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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정한 신사신법으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바르게 걷다

글/호남대법제자 스왠(思远)

[밍후이왕 2009년11월12일]

여러 동수들 안녕 하십니까!

나는 65세 농민으로 대법을 수련 한지 11년이 되었습니다.

* 사부님께서 나를 수련의 길로 인도하시다.

수련 전 나는 몸이 아주 허약해 온 몸이 병이었다. 돈을 벌고 이름도 날리려 고생스럽게 몇 십 년을 돌아다녔지만 소득도 없이 가난하기만 했다. 그래서 풀이 죽은 채 중년이 되기 전 온갖 질병을 앓았다.

그렇게 앓아도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질병이 너무 복잡하게 많았기 때문이었고, 또 병원에서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다. 또 가난하기까지 해 무슨 돈으로 의사한테 병을 치료하겠는가. 늘 머리가 아프면서 어지러웠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와 풍습으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날 때는 반드시 유리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전신을 문질러 몸에 열이 난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어나 조금 활동한 뒤에서야 간신히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신장은 늘 고름이 찬 것 같았고, 마치 닭의 부리로 쫓는 것처럼 아파서 참기 힘들었다. 또 위장염으로 위가 아팠고, 또 추위가 두려워 여름에도 불로 배와 잔등을 지져야 될 정도였다. 조금만 찬바람과 찬 기운을 맞아도 춥거나 열이 나서 기침을 하거나 등등 모병이 많았다. 나는 몇 번 죽으려고 했지만 위로는 인자하신 어머니가 계시고 아래로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어서 쉽게 죽을 수조차 없었다.

사당 문화의 독수 속에서 자랐기에 나는 의사도 안 믿고, 귀신도 신선도 믿지 않았으며 부처님한테 향을 올리지 일은 아예 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중국의 초약에 관한 책만 보았는데, 무릇 소연과 지통, 경락 등 혈액순환이 되는 약이면 모두 다 먹었다. 도로변과 논밭 변두리에 있는 그런 초약들은 내가 다 파갔다. 집 앞뒤에도 여러 초약들을 심었고 약술도 몇 근이나 마셨는지 모른다. 그렇게 병고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 간고하게 하루하루 지나왔다.

1998년 사부님의 생일에 아내는 병을 제거하고 신체가 건강해지기 위해 수련의 길을 걸었다. 그때 나는 아내가 연공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은 체조와 같은 게 아닌가? 고 생각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몇 년동안 체조를 했지만 아직도 이렇게 병이 많지 않는가?라는 생각으로 연공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마저 연공하지 못하게 할 만큼 나는 매우 사나웠다. 하지만 아내도 고집이 아주 강했는데 반드시 연공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싸우게 되자 아내는 할 수 없이 아들 방에 가서 연공하였는데 아들이 외지에 일하러 가서 방이 비었기 때문이었다.

반년 후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이 고장 나 참으로 무료해져 연공 점에 가 연공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가위 다리를 하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들이 모시는 사부님의 사진이 살아나 매우 엄숙하게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몸서리를 쳤으며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불자 머리가 청성해지면서 진짜로 신불이 있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 사진이 어찌 살아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서 눈을 크게 뜨신 것은, 몇 년을 잠속에 빠져 있을지 모를 나를 갑자기 일깨워 눈을 뜨게 하신 것으로 나의 사상은 180도 변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아내가 연공 점에서 돌아오자 나는 “내일 나도 당신들과 같이 연공 점에 가겠다.”고 말하였다. 아내는 즉시 보배 책 《전법륜》을 나에게 주었다. 책 속의 매 한마디는 정말로 모두 나에게 말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정신을 분발하여 온 밤 자지 않고 단숨에 책을 읽으며 때때로 울기도 하였다. 이튿날 아내는 나를 데리고 보도원의 집으로 가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여 주었고 5조 공법도 배우게 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수련의 길을 걸었다. 아울러 사부님께서 나를 향해 웃으시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견정하게 수련해나가도록 고무 격려해 주심을 깨달았다.

수련 후의 거대한 변화

수련 전 나는 늘 사회가 나에게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여겼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보든 모두 눈에 거슬렸고 심지어 나 자신도 눈에 거슬려 가끔씩 그릇 사발을 팽개쳐 화풀이를 하였다. 술을 좋아해 늘 취해 있었고, 담배는 불을 끄지 않을 만큼 줄담배를 피워 기침이 났지만 그냥 피웠고 피우면 피울수록 기침이 나서 몇 번이나 담배를 끊으려고 했지만 끊지 못했다. 다만 며칠만 금연을 하다가 담배 인이 올라서 다시 피우지 않을 수 없었다. 담배와 술 외에도 마작 놀기를 좋아하였는데 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돌보지 않았고, 어떤 때는 몇날며칠씩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아 아내의 말을 듣기는 커녕 도리어 아내를 구타했다. 동시에 색욕심도 매우 중했고 늘 인생이 짧고 고되다고 여겨 낡은 항아리를 깨트려 놓고는 결과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지금은 수련하고 있으니 진수하여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하고 욕망을 끊고 집착을 버리며 마음을 닦아 이런 것들을 버렸다. 갓 수련을 시작했을 때 마을 노인이 사망해서 도와주었더니 담배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집에 가지고 와 한 대 피운 뒤 나머지는 책상위에 놓고 아내에게 말했다. “이후부터 담배, 술, 마작, 색을 한 번에 끊는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 말을 했더니 바로 끊을 수 있었다.

부부 간의 그런 욕망도 버려야 한다. 나와 아내 모두 수련하기에 마땅히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 나는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받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욕망을 끊겠다고 맹세했다. 아울러 잠자기 전에는 발정념으로 색마와 각종 정마의 교란을 제거하였다. 몇 년 동안 우리 부부는 비록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지만 그런 일은 도리어 없었다. 그러나 큰 거리나 작은 골목을 지날 때 여자들을 만나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말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복잡한 큰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젊은 아가씨가 내 곁을 스치면서 작은 소리로 “바로 저 앞에서 우리 한 번 즐기는 게 어때요”하는 것이었다. 맞은편은 여관이었고 아가씨는 겨우 열일곱 여덟 살가량 되어보였는데, 나의 손녀보다도 아직 어린 게 참 불쌍했다. 그때 사부님의 말씀 “마음을 닦아 욕망을 끊고 지혜를 밝혀 미혹되지 않음은 곧 자신의 책임이다.”(《정진요지》〈견정〉의 법이 나의 머리에 반영되어 나와 나는 엄숙하게 아가씨에게 말하였다. “미안한데 나는 급한 일이 있다”고 하고는 걸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안을 향해 찾았더니, 색욕심이 아직 채 없어지지 않아 길을 걸을 때도 여기저기 보면서 “보고도 못 본 척하지 못하다”를 하지 못해, 비로소 색마의 교란을 불러온 것이거나, 가능하게 사부님께서 나를 고험하셨을 수도 있었다. 낡은 세력이 색마로 나를 유혹하던지 아니면 사부님께서 나를 고험하셨든지 간에 나는 한 가지 염두가 있었다. “대법을 견정히 수련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늘”(《홍음2》〈진성이 보이노라〉

수련을 통해 이전의 나쁜 습관을 없애버렸고 신체는 거대한 변화가 나타나 모든 병을 깨끗이 쓸어버려 길을 걸어도 몸이 가볍고 일을 할 때도 맥없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춥고 더운 것도 다시는 겁나지 않았다. 내가 구치소에서 박해받는 기간에 아들이 1만여 원의 돈을 들여 논밭 한 뙈기에 뱀장어를 기르다 실패하여 논밭이 황폐해졌다. 내가 아내와 함께 구치소에서 돌아오니 아들은 자기가 맡은 땅에 다른 사람이 곡식을 심어버려, 황폐해진 그 논밭을 갈아서 늦벼를 심었다. 모내기 할 때 하늘에서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우리는 비속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옆에서 어떤 사람이 “그들 부부가 파룬궁을 수련해 신체가 이렇게 좋게 변하니 보세요, 이 큰 비를 하루 종일 맞았는데도 피곤하지 않고 아무 병도 생기지 않았어요, 감기라니요” 라고 말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소곤거렸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정부에서는 왜 아직도 끌어내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수련한 후 병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젊은 방향으로 전환 되었다. 30세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60세라 하였고 지금은 60세인데도 사람들은 도리어 나이가 많아야 50세로 보인다고 했는데 머리카락도 까맣다. 나는 늘 건강한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되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부러워하는데, 그들 모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건강을 회복했음을 알고 있다.

수련 후 잃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법리를 알게 되었고,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향수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반본 귀진하며 명리를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재배한 채소는 해마다 모두 좋아 지금까지 부족하지 않았으며 먹고 남아도 전혀 팔지 않았고 누가 좋아하면 누가 따가게 하였다. 몇 그루의 귤나무에도 해마다 귤이 주렁주렁 열려도 나는 전혀 먹지 않아 모두 부근 사람들이 먹었다. 다른 사람의 물건도 전혀 가져오지 않았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 돈을 주었다. 지금 사람들은 밥을 해도 석탄을 때거나 가스,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벼를 거둔 후에는 논밭에서 태웠다. 어느 한 번은 대파를 묶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짚 두 묶음을 가져오면서 끝내 오원을 주었다. 조카며느리가 우리에게 채소를 조금 주어도 나는 모두 돈을 주었다. 그들이 받지 않으면 나는 분명하게 우리는 수련인 이므로 다른 사람의 것을 그냥 가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어느 해 봄 유채씨앗을 거두어 아들이 가공공장에 기름을 짜러 유채씨앗 9자루를 가져 갔다. 그때 가공할 씨앗들이 많이 있어서 바빠서 그곳에 두고 왔다고 해 며칠 후 내가 갔을 때 씨앗이 한 자루 더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장에게 잘못 주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사장은 “틀림없어요. 모두 내가 직접 저 방에서 가져왔는데 한 자루도 적지 않고 전부 당신 것이요” 나는 그에게 “적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한 자루가 더 많아요” 사장은 “많아도 역시 당신 것이요” 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 자루 한 자루 검사했더니 그중 한 자루는 천 오래기로 동여 매여 (나의 것은 노끈임) 헤쳐 보니 씨앗의 색상도 같지 않았다. 우리 것은 섣달 잡교 씨앗이었고 이 자루의 것은 순수한 잡교 씨앗이었다. 사장은 보더니 “그럼 그 자루는 거기에 놓아두시오, 만약 가지는 사람이 없으면 당신거요”라고 말하였다. 며칠 후 사장의 사돈이 기름을 짜러 왔다가 씨앗이 한 자루 적은 것을 발견하고 보니 바로 그의 것이었다. 이 말이 전해져 우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렸다.

2000년 11월 나와 아내는 법을 실증하러 북경으로 떠났다. 천안문 광장에 가기 전날 아침 두 젊은이가 나를 찾아와 그들은 미장일을 하는데 일을 하면서 단지 하나를 팠더니 단지 속에 금부처, 금덩어리와 중화민국의 화폐 그리고 또 유서 한 통이 있었다면서 꺼내어 나한테 보였다. 또 두목이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하니 돈을 조금만 주면 고향 강서에 가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때 그 물건들을 손에 쥐어 보고 또 보니 진짜인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사부님이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홍음》〈무존〉)법이 그제서야 나의 머릿속에 반영 되었다. 나는 법을 실증 하러 바로 광장에 가야 하는데 이런 물건을 가지고 어찌 법을 실증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돈을 위하여 거짓으로 수련하는 게 아닌가? 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가지고 있던 200원을 그에게 주었더니 그는 기어이 물건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돈을 받지 않고 그에게 이 물건은 몇 만원의 가치가 되니 200원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하니 천안문 광장에 가서 법을 실증하려 한다고 말하면서, 사부님께 공정함을 찾아 드려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파룬따파 하오”를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속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니 설사 속았다 하더라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수련 전 나는 늘 마음속으로 돈을 벌려고 차비를 적지 않게 쓰며 이런 물건들을 찾으러 다녔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질없이 왔다 갔다 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찾지 않아도 저절로 왔으니 이것은 나의 마음을 검증한 게 아닌가? 과연 내가 이 물건을 얻고 내가 천안문 광장에 갈 수 있을까? 가능하게 수련을 포기하고 만고의 기연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가!

내가 넘어진 것을 사부님이 부축하여 바로 걷게 하셨다.

향 정부 정법서기, 파출소 소장과 촌지부서기 세 사람이 나의 오른 손과 아내의 왼 손을 함께 수갑으로 묶어 북경에서 지방 구치소까지 끌고 가서 강제로 대법을 비방하는 방송을 들려주었고 신문, 잡지, 천안문 가짜 분신사건 CD를 보게 했고, 친척 친우들을 이용해 말하게 했다. 그리고 크고 작은 학습반을 꾸려 (즉 쇠뇌반) 우리 수련생들이 “전화”하지 않으면 노예노동을 시켰다. 사악은 특별히 일부 구치소에서 “전화”된 수련생을 이용해 비뚤어진 사악한 이론으로 나를 “전화”하려 하였다. 이리하여 수련한지 겨우 몇 개월 후 압박하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도 법리에 대한 깨달음이 깊지 못해 그들의 그 비뚤어진 사악한 이론을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여 어리석게 쓰지 말아야 할 보증서를 썼다. 사악은 또 나를 이용해 아내에게도 “전화”하라고 권하였다. 아내는 나보다 수련도 먼저 했고 잘했기에 나에게 “전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사악한 자의 비뚤어진 이론으로 아내에게 이곳은 수련장소가 아니니까 집에 가서 수련하면 누구도 모른다고 하였다. 이렇게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자신의 견해를 보름간이나 이야기 했다. 매일 저녁 나는 이불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느 날 밤 나는 비몽사몽간에 전신이 높은 층계에서 떨어져 내리는 꿈을 꾼 뒤 나는 정말로 “전화” 한 게 잘못된 게 아닌가?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됨으로써 매일 쉬운 일을 하고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저녁이면 감방 밖의 한 방에서 거주하면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 감옥에 들어오는 모든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진상을 말하는 동시에 기회를 엿보아 외부의 동수들과 연계를 취하였다. 하루는 외부 동수가 사부님의 신경문 《길》을 보내왔다. 일하고 휴식 할 때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읽어주었으며 “이것은 정법에 대해 말한다면 일반 수련과 뚜렷이 다른 것이다.”, “뚜렷이 다르다.” 이 몇 글자가 특별히 커서 눈에 띄었다. 그러자 나의 머리는 뚜렷해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전화“는 착오로 절대로 ”전화“ 해서는 안 됨을 점화해 주신 것이었다.

며칠 후 향정법서기, 파출소소장, 촌주임, 현“610”두목들이 차를 몰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현“610”두목은 “‘전화’인가 ‘전화’하지 않는가(신앙을 포기) 지금은 리듬을 맞추어야 하며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그는 내가 정말로 “전화”한 줄로 알고 말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고 강하였다. 정법서기는 “하면 안 된다”를 너무 많이 말했다. 집에 돌아가면 연공하면 안 되며, 하나씩 연락해도 안 되며, 친척, 친구를 방문해서도 안 된다 등등. 이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어 내가 “전화”하지 않는 것도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정법서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먼저 말하였다. “당신은 말하지 마시오. 나는 ‘전화’하지 않으며 오직 무조건 석방하기 전에는 집에 돌아가지 않아요.” 나의 말에 온 장내는 놀라서 멍해졌다. 특별히 교활하고, 간사하고, 음험하고, 악독한 당시의 부주임(지금의 주임) 은 마치 서리를 맞은 가지처럼 삽시간에 시들어 버렸다. 그 주임은 직접 나를 감옥까지 호송해 주면서 아울러 가만히 나에게 “당신이 마음속의 말을 해보시오, 나는 당신을 박해하지 않았지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이 사람의 양심은 가능하게 구할 수 있음을 발견했기에 나는 “당신은 하지 않았어요, 나는 모모의 꼬임에 들었어요.”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친구 아내 (대법제자)의 노력으로 이 사람은 “610”에서 퇴출하고 아울러 “3퇴”도 하였다.

나의 행위 표현은 구치소와 우리가 살고 있는 향촌 마을을 뒤흔들어 놓았다. 사악은 도처에서 나를 “완고불화”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내가 연공하여 “주화입마” 되어 어떠어떠하다는 요언을 사방에 퍼뜨렸다. 이웃집의 한 중년도 다른 사람에게 내가 연공하여 마에 들었으니 만나게 되면 조심하라면서 “그가 만약 다시 연공한다면 두 아들 모두 그에게 살해당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큰 아들이 외지에서 일하고 돌아와도 집에서 잠자는 걸 무서워하였다. 한번은 집에서 잘 때 빗장이 없자 아들은 책상과 걸상으로 막아놓고 불도 끄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갔더니 아들은 침대에서 단번에 일어나 마치 적이 온 것처럼 나와 아내를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은 내가 잠자는 줄 알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와 아내는 자리에 앉아 물었다. “네가 온지 이렇게 여러 날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한 말을 한마디 하는 걸 들어 보았느냐? 우리가 한 가지 이상한 일을 한 것을 보았느냐?” 아들은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나는 두 분이 파룬궁을 연마하여서부터 싸우지도 않고 병도 없고 신체도 날이 갈수록 좋아진 것을 알아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은 왜 천안문에 가서 자살 했나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천안문 가짜분신사건의 내막과 의문점 및 “4.25”신소와 강 모모가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등등 내심하게 말하여 그가 듣게 하였다. 그는 들은 후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원래는 이렇구나, 과연 이렇구나, 나도 금후에 수련 하겠어요” 그런 후 이불을 쓰고는 우레와 같이 코를 골면서 잠을 잤다. 아들은 많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 모두 용감한 청년들로 아들은 그들에게 우리가 수련후 변화한 모습을 알렸고, 대법도 널리 알려 금후에 수련의 길을 걷는데 기초를 닦아 놓았다. 아들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기 좋아하고 아울러 또 우리에게 진상을 듣고 “3퇴”도 하고 구도되었다. 그중 한 사람은 지금 이미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작은 아들은 각종 원인으로 몇 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번 전화가 왔는데 교통사고가 나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고 했다. 아내는 작은 아들에게 “바로 네가 대법제자의 아들이기에 조금 차이가 났지,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조금도 차이가 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또 작은 아들에게 당부하기를 형님이 가져 가는 호신부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주위의 친구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를 기억하라고 알려 주었다. 작은 아들은 사부님을 믿는다면서 금후 수련하련다고 하였다. 나는 전화에서 그에게 “3퇴”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더니 짐승의 표기를 지우고 퇴출하기를 희망했다.

구치소에서 법을 실증 하다.

2002년 초여름 향 파출소 소장, 촌치안주임 일행이 무조건 나와 아내를 구치소에서 데려왔다. 치안주임은 우리와 헤어지면서 “앞으로는 어디로 가면 조장에게 말하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이튿날 아내와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는 우리 마을부터 한 바퀴 돌고 그 다음 범위를 확대하였다. 그때는 경솔하고 특별히 조급하여 단번에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으며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후에 길을 걸으면 늦은 게 싫어서 차라리 차에 올라가서 진상을 말했으며, 어느 차에 손님이 많으면 그 차에 올라갔다. 매표원이 늘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파룬궁은 진,선, 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의 이 마음을 수련하며 5조 공법까지 더하여 또 파룬따파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불법수련이며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가짜이며 파룬궁을 모함하여 덮어씌운 것이라는 등등을 말하였다. 우리는 진상을 몽땅 꺼냈고 아울러 목소리도 매우 높게 차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하였다. 한번 차에서 아주 많은 교사와 간부들이 진상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사부님을 비방하고 대법을 비방하였다. 그때 우리는 쟁투심이 일어나 그들과 싸운 결과 고발당했다. 사악은 나와 아내를 속여 공안국에 데리고 가 각기 1년 불법 노동교양을 판결했다.

갓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근무요원 몇 명이 달려들어 나의 경문을 수색해 갔고, 강제로 “전화”, “3서”를 쓰게 하였다. 나는 사악의 안배에 배합하지 않았으며 죽어도 “전화”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들은 잠을 재우지 않고 장시간동안 쪽걸상에 앉혔고, 강제로 대법을 비방하는 책과 시디를 보게 했다. 한번은 사악이 강제로 대법을 비방하는 책 한권을 보게 했는데, 내가 아무거나 한번 펼쳐보니 단번에 이발 뽑기 그 단락 이었다. 사악은 그것을 빌어 사부님을 비방하고 또 그런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마을에는 장 고귀 (화명)라고 부르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보다 두 살 아래로 어렸을 때 앞니 중간에 이빨 한 개가 길게 자라나 20살에는 잇빨이 입술 밖까지 자라 괴상하여 보기 싫었다. 그때 병원에서는 생명이 위험할까봐 두려워 감히 뽑지 못하였다. 어느 날 그는 한패의 젊은이들과 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이빨 뽑는 한 노인이 그에게 다가가 괴상한 이빨을 가리키며 “괴상한 이빨 때문에 짝을 찾기 매우 힘들 것이다. 이렇게 하자, 네가 나를 양아버지라고 한마디 부르면 내가 뽑아 주겠다. 돈은 한 푼도 받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피도 나지 않는다.” 장 고귀는 담배 두 보루를 사서 노인에게 주며 양아버지라고 불렀다. 희귀한 그 모습을 보기위해 한 무리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때 나는 마술을 하는 것처럼 무슨 표현을 하는 줄 알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천위에 마이신 같은 몇 개의 작은 병과 한 무더기의 썩은 이빨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병 하나를 열어 담배꽁초로 약물을 조금 찍은 뒤 괴상한 이빨의 뿌리 부분을 몇 번 눌렀다. 그리고는 그에게 몇 모금 빨게 하니 일분도 걸리지 않아 괴상한 이빨을 토해냈는데 길게 구부러져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마술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그말을 한 후 사악의 대장에게 책을 뿌리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전화로 물어 봐도 된다. 우리 지역 일대 사람은 모두 그 일을 알고 있고, 아울러 그 사람도 아직 이곳에 살고 있으며 신체도 매우 좋다” 사악대장은 책을 주어 들고는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였다.

사악은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자 “전화”하지 않는 대법제자들을 특수한 작은 방에 가두었으며 매우 극단적인 수단으로 대법제자들에게 고문을 가해 강제로 전화하게 하였다. 나를 맡은 마약범과 반장은 (역시 마약범이다) 나를 보고 “영감, 당신은 들어가면 안 되는데 들어가면 안에서 죽을 수 있다.” 빨리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하였다. 기실 당신이 집에 돌아가서 연공해도 누가 알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여러 번 재촉했지만 나는 모두 쓰지 않았으며 대답도하지 않았고 마음속에는 지금 곧 단두대에 오른다 해도 나는 “전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념을 가졌다. 그리고는 곧장 옷을 들고 특수한 작은 방에 가려고 할 때 한 사람이 와서 나를 가리키며 “갈 필요 없다”고 말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나를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으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 앞이라 흐르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노동교도소에서 잠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곧 바로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웠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신통으로 노동교도소의 검은 소굴과 난잡한 귀신세력 및 우주 중의 일체 사악을 때려 부수었다. 매일 모두 그렇게 부단히 정념을 발하였다.

현지 사악을 폭로하다

2003년 늦여름, 나는 사부님의 가호 하에 노동교도소에서 정념으로 뛰쳐나왔다. 향 정법서기 파출소 소장이 차로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도중에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발정념으로 배후의 사악을 제거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몇 달이 지난 뒤 아내도 백마롱 노동교도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피골이 상접하여 목욕할 때에는 내가 부추켜야만 일어설 수 있었고 명치에는 한 개 분동 같은 게 있었는데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아내에게 견강하게 일어나라고 고무하면서 절대로 구세력의 안배를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동시에 아내의 육신을 박해하는 나쁜 물건을 깨끗하게 제거하여 주었더니 아내는 아주 빨리 회복했다.

며칠 후 아내와 함께 우리를 박해한 직접 책임자의 향 정부 정법서기의 집으로 찾아가서 진상을 알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이 파룬따파이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좋음을 말하였으며 대법홍전의 세계형세와 천안문 분신자살 등등의 의문점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노동구치소로 보낸 것은 박해이고 범죄라고 지적하였다. 아울러 그들에게《세상거짓말(欺世谎言)》한권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앞으로 나는 당신을 전화시키지 않겠소. 당신도 나를 전화시키지 마오. 좋지 않소?”라고 말하였다. 동시에 우리는 파출소 전체 직원에게도 진상을 말하였다. 그때부터 그들은 우리를 보면 숨어버렸다. 구세력은 그들을 이용할 가치가 없는 것을 보고 모두 그들을 전근시켰다.

원래 북경부터 우리를 납치해 돌아온 그 정법서기가 또 전근해 왔다. 어느 날 진상을 말할 때 향 정부 문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가 마침 문 앞으로 나오고 있어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주동적으로 나와 악수를 나누었고, 한편으로는 나의 아내에게 “당신들은 밖에서 전하지 말아야한다.”고 하였다. 나도 웃으면서 그에게 “소문에 의하면 당신이 진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축하드리오.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과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도 나의 말을 이어 “쩐, 싼, 런이 좋은가? 당연히 좋다. 그러나 다른 사람한테 이용되었다.” 고 하였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그의 손을 꽉 잡고 정력을 집중하여 강대한 정념을 발하면서 “멸!” 하자 그는 놀라 손을 빼고 달아나면서 무뢰한 수단으로 “소문에 의하면 당신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혈을 찌를 줄 안다고 하는데 오늘 나한테 찌른 것인가” 그때부터 그는 다시는 우리와 감히 만나지 못 하였다.

그 기간에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특히 힘을 쓴 악경은 이미 파출소 소장으로 승진했다. 비록 그가 우리를 박해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를 구하기 위해 찾아가서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는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당신들 담이 너무 크오. 진상을 말하는 것을 나한테까지 와서 하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는 그에게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 당신들은 관할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그는 또 틀을 차리며 “오직 이곳 공민이라면 곧 내가 관할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배후에 있는 사악인소를 발정념으로 제거하는 한편 그에게 질문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 많이 매음하고 창기와 놀아나고 마작 트럼프 도박 등,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붙잡지 않소?” 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곧 상습 도박꾼이고 아울러 도박 때문에 직장 일을 중지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전보되어갔다. 파출소 직원이 또 한 무리 바뀌면서 젊은 정법서기가 전근해 왔다.

올림픽 기간에 정법서기는 그것들 무리들과 촌 지부서기와 함께 경찰차를 몰고 기세 사납게 우리 부부를 붙잡으려 왔다. 그날 아내는 진상 말하러 밖에 나가고 나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호적을 관리하는 경찰과 치안주임이 다가와 “당신 아내는 어디로 갔는가?!”라며 사납게 물었다. 나는 매우 위엄 있게 대답하였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너희들은 물어 볼 자격이 없다” 치안주임은 내가 놀라지 않자 진심처럼 가장하여 “우리친구로 사귀면 좋지 않는가?”고 했다. 나는 견결히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우리 연공하는 사람은 친구를 사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도 없으며 일심으로 세인을 구하는 것만 생각하니 당신들은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기억하라.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며 자신을 위해 하나의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한편으로 그들과 이야기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 향해 강대한 정념을 발하였다. 동시에 사부님께 가지하여 주실 것을 청했다. 그들은 트집 잡을 게 없다보니 차를 세워 둔 공터로 갔다. 차안에 있던 여러 사람들도 여러 집을 다니면서 우리의 정황을 탐문하였다. 그때 나는 하던 일을 중지하고 가부좌한 뒤 입장하여 경찰차와 악인들을 향해 발정념으로 그들을 공제하는 사악한 인소를 없애 버렸다.

대략 2시간정도 지나자 그들은 가면서 촌지부서기를 남겨 나를 감시하게 하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모두 갔는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가지 않는가?” 그는 직설적으로 말하기를 “남아서 곧 바로 당신을 감시 한다” 날이 어둡기 전에 당신 마누라를 만나지 못하면 곧 당신을 잡아 간다고 했으며, 목적은 당신이 장사에 가서 올림픽 횃불을 빼앗을까봐 겁이 나서 그런다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돌아오자 그는 즉시 파출소에 보고했다. 정법서기와 파출소 소장이 다시 와서 우리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곧 바로 머리를 숙이고 나의 아들 방에 들어가 갓 광주에서 돌아 온 우리 아들과 장사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우리 부부는 함께 들어가 그를 향해 발정념을 하였다. 그는 “당신들이 집에서 연공하면 나는 상관하지 않는데 만약 밖에 나가서 전하면 나는 당신들을 붙잡을 것이다” 고 하였다. 그때 소장은 천하 만물은 무에서 생성된다며, 직접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날조하여 “그들은 또 나에게 파룬궁을 연마해라고 했다” 고 하였다. 우리는 그 망나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내의 친구인 동수는 그 서기를 보고 큰 소리로 “당신이 누구를 붙잡겠는가? 당신이 공산사당에서 퇴하지 않으면 명도 보존할 수 없다!”고 하자 그는 놀라서 머리를 뒤로 쳐들었다. 나도 그의 말을 부정하였다. “우리는 당신들이 관할지 못한다. 당신의 말은 안 된다.” 아들은 우리가 양보하지 않고 맞서는 것을 보자 내가 당할까봐 허튼소리로 “서기가 집에서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왜 하필 밖에 나가서 전하는가?”고 말하였다. 아들의 동참에 그는 지푸라기를 잡은 듯 “당신이 보라, 당신의 아들까지 모두 이렇게 보지 않는가.”고 말하였다. 우리는 매우 견정하게 “지금 누가 말하여도 모두 쓸모없다. 오직 우리 사부님의 말씀이어야 된다.”고 하자 그들은 이유가 제대로 서지 않아 말문이 막힌 채 슬금슬금 떠나갔다. 나는 그들에게 한마디 보충하였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한다.”를 기억하라고.

정법서기를 구도하기 위해 우리는 그에게 외지에서 진상자료를 부쳐 그가 구도되기를 희망하였다. 10월1일 며칠 전 그는 또 경찰과 함께 우리 집에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그는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왔다며 능청스럽게 “이 집을 새로 바꿀 때가 되었다. 아들이 밖에서 잘 보내고 있고 또 돈도 부족하지 않는데 왜 층집을 짓지 않는가? 옷도 좋은 걸로 정연하게 입으라”고 하였다. 우리 집 밥상위에 있던 두부, 콩비지를 가리키면서 “늙으면 응당 향수해야하고 생활이 좋아졌는데 이렇게 생활하면 어떻게 되는가?”고 하였다. 우리는 “이 생활이 가장 좋다. 오늘은 채소밭에 약을 쳐서 두부와 콩비지를 샀다. 평소에는 전혀 채소를 사지 않는다. 우리 생활은 매우 좋다고”말하였다. 그는 말을 삽시간에 돌려 “당신들은 연공을 해서 몸이 좋아졌으니 집에서 연공하면 나는 반대하지 않지만 밖에 나가서 전하면 나는 제약할 것이다.”고 하면서 또 그가 대학에서 배운 자연과학과 공산당이 제창하는 쩐, 싼, 미, 등에 대해 한참 말하였다.

그리고 또 사부님께 일부 불경한 말을 하였다. 그는 진상을 듣지 않으면서 우리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면 그는 곧바로 말을 돌려버렸다. 나는 그를 주시하고는 계속 발정념으로 그의 배후의 사악한 인소를 없애버렸다. 그는 얼굴이 붉어지며 언제든지 일어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당신은 내말 한마디만 듣고 천천히 가라. 당신이 금방 말한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본성의 일면이 한 게 아니다. 그것은 장기간 사당의 독해를 받아 형성된 관념의 일면이 말한 것으로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권유하건데 당신은《9평》과 대법진상자료를 보면서 파룬궁을 많이 알아 사당의 희생양이 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좋은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동시에 또 선악에는 보응이 있는 게 천리이므로 대법을 선량하게 대하여 평안함을 얻어야 한다는 도리를 말하였다.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는 훌쩍 가버렸다.

강대한 정념으로 악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박해가 시작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와 아내, 친구 동수는 모두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하였다. 특별히《9평》발표된 이후 시간의 긴박함과 중대한 책임을 느끼고 아내의 친구 동수와 상의하여 그녀가 매주 3차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나는 매주 1차례 밖에 나가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밖에 나가 진상을 하려면 매우 많은 차비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비는 모두 농사일을 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는 소박한 생활을 유지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설을 쇠고 명절을 맞이해도 닭, 오리, 생선, 고기를 사지 않았다. 또 우리는 가축, 가금을 키우지 않았기에 살생도 피면하였다. 우리는 더운 때나 추운 때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진상을 말했으며 몇 년 동안 부근의 몇 개 향, 진 곳곳을 돌아다녔다. 매 번 나갈 때는 모두 차를 타고 또 몇 십리 길을 걸어야하는데, 매차 모두 20여명 좌우의 사람을 3퇴시킨다. 진상을 말할 때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예를 들면 향, 진서기 간부, 공인, 학생, 교사 등, 가장 많이는 농민을 만난다. 우리는 농부의 집에 가서 말할 뿐만 아니라 많이는 밭에 가서도 말한다. 어떤 때는 나쁜 사람, 악인, 악경들도 만나는데 진상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박해한다.

어느 한번은 아내와 함께 걸어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동수를 데리고 밖에 나가 진상을 하다가 악인의 모함을 당하였다. 얼마 안 되어 경찰차가 다가왔는데 소장과 운전수가 내려왔다. (전문사람을 때리는 자를 불렀다) 소장은 독하게 “파출소에 따라 가자”고 하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그는 “진지서가 당신들이 여기에서 미신 활동을 하고 또 그를 퇴당하라고 권했다고 고발하였다” 고 하였다. 나는 평온한 어조로 그에게 “우리는 미신을 하지 않으며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고 설명하였다. 그는 도리를 따지지 않고 불시에 한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는 나의 의복을 틀어잡고 차안으로 밀어 넣으며 온통 악독한 말과 더러운 말로 사람을 욕하였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차문 앞에서 저항하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좀 지나 그가 부른, 전문적으로 사람을 때리는 자가 나를 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 여동수를 놓은 채 달려와 소장을 도왔다.

당시 나는 한 점의 두려움 없이 마음속으로 몸에 있던《9평》2권을 그들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시에 사부님의《정념으로 사악을 제지하자》법이 나의 머릿속에 반영되어 들어왔다. 그리하여 힘껏 힘을 주어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나는 즉시 그의 눈을 주시하며 “당신은 나를 때리지 말라. 나를 때리면 곧 바로 당신 자신을 때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이때 마누라와 동수도 나에게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너는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의 말이 갓 입에서 나오자마자 그의 머리는 마치 몽둥이에 맞은 것처럼 늘어났고, 온 몸은 마치 나무 몽둥이처럼 거기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위풍은 사라졌으며 얼굴은 울상이 되어 나에게 구애하기를 “당신들은 여기에 오지 마세요.” 라고 말하였다. 내가 그를 보니 가련하고 가소롭기도 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내와 동수의 재촉 하에 그 자리를 떠나갔다. 우리가 1리 정도 갔을 때 함께 데리고 갔던 동수도 우리를 따라왔다. 후에 나는 사부님께서 그때 가지해 주시어 우리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가호 하에 무사하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10년을 수련하였으나 사부님의 요구에는 아직도 거리가 한참 멀다. 또 매우 많은 사람 마음을 수련해야 하는데, 특히 조급해 하는 마음, 일을 하려는 마음, 쟁투심, 무서운 마음, 매우 중한 정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나 환경이 얼마나 악렬하던지, 사악이 얼마나 미친 지를 막론하고, 나는 견정하게 신사신법 하여 끝까지 영원히 변하지 않고 견정하게 수련해 나갈 것이다.

수련과정에서 개인의 체험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은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2/2123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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