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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길에 투지가 수요 된다

글/ 산둥(山東) 이랜(一莲)

【밍후이왕 2009년 11월 24일】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들 안녕하십니까!

인터넷 법회가 이미 제6기이다. 자신이 수련한 것이 사부님의 요구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고, 또 너무 평범하여 별로 쓸 것이 없기 때문에 지난 5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난 한 동안 쓸 것이 없다고 느꼈다.

최근 며칠간 인터넷에 접속하니 이 방면의 문장이 많았는데, 이 문장들을 보고 깊은 반성을 불러 일으켰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많은 재난 속에서 해방해 구하시었고 또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었으며,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게 하시며 나를 이끌어 꿈에도 그리던 수련의 길을 걷게 하셨고. 십 여 년의 시련과 마난의 박해 중에서도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로 대법의 길로 인도 하시어 정법노정을 바싹 따를 수 있었다. 걸음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이끌어서야 비로소 험난한 전진의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가시덤불을 헤치어 끊임없이 함정에서 매번 나를 끌어내 다시 살려 주셨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이미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어찌 감히 작은 것이라고 여겨(点点滴滴) 내가 겪고 걸어온 사연들을 써내지 않을 수 있으며, 내게 생명을 주신 사부님께 이를 회보하지 않을 수 있으며, 동수들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중생들을 찾고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마난 중에서 법을 얻다

1996년 여름휴가에 동북에 있는 오빠를 찾아갔는데, 큰 오빠가 사부님의 설법 오디오를 들으면서 나에게 “내가 먼저 듣고 좋으면 너도 배우라.” 고 했다. 나는 기공이란 말을 듣고 “기공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니 배우지 않겠어요.”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기회를 놓쳤다.

그해 겨울에 이르러 나의 한 학생이 “선생님, 당신의 이병은 또 치료하기 힘들고 사업도 힘들고 또한 아이도 돌봐야 하고 우리가 모두 졸업하여 일상적으로 도와드릴 수 없을 것이니 빨리 ‘파룬궁’ 을 배우세요.” 하고 말했다.

이때는 사부님께서 점화하시어 기연(機緣)을 다시 놓아 버릴 수만은 없다고 느꼈다. 비록 다른 가짜 기공들이 그동안 나를 저애하여 일찍 대법에 진입하지 못했으나, 나는 다행스럽게 사부님의 제자가 되는 행운을 얻어,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었다.

법을 얻은 후, 법 공부를 하면서 나는 이미 자신이 불치병 환자라는 것을 잊었다. 그때부터 무슨 담도결석, 낭종 등이 모두 없어졌다. 직장에서 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동료와 상급자들 모두가 “왜, 건강검진을 안하는가?” 하고 물어, 나는 “대법수련을 하여 신체에 병이 없다.”고 했더니, 모두들 진정으로 나를 위해 기뻐했다.

사당의 발광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거짓말과 모함을 듣지 않았다. 1999년 7월 22일 저녁 교장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시에서 상급 관리자인 영도(領導)가 왔으니 즉시 회의실로 오라.” 고 했다. 회의실에는 사람이 가득 했는데 조직부, 인사국, 상급주관부문의 각급 영도들이 모두 와 있었다. 교장은 내게, “내가 금방 위에서 내려온 분들에게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한 전후의 신체상황을 설명 했으니’ 당신이 다시 직접 말해보시오.” 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파룬궁이 나의 생명을 구했고, 직장의 약값을 절약한 것 등을 간략하게 말했다. 당시 나의 설명을 들은 후 그들은 “각 지역 단위에서 청취한 말이 모두 이러한데, 상급 기관에서는 왜, 파룬궁 수련생들을 진압하려는지 모르겠다.” 고 언급하고 “그럼 당신은 집에서 연마하라.” 고 말 했다.

십년의 정법수련에서 사악의 납치, 교도소 감금, 혹은 집에서 교란할 때마다 나는 자신의 경력으로 대법의 신성함을 실증했다.

2004년 『9평』이 발표된 후, 사당의 중앙당교(中央黨校)의 몇십 명의 당원들이 연이어 공개 탈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는 아직 삼퇴 성명이 없었다. 나는 사당이 중국인에 대해 조성한 재난인 소위 대약진의 인민공사. 문화대혁명, 6.4, 파룬궁 탄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중에서, 대법이 중생에게 가져온 행운을 보았는데, 모두 친히 목격하고 친히 격은 것이었다. 당시는 그 무슨 ‘보선(保先)’ 시점 단계라고 했는데, 바로 그 때 나는 밍후이왕에 ‘한 부의 특수한 엄정성명’ 을 내고, 중공사당에서 탈퇴함과 동시에 단위의 사당지부에 『퇴당성명』한 부를 통보했다.

이로 인해 비록 당시 영도의 불만을 자아냈고, 심지어 그들은 ‘보선회의’ 에서 질책을 당했지만(나는 다시는 그들의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오히려 일부 동료들은 뒤에서 모두들 “파룬궁은 다르다!” 고 했다.

• 직장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

나는 한 직업학교의 교원이다. 법을 얻은 후 부터의 나의 사업 환경은, 내가 학생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환경으로 되었다.

박해 전에는 학생들이 모두 “선생님은 파룬궁을 수련하여 신체가 좋아지고 정신이 좋아지고 학생을 더욱 잘 대한다.” 고 평 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에도 나는 법 공부를 멈춘 적이 없고 노력하여 자신을 법에 용해시켰다. 학과반에서 수업할 때는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게 하여 “쩐, 싼, 런”은 진정한 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하학 후에 학생은 나의 친구였고 늘 나를 찾아 사상 혹은 고초를 교류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좋은 기회였다.

학생들은 진상을 명백히 알고 “쩐, 싼, 런” 을 인정 했으며,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진상을 이야기 했고, 어떤 학생은 자신의 부모에게 삼퇴를 권했다. 어떤 학생은 주동적으로 나와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어떤 학생은 《전법륜》을 청하여 돌아가 가족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은 전 시 각 지방에서 왔기 때문에 진상을 하고 귀환 하여, 고향사람들이 대법의 자료를 접수하는 상황과 대법에 대한 인식을 서로 교류 하며 우리는 진상을 더욱 대상에 맞게 하도록 해 나갔다.

학생들은 한 기가 졸업 하면 또 한 기가 왔고, 상급반도 있고 보통반도 가르쳤는데 진상을 듣는가, 믿는가는, “사람마다 자각과 불 자각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있다.” 《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드린다》

2005년 내가 가르치는 두 개 상급반의 학생 70여 명이 전국 중점 직업대학의 수능시험에 참가하여 43명이 대학에 입학했다. 그중의 몇 명은 선생님과 동급생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본래 학습 성적이 보통 수준이어서 대학에 가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파룬궁의 진상을 아주 잘 믿었고, 심지어 그의 부모들도 믿었기에,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대학에 입학했다.

2007년 수능 시험 전, 나는 학급에서 마지막으로 진상을 했을 뿐만 아니라 진상소책자와 호신부를 주었다. 어떤 학생은 진상소책자의 ‘천안문 분신자살’ 진상을 보고, 사당의 거짓말과 그들에 대한 독해를 타파했다. 하루는 내가 학생들에게 한창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여학생이 “선생님,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병원 입원실에서 화상을 입은 환자를 보았는데, 옷을 입지 않았고 붕대로 감지도 않았어요.” 하고 말했다.

당연히 일시적으로 믿지 못한 것이지만, 이 학급의 한 학생은 진상에 대해 알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서, 진학문제는 자신이 알아서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전문학에도 합격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아쉽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자신이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주 유감스럽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하나의 생명을 구도하는 것마저 포기하시지 않는다. 개학하여 이 학생이 다시 복학하여 우선 나를 찾아 와서 “선생님, 나는 굴복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정말 믿습니다.” 고 했다. 그는 내가 가르치는 반에 배치되었고 또 내가 가르치는 과목의 과대표가 되었으며, 그는 자신이 친히 체험으로 나를 협조하여 새로운 학급학생들에게 진상을 했다.

그와 같은 학급에서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한 학생은 부친이 어느 중학교 교장이다. 이 학생은 비교적 내향적이어서 접촉하기가 어려웠다. 당초 나는 ‘반드시 개별적으로 그를 찾아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의 부친이 교장이고 또 사당의 당원이며, 중공사당의 독해가 깊다는 관념으로 주저하게 되는 마음이 있어 진상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말을 명철하게 하지 못한 결과, 이 학생은 수능시험에서 그만 낙방했던 것 이다. 새 학기가 되어 이학생도 역시 나의 학급에 복학 했는데, 이것은 정말 사부님께서 자비로 나에게 중생을 구도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함께 교류하고 진상을 명백히 한 후, 그는 그의 부친과 많은 친척들에게 진상을 이야기 했을 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 진상호신부를 주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의 부친이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선생과 학생들에게 파룬궁이 나쁘다는 사상을 주입하지 않겠다.” 고 말 했다고 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의 부친이 당시에 탈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고향의 동수들이 그를 계속 접촉 하는 기회가 돼서 그가 진정으로 구도 되기를 기대한다.

이 학급에 다시 복학한 한 학생은 나와 협조 하여 학급반원들에게 대법진상을 하고 있었으나, 평소 학습 성적이 일반적인 그는 보기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줄곧 “파룬따파 하오” 를 외우고 “쩐, 싼, 런” 을 믿으면서, 다른 사람이 다 보고 난 소책자들을 모두 잘 건사하여 자신의 책상위에 정리해 놓는 등 진상에 마음을 썼다. 그가 대학 입시에 성과를 내자, 식구들과 고향의 친척들은 물론이고 학급 반원들 모두가 의아스럽게 여겼다.

10년간의 정법수련에서 세가지일을 잘 하지 못했고, 그렇게 많은 동수들이 수천 만 명을 삼퇴 시켰다는 것을 보면 정말 나 자신이 유감 스러우며, 사부님께 속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천금 만금보다 더 귀중한 유한한 시간에 나는 더욱 분발하여 시간을 틀어쥐고 즉시 쫓아가, 세간에 올 때의 서약을 지키겠다.

• 협조 중에서 심성을 수련하다

사부님께서 가정 자료점을 곳곳에 꽃피우라고 하신 후, 우리는 소형의 작은 자료점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배치와 가호로 모르던 데로부터 알게 되었고, 4년 남짓한 운영으로 경험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마난 중에서 수련하고 굴곡 중에서 성숙되었으며 박해 중에서 법을 실증했고 중생을 구도했다. 이 과정에서 또 굴곡적이고 곤란한 노정을 경과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기술적인 문제를 외지동수를 청하여 배웠고, 소모품도 그들이 몇 번 제공해 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계속 할 수는 없는 불편함을 느껴, 독립적 운영을 하기로 했다. 우선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설비와 소모품을 구입하여 운영 했는데, 사부님의 인도로 매번 아주 순리로웠을 뿐만 아니라 구입한 설비도 매우 합당했다. 그 중에서, 오직 우리가 법에 서서 중생을 구도한다면 일체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두 잘 배치해 주시고, 신기한 일이 늘 그 중에서 나타나며, 우리로 하여금 신심이 배로 증가 되게 하고, 또 우리를 고무 격려하여 난 중에서 끈질길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자료 점을 독립운영 한 후, 우리 몇 명 동수들은 공동으로 담당했다. 그 중에 방금 걸어 나온 신 수련생도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세 가지일을 했으므로 바쁜 것이 자연적인 것이지만, 반드시 법 공부를 잘 하고, 오직 법 공부를 잘하는 기초 위에서야 비로소 대법의 일을 잘할 수 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극단으로 나가서는 안 되며, 반드시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대법의 일을 해야 한다.

이 원칙 하에서 우리는 될수록 동수들에게 수요 하는 것을 제공했고, 세인들이 듣기 좋아하고, 보고 즐길 수 있는 각종 진상자료를 만들었다. 동수들은 상호 협조를 잘했다. 사업하는 것 외에 나는 기본 상 전심을 투입했다. 모두들 아직 수련 중의 사람이기 때문에 협조 중에서 우선 여러 사람들이 각기 하는 일을 교류하였다. 어떤 동수는 잊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필요 했다. 어떤 때에는 시간성이 비교적 강한 것도 잊게 할 수 있다. 또 어떤 때에는 정체로 법을 실증하는 일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렇게 되어 방법을 강구하여 미봉하려 한다. 두 동수는 늘 이런 일이 출현했는데 반복적으로 제기하지만 늘 그대로이다. 이런 상황에 봉착하면 곧 조급성이 생기거나 심지어 정서에 매몰되었지만 후에 나는 자신으로부터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사부님께서는《전법륜》에서 “당신이 평시에 늘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과 하나의 상화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고 말씀하셨다.

‘동수의 중복되는 문제는 나의 무슨 마음을 겨냥한 것인가?’ 나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니, 수련 전에 나쁜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원수를 대하는 듯이 하면서 정의감이 가득하다고 여겼고, 불평하기를 즐겼다는 것이 생각났다. 수련 후 이런 것 들은 없어졌으나, 쟁투 심은 아직도 잠복해 있었다. 불만 정서의 배후가 바로 심리가 불평한 것이고 결국은 사심의 작간이었다. 만약 그들에게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긴급히 보충해야하는 시끄러움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깊이 캐 보고 너무도 놀랐다. ‘이것이 그래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총체적으로 모두 대법제자가 일을 함에 있어서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왜, 그걸 잊었는가.

자신의 심태가 차분하고 기본상에 놓은 후, 동수와 여러 번 교류하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동수는 “사실 모두 두려운 마음 때문이고, 대법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부족해서이다.” 고 말했다.

집착을 폭로한 후, 동수는 뚜렷하게 정진하기 시작했고 주동적으로 일을 했으며 자신이 협조하는 일도 열심히 했고 일을 함에 있어서 법의 기점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동수를 도와주는 작은 교류회에서 그는 “개인의 일과 대법의 일이 충돌될 때, 응당 대법의 일을 앞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직도 속인 중에서 수련함으로, 협조 혹은 자료제작에서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일부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

한 동수는 성미가 조급하고 사나워 어떤 때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그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화를 잘 내고 심지어 소리를 지른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부님의 법 “늘 자비롭고 선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끼치지 않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전법륜》말씀이 생각났기에 자신으로 하여금 냉정하게 혹은 소리를 낮추거나 평정된 후에 다시 교류할 수 있었다.

어떤 때 보기에는 일이 마무리 된 것 같았지만, 상대방이 사람의 관념으로 기타 다른 동수나 집 식구들에게 이야기 하면서 사실을 떠나 다른 뜻으로 가능하게 전달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자신에게 전해졌을 때 평형 되지 못하는 심리가 나타날 수 있고, ‘수련한 것이 왜 아직도 이런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을 수련 인이라고 생각하고 수련은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에 깨끗이 버리지 못하면 동수가 또 다시 그가 어떠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점차적으로 자신의 용량을 확대하여 완전히 내려놓을 때까지 수련해야 한다. 이 수련 과정은 참으로 마음을 도려내는 한 번 또 한 번의 세탁 과정이다.

몇 년의 법 공부와 마음 수련중의 마찰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와 배치로 지금 우리 이 작은 자료점은 동수를 구출하든 세가지일을 잘하여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든지 간에 동수들에게 사부님의 설법과 진상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동수지간에 잘 협조하고 협력하고 있다. 작년 올림픽 후 부터 많은 자료 점이 사악에게 파괴되고 동수가 납치되었다. 이 기간에 우리는 동수들을 구하는데 수요 되는 『밍후이 주간』을 제때에 만들었다. 어떤 동수는 주동적으로 나와서 가정 자료점을 건립했고, 우리는 될수록 그들을 도와주었다. 기술을 제고하고 설비를 구입하는 담당을 하면서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사부님의 정법노정의 요구에 대조해 보면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매우 많으므로 다시 한 번 진일보 하여 법 중에서 수정하고 원용할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4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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