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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난을 지나 광명으로

글/ 사둥 대법제자 칭처(清澈)

【밍후이왕 2009년 11월 13일】밍후이왕 제6회 대륙대법제자 인터넷 심득교류회 원고모집통지를 보고 매우 부끄러웠다. 법회를 이미 5회나 했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투고한 적이 없다. 수련을 잘하지 못해 사부님의 자비한 구도에 죄송스럽다. 어제 밍후이 교류문장을 보고 ‘대법제자로서 십년 남짓 수련했는데 어찌 쓸 것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다. 성실하게 자신의 수련을 반성하고 법회에 참가할 원고를 써서 답안 한 부를 올리려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이 학습반에서 나간 후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진정한 공이며 고에너지 물질이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서 역시 두어 글자를 쓰면 글씨가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 (『전법륜』)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체득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너무 많이 신경 쓰지 않고 사실대로 써내야 비로소 정확한 심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래에서 수련한 체험을 동수들과 교류하려 한다. 층차의 제한이 있으므로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하기 바란다.

1. 기쁘게 법을 얻어 처음 마난을 겪다

나는 96년 10월에 법을 얻었다. 당시 창춘(长春)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동창과 선생님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수련을 했으며 주위에는 노수련생이 매우 많아 모두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그 시기는 매우 귀중한 세월이었다. 기억하건대 한번 마음을 안정하고 『전법륜』을 읽었을 때 이것은 수련서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를 진동한다.”(『전법륜』)는 것을 읽었을 때 ‘나는 반본귀진 하겠다.’는 일념이 생겼고 몸에서 한바탕 뜨거운 것이 흐르는 느낌이었으며 층층 하늘의 신불들이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빨리 나의 몸을 정화하셨다. 나는 천목으로 파룬을 볼 수 있었고 다른 공간의 미묘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졸업 후 나는 젊고 열정이 있었으므로 아주 많은 홍법활동에 참가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일하는 마음이 매우 중했다. 대법을 속인의 사업으로 생각했고 늘 각종회의에 참가하였다. 법공부를 마음속으로 하지 않았고 일에 봉착하면 안으로 자신을 찾지 못했다. 대법에 대하여 견정했으나 사람의 마음으로 법을 수호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므로 99년 ‘7.20’ 후 사악의 압력 앞에서 얼마 견지하지 못하고 타협했다. 마음을 어긴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회사 동료는 거짓말에 속아 사악의 말을 들고 나를 감시했으며 ‘6.10’도 늘 나를 소란했기에 마음을 돌로 눌러 놓은 것 같았으며 숨쉬기가 힘겨웠다. 밍후이왕에서 동수들이 사악의 박해로 인하여 세상을 뜬 소식을 접하고 조용히 눈물을 오래도록 흘렸으며 꼭 북경에 가서 자신의 진심을 알리겠다고 결심했다. 대법이 박해를 받는데 대법제자로서 치욕을 참고 살아갈 수 없었다.

북경에 들어간 후 나는 사악의 박해를 당했으며 몇 번이나 납치되어 마지막에 노동수용 3년 판결을 받았다. 정념이 부족하여 전화되어 수련인으로서 제일 치욕스러운 일을 했다.

소굴에서 나온 후, 나의 생명에서 제일 암흑같은 세월이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매우 중하여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동수들이 연루될까봐 걱정이 되어 감히 찾아가지 못했다. 늘 밍후이왕에 접속하여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설법을 보았으나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매우 소침했으며, 출로가 보이지 않아 한 시기 자신을 방치하고 방종했으며 여기에서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마음속의 고민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2. 사부님의 자비와 동수의 깨우침

각종 마난을 겪고 곡절 가운데서 소침했으며 고난 중에서 몸부림쳤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이 무기력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수시로 보호하고 점화하셨다. 대학시기 동수 후이링(慧铃)은 늘 나와 연락을 했으며 천리를 마다않고 찾아와 법공부하고 교류하고 발정념을 하며 나를 도와 마난에서 나오게 하고 다시 정법 홍류(洪流)에 들어가게 했다. 나중에야 비로소 나를 청성하게 하기 위해 수 천리 밖에서 보지도 못한 동수들이 꾸준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이링은 내가 납치되어 노동수용소에 갔다는 것을 알고 연결할 수 있는 동수들과 모두 연결하여 노동수용소에 단체 발정념을 시작했으며 몇 년간 계속 중단하지 않았다. 노동수용소에서 꿈을 꾸었다. 나는 노동수용소 중간에 서 있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는데 한 마리 백조가 나의 머리위에서 한 바퀴 돌면서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쉬지 않고 지저귀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갑자기 캄캄해졌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저녁 식사 후, 8시가 지나서 교도관은 나보고 여동생이 보러 왔다고 했다. 나는 잠시 멍했다. 집은 다른 성에 있으므로 몇 년간 부모님 외에 나를 보러 올 사람이 없었고, 게다가 나는 여동생이 없었다. 면회실에 가보니 후이링이 왔다. 교도관이 있으므로 간단하게 몇 마디 이야기 했는데, 얼마 안 있어 노동수용소에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보고 나오면 찾아오라고 부탁하고 떠났다.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동북에서 아침에 차를 타고 노동수용소에 도착했는데 증명이 없으므로 교도관이 만나지 못하게 하여 수용소 주위를 돌면서 발정념을 했다고 했다. 날씨가 매우 추워서 흰 거위털옷을 입었는데 저녁 늦게 나를 만났다.

2005년에 그녀는 나를 찾아와 함께 법공부, 교류, 발정념을 하여 우리 집 공간장을 청리했다. 나는 드디어 청성해졌다. 엄정성명을 발표하고 나의 아내는 그때부터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이후에 법공부를 하여 이것이 대법에서 맺은 성연이고 하세 전에 서로간의 부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몇 년 간 나도 이렇게 다른 동수를 대했다. 사부님의 설법반에 두 번 참가했던 노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되어 두 번 노동수용소에 갔다. 지금까지 아직도 청성하지 못하여 나는 늘 그를 찾아 교류하고 발정념하여 그의 공간장을 청리했으며 그가 꼭 깨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의 대법제자는 매 한명이 모두 귀중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희망이다. 우리는 모두 마땅히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3. 두려운 마음에서 나와 도처에 꽃을 피우다

2007년 밍후이왕에서 자료점을 곳곳에 꽃피게 하자는 교류 문장의 계발을 받아 나도 작은 꽃이 되려고 했다. 아주 빨리 외지 동수 즈강(志刚)의 도움을 받아 기기를 준비했다. 나는 IT산업에 종사하므로 컴퓨터, 프린터 설비 조작에 매우 능숙했고 자료를 만들어 주위 동수들이 진상하는 데 공급했다. 후에는 공급이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또 몇 개 가정 자료점을 건립했다. 처음에 기술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묻고 나는 대법제자들이 논단에 접속하여 답안을 찾아 실험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그들에게 알려주었는데 해결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갈수록 명백해졌다. 자료를 만드는 것도 심성수련의 과정이고, 기계가 고장이 생기면 심성에서 문제를 찾았으며, 갈수록 성숙되어 지금 이런 자료점은 기본상 모두 자립하여 평온하게 운영되고 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은 또한 두려운 마음을 버리는 과정이다. 시작할 때 아주 강한 의뢰심이 있었으며 무엇이든 손을 내밀어 동수들에게 달라고 했다. 어떤 때 몇 만 원어치의 기기와 소모품을 갑 동수가 사서 가져오면 다시 아래에 나누어 보냈다. 후에 갑 동수는 사악에게 박해받아 엄중한 혹형과 판결을 받았다. 처음에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매우 걱정했다. 자료점의 안전을 걱정했고 그가 박해를 감당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그리하여 바로 발정념을 하여 그를 가지했으며 밍후이왕에 문장을 올렸다. 그는 한 달 후에 감당하기 힘들어 정신이 흐리멍덩할 때 사악에게 끌려 원래의 자료점으로 갔다고 한다. 다행히 자료는 이미 옮겨져 손실이 없었다. 당시 우리는 비록 동일한 성시에 있지 않았지만 전화와 이메일 왕래가 있었으므로 나는 집의 자료도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우리 집은 당시 4대가 함께 살았는데 아이도 매우 어렸고 또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돌봐야 하므로 옮길 곳도 없었다.

나와 갑은 박해를 받을 때 알게 되었다. 대법에 대한 그의 견정함은 줄곤 나를 격려했고 나를 정법의 홍류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우리는 박해의 사악함을 체험했고 서로 도와 다시 수련의 길에서 잘 걷도록 했다.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이 있고 대법이 만들어 낸 생명임을 믿으므로 그가 다만 일시적으로 착각할 뿐이고 다시 어리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자료점을 옮기지 않고 자료점의 운영을 위하여 스스로 소모품 구입 경로를 열었다.

후에 나는 당시 생각이 너무 이기적이고, 일에 봉착하면 먼저 자신의 안위를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좀 더 일찍 의뢰심을 버릴 수 있었다면 갑 동수의 부담이 적어져서 법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이 발생하기 전 그는 매우 바빴으며 악경은 늘 그의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전화와 네트워크를 감시했으며, 늘 카드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위를 더 생각하지 않고 시종 정념으로 이런 박해를 부정했다. 사실 동수의 누락 뒤에 우리 정체의 누락이 있는 것이며 그가 속한 지역은 대면적으로 납치 박해를 당했고 손실이 심했다. 우리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잘하지 않고 사악에게 박해의 구실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주위의 가정자료점은 모두 스스로 소모품과 기술 문제를 해결하며 모르는 것은 몇 사람이 교류하고 모두 평상시에 수구에 주의했다. 어떤 가족 동수는 함께 거주하지 않으므로 가족이 자료점을 하고 있는 것을 몰랐다. 최근에 사악은 네트워크를 발광적으로 봉쇄하므로 모두 의지하는 마음을 꼭 버려야 하고 밍후이왕의 발판을 잘 이용하여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부 노동수도 컴퓨터를 사서 인터넷 접속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일종 물질이므로 착실히 수련에서 부단히 돌파하고 버려야 한다. 몇 년간 처음 시작하여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두려운 데로부터 차츰 주위의 동수와 접촉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탐색하던 데로부터 성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소모품을 구입할 때 이리 저리 며칠 생각하고 발을 내디디던 데로부터 아무 때나 마음대로 구입하는 데까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파일을 다운로드 하던 데로부터 자신이 기술을 습득하여 일상적으로 밍후이왕과 신당인의 큰 파일들을 대신 다운로드한다. 착실한 수련에서 법을 실증하는 길은 갈수록 광명으로 충만 되었다. 이전에 돌로 마음을 누르는 감각은 없어지고 온 몸은 홀가분하며 정신이 충만되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고, 빨리 제고하고 깨닫도록 계발하고 계시다는 것을 감수했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 꿈을 꾼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나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배우는 아이었다. 사부님께서 나의 손을 잡고 광명의 세계로 가고 있었다. 지금 법을 얻은 지 10년 남짓 되었는데, 법을 얻어 정진한 기쁨도 있고, 마난 중에서 멍하니 길을 잃은 적도 있고,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못할 때 속을 파내고 뼈에 사무치고, 미로에서 돌아온 후 환골탈퇴의 행복도 있었다. 나는 차츰 알게 되었다. 나는 당초의 ‘수련하겠다, 원만하겠다’는 염두를 개변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과 책임을 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약을 지키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수련에서 아주 많이 부족하고, 세속의 유혹 앞에서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중생구도에서 착한 마음과 지혜가 부족하여 늘 일을 잘하지 못했지만 금후 수련의 길을 잘 걸을 믿음이 있으며, 배로 이전의 손실을 만회하겠다.

다시 한 번 제자와 중생에 대한 자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왕 제 6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3/2122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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