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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존의 손을 움켜 잡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1월 13일】

1. 법을 얻어 미혹을 타파

1996년 여름, 파룬따파의 복음이 우리 산골로 전파되어 왔다. 우리 마을 보도원은 평소에 우리 모친과 관계가 좋아 모친더러 수련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나이가 어렸고 모친은 나를 데리고 보도원 집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과 공법 녹화테이프를 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친은 농사일에 바빴고 사람 중의 집착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아 곧 수련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비록 글자를 읽지 못할 때였지만 내심으로 은근히 이 법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임을 알고 있었고 이때에 법을 얻는 기연을 심었다.

시간은 나는 듯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2004년이 되었다. 나는 막 17살이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었다. 10월 어느 날 오후 이웃집 아주머니가 흥분하여 모친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작년부터 대법을 수련한 후 이전에 그녀를 곤란케 했던 일부 부체 등 난잡한 것들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며 아울러 일부 대법진상을 말해주며 모친을 움직여 다시 수련하라고 했다.

나는 옆에서 듣고 매혹되었다. 내심 이 법에 대해 또 호기심이 생겼다. 저녁에 아주머니는 모친을 불러 함께 마을의 법공부 팀에 가서 법을 듣자고 했고 나도 호기심을 품고 법공부 하는 곳에 따라갔다. 그때 마침 사부님의 신경문 《역시 방할 하노라》가 발표되었다. 어느 노동수가 나더러 한번 읽으라고 제의했는데 기억이 가장 깊은 것은 내가 경문을 읽는 전반 과정 중에 신체가 끊임없이 벌벌 떨렸으며 태어난 이래 있어본 적이 없던 느낌이었는데 매우 격동적이었고 흥분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나의 명백한 일면이 내가 대법에 걸어 들어온 것에 격동한 것이리라.

며칠간의 법공부를 통하여 막힌 것이 문득 깨졌고 내심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도리는 내가 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임을 느꼈다. 실과 득의 관계라든가 사람이 어디서 온 것인가 하는 등 모두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어서 나는 노수련생에게 사부님의 초기 설법과 일부 후기 설법을 빌려 읽었다. 매일 희열에 빠져 있었고 《정진요지-성자》의 “법리에 해박하여 수수께끼를 풀거니”를 읽는 즐거운 느낌은 진수제자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것임을 알았고 이때부터 내가 어려서 무지로 잘못하여 8년 전 수련의 기회를 지나쳐 버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오늘날 사부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한 번 대문을 열어놓으셨다. 그러나 모친은 오히려 대법에 걸어 들어올 생각이 없었고 진정으로 법공부하지 않았으며 부친의 반대에 포기했다.

또한 처음에 내가 대법을 수련하도록 지지하던 데서부터 수련을 가로막는 데로 변했는데 그들의 구실은 대법이 박해를 받고 있으니 나 역시 박해를 받을까 두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수련할 결심을 확고히 했으며 그들에게 도리를 말해주었다. 그때 나의 심태는 불안정하고 사람의 정과 조급함이 섞여 있어서 효과는 좋지 못했다. 그들은 비록 대법이 좋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런 정세에서 모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실은 사당의 박해에 대해 나는 그것을 무겁게 보지 않았고 대법에 대해 믿음이 충분했다. 당시 나는 진상이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시골의 큰 이모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큰 이모 역시 사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더러 수련하지 말라고 권했다. 또 내가 진상을 말하는 일을 나의 부모에게 알렸다. 이번에 그들은 더욱 화를 냈다. 내가 자신들의 체면을 잃게 했다며 내가 동수들과 만나는 것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법공부하는 것을 보면 크게 욕을 했다. 밤에 내가 연공하면 그들은 내 방문을 발로 찼다.

만약 이전에 당신들이 이렇게 대했다면 외아들로서 나는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며 반드시 울컥하여 집을 나가 며칠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 매우 평정하며 사부님이 말씀하신 ‘진선인’의 인을 기억하고 있다. 현재 회상하면 당시 구세력의 요소가 부모를 이용하여 수련을 저지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들은 한 사람이 대법으로 걸어들어 오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가. 그러나 어떠한 천변만화도 인생의 의의를 아는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려는 견정한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그때 막 법을 얻어 법리를 많이 알지 못했다. 단지 그 가장 어려운 동안에 나는 바로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굳건한 마음에 의지하여 지나왔다.

2. 손을 잡고 함께 걷다

부모님은 나의 움직일 수 없는 결심을 보고 대법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진상을 말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면서 밖에 나가는 것을 감시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기 힘들다고 보고 이 환경을 떠나려고 했으며 속으로 사부님께 호소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매우 빨리 어느 대도시 친척집에 가서 일할 기회를 안배해주셨다. 이렇게 나는 이 생소한 도시에 와서 음식점 점원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음식점은 일하는 시간이 길어 매일 13,4시간 일을 하고 또 단체로 숙소에 있으므로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이 잠이 든 후 《전법륜》을 보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긴장 상태에서 일을 하고 동수를 접촉하지 못했으므로 점점 거의 포기하듯이 되었다. 《전법륜》도 다락 높은 곳에 놓였고 속인과 섞여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심성관에서 자기를 연공인으로 여기지 못했으며 사람들과 다투기 시작했다. 내심 그저 대법이 좋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조금 깔려 있었다. 이렇게 거의 5달을 지냈다. 자비로운 사부님은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한번은 꿈속에 사몽비몽간에 머릿속에 한마디가 떠올랐다. “참기 어려워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워도 행할 수 있노라.”(《전법륜》)

내가 중얼거리며 깨어났을 때 아랫배에 파룬이 매우 빨리 도는 것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내 주위에 있음을 느꼈다. 또 늘 이렇게 지내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이때 고향의 동수가 말해주었다. 어느 고향 동수도 나와 같은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나는 의연히 사직하고 전전하며 이 동수를 찾아갔다. 나이에 따라 나는 그녀를 큰고모라고 불렀다. 큰 고모의 가정환경은 매우 좋아서 남편은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대법을 지지하며 동수들에 대해서도 열정적이었다. 나는 잠시 큰 고모집에 머물렀다. 고모는 일찍이 고향의 보도원이었다.

수련을 잘해서 행동거지도 나에게 많은 계발을 주었고 수련에 법리상 이끌어주었다. 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더욱 보람차게 느낀 것은 고모의 집에 사부님의 설법이 완전히 있어 나는 굶주린 듯이 체계적으로 사부님의 초기설법과 후기 설법을 몇 번이나 공부한 것이었다. 이 덕분에 수련상태를 바로 잡았으며 동시에 “정법”, “구세력”, “정법시기 대법제자” 등에 대해 뚜렷한 개념이 있게 되었다.

고모집에 머무는 2년간 나의 수련에는 비약이 있었고 법공부와 수련에 견실한 기초를 닦았다. 공동생활 하는 그 기간 우리는 비기고 배우며 비기며 수련하며 공동정진했다. 당연히 이따금씩 심성 마찰도 있는데 우리는 모순이 있을 때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는 습관을 형성했고 연후에 다시 이 일에 대해 함께 교류하여 피차간에 세대차이가 없었다. 또 모두 진정 남을 이해하려 했고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 했다. 모순은 곧 연기처럼 사라졌다.

2005년 겨울 나는 처음으로 고모를 따라 진상 자료를 나누어주러 갔다. 당시 긴장하여 다리가 떨렸으며 내심에 끊임없이 정법구결을 외웠다. 내가 순조롭게 집에 돌아왔을 때 알고 보니 진상자료를 돌리는 일이 상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몇 부에서 수십 부, 백 부 이상 나가서 나누어주었다. 동시에 경험을 총결해보면 처음 시작할 때 정신이 안절부절 못하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진정되기 까지 매번 모두 사존의 보호 하에 있었으며 놀람은 있으나 위험은 없이 돌아왔다. 2006년 우리 도시의 신문에 초등, 중학생이 유혹 하에 쓴 대법을 공격하는 글이 실렸다.

이 일이 명혜망에 폭로된 후 나와 고모는 이 일에 대해 교류했으며 우리 지역에 초중고교생에 대한 구도에 힘이 크지 않으며 그곳이 진상의 공백임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관련 정보를 수집했고 편지의 방식으로 그곳 초중고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자료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부치는 대상이 생소한 사람이기 때문에 확실한 피드백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써서 잘 쓰기만 하면 중생 구도에 유리하다고 굳건히 믿었고 하였다. 결과에 대해서는 일체가 사부님의 장악중에 있고, 인연 있는 사람이 자연히 구도를 얻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전후로 거의 백통의 편지를 보냈다.

3. 만개한 작은 꽃

2007년 여름 직장의 수입은 비교적 좋았다. 그래서 직장 부근에 집을 하나 빌려 고모집에서 이사 했다. 고모집과 비교적 멀었기 때문에 매주 돌아가 주간을 가져올 때 한번 정도 함께 법공부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 곧 해이해졌기 때문에 집 부근에 법공부 팀을 찾고 싶었다. 또 우리에게 자료를 공급하는 자료점은 많은 지역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충분히 내보내지 못했다. 속으로 급해졌고 중생구도에 매우 긴박함을 느껴 만약 자기가 역시 자료점을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자급자족만 해도 동수를 대신해 좀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매번 직장에 가는 김에 전자랜드에 가서 기계를 보았는데 나는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이라 컴퓨터, 프린터는 내 반년의 저축이 넘었고 그렇게 큰돈을 쓸 수는 없어서 바라보기만 했다. 사부님께서 자료점 일을 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보시고 얼마 안 되어 그 도시의 어느 아주머니를 만나도록 안배하셨다. 그녀는 내 생각을 알고 나서는 부근의 협조인을 연결시켜주었다. 몇 번 접촉하여 교류한 후 협조인은 빌려온 노트북 컴퓨터와 참신한 프린터를 보내주었다.

꿈에도 그리던 법기가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심 사부님에 대한 감격은 말할 수 없었고 “수련은 자신에데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는 법리를 깊이 느꼈다. 보기에 매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일들이 대법제자가 마음을 법에 두고 출발점이 바르기만 하면 사부님의 안배로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이어서 협조인은 동수 갑을 배치하여 기술을 가르쳐 주었고 동수 갑과 법공부 팀을 이루었고 이 때문에 그곳의 일부 동수를 알게 되어 하나의 정체로 녹아들었다. 자기의 수련에 또 한단계 올라간 것을 느꼈고 부담하는 책임도 더 무거워 짐을 느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은 확실히 수련을 착실히 하는 과정이었다. 진정으로 하는 과정 중에 처음 시작할 때의 과시심,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요소를 재빨리 버리게 되었고 자료일을 하는 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님을 느꼈다. 다만 대법 중의 한 입자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역할과 책임을 할 뿐이었다. 중생 구도는 전체 대법제자가 정체로 배합하여 한 결과임을 심각하게 느꼈다. 또 위덕은 어느 하나의 마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명혜 동수의 편집에서 대륙 동수의 것을 다운받아 인쇄하고 다시 매 동수가 협조하여 나누어주는데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도 없으면 중생구도의 작용을 할 수 없으니 어느 한 마디도 고립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 동수가 오늘 하는 법을 실증하는 일은 모두 정체로 원용되며 자기를 수련하는 것이다.

4. 사악을 철저히 제거

2007년 섣달, 내가 사는 도시와 주변에서 대규모로 대법제자를 체포하고 박해하는 악성 사건이 발생했다. 손실은 참담했다. 한동안 동수들은 사람마다 위험을 느껴 중생구도에 많은 장애가 있었다. 나를 도와 자료점을 만든 협조인 역시 체포되었다. 아마 내가 그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그녀의 처지에 대해 매우 조급했다. 물론 이는 사람의 정으로서 알던 모르던 마땅히 구분하지 않고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여야 한다. 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바로 전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이며 절대 승인해서는 안 된다.

동수가 박해로 시달리는 소식들이 명혜망에 폭로되는 것을 보기만 할 뿐 실제로 구하려는 행동은 지지부진하며 나아가지 않았다. 동수 갑을 찾아가 교류하자 그녀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고 표현이 좀 무감각한 것 같았다. 사람의 면에서 말하면 협조인과 그녀는 매우 가까워 그녀의 압력이 매우 컸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을 실천해야 함을 느꼈다.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어야하며 사악의 박해를 그곳 민중에게 알리고 이로부터 중생을 구도하는 법리를 실천해야 함을 느꼈다. 갑 동수의 집을 나와 생각했다. 그녀는 이왕 압력을 느껴 같이 하기가 어려우니 그럼 나 혼자라도 하자. 적어도 나는 박해에 참여한 파출소에 진상을 말하여 선을 권하는 편지를 쓸 수 있다. 사악을 떨게 하고 동수의 박해를 경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실제상 쓰는 중에 사악의 교란이 매우 컸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하면 어떻게 써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명혜망에서 부동한 계층을 겨냥해 선을 권하는 글을 참조하자 대체로 마음속에 윤곽이 떠올랐다. 연후에 최근에 보도된 동수가 박해받은 정황을 명혜망에서 복제하여 짜깁기하여 고치기로 했다.

쓰는 과정 중에 문장을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기의 능력에 한계를 느꼈고 또 그중에 조급하고 두렵고 문득 이런 문장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등의 생각이 들었으며 이런 견정하지 못한 생각이 들면 들수록 사악은 틈을 타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글을 거의 반쯤 완성할 무렵 어느 키를 잘못 눌렀는지 모르게 힘들게 가까스로 정리한 문장이 순간적으로 다 지워져 버렸다.

당시 나는 기운이 다 빠져버렸고 두려운 마음,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마음이 올라왔으며 속으로, 됐다, 좀 능력 있는 동수가 하기를 기다리자 하며 나는 마음만 있고 힘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며 위안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끄고 번거로움을 내려놓고 시장에 물건을 사러나갔다. 물건을 사서 돌아온 후 머리가 좀 맑아졌고 박해받는 동수를 생각하고 자기가 이전에 지불한 대가를 생각해보니 이렇게 포기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컴퓨터를 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였는데 이미 처음 시작할 때처럼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다. 이전의 기억과 사부님의 가지로 마침내 시민과 경찰을 향해 선을 호소하는 편지를 완성했다.

편지가 완성되자 나는 편집을 할 줄 모르므로 동수 갑에게 주어 고치고 편집을 해달라고 했다. 이때 동수가 박해받은 지 이미 일주일 이상이 되었고 음력 12월 23일에 가까운 날이었으므로 시간이 매우 긴박했다. 그래서 조급하게 갑 동수에게 편집을 완성해달라고 했다. 아마 나의 조급심 때문인지 갑 동수를 재촉해도 그녀는 시간의 긴박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이 일을 잊어버렸다. 이틀이 지나 내가 급히 갑 동수에게 뛰어 가자 비로소 그녀가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않고 원고를 가지고 나갔다.

가는 도중에 줄곧 속으로 갑 동수에게 매우 불만이었으며 그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내 시간을 그르친 것을 원망했다. 집에 돌아간 후에야 이런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는데 마땅히 자기의 느낌에 집착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악이 나에게 간격을 두고 시간을 빼앗고 있으니 나는 빨리 조판을 한번 시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에서 한 번씩 시험삼아 해보았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내가 어느 키를 눌렀는지도 모르게 컴퓨터에서 원고가 기적같이 내가 원하던 조판으로 성공적으로 나왔다.

나는 또 한번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위대함을 견증했고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조판에 성공한 후 나는 얼른 인쇄하여 우리시의 시장, 사법부와 동수를 체포한 파출소에 부쳤으며 그들이 이러한 박해 폭로 편지가 우리시 전체에 재빨리 다 전달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여 그들이 악을 그치도록 하였다. 그 다음에 나는 고모와 협조하여 잡힌 동수집 부근에 거의 일천 여장을 뿌렸다. 줄곧 음력 29일 되어 내가 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설날이 되어서야 일단락을 고했다.

이 과정 중 비록 협력한 동수는 나와 고모뿐이며 진상을 알린 면적도 크지 않았지만, 당연히 다른 동수도 일부 일을 했으며 역시 대단했다. 이 과정 중에 나는 그 지역의 사악을 폭로하고 그곳의 사례를 보도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방법을 깊이 체험했다. 나는 자료를 뿌리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속인이 빙그레 웃으며 한편으로 보면서 걷는 것을 보며 내가 한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았다. 그렇다, 그곳의 진상 소식을 보도하고 사악을 폭로하여 사람들로 하여 대법의 소식이 더욱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면 사람들은 의논을 할 것이며 이로부터 더욱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다.

5. 심각한 교훈

12월 29일 고향에 돌아온 후 그믐이 지나자 고열이 나고 온몸의 뼈가 다 아프고 한기가 났다. 처음에는 나는 소업이겠지 하며 곧 지나갈 것이라고 여겼으나 갈수록 엄중해 졌고 나는 이것이 사악의 박해임을 알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속으로 급해졌다. 마침 설날 친척들의 방문을 받았을 때 내가 “병”으로 쓰러져 있으면 어떻게 진상을 말하고 대법을 실증하는가? 안으로 찾아보니 이 기간 정진했다고 느꼈으며 또 지난해 그 기간 동안 또 “굉장했다”고 칠 수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속으로 사부님의 점오를 구해보았다. 바로 이때 부친이 내가 보는 앞에서 모친에게 말을 하는데 돈을 가져와서 어느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다.

이것이 단번에 나를 깨우쳐 주었다. 내가 처음 부모에게 준 2천 위안의 돈속에는 동수가 나에게 자료를 만들라고 준 5백 위안이 들어 있었다. 잠시 쓰지 않았기에 고향에 돌아갈 때 사람마음을 움직였고 우선 잠시 빌려 부모에게 드리기로 하여 내가 대법을 수련하며 집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고(사실 이것이 모두 정이며 사심이다) 월급이 나오면 갚아 주겠다. 이 얼마나 그럴듯한 이유인가. 당시 조마조마하며 사부님 법상 앞에서 가르침을 청했는데 동수의 나에 대한 신임을 잊어버렸고 나의 신분을 잊어버렸다.

사실 속인의 법률에서도 공금 유용죄가 있는데 하물며 이는 동수가 사람을 구하라고 아껴 모은 돈을 유용한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큰 누락인가! 내가 이를 깨닫자 이를 천리 밖의 고모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폭로했다.(당연히 암호를 사용했다) 또한 동수 아주머니에게 이 일을 알려 죄업을 경감하고 가능한 한 빨리 자기가 정과 사심으로 인해 초래한 사악의 박해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내가 7일 휴가를 끝내고 직장에 돌아오고 나서야 겨우 조금 나아졌으며 내가 돈을 다 보상하자 걸을 수 있었다.

이 일은 내게 심각한 교훈을 주었고 수련은 조금이라도 모호하게 할 수 없으며 더욱이 수련인으로서 때때로 자기의 행위가 법의 표준에 부합되는지 헤아려야 하며 적어도 좋은 사람의 표준에 맞는지 가늠해보아야 한다. 내 스스로 이 사건을 파보는 것은 속인의 정을 움직이면 비록 속인 중에서 수련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을 원용함을 잘못이 없지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교훈이 심각했으므로 써내어 동수들에게 계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6. 맺는 말

약 5년에 이르는 나의 수련 과정을 돌아보면 즐거운 일도 있고 눈물 나는 일도 있다. 심성을 제고한 후 환히 깨달은 적도 있었고 오성이 너무 차하여 휘청거린 적도 있으며 더욱 많은 경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무한한 감은을 느꼈으며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가 아니라면 오늘 대법제자의 일체가 없었을 것이다. 수련의 시작에서 성숙에 이르기까지, 세상물정 모르던 소년에서 오늘의 세상의 부침을 이미 목격하고 꿈쩍도 않는 청년에 이르기까지 짧은 오년간 사부님이 내 손을 잡아 제자를 이끌어 오신 것을 절실히 느낀다. 속인 중에 “황금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정말 나의 이 몇 년이 황금기였음을 느끼며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정말 후회 없는 청춘이며 대법수련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이 이 위대한 시대를 따라잡을 수 있는 행운과 이런 성스러운 인연을 맺은 것을 더욱 축하할 만한 일이다.

한 속인으로부터 수련인이 되기까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위대한 책임을 부담하려면 정법 최후 시각에 오로지 정진, 또 정진밖에 없다.

《사존의 손》이라는 이 가곡을 들으면 거의 모든 동수는 감동으로 눈물을 흘린다. 이 노래의 가사 중 몇 구절을 들어 글을 끝맺기로 한다.

“사존님, 사존님, 저는 빨리 당신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정념정행으로 당신께서 제게 준 모든 것을 갚고 싶습니다.

사존님, 사존님, 저는 빨리 당신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당신을 따라 줄곧 앞으로 가렵니다. 줄곧 앞으로 가렵니다.”

(명혜망 제6회 대륙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13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제6회인터넷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3/2122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