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닝샤(寧夏)대법제자 징윈(净雲,가명)
【밍후이왕 2009년 11월 8일】
사부님 안녕하세요!동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는 처음으로 대륙 교류법회에 투고하는데 주요하게는 자신이 수련한 것이 너무 부족하고 정법 중의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한 동수가 쓴 문장을 보고 법회에 투고하는 것은 마치 시험답안을 바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나도 대법제자이므로 대법 속에서 한 학생과 마찬가지인데 어찌 시험장에 가지 않을 수 있는가? 어찌 자신의 답안을 바치지 않겠는가? 비록 아주 부끄럽지만 그래도 사부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답안을 내고 자신의 수련노정과 체험을 회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법을 얻다
나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인데 나의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내가 태어나던 날, 나와 같은 병실의 한 임산부가 “이날 태어난 아이는 팔자가 사납다!”하면서 울었다고 했다. 모친은 아마도 마음이 불쾌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이유로 내가 태어나서 2개월도 되기 전에 나는 외할머니 집에 보내졌다. 한번은 자칫하면 내가 다른 집에 입양될 뻔했다. 이렇게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야 부모 집에 돌아 왔으니 상황이 어떠했을 지는 상상할 수 있다.
나의 천성은 우둔하고 솔직했는데, 부모의 엄한 눈빛으로 인해 나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면 나는 왕왕 10번에서 8번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형제자매는 모두 총명하여 그들이 나의 부모를 에워싸고 이것저것 이야기 할 때면 나는 늘 방안에서 혼자 여러 사람과 멀리하고 있었다. 내가 어느 형제자매와 모순이 생기면 모친은 수시로 시비를 가리지 않고 나를 욕하지 않으면 때렸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의 성격은 갈수록 소침하고 비관적이며 나약해졌다.
나의 유일한 취미라면 책을 보는 것인데 나는 중국, 외국의 민간 전설과 신화이야기를 다 보았고, 나는 책의 정절 속에 들어가면서 신선세계의 자비, 자상하고 미묘한 것을 바랐으며, 선량하고 진실하고 조용한 고대 인류의 그런 생활을 그렸다. 나는 장래에 아름답고 행복한 생활 속에서 성장할 것을 동경하고 있었지만 도리어 현실 중에서 당 문화에 사로잡히고 사람들이 물고 뜯고, 서로 의심하고 속이는 타격 분위기에 잡혀있었다. 나는 늘 자신에게 내가 사는 의의는 무엇인가? 나의 귀속은 어딘가? 하늘이 이렇게 큰데 나의 몸을 용납할 곳은 어딘가? 만 가정의 등불, 생명이 이렇게 많은데 나의 심령은 왜 이렇게 고독한가? 하루 세끼를 먹고, 옷차림이 산뜻하기 위함은 나의 생활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 내가 갈망하는 정신적인 추구를 왜 현실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가? 하고 자문하곤 했다.
후에 나는 많은 역사 방면의 책을 보았는데 물론 중공사당이 곡해한 것임을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 원래는 인간의 무슨 친정, 도리, 모두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었다. 관건시기에 이해관계만이 진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사당이 의식적으로 부어 넣고 사회의 변이된 사상 오염으로 나는 자신을 위장하여 사회에 ‘적합’하고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상해했다. 총체적으로 나는 자신이 총명함을 배웠다고 느꼈고, 갈수록 명리, 개인의 득실을 중히 여기고 흉금이 갈수록 협소하고 이기적이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동시에 나의 신체는 도리어 상황이 갈수록 나빠져 중년에 이르러 나는 이미 온 몸에 중병이었다. 자신의 신체를 위해 나는 기공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 공법 저 공법, 많은 공법을 배웠지만 신체는 좋아지지 않았다.
후에 직장의 한 동료가 나에게 『전법륜』한 권을 빌려주면서 그는 이 공법이 매우 좋으니 한번 보라고 했다. 그때 나의 신체는 아주 좋지 않았는데 왕왕 저녁 10시가 되면 잠을 잤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전법륜』을 보면서 12시가 되도록 피곤하지 않았고 이 책을 이렇게 잘 썼는가 느꼈는데 바로 이렇게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2. 선택
대법을 수련한 후, 신체는 아주 빨리 좋아졌고 다만 나의 사업상의 압력이 크고 집안 일이 힘들 뿐이었다. 공은 연마했지만 법 공부는 잘 장악하지 못한 채 책을 보았고, 내용도 알았다고 여기면 마음속으로 나는 지금 너무 바쁘니 후에 잘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기회에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는데 많은 동수들이 법을 외우는 것을 보고 나는 비교적 바쁘므로 적게 외우자 이렇게 되어 매일 시간을 내어 한 단락씩 『전법륜』을 외웠는데 한 번 다 외우지 못했는데 중공사당이 대법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그런 박해는 정말 하늘땅을 뒤덮었다. 공포분위기가 매 구석까지 덮었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정말 이렇게 좋은 공법, 사람에게 수신양성을 가르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잘못인가? 쩐, 싼, 런을 이야기 하는 것이 잘못인가?’ 알 수 없었다. 우리 이 세대는 역사의 운동을 경험했고 사당의 그 방법에 일찍이 질렸다. 정권 초기에도 절을 부수고 신앙을 박해하지 않았는가? 불법(佛法)은 사람보다 높은 것인데 사람이 나쁘다고 하면 나쁜 것인가? 매 번 운동을 일으킬 때는 먼저 박해하고 다시 평가하는 주기적인 순환이었다.
비록 사악한 중공의 통치하에 사람들은 늘 공포로 양심이 사라지고 좋고 나쁨이 구별되지 않고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지만 대법제자는 필경 득도한 수련인이고 모두 대법 중에서 이득을 보았고 대법의 박대함과 초상적임을 아는데 어찌 경솔하게 포기한단 말인가! 나와 많은 동수들은 사고를 통하고, 선택을 통해 어떤 사람은 천안문에 가서 세인에게 자신의 마음 속 말을 표현했고 어떤 사람은 집을 나와 세인들더러 진상을 알게 했다. 후에 정법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사부님의 설법을 보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더욱 알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요성과 긴박함을 알았다. 이렇게 되어 사부님의 인도와 교시로 나와 동수들은 함께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러 나왔다.
3. 중생 구도
박해 초기에 세인으로 하여금 대법의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 나와 동수들은 함께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였다. 나오는 과정은 정말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금방 시작하여 나올 때, 나는 너무 긴장하여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느낌으로 집의 물건을 모두 잘 건사하게 하고는 정념이 부족한 마음으로 집 문을 나서면 어디나 모두 사악의 눈이 나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고 기회를 노려 나를 박해하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십여 장의 전단지를 가지고 가서 하루 저녁이 걸려서야 다 배포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되어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부단히 법공부를 하고 심성을 제고함에 따라 두려운 마음이 적어지고, 심태도 점차적으로 평온해졌다. 그 시기는 사악이 발광적으로 박해하는 시기여서 많은 동수들이 납치되고, 자료점도 몇 차례 파괴되었다. 그리하여 자료가 항상 모자랐고 아주 오래 동안 외지에 가서 자료를 가져왔다. 후에 외지의 자료점도 파괴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중생구도는 사악이 박해하지 않을 때를 기다려 할 수는 없었다. 비록 박해가 엄중했지만 대법제자로서 중생구도는 우리의 책임이자 사명이다. 이 지역의 중생들은 우리 이 지역의 대법제자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어 미래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여러 차례의 교류를 통해 나와 기타 동수들은 상호 협조하여 새로운 자료점을 건립했다. 자료점의 운영과정은 부단히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동수들 중에서 많은 심성마찰이 나타났으며 이런 과정에서 우리도 점차적으로 성숙되었다. 후에 밍후이왕이 자료점을 곳곳에 건립할 것을 건의할 때. 우리는 일부 조건이 성숙된 동수를 도와 가정자료점을 건립하여 우리 집도 자연히 곳곳에 핀 꽃 중의 한 송이 작은 꽃이 되었고 정법 중에서 마땅히 해야 할 작용을 하고 있다.
7.20’ 중공 사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사부님께서는 많은 설법에서 우리에게 중생을 구도하고 진상을 명확히 하는 중요성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나는 진상하는 이 방면에서 줄곧 잘 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성격문제라고 여겼다. 박해 이전에 나는 많은 동수들이 대법에 온 후, 도처에서 진상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매우 부러웠지만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법시기이고 중생들이 도태될 위험에 직면했는데 지금도 잘하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나는 나가서 얼굴을 맞대고 진상했다. 그러나 나 자신도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내용도 설득력이 없다고 느꼈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시 일하려는 마음을 품고 자아를 실증하면서 진정 다른 사람을 위하지 못했으니 효과가 좋을 수 있었겠는가?
한 번은 한 가지 일이 나를 촉동했다. 우리 집 냉장고 문이 잘 닫히지 않았는데 후에 엄중하여 밀면 도리어 튕겨 나와 틈새가 생겼다. 나는 수련에는 우연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최근에 나와 집사람과의 일부 모순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했다. 후에 집사람이 원인을 찾았다. 우리 집의 이전의 냉장고는 자동적으로 서리를 제거하는 것인데 후에 바꾼 것은 자동적으로 서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 결과 얼음 층이 갈수록 두터워 지면서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았던 것이다. 얼음을 청리 하니 상황은 정상이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의 마음속에 이런 얼음과 같은 것이 모였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수련 전에 우리 부부관계는 늘 다투며 지내다 보니 갈수록 엄중해졌다. 대법수련을 한 후, 나는 점차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쁘든 지간에 나의 생활에 나타난 것은 모두 나와 인연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고 갚아야 한다. 또한 나의 수련의 길에서 나타난 모든 관과 난은 모두 내가 닦아내지 못한 마음과 관계되며, 그 마음이 없다면 그 난도 없다. 모두 내가 수련하고 제거해야할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럽든지 나는 모두 마땅히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이 마음을 닦아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점차적으로 용합되었다. 그러나 몇 번은 내가 느끼건대 그의 마성의 대폭발로 도리에 어긋나기도 했는데, 나는 당시 대법제자는 연약하여 기만당하기 쉬운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내가 한 것이 괜찮다고 여겨 그 며칠 참지 못했다. 그의 여러 가지 ‘악렬한 짓’에 대해, 내가 그를 포용해주었는데도 만약 그가 그냥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곧 어떠어떠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이미 잘못하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 빗대어 이 일을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아직도 용량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마음속에 얼음과 같은 물건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정을 아주 소중히 여겼는데 얻은 정이 모자라기 때문에 매우 갈망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고난과 굴곡을 겪으면서 많은 상해를 받아 원래 선량하고 따뜻한 마음이 점차적으로 냉정하게 되고 또 점차적으로 낙담하고, 냉담하고, 심지어 원한에 싸여 있었다. 더욱이 사당의 몇 십년간의 통치 중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중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런 상호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하며 사람을 착하게 대하는 ‘인의도덕’이 강력히 파괴되었고, 사당 문화 중의 그런 자신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을 경시하며, 생명을 초개처럼 여기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우습게 여기는 악렬한 습성이 세인들의 마음에 억지로 심어져 온 사회가 일종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친절함이 보이지 않고’, 사람을 해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물욕이 횡행하는 상태이다.
나 자신은 그 속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서 마음 속의 얼음 층이 점차적으로 두터워졌던 것이다. 이런 얼음과 같은 위사위아의 것에서 어찌 중생을 자비하는 마음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가족을 보더라도 사당의 10년 박해 중에서 나는 여러 번이나 납치되고, 감금되고 집도 몇 번 수색 당했으니 가족이 얼마나 큰 압력을 받았겠는가? 다시 말하면 사당이 통치하는 중국인은 핍박에 의해 세뇌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말을 하고 있고, 자신의 도덕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거짓말의 독해 중에서 도태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련한가! 그런데 나는 진상을 잘 하지 못하고 무슨 성격 문제인지 홍대한 자비를 수련해 내지 못하고 진정으로 중생을 위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득실만 고려했다. 사실 진상을 명확히 하려면 자아를 내려놓고 어떠한 관념도 없이 발정념으로 진상을 명백히 하는 것을 방애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 요소를 제거한다면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자연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이렇게 도리가 명백해진 후, 나는 발정념으로 내가 대법에 동화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저애하는 얼음덩이를 해체하고 이런 위사위아한 것과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자아를 응고시키는 그런 물질을 제거했다. 지금 나도 비교적 진상을 잘하고 있는데 더욱이 사회 저층의 사람들이 잘 접수하고 대다수가 삼퇴를 했다. 물론 법의 요구와 잘한 동수에 비하면 거리가 아직도 멀다. 나는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중에서 더욱 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4. 법을 외우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갈수록 법공부의 중요성을 느꼈다. 오직 법공부를 잘해야만 사람의 마음을 닦고,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으며 법을 실증하는 길을 잘 걸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법공부를 하는 태도가 아주 나빴는데 혼미하지 않으면 잡생각이 나서 머리가 청성하지 못했고 연공도 마찬가지고 발정념도 이러했다. 늘 수련에 저애하는 요소가 매우 큰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법리가 똑똑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여 관과 난중에서 많이 넘지 못했다. 어떤 때에는 비관하여 나는 아마도 업력이 크고, 오성이 차한 이런 사람이므로 어디까지 수련할 수 있으면 거기까지 수련하자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는가? 비록 나란 이 재료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인연이 있어 대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니 이것은 나의 생명에서 가장 큰 행운이고 가장 귀중한 기회이므로 천만가지 난이 있더라도 나는 꼭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전법륜』이 한 부의 천서를 외우기로 결심했다. 얼마나 많은 난이 있더라도 속인도 ‘공력이 깊으면 쇠몽둥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는 말이 있다. 이렇게 좋은 우주대법을 나는 꼭 마음속에 새기고 말겠다.
내가 법을 외우는 속도는 아주 느린데 늘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야 한 번 외운다. 그러나 외우는 과정은 정말 제고하는 과정이고 많은 것은 평시에 의식하지 못한 집착심을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법이 나를 점화하여 일깨워준다, 과거 많은 법리에 대해 똑똑하지 못했지만 법을 외우는 과정에 갑자기 명백해졌다. 줄곧 놓지 못하던 사람마음의 집착을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놓았고 담담하게 보았다. 점차적으로 나는 진도에 집착하지 않고 법을 외우는 과정을 대법에 동화되는 과정으로 삼으니 점차적으로 마음도 일부 안정되었다. 어떤 때에는 줄과 줄 사이에서 사부님이 우리를 구도하시느라 고생하신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제자에 대한 자비하신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은 늘 진감되고 있었고 자신이 정진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느꼈고 자신이 장기간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도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더욱이 사상 업력이 교란할 때, 앉아서 법을 외워도 잠이 오는데, 그럴 때에는 걷거나 긴 시간 가부좌 혹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떤 때, 갑갑하고 귀찮아지고 의식하지 못한 심성관을 넘어야 할 때에는 이렇게도 느린 감을 느낄 수 있고 외운 효과도 좋지 않은데 여러 가지 생각이 다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 “일체 번거로움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를 기억했다. 나는 끝까지 외워 대법에 동화되어 자신의 마음을 착실히 수련하겠다.
5. 자신의 마음을 착실히 수련하고 안을 향해 찾다.
우리 지역은 서북 변경지역에 속한다. 법을 얻은 시기가 기타 지역보다 좀 늦고 수련생도 적다. 제일 일찍 대법에 진입한 수련생은 대개 1996년 정도이고 대부분은 모두 박해받기 일 년 전에야 법을 얻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많은 수련생들이 수련하지 않았고 수련을 견지하는 동수들도 많이는 걸어 나오지 못했으며 진정으로 걸어 나온 동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 10년 동안의 박해 중에서 걸어 나온 많은 동수들은 납치되어 판결을 받고 노동교양을 했으며 또 일부 동수는 병업 중에서 생명을 빼앗겼다. 나도 일찍이 여러 번 박해를 당하여 적지 않는 굽은 길을 걸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인데 어떻게 해야 비로소 이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는가? 나는 일찍이 고통 속에서 방황한 적 있었고 소침한 적 있었으며 사색한 적도 있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으로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라고 알려주셨다. 이것은 수련하는 사람의 법보이다. 수련과정에서 우리는 비록 법을 실증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매일 법공부를 견지하고 연공과 발정념을 견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며 속인 속의 교란과 유혹을 막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한다는 것이 가장 쉽지 않다. 그러므로 많은 동수들이 찾을 줄 모르겠다. 찾아도 찾지 못하겠다고 한다. 정말로 법리가 명확하지 못하여 사람의 마음으로 찾았기에 찾을 수 없고,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없기에 찾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집착심은 내가 이해하건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또 “내가 당초에 당신들을 지옥으로부터 건져온 것과 같다.”(《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런 기초위에서 수련을 시작했기에, 낡은 사상관념, 업력, 각종 집착, 욕망, 명리정 이런 것들이 우리의 온 공간장에 충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의 그것들은 산 것이고,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 우리가 싫다고 하여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사람에게 나쁜 염두가 생겨 나쁜 일을 불러온 것이므로 무수한 차수로 가강되어 형성된 ‘기후(氣候)’ 이고 다른 공간의 일종 검은 물질인 것이다. 심지어 당신의 일거일동, 일사일념 중에서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고 그것들이 일종 자동적인 기제를 형성하여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양식으로 사고하며, “이익을 추구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는” 위사위아의 것을 수호하여 상해를 받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어떤 때에 한 가지 일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대뇌가 아주 빨리 움직이는 것을 의식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저렇게 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무엇을 잃는가? 어떤 해로움이 있는가?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얻은 후에는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고, 얻으면 스스로 즐거워하고 잃으면 불평을 부린다. 마치 사부님의 말씀처럼 “파리대가리만한 작은 이익을 위하여 기뻐하고 걱정하며 고달프게 다투거니”(《정진요지》〈깨달음(悟)〉)심지어 며칠이 지나도록 되돌리지 못한다. 이런 생각은 절대 사람의 선천적인 본성이 아니라 그런 장기간 자양한 나쁜 것이기에 당신이 그것을 묵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자양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 본성의 진정한 생각을 가려 막아서다가 관건적인 시각에 그것은 외부에서 사악한 요소를 불러 당신을 박해할 수도 있다. 그것은 동일한 것으로 목적은 우리를 수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수련인이 수련 원만하기 힘든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대법의 지도가 있고 사부님의 가호가 있는 대법제자이므로 우리가 수련을 시작하는 그 날부터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가 능히 수련할 수 있는 일체 물건 즉 파룬과 기제 등을 주셨고 우리의 몸을 청리하고 표면 신체의 업력을 없애주어 우리로 하여금 능히 수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고하는 과정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일체를 주신다. 안으로 찾는 우선적인 조건은 바로 법공부를 많이 해야만 비로소 무엇이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고, 무엇이 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무엇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사일념을 법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다. 이 우주 중에는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가는 자신이 말한 대로 한다는 이치가 있어 일체 강압적으로 가한 것은 이 우주의 이치를 위반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한 정법 구결을 운용할 때, 그것들을 깨끗이 청리할 수 있는데, 관건은 우리 자신이 잘하여 사상 중에서 그런 나쁜 물건을 제거하고 행동 중에서 바르게 걷는 것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내가 이해하건대 우리가 안으로 수련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우리 생활의 매 시각에 관통시켜 자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 법공부, 연공, 발정념은 수련이므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해야 한다. 대법의 일을 할 때, 세인에게 진상하는 것도 수련이므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해야 한다. 동수와 협력하고 속인과 서로 어울리는 것도 수련이므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해야 한다. 신체가 불편하고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 고독하고 외로울 때에도 수련이므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시시각각 자신의 마음을 장악하고 시시각각 법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하는 이 과정에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갈수록 순정하고, 자비롭고, 자상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 자신의 공간장에 쩐, 싼, 런 의 불광이 비칠 때, 일체 위사위아의 것이 대법수련자의 정념에 의해 해체될 것이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의 일체 장애와 일체 난관을 우리가 꼭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쓰고도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십여 년 동안의 수련에서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고 감수도 너무나 많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써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감격과 은혜를 표현할 수 없다. 우리 대법제자 모두 사부님의 은혜가 너무 넓어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작은 풀이 태양의 빛에 보담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오직 착실히 수련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에 맞는 것이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8일
문장분류: 제6기 대륙인터넷법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8/2116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