는 일체 사람은 모두 진상을 똑바로 알릴 대상이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체현해 낸 것은 大法弟子의 자비와 세인(世人)의 구도이다. 매 大法弟子마다 모두 자신의 적극성과 大法弟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법회의 원만한 성공을 기원한다.”때문에 나는 평소 법공부 시간과 발정념 시간을 잘 안배하는 동시에, 만나서 진상을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평소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모든 대상을 향해서도 나는 진상을 알렸다.
시의 야채도매시장, 각종 도매시장(외지 사람이 비교적 많다)은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사는 동시에 상대방과 잡담을 하면서 합당한 시점을 찾아 진상을 알리면 효과가 특별히 좋다. 말한 게 명백할 때 그에게 진상자료를 주고 다시 한마디 아름다운 축복의 말을 하면 상대방은 특별히 기뻐하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만나서 진상을 알리면서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알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2002년 가을로 기억한다. 17,8세가량의 몇 명이 우리 지방에 와서 장사를 하기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중 한 남자아이가 “아재, 당신이 우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당신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진상을 명백하게 알면 하나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으며 당신이 명백하면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친척 친우에게도 명백하게 알릴 수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명백하면 당신네 가족 모두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고 알려주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진상자료를 이미 다 배포했기에 나는 그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가져다준다고 약속했다. 그 뒤 자료를 가져갔을 때 그 남학생은 두 손으로 자료를 정중하게 받으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한편, 공손하게 90° 경례하는 모습에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오늘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의 눈이 젖어 들었다!
2003년 추석, 나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가는 길에 과일 파는 농민을 만나 배를 사는 한편 잡담을 하면서 화제를 파룬궁으로 이끌었다. 그는 “들어 보았다. 그러나 진상자료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2부의 서로 다른 진상 소책자를 주니 그는 기뻐하며 “집에 가서 잘 본 다음 대법을 선전하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당신이 본 다음 반드시 진귀하게 여기세요. 이러한 자료는 흔치 않는데 대법제자들이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돈을 지원해 만든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꼭 진귀하게 여기고 내가 본 다음 다른 사람한테도 보이겠다.” 고 말하였다. 그때 나는 모두 5종의 서로 다른 유형의 진상자료를 가지고 있었는데, 매 종류마다 그에게 주었다. 그는 전면적으로 대법을 이해한 뒤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해서 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상에 명백해지면 그 한사람에게만 국한하는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진상을 알리면서 상대방이 친척친우에게도 전하기를 원한다면 2부를 더 준다. 이렇게 한 사람이 10사람에게 전하고 10사람이 100사람에게 전한다면 그 효과는 계산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당신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 생활 중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 일하는 중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모두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각 지역설법4》〈2003년 애틀란타법회 설법〉)나는 평소 모든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는데, 심지어 길을 묻는 사람도 놓치지 않았고 길에서 만나는 낯익지 않은 사람도 주동적으로 불러 정확한 기회에 진상을 알리고 있다.
어느 한 번 지하도를 걷는데 40여세 되는 부녀가 자전거를 타고 오다 나의 자전거 손잡이에 부딪쳤다. 나는 먼저 사과하면서 진상을 알렸고, 그녀와 헤어질 무렵에는 2부의 진상소책자를 주니 그녀는 “나는 이 성시에 4,5년을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본적이 없으니 돌아가서 잘 보겠다.”라고 말했다. 우리 집 근처에 야채 시장이 있는데 한번은 채소를 사는데 오이 파는 청년과 한 고객이 다툰 뒤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가장 낮은 법리로서 그에게 말했더니 그는 곧장 화를 가라앉혔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은 파룬궁을 창시하신 리훙쯔 선생의 『전법륜』책에 나오는 도리라고 알려주자 그는 묵묵히 머리를 끄덕였다. 떠날 때 나는 그에게 소책자 한부를 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시장에서 또 그 청년을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두 손을 잡고 주먹을 쥐며 “파룬따파 하오”라고 활기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큰 시장에 있던 몇 십 쌍의 눈이 모두 나를 돌아 보아 나는 정말로 기뻤다! 이 생명은 희망이 있다. 진상을 알리기 위해 나는 한절강의 차 상인을 알게 되었다. 그가 특별히 진상자료를 원했고, 매년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준 CD와 소책자를 그의 친구, 벗들에게 보여 주어, 그의 가족과 친구 모두 진상자료를 통해 진상을 알게 되었다. 정법진정의 발걸음이 빨라짐에 따라 사존님께서는 설법하면 할수록 더욱 명확하게 하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구도는 당신들 현재 생활의 매 한 가지 일 중에 관통되고 있다. 만약 여러분들이 모두 인식할 수 있고 그 중요성을 명백히 인식할 수 있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그럼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각 지역설법4》〈2003년 애틀란타법회 설법〉)고 하셨다. 나는 법 공부를 한 후 매우 많은 계발을 받아, 일을 처리하거나 물건을 사러 밖에 나가기만 하면 책가방 안에 가장 먼저 부치는 편지를 준비하는 것이다. (부동한 우표, 부동한 편지봉투, 부동한 방위로부터 부친다)전단지CD、소책자(먼저 모두 잘 봉하고 만나서 전하는 것은 포장하지 않는다)이다. 매 종류마다 조금씩 가지고 가서 가만히 배포하고, 만나서 주고 부동한 정황과 부동한 시기에 근거하여 부동한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만나서 말할 때는 상대방에게DVD、VCD가 있는지 물어서 CD를 주고 없다면 소책자를 준다. 거기에 정밀하게 만든 호신부를 주면 세인들은 모두 달라고 한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일찍이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대학교수인지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다 같은 일반국민이다. 당신들과 다른 것은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고 대법을 수련해 신체 건강하고 지혜를 연다. 누가 연공하면 누가 이익을 얻는다고 말하였다.
2003년 여름, 동수가 레이저 복사기를 사서 그녀의 집에 두었다. 나와 동수는 합작하여 매주 하루 이틀 시간을 내어 자료를 만들어 다른 동수들에게 보내주었는데, 우리 둘은 서로 손발이 맞아서 하루에 6보의 종이를 복사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진상자료는 더욱 풍부하게 반년을 계속하였다. 04년 초여름, 동수가 작은 프린터를 보내와 우리 집에 자료 점을 건립했고, 3가지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동시에 매주 진상을 알리는데 사용하는 자료 외에 동수들에게 『밍후이 주간』、전단지와 소책자를 만들어 주었다. 정법진정의 수요에 따라 자료점이 곳곳에 꽃필 때 내가 컴퓨터를 사려고 바로 생각했을 때 동수가 한 대의 컴퓨터를 보내와 딸이 그것을 사용하였다.
2004년 말, ≪9평≫ 이 발표됐다. 나는 법공부가 부족해 정법의 진정한 노정을 따르지 못하다보니 05년 설 기간에 ≪9평≫을 널리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늦추었다. 설이 지난 후 법공부 소조에서는 사부님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의 신경문을 학습하고 일제히 모두 ≪9평≫을 널리 펼치는 것은 매개 대법제자의 책임으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걸 인식했다. 그때부터 나는 ≪9평≫을 넣을 포장봉투 여러 종류를 사서 05년 초부터 오늘까지 대략 3천여 권의 ≪9평≫을 전했다. 우리 시에 있는 대형 도매시장에는 외지인의 차가 아주 많다. 그래서 늘 ≪9평≫ 전하러 가서 직접 전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짐을 싣는 차위에 얹어 놓았다. 2006년 초 큰 자료점이 파괴되고 정체에 틈이 생기자 내 안에서 남에게 의지하는 의뢰심을 찾아냈고, 그 후부터 스스로 ≪9평≫ 만들었고, 미처 만들지 못한 ≪9평≫을 만들기 위해 후에 레이저 프린터를 구입해 전문적으로 ≪9평≫을 만들었다. ≪9평≫을 전하면서 보조 자료의 중요성도 인식했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나는 ≪9평≫ 1권에, 1권의 ≪미래를 선택하다≫혹은≪퇴당수칙≫ 을 함께 주었고, 또 최신 퇴당인원수가 적힌 진상소책자 1권을 더 주어서 진상 내용을 알게 했다. 또 ≪9평≫과 다른 자료를 전부다 같이 줄 때 친구에게도 널리 전할수록 좋다고 알려 주었다.
06년4월 하순, 연로하신 집안 어른이 편찮아서 내가 매일 먼 길을 걸어가 보살펴야 했다. 그러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 마음이 매우 괴로웠고, 개인수련을 잘하지 못해 나타난 교란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법을 실증하는 일은 절대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걸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노인의 집으로 오고가면서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3퇴를 권했다. 나는 매일같이 집을 나설 때는 《9평》자료 와 진상자료를 포장해서(비오는 날에는 비닐봉투를 쓰고 맑은 날에는 광고지 혹은 편지봉투를 이용)지니고 떠났다. 길에서 연분 있는 사람을 만나면 곧장 진상을 알렸고, 기회를 찾아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5월28일 사부님의 《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이 발표된 후 법공부를 하고 나니 나는 가슴이 확 트였다. 어떤 상황이든 불문하고 모두 하나의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나는 40여 년간 만나지 못했던 몇 몇 노 동창생을 만났는데, 그들 모두다 3퇴에 동의했다.
나는 줄곧 친한 친구와 학우에게 3퇴를 권하려고 했으나 시종 기회를 못잡고 있었다. 한번은 집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는 《9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3퇴도 동의하였다. 지금은 친구, 동창에게 3퇴를 권하는 것 외에도, 나는 더욱 주요하게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행인들에게도 그들의 연령과 직업에 맞추어서 진상을 알렸다. 만약 외지인이면 (능히 알아 볼 수 있다 )나는 첫 마디로 “외지 사람 이예요?” 라고 물어 그가 긍정하면 나는 곧장 우리의 만남은 곧 연분이라고 하면서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일을 알려주려 하는데 당신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로 이어간다. 상대방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그제야 나는 3퇴와 관련된 말을 꺼내는데,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퇴출에 동의한다. 나는 또 미리 준비해놓은 자료를 그에게 주면서 다본 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해서 보도록 권유한다. 그리고 당신이 전달한 사람이 퇴출하면 당신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상대는 모두 기쁘게 접수하며 아울러 감사하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듣지 않는 것도 있지만 나는 집착하지 않는다) 여름에 날씨가 더울 때 길에서 물 배달꾼을 특별히 많이 만나는데, 그들은 모두 사회 최하층민으로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내가 그들에게 수고 하신다고 인사를 건네면 즉각 상대방과 가까워지는데 그 다음 3퇴를 권하면 100% 퇴출한다. 또 잡일하는 농민공에게 노동자인지 물으니 “예”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집 떠나서 고생이 많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니까 고마워했다. 이어서 나는 그에게 어려서 소선대에 가입했는지 묻고는 단원인지도 물으면 “예”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상대방에게 생명과 관계된 큰일을 말해 주겠다고 하면 그는 즉시 ‘무슨 큰일인가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하니 3퇴하여 평안을 보호하시오. 현재 중공관리 중 탐오 안하는 관리가 없으며 백성의 고생은 막심하다‘”고 하면, 막심한 피해를 보고 있는 농민공의 대부분은 공감했는데, 접수하지 않는 수는 아주 적었다. 그리고 폐품을 모으는 사람도 거리에 많은데 나는 한사람 만나면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그에게 장사가 잘되지 물으면서 접근하여 다시 진상과 3퇴를 말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몇 십 명이 함께 살기에 (모두 한 고향)3퇴를 말한 후 자료와 호신부를 많이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돌아가서 고향 사람에게도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청년들 중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비록 사당의 교육을 받았지만 일단 진상을 듣고 나서 대다수는 모두 퇴출에 동의하였다. 06년 10월1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젊은이를 만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법학도로 방학이 끝나면 곧 입당선서를 한다고 했다. 그에게 3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니 그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했다. 그는 ‘나는 21세기 연구생인데 무신론자입니다’라고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자연현상, 우주비행선이 태공으로 올라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하늘에 오르는 문제를 물으면서 무엇이 하늘인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부님의 말씀 중에서 “무엇이 하늘인가”의 법리로서 그에게 말해 주었으며 ……또 자고이래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창성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도리를 알려 주었다. 그랬더니 그가 자전거에서 뛰어 내려 손을 내밀어《9평》을 요구했고, 오늘 돌아가서 잘 보겠다면서 3퇴에 동의했는데, 나는 한 생명이 구도되는 모습에 감동했다.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는 과정 중에서 어떤 때는 사당의 독해를 깊이 받았거나 또는 이익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런데 관심이 없소, 오직 돈을 많이 벌겠는가에 관심있소“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돈을 많이 벌어 무얼 할거요? 생활이 더욱 좋아지자는 게 아니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도태되는 생명에게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소? 가장 급한 것은 생명이 능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요” 이렇게 말하니 상대방은 명백해져서 퇴출에 동의하였다. 다른 한 예는 퇴출을 하든 하지 않든 관계없다는 사람에게 한마디 물었다. “위험과 평안 앞에서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 하겠는가?” 상대방은 “당연히 평안 이죠” 나는 즉시 그 말을 이어 인생이 세상에서 곧 평안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가! 평안하려면 빨리 3퇴 하시오, 필명, 예명 모두 가능하다. 3퇴하면 그 어떤 손실과 위험도 없고 당신이 1전의 돈도 쓰지 않고도 생명보험에 든 것과 같은데 좋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여 일부분의 사람을 구하였다. 하지만 매번 모두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으며 어떤 때는 몇 명이나 말해도 퇴출하는 사람이 아주 적어서 하루를 헛되게 보낸 것 같아 괴로웠다. 후에 문을 나서기 전 발정념 할 때 사부님께 연분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염을 보낸 뒤 나가니까 효과가 있었다.
세상에 우연한 일이란 없다. 몇 년 전 여러 이유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새집은 내가 예전에 다니던 직장과(30년 전에 이미 전근하여 떠났다)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평소에 야채를 사거나 일을 볼 때 늘 노동자와 부딪쳤는데, 그들 대부분은 사당 당원이라 나의 말을 듣고 모두 3퇴 하였다. 06년 추석에 또 한 쌍의 70여세 가량의 노동자와 만나서 (모두당원)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 모두 퇴출에 동의했다. 어르신은 나에게 입담이 좋다면서 인재라고 하였다. 실제로 당신이 그를 구하기 위해 말하기만하면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 주시는 것이다.
정법의 추진에 따라 사부님의 설법 중 “대법제자는 각 지역, 각 민족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를》) “현재 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일은 바로 어떻게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가 하는 것으로 이 역시 현재 대법제자들의 원만 과정 중에서 완성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며 마땅히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 반드시 해야 하며 반드시 완성해야 할 일이다.”(《2007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더욱 명확히 말씀하셨다. 2007년 봄, 새로 마련한 새집의 열쇠를 받아 집을 꾸미기 위해 시장에서 재료를 사고, 인테리어 업자가 오는 것부터 가구, 가전을 파는 상점주인과 배달원들, 그리고 기사까지 포함하여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서 3퇴를 시켰다. 새집에 이사 온지 1주일쯤 지나 우리 집에 우담 바람꽃이 3곳이나 핀 것을 아들이 발견했다. 각 장소마다 2, 30송이씩 피었는데, 한곳은 베란다의 유리 창문에 피었고, 한곳은 침실창문에 피었으며 (유리는 모두 장식할 때 새로 바꾸어놓은 쌍 층 유리이다.) 한곳은 밖에 고정시켜 놓은 에어컨에 피어 있었다. 새집이기 때문에 연분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담바라를 보았다. 지금 이미 2년이 지났는데도 침실 창문에 핀 우담바라는 아직도 똑똑히 보이는데, 꽃 뿌리가 유리에 건강하게 박혀 있었다.
정법의 길을 걸으며 진상을 말하고 3퇴를 권고하는 과정의 심태는 반드시 순수해야하고, 대법제자의 그런 순정, 순선으로 상대방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가 3퇴를 하려할 뿐만 아니라 또 당신을 감사하게 여긴다. 2007년 여름, 한 젊은이에게 진상을 말한 후 진상자료를 주었더니 젊은이는 “이모 당신은 아주 선량해요, 너무 좋아요, 나는 당신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을 처음 보았어요.”라고 친절하게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그럼 자네가 ”파룬따파 하오”를 기억해 보게. 그러면 자네에게 진정으로 아름다음을 가져다 줄 것이요” 라고 했다. 세인에게 진상을 말하고 3퇴를 권하는 동시에 나는 40년이 지난 선생님과 동창생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구, 오래된 동창, 예전 직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3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중 한 동창생은 5자매인데 그들의 아이들까지 모두 3퇴하였다. 이렇게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 중에서 나는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감수했으며, 우리와 연분이 있는 사람을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두 가지 사례는 보기에는 평상적인 일 같지만 그러나 나에게 준 감수는 아주 깊었다. 어느 날 오전에 일이 있어 외출하지 않았는데, 오후에 법 공부하고 6시 정념을 한 뒤 층계를 내려가 구역 문어귀에 계란을 사러갔다. 그런데 마침 계란장수가 나오지 않아 길 맞은쪽 상점에서 사기 위해 길을 걷는데, 자전거를 탄 청년이 마주 오면서 어디에서 차 수리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차 수리 지점을 알려준 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하지 3퇴하여 평안을 보장하는 말을 했더니 그는 단원에서 당장 퇴출을 동의 하였다. 또 한 사례는 바깥에 나가 일을 보는데 갑자기 길 맞은쪽에서 한 중년 남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자전거를 너무 빨리 탔기 때문에 그를 매우 멀리 지나쳐버려 즉각 돌아서 그를 따라 갔더니, 그는 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의 친구와 많이 닮았다고 했는데,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곧 진상과 3퇴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는 “당신은 담은 정말 크오, 파룬궁의 일은 홍콩에 출장 갔을 때 들었지만 3퇴에 대해서는 똑똑히 잘 몰라요” 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들 부부 모두 3퇴를 하였으며 나에게는 안전에 주의하라고 부탁하였다. 사부님이 “사부의 법신이라도 좋고, 바른 신이라도 좋고, 대법이 세간에 배치한 거대한 마당이라도 좋은데, 인연 있는 사람과 구도할 수 있는 사람을 각종 환경을 이용하여 당신 앞에 오도록 할 것이며, 그에게 진상을 알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가서 해야 하며, 당신들이 가서 하지 않아도 안 된다.”(《각 지역 설법》〈미국수도 법회설법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희망하기를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은 빨리 걸어 나와 중생구도의 항렬에 들어서서, 이 만고의 기회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개척해주신 정법수련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대법제자의 사명을 완성하고 사전의 서약을 체현해야한다.
10년의 정법수련의 비바람 속에서 내가 걸어온 길은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법의 지도하에 한보 한보씩 오늘까지 걸어왔다. 그동안 중생을 구도하는 기쁨도 있었고, 모순에 부닥쳤을 때 관을 넘는 번뇌도 있었으며, 심성제고가 있었고 심통한 교훈도 있었다. 사부님의 요구와 정진하는 동수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큰 차이가 나지만, 나는 계속 노력하여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부단히 법으로서 자기를 수정하여 합격되는 대법도가 되겠다.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6/2122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