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8일】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 하세요!
나는 녕하(寧夏) 회족자치구의 대법 제자이다. 1997년 말에 법을 얻었다.《전법륜》을 읽은 첫날부터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세웠다. 1998년 초, 나의 부모들도 대법과 인연을 맺어 수련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부친은 오래도록 착용해 왔던 높은 도수의 안경을 단번에 벗어버렸고, 10년이 넘게 복용해 왔던 약탕관과 고별을 하였으며, 모친도 10여 년 동안 고생해 오던 얼굴의 경련증세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우리 아들과 딸들도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1992년부터 여러 종류의 기공을 연마하면서, 점치기〔周易 등 유사한 부류〕를 배우는 등 소위 그런 전통적인 것들이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라 여기고 추앙하는 맘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氣)가 머리 정수리로 올라와 상기(上氣) 되면서 투통이 심하여 견디기 힘들게 돼 밤중에 병원 응급실 까지 갔었지만 , 그것 들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대법을 만나게 됐으며, 처음 《전법륜》을 보았을 때 서서 읽기 시작 했으나, 나도 모르게 책에 심취되어 계속 선채로 움직이지도 않고 모두 통독을 했던 것이다. 다 보고 난 후,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나는 매우 빨리 이전에 보던 운명을 점치는 책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으며, 그동안 내가 연마 해오던 가짜기공 관련 책과 물건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전법륜》을 다 읽은 후인 그날 밤 꿈속에서, 독사 한 마리가 점점 작아지고 점점 약해지더니 마지막에 완전히 없어지는 현상을 보았으며, 또 한 꿈에서는 금색의 큰 뱀이 내 시선을 벗어나 공중에서 없어 졌는데, 이때 하늘에서 장군처럼 분장을 한 몇 명의 천병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 금색 뱀을 체포한 후 압송하여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보았다.
사실 이 꿈을 꾸고 난 이후부터 나는 몇 년 간을 이런 독사에게 시달림을 당 하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게 됐다. 이전에는 거의 매일 밤 꿈속에서 뱀과 싸우며 고전 했었는데, 그것들과 싸우면 싸울수록 그것들은 더 커지고 어떤 때는 온통 산이 뱀으로 된 뱀 산으로 변해 그것들과 목숨 걸고 싸웠으나, 뱀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시달림 때문에 밤이 되면 잠자기도 무서웠다.
내가 처음 대법 수련을 시작했을 때는 오직《전법륜》책만 있었고 다른 서적과 녹음된 것이나, 녹화된 자료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매일 가부좌하고 책만 읽었다. 처음 가부좌를 할 때 한쪽 다리만 올리는 것도 힘들어 며칠의 시간이 걸렸으며, 다리를 한번 올리고 나면 온 몸에 땀이 났다. 십 여일 후 대략 반시간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올려놓은 다리가 미끌어져 내려오는 바람에 제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선 반 가부좌를 하다가 점차 온 가부좌로 고쳐 가는 요령으로 문제를 해결 했다. 그 결과 지금은 외형적으로 비대 했던 내 몸이 젊은 청년으로 변했고, 온 몸은 가볍고 맵시있게 변하여 바람이 일게 걷게 됐다.
1998년, 나는 정식으로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하였다. 첫날 가부좌 하고 45분 견지 하였는데, 연공음악이 끝날 때에 온몸에서 열이 났으며, 가부좌 중에 아름다운 계곡, 웅대한 현대식 도시와 그 안의 백색 건축물을 똑똑 하게 보았다. 자세히 보려할 때 금방 사라져서 아쉬운 감이 들었다. 나는 그때 천목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1998년에 우리 법 공부팀은, 아침에는 연공을 하고, 저녁에는 법공부와 연공을 병행 하는 수련을 견지(堅持) 하여 신체의 변화와 심성의 제고가 비약적이었다. 아침 연공은 4시경에 잠을 깨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에 깨기가 힘들었다. 잠을 깨야 할 시간이 되면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에 얼른 잠을 깨고 보면 아무도 없었다. 수련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우리 법 공부팀 중의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이렇다고 한다. 그렇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불러 깨워 주신 것이다.
1999년 7월 20일까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시기가 계속 이어졌다. 1999년 5월 경, 종교 사무국의 공작원이라고 자칭하는 두 청년이 나를 찾아와 파룬궁 정황을 조사 하였는데, 이때 나는 열정적으로 그들에게, 대법의 위대함과 나와 동수들의 수련 후 신체의 건강함, 도덕 표준이 제고 된 정황 등등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 후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대법을 추천 하면서 기회가 되면 꼭 대법 속으로 들어오라고 권유 하자, 당시 그들은 모두 탄복했다.
1999년 7월 21일, 각 직장 또는 지역별 단위에서 텔레비전을 보라고 요구 하였다. 나는 TV 보도를 보고 한눈에 무슨 의미인지 알게 돼 그 자리를 떠났다. 퇴근 후 이웃의 한 남자가 내게 말하기를, “ 텔레비젼에서 나왔소, 당신의 사부님은……,” 하기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모두 믿어요?” 하고 내가 반문하자, 그는 계속해서, “국가에서 말한 것을 무엇 때문에 믿지 않겠소?”라고 말하였다. 나는 강한 어조로, “강xx는, ‘지금 중국 사람은 모두 넉넉히 먹고 살만한 정도로 수평에 도달하였다’고 말하였는데, 당신 집은 그 수평에 도달하였소?”라고 되묻자,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세 아들은 직업도 없이 부모의 돈으로 겨우 생활하는 형편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마음속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녁에 연공하러 갈 수 없게 되니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러자 아내는 좋은 말로, “ 이런 일은 무서울 것이 없어요.” 라고 말하면서 나를 안위 시켰다.
7월22일, 우리지역에서 대법 수련을 하는 나를 포함 한 10여 명이 파출소로 불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지난 5월에 자칭 ‘종교국 공작원’ 이라고 말하며 나를 조사했던 바로 그를 보았으며 바로 그가, 자기는 ‘공안국 정보과요원’ 이라는 사실을 밝힌 후, 소위 시 정부의 5개 지도 팀을 대표하는 ‘사당 정법위서기’ 명의의 금지령을 낭독한 후 우리들에게 갖고 있는 서적들을 모두 제출 하도록 요구 했다. 그러자, 한 여자 동수가 《전법륜》책 한 권을 내 놓았을 뿐 그 외 우리들은 누구도 책이나 어떤 자료도 더 이상 내놓지 않았다. 책을 내놓은 여자 동수는 연공 장소의 책임자 였고, 우리 법 공부팀의 건립을 위해 심혈을 기우렸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동수다.
사당의 박해는 날이 갈수록 가중 됐으며, 악경들은 수시로 한밤중에도 문을 두드려 찾아오고 감시하여, 가족들 모두가 안정한 휴식을 할 수 없었다. 이 거대한 압력이 계속 되자, 나는 결국 연공을 중지하고 책 보는 것도 점점 적어졌다. 이렇게 되자 나의 신체는 아주 빨리 또다시 비대 해 졌다. 당시의 형세는 정말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이때 나는 많은 사색(思索)을 하면서, 역사상 연공하는 사람이 몇 세를 수련해도 꼭 수련성취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도 가능하게 일정한 시간적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젊은 몸이니 이 기회에 학교를 더 다녀 학력을 높이고, 사회적 직함을 높이고 난후, 그 다음에나
대법을 다시 보자‘ 고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나의 신체는 점점 말이 아니게 변했으며 시력도 내려갔다. 가족들은 약을 먹으라고 나를 압박 했다. 하늘과 땅을 뒤덮는 사당의 날조 속에서, 속인이 부단히 요언을 전하는 중에서, 나는 고통스러운 맘으로 생각 하기를, ‘약을 먹고 병 치료하는 비용을 어떻게 해결 하겠는가, 오늘의 중국에서 부대나 정부의 소수 농단 (壟斷. 이익 독점)기업의 사람들 외에 몇 사람이 능히 병원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병원에 들어갔다고 해도 불치병을 얻으면 병원에서 능히 너를 구할 수 있는가? 누가 우리의 「사부님과 대법」보다 더 위대하겠는가? 없다! 나는 약을 먹지 않고 금생의 생명으로 대법의 위대함을 실증 하겠다.’ 하는 데 도달 했고, 솔직하게 아내에게 나의 이런 결심을 전했다.
비록, 나는 피동적으로 사악의 박해를 견뎌냈지만 그 당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조건이 없어 나와 외지 동수와의 연계가 중단 되였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항상 꿈속에서 제게 점화 해 주셨는데, 어느 날 꿈에 하늘 높은 공중에 깎아 지른듯 높은 갈색 절벽이 있었는데 절벽이 너무 높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으며 오르기가 매우 힘들었다. 내가 절벽 꼭대기와 20여 미터 거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은 이미 절벽 정상까지 올라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순간 공포감에 놀라 깨여났다. ‘내가 일단 수련을 중지하게 되면 아래로 떨어져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음이 아닌가.’ 또 한 번은 2005년 초 경에 꿈을 꾸었는데,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다투어 빛나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며, 앞에는 평형으로 된 여러 개의 대문이 모두 열려있었고, 어느 문으로 달려가도 다 되었다. 그런데 문지기는 이미 문을 닫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대문을 지나면 그곳 하늘은 밝으나, 대문 반대쪽은 천지가 온통 검은 기에 뒤덮혀 있었다.
2006년 초, 드디어 나는 수련의 길로 되돌아와 사부님이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할 것을 결심하였다. 결심하고 난 다음 나는 어렴풋하게 대궁을 보게 됐는데 맑고 밝은 것이 많았으며 무수한 창문이 열려져있는 것을 보았다. 가능하게 그곳의 중생들은 희망의 빛을 보았을 것이다. 어느 날 가부좌 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모두 고대 중국인의 옷차림을 하였는데 모두가 나의 세계의 나의 중생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해 여름, 한번은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과거의 동수를 우연히 만나게 돼서 몇 마디의 인사말을 한 후 우리들은 각자의 정황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녀는 새로운 곳에서 동수들과 연결이 되어 진상자료가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격동된 어조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를 계기로 나의 수련의 길은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의해 자료를 전달받게 되니 늘 불편한 감을 느꼈다. 인터넷 망을 돌파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외지의 인터넷 기술이 있는 동수를 만나게 되었으나, 그는 내 희망과는 달리 내가 컴퓨터 기술을 습득할 만한 소양이 부족하다고 여겨 인터넷 망 돌파하는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았다.
2007년 초, 나는 높은 점수로 자격시험에 통과되어 나의 속인 학습생활은 결속 되였다. 그 무렵 외지의 어느 동수가 보내주는 CD 중에서 나는 의외로 인터넷을 돌파하는 소프트웨어를 얻게 되어 PC방에서 인터넷 망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여 오랜 기간 원했던《밍후이왕》을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우리 지역의 자료를 더는 외지에 의존 하지 않고, 동수들이 수집한 3퇴 명단, 전화번호, 우편함 등을 계속해서 대기원,밍후이왕에 보내줄 수 있었다. 또한 밍후이왕 에서 며칠간 컴퓨터 교습을 받은 후 나의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매우 신속하여 이미 속인 중에서도 대단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이래 우리 시와 외지 동수와의 교류는 더욱 많아졌다. 이들 동수들은 모두 고귀하고 화려한 사무직 근로자이든지, 옷차림이 소박한 농민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하는 말이 진지하고, 법리가 투철하여, 우리 시 지역의 매 동수들의 정진하는 마음을 격려해 주었다. 이처럼 동수들과의 연계가 많아지자, 삼 퇴 인원수가 늘어나 우리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있지만, 대법제자들이 사악에게 납치되고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는 동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은천시 서하구의 법원은 첫날 전자모니터로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현장 심리를 하겠다고 공표 하고도, 비공개 비밀로 대법제자들을 판결하여 소위 노동교양소란 곳으로 보내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제자들은 악경에게 납치 된 후 재물을 강요 당 하고 이를 거절할 경우 노동교양소로 잡혀 가게 되지만, 이 같은 사악에 굴 하지 않고 의연하게 세 가지 일을 하였다.
내 신변의 친인들은 모두 삼 퇴를 하였다. 나의 대부분 동문들은 정부 기관의 책임자이고 심지어 고급관원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몸에 밴 환경과 주관적인 의견이 강해 사당에 대한 중독이 비교적 심했지만, 그들은 나의 젊고 건강한 모습에 놀라워하며 나의 사부님에 대한 존중에 감복 하면서, 사당의 부패가 극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승인하였다. 나는 그들에 대한 구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쓰고 싶은 것은 많지만 늘 자신이 수련한 것이 너무 차하고, 정진하는 동수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몇 기의 법회교류 참가를 망설였다. 그러나 속담에, ‘못난 며느리도 시어머니 볼 날이 있다.’고 했는데, 하물며 만고의 신고(辛苦)를 하신 사부님에게, 제자로서 어찌 단 한 부의 답장이라도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답을 올린 것이 비록 부족 하더라도 공손하게 사부님에게 바쳐야 한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경의를 표시합니다!
밍후이왕 편집부의 동수들에게 문안을 드리고 해외의 모든 동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문장발표 : 2009년 11월 8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8/2115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