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해질 무렵이라 늦다고 하지 마라, 저녁노을이 하늘 가득히 물들인다

글/ 중국 운남(云南) 대법제자 봉하(凤霞)

【명혜망2009년 11월 6일】나는 30십 여세 때 심장 조기 박동, 고질적인 변비, 각종부상으로 허리 통증 등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나는 30여세였음에도 60세로 보였다. 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기공을 배웠지만 효과가 없었다. 나를 아는 주변사람 모두 내 모양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

나는 고질적인 병을 앓다보니 성격이 거칠고 급해 늘 화를 냈다. 그리하여 집에서 모순이 끊지 않았고, 직장에는 늘 병가를 내 상사도 나를 무시했고, 동료와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부모를 일찍 여의어 친정의 따뜻함을 잃었고,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룬 후에도 화목하지 못한데다 사업까지 제대로 되지 않아, 온 몸이 온통 병으로 치유되지 않아 죽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이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살아갈 희망을 잃었을 것이다.

1,홍진 꿈속에서 깨어나 대법에 돌아오다

1998년 41살 때, 녹내장을 의심한 의사가 입원 치료를 건의했다. 나는 20여 일간 입원치료를 했지만 호전되기는커녕 도리어 악화돼, 바람이 불기만 하면 눈에 모래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실명될까 두려워 진정한 공법을 찾아 병과 심령의 고통을 치료하려고 했다.

그 때 이전의 동료가 파룬궁을 소개했다. 그 당시 기타 기공을 연마하던 나는 동료의 말을 접수하지 않았다. 반달이 지난 후, 동료가 또 다시 와서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권했다. 그는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정말 아쉽다!”고 했다. 동료의 말을 믿고 뒷날 그를 따라 부근 연공장에 갔더니 두 명의 동수가 아주 성심껏 연공 동작을 가르쳐 주었고, 단체 법공부 장소도 알려 주었다. 당시 나에게 거리 이름만 알려주고 문패는 알려 주지 않았지만 나는 사부님의 이끄시는 대로 아주 순리롭게 법공부 지점을 찾았다. 거기에 도착하자 동수들은 내가 다른 동수를 따라온 줄 알았지만, 내가 스스로 찾아 온 것을 알고는 모두 아주 놀라워하면서 나와 대법이 아주 큰 연분이 있다고 감탄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연공장에 나가 연공을 하고 저녁에는 단체 법공부를 했다. 연공 첫 날부터 나는 약을 먹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 의료비를 전부 청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친척과 친구들에게 약을 사주고 의료비를 청구했다. 법 공부와 동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는 파룬따파는 성명쌍수공법이므로 연공하는 동시에 심성수련과 제고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것이 아니라면 덕을 봐서는 안된다는 걸 알게 되어 청구하지 않은 백 위안이 넘는 의약수가를 찢어버렸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전한품도 청구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심성이 얼마 높으면 공도 얼마 높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연공하는 동시에 심성수련에 중시했고, 수시로 “쩐, 싼, 런”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으므로 신체의 변화가 매우 컸다. 더구나 변비와 허리통증 그리고 기타 일부 고질병 증상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얼굴의 큰 반도 없어졌고, 얼굴색이 붉고 부드러웠으며, 온 몸이 거뿐하여 20여세 때 보다 더 좋았다.

내가 변한 모습은 주변 사람 모두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고, 동수들도 나의 변화가 가장 크다고 했다. 직장 상사와 동료도 내가 너그러워져 지내기 편안하다고 했다. 가족들도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가 좋아졌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이 부드러워져 가족을 보살필 줄 알기에 가족 모두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그 단락 시간에 나는 아주 의미있는 생명체로서 삶에 충실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며, 하루하루가 새로운 희망으로 충만 되었다. 나의 생활이 이렇듯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지낸 적 없었다. 나는 사부님과 대법이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음을 느끼면서 생명의 삶을 절실히 체득했다.

2, 의지가 견정하지 못해 미로에 깊이 빠지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은 전체국가 기구를 동원해 하늘을 뒤덮을 뜻 파룬궁에 대해 박해와 탄압을 감행했다. 이런 엄혹한 형세 하에 매일 신문 매체의 가짜 선전에 직면했다. 나는 대법이 바르고,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치는 공법임을 내심으로 명백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압력을 가하자 인심이 솟아올라 대법서적 몇 권을 받쳤다. 다시 생각해 보면 자책감으로 매우 안타깝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의연히 대법을 견결히 수련하려 했고, 포기하려는 염두는 조금도 없었다.

2000년 중국 설날 후, 나와 몇몇 동수는 교류를 통해 반드시 나가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인색했고, 우리는 이전처럼 연공을 하기로 결정하고 박해를 하는지 시탐했다. 우리는 그 연공장에서 며칠간 연공을 했는데 모두 아주 차분했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후에 어느 날 아침, 갓 도착해 연공준비를 하고 있는데, 뒷간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경찰이 파출소에 끌고 가서 하루 동안 파출소에 가두었다. 그날 저녁 나는 구치소에 보내져 그곳에서 한 달간 감금되었다. 처음 구치소에 갔을 때는 아주 견정하여 일하라면 일하고, 마음속으로 고생을 낙으로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이 없었다. 1주일 후, 직장에서 사람을 보내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고, 후에는 남편, 아들, 남동생도 와서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내가 친정을 놓지 못한 것을 이용해 아들에게 매일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는 편지를 쓰게 했고, 매번 올 때마다 울고불고하면서 각종 방법으로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자 속인의 마음이 다시 불거져 속인의 정에 이끌려 또 한 번 대법제자로서 응당 하지 말아야 할 일,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섰다. 당시 이 보증서를 공안국에 바치고, 구치소에서 집에 돌아온 후, 직장에서는 또 나를 핍박하여 보증서를 써서 직장에 내라고 했다. 내가 사표를 내어 직장에 영향주지 않지만 그래도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최후에 직장에 보증서를 바쳤다. 집에 돌아 온 후, 공안국에서 규칙적으로 직장에 찾아와 다른 동수에게 전화공작을 하라고 했다. 나는 자신이 한 것이 옳지 않고,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견정함을 유지하여 다시는 기타 동수들을 망칠 수 없었다. 그러자 결국 경찰도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 후 3년간 나는 두려움으로 반본귀진의 길을 저애해, 다시 한 번 미로에 빠져 자신을 알지 못했고, 두려움이 점차 동수들을 멀리하게 했으며,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명확히 알리는 정체 환경을 벗어나게 했다. 그때 나는 책을 보고, 연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속인과 같이 속인 생활을 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은 매우 고통스럽고 적막했다. 나는 이것이 내가 추구하던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시종대법을 찾았고, 쩐, 싼, 런을 찾았으며 생명의 참뜻을 찾고 있었다.

3, 부처의 은혜 넓어 미로에서 돌아오다

2003년 중순,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다시 한 번 나와 동수들을 한 곳으로 연결해 주셨다. 동수간의 교류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신 경문을 보고, 나의 행위에 대해 수치감을 느꼈고, 나 자신이 몇 년이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에 무한한 아쉬움을 느꼈다. 만고에도 만날 수 없는 정법이 시작되었을 때 대법제자로서 나는 자신의 서약을 지키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물결치는 대로 물위를 떠돌았으며 심지어 박해를 위해 주류를 거슬려 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의 요구에 비춰보고, 그렇게 잘 한 동수들과 비하면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동수들 모두 그렇게 잘 하고 있는데 나도 응당 자신의 능력에 따라 노력해 미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로터 시작하여 나는 복사지로 진상자료를 베껴 우편으로 진상자료를 보냈다. 한 부의 자료를 3부 복사해 다시 부쳤는데, 그렇게 반년을 견지하다 이렇게 한 장의 진상자료, 소책자를 복사해 우편으로 부쳤다. 2006년에 나는 프린터, 복사기, 스캔을 동시에 하는 기계를 사서 스스로 진상자료를 만들기 시작했고, 자료를 찍어 우편으로 부치는 외에 각 주민 구역을 다니며 배포했다.

금방 손으로 베낀 진상자료를 부치러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나 그와 파룬궁의 진상을 이야기 하자 그는 가방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내 보이면서 나에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편지를 전했다!”고 했다. 내가 받아 보니 바로 내가 쓴 것이었다. 나는 당시 매우 격동되었다. 후에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호우, 쩐싼런호우”을 외우면 위험을 피할 수 있으며 동시에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처음 진상자료를 배포했을 때 층계를 오르내렸지만 자료 한 부도 배포하지 못하고 두렵기 그지없었다. 마치 무수한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 온 후 자신이 못났고 너무나 차하다고 느껴졌다.

후에 천천히 한부 두부씩 시작하여 점차 십 여부씩 배포해도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도 각종상황에 봉착했다. 한 번은 진상자료를 금방 주민호의 문에 붙였는데 집주인이 문을 열어 매우 놀랐지만 같이 있던 동수는 의연하게 차분한 것을 보고 나도 결심을 했다. 그러자 집 주인은 진상자료를 갖고 문을 닫았다. 또 어떤 때에는 금방 자료를 배포하고 나면 뒤에 사람이 서있어도 내가 아주 태연하게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는 가던 길을 가고 나는 계속 자료를 배포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어떤 때에는 저녁에 아파트 단지에 자료를 배포하러 가면 매우 어두웠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위층부터 줄곧 아래층까지 자료를 배포했다. 많은 주민구역을 배포하노라니 두려운 마음이 점점 없어져 낮이든 밤이든 관계없이 어떤 때에는 동수와 함께, 어떤 때에는 혼자서 배포했다. 후에는 혼자서 할 때가 많았지만 두려운 마음 없이 오늘까지 진상자료를 배포하는데 매우 순리롭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빨리 배포할 뿐만 아니라, 합당한 곳을 선택하고 심태도 안정되었다.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 주심이 매우 뚜렷하며, 온 몸에 열이 나면서 매우 강한 에너지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금년, 나는 션윈 시디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아직 진상을 모르는 세인들에 대한 홍대한 자비를 또 한 번 나타내신 것음을 알고 있다. 나는 션윈의 의의는 기타 진상자료와는 다름을 깨달았기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나는 야채를 살 때, 야채를 산 후 노점주인에게 “집에 DVD가 있어요, 있으면 당신에게 전 세계 화인 새해맞이 공연을 드릴테니 너무나 아름답고 보기만 하면 당신한테 좋은 점이 있을 것이므로, 본 다음 친척과 친구들에게 전하면 공덕이 무량할 것이다.”고 알려주었다. 노점주인은 매우 기뻐하면서 받았다. 일상 야채를 사는 것을 제외하고 오직 외출만 하면 몇 장의 tus윈 시디를 갖고 길에서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주동적으로 시디를 주었는데 어떤 사람은 받고 값이 얼마인지 물었지만 나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기쁘게 받았고, 또 재삼 감사하다고 했다.

한 번은 내가 시장에 가서 야채를 사다가 한 장 남은 션윈 시디를 채소장수에게 드릴 때 곁에서 두 사람이 보면서 “션윈공연!”이라고 표지를 읽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당신들도 본적 있는가?”고 물으니 그들은 “본적 없으니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정말 너무나 유감스럽다, 지금 나에게 시디가 마지막 하나가 있으니 만약 당신들이 요구한다면 전화번호를 남기면 내가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그럴 필요 없다, 모레 아침 10시에 여기에서 당신을 기다릴 테니 만나지 못하면 헤어지지 말자!”고 했다. 나는 “좋습니다, 내가 말하면 말한 대로 하니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나의 심정은 유난히 격동되었으며 중생들은 이렇게 진상을 절실히 기다리는데 나 자신이 너무 모자람을 느꼈다. 이 일념은 줄곧 나를 고무 격려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 온 후, 사람마음이 또 솟아올라, 동수가 일찍 안전에 주의하라고 하던 말이 생각나고, 최근 사당이 많은 특무, 변이 경찰을 배치했다고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편하면서 좋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뒤집어졌다. 약속한 그 날, 나는 어떤 사람이든 특무든 지간에 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진상하여 그들을 감화시키겠다는 일념을 견정히 했다. 그리하여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야채시장을 두 바퀴 돌았는데 결국은 그들이 나를 알아보고 “우리들이 두 바퀴나 돌아서 당신을 만났다.”고 했다. 나는 “나도 두 바퀴 돌았는데 이 모두 연분이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시디 두 개를 주었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아니, 나의 친구가 하나 더 요구합니다.”고 했다. 나는 시디 하나를 그에게 더 주면서 “당신들 번갈아 보라!”고 했더니 그들은 션윈 시디를 갖고 기쁘게 갔다. 나는 당시 매우 기뻤다. 하나는 또 인연이 있는 사람이 구도되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이 과정에서 심성을 제고했다. 사실 일체는 모두 자신의 마음이 촉성한 것으로서 세인들이 우리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여 우리의 정념이 있다면 세인도 이 장내에서 그들의 선념이 일어나고, 만약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자신이 불온정하여 주변의 일체가 모두 찜찜하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최근에 상가에 옷을 사러 갔는데 두 점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나 그들은 두려워 태도표시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나는 먼저 그들에게 tus윈 시디를 주면서 본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중 한사람이 “들어 본적 있어요, 파룬궁의 것이죠, 너무 아름답고, 너무 보기 좋았다!”고 했다. 나는 션윈 시디를 그들에게 주었더니 그들은 DVD기계가 없고, VCD기계만 있어 보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거기에 두고 지체하지 말고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보도록 하라고 했다. 나는 또 계속하여 “이전에 내가 당신들에게 삼퇴를 권했는데 지금 당신들도 들었지요, 공산당이 요언을 퍼뜨리고 파룬궁을 박해한다는 것을, 당신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이고 연분이 있는 사람이므로 공산당을 따라 순장품이 되지 말고 빨리 퇴출하여 재난이 닥칠 때 명을 보존할 것이며, 신이 당신들을 보호할 것이다!”고 말했더니 그들은 다 듣고, 웃으면서 “좋아요! 좋아요!”하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물어 보고 이름을 지어 그들을 도와 삼퇴를 했다.

4, 진일보 더 사심을 타파

최근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진상자료와 시디를 배포했던지 나는 모두 동수가 나에게 제공한 진상자료에 의거했지 종래로 내가 주동적으로 진상자료를 만들어 본적이 없다. 올해에 들어서, 션윈 시디가 대량으로 필요할 것인데 더는 동수에게 수고를 끼칠 수 없으며, 또한 나에게 장기간 숨겨 있던 늘 동수에게 의거해, 기다리고, 의뢰하고, 요구하면서 동수를 위해 생각하지 않는 사심을 보아냈고, 우리가 정체라는 것을 홀시하였고, 만약 내가 스스로 시디를 굽을 수 있다면 동수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부님의 배치와 동수들의 도움으로 프린트, 시디버너, 컴퓨터, 빈 시디 몇 백 장을 샀기에 나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격동되었다. 일체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이므로 얼마나 운이 좋은가, 주변에 이렇게 좋은 동수가 있어 내가 더욱 진일보로 생각하자 나를 위해 일체를 준비해 주신 것이었다.

설비를 구입한 후, 동수는 나의 손을 잡고 시디를 굽는 것과 겉면을 프린트하는 것을 가르쳤다. 이전에 나는 자료를 만든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말 해냈다. 이제야 만드는 게 비로소 아주 간단하며, 무슨 어려운 일이 아니는 것을 느꼈고, 몇 가지 조작 방법만 알면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다. 최근 몇 년간 심성이 차하고, 집착으로 인해 발걸음을 크게 내디디지 못하고 느리게 줄곧 지금까지 지체했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명혜망에 접속했지만 인터넷에 접속 할 때마다 남편에게 의거했지 주동적으로 접속하지 않았다. 더욱이 전 한시기 봉쇄가 심해 접속할 수 없자 기다리는 상태에 빠져들어 대법제자의 정념 신통으로 인터넷 봉쇄를 돌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악의 봉쇄를 승인했다. 줄곧 이 교류문장을 쓰는 이 시각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사람의 관념 속박을 돌파하고, 신의 생각으로 수련 중의 매사를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시디 굽기, 프린트를 이미 문제없이 한다. 금후 또 점차 진상자료, 『명혜주간』제작법을 배워 오늘부터 시작해 매일 스스로 명혜망에 접속하여 다시는 다른 동수에게 의거하지 않겠다. 나 자신이 대법제자의 작용을 해야 함을 다시는 홀시하지 않고, 대법제자 하나가 명혜망에 더 접속한다면 정말 힘이 더욱 커질 것이며, 정체의 정념지장을 가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머릿속에서 갑자기 당조시인 유우석의 시구 “서쪽 저녁이라 말하지 말라 온 하늘의 노을을 위한 숭상이로다.”가 떠오른다. 나는 이것이 바로 저녁에 석양이 질 때, 사람들은 모두 하루가 끝난다고 감탄하면서 제대로 하지 못한 일 때문에 유감을 느끼고 후회할 때 도리어 하늘가에 한 점의 가장 현란한 저녁노을이 생명이 결속되는 순간에 그들은 의연히 자신의 빛과 신념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왕왕 홀시한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나는 일찌기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종래로 나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시종 나의 신변에서 나를 가호하시고 점화하시고 계심을 생각하지 못했으며, 내가 일찍 얼마나 멀리 걸었고, 미혹 속에 얼마나 깊이 빠졌든지 사부님께서는 홍대한 자비심으로 미혹 속에서 나를 바른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 대한 감격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으므로, 유일하게 사부님의 교시를 명기하고 정념을 견정히 하여, 마지막일수록 정진하여 정법시기 대법제자답게 하겠다!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 동수들 감사합니다!

(명혜망 제6기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6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제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6/21130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