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요녕 대법제자 양양(洋洋)
【밍후이왕 2009년 11월 5일】
존경하는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대법제자 여러분,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1.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서 난관을 돌파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 소제자로서 이미 수련한 지 10년이 넘는다. 당시 나는 나이가 너무 어려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할 때마다 모두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셨다. 내가 법과 인연이 있는 관계로 그들은 내가 법을 읽는 것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그들이 연공할 때면 나는 집으로 가서 손시늉을 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내가 가부좌하고 결인(結印)한 모양을 보고 사진을 찍으셨다. 어머니는 보고 웃으시면서 “너도 가부좌 할 줄 아네?”하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보다도 더 오래 가부좌하고 앉아 있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첫날은 30분, 며칠 후에는 40분, 나중에는 한 시간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려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도 내가 공부하든 연공하든 자유에 맡기고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몇 년을 지나쳐 버렸다.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되던 날 어머니는 아침에 연공장에서 많은 이모, 할머니들과 함께 집에 와서 북경에 갈 것을 상의했다. 당시 우리 연공장에는 할머니들이 비교적 많았다. 그들은 단호하게 성 정부를 찾아가자고 했다. 어머니는 “어디로 가든지 모두 될 수 있는데 오직 관건적인 시각에 능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걸어간다면 틀림이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옆에서 듣고 모두들 사부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나도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 저도 가고 싶어요.”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마침 너를 어디에 부탁할까 근심했는데 잘됐다.”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날 성 정부로 가는 열차표를 쌌다. 현지 분위기는 아주 공포스러웠다. 도처에서 경찰이 사람을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 한 무리의 늙은이, 어린이들을 이끌고 가면서 그들에게 며칠 동안 가부좌할지 모르니 저녁에 춥지 않게 입을 옷을 많이 가져가고 또 먹을 것도 많이 가져가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보따리를 지니고 안전하게 걸어 나왔다. 경찰은 우리가 친척방문을 왔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성 정부에 도착하였다. 성정부는 안과 밖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완전무장한 경찰, 경찰차였다. 백성들은 모두 놀라서 도망갔고, 대법제자들은 모두 붙잡혔다. 우리 차는 계속 문 앞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머니는 뒤의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통지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로 돌아오게 되었고 모두들 아주 괴로웠다.
우리 학교도 홍색 공포가 시작되었다. 매일 모두 전문항목이 있었고 확성기로 대법을 비방하는 소리가 나타났다. 나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때 학교에서는 한차례 모든 학생들에게 파룬궁 반대 서명을 하게 했다. 한낮에 나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나쁜 일을 하게 시키니 더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연못 가에 가서 집에 있는 만연필의 잉크를 몽땅 짜 버리고 깨끗하게 씻은 후 나에게 형식적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아주 화가 나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도착하니 각 학급마다 줄을 섰고 단상에는 지도자들이 한 줄로 앉아 학생들이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연필도 가지고 가지 않아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순서를 지나쳐 버렸다.
하루는 우리 학교에서 각 반마다 모든 학생이 “파룬궁을 비판하고 적발”하라고 강요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때까지 얌전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선두에 서지 않고 꽁무니만 따라 다녔다. 이번의 강요에서도 발언하려고 손을 드는 학생이 없었다. 학교에서 매일 선전하는 그 한 세트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뜻밖에 선생님은 종래로 뒤떨어졌던 나더러 이번에 처음으로 발언하라고 지명했다. 나는 마음이 한창 괴로웠는데 이번에 진상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서히 교단에 걸어 올라가 동창들과 선생님들에게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으로 제일 좋은 공법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모두 “쩐(真), 싼(善), 런(忍)”의 표준에 따라 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공산사당은 처음부터 지금가지 모두 나쁜 일만 하였습니다. 마치 토비처럼 총으로 박탈하면서 역차 운동마다 모두 사람을 때려 엎었으며 영도에서 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차 평판하고는 또 정풍을 일으켰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눈을 크게 뜨고 조용히 듣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어리둥절해 했다. 나도 어떻게 이렇게 능히 말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는 몇 마디를 이용해 오늘 내 입을 통해 진상을 알린 것이다. 선생님은 좀 지나 진정이 되자 학생들에게 “그만,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끝내자.”하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본래 너도 파룬궁을 연마했구나, 너무 무서웠어. 네가 나를 아주 무섭게 했어. 너 오늘 어쩌면 그렇게 담이 컸지, 어머니도 연공하시지? 어린 네가 어떻게 연공할 수 있겠어?”하고 물었다. 나는 선생님한테 연공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저는 어렸을때 담마진에 걸렸어요,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여러 병원에 다녔고 또 매일 민간 요법도 쓰면서 많은 돈을 들였지만 호전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공법은 그다지 참답게 하지도 않았고 다만 늘 어머니와 함께 가부좌를 하고 법을 들었을 뿐인데 바로 병이 나았어요. 저는 고기를 먹기 좋아하고 밥과 채소를 먹기 싫어하여 어머니는 늘 골치 아파 하였어요. 하지만 제가 연공을 시작하자 공이 바로 나를 관할하였는데 먹기만 하면 바로 배가 아파서 고기를 즐겨 먹던 습관을 고쳤어요. 지금은 아주 정상적으로 밥을 먹고 있어 어머니는 제가 밥 먹는 것을 보고 아주 만족해하세요.”
나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업종이 울렸다. 선생님은 내일 어머니더러 한번 다녀가라고 부탁했다.
이튿날 어머니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휴대하고 있던《전법륜》책을 꺼내 선생님에게 주면서 이 책에 도대체 무엇이라고 썼는지 한번 보라고 권했다. 선생님은 이 책을 보고 “책은 아주 좋아요. 하지만 저는 감히 배우진 못하겠어요. 남편도 없고 집 아이들은 또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저는 성, 시의 모범교사이기에 감히 모험을 할 수 없습니다.”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러면 연분에 따를 수밖에 없겠네요.”하고 대답했다. 몇 년이 지났다. 탈당 물결이 시작한 후 어머니는 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전 가족을 모두 탈당시켰다.
2. 정(情)을 내려놓고 중생구도
나와 어머니는 정에 대한 집착이 아주 심했다. 어머니는 매일 내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텔레비전을 볼 때조차 나를 보고 있었다. 매일 나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에 아주 짜증을 내면서 어머니를 나무람 했는데 후에는 나도 모르게 점차 정속으로 빠져 들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녁에 진상자료 배포를 나갔는데 야밤에도 돌아오지 않아 나는 조급한 나머지 어디에 계시는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좀 지나 다시 보냈는데 또 소식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교란을 줄까 두려워 감히 전화를 걸지 못하고 다만 집에 앉아서 끊임없이 발정념만 했다. 나는 사부님께 “사부님, 어머니가 빨리 집으로 오게 해 주세요.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라고 청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머니가 문에 들어서자 나는 한편 기쁘고, 한편 억울함을 느껴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요?”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끝까지 구하지 못하였어.”하고 대답했다. 나는 “전에는 모두 12시 전에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전화마저 없었어요?”하고 불평을 토로했다. 어머니는 “너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단다.”하고 대답했다. 나는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엄나는 내가 이미 3번이나 발정념 한 것을 알기나 해요.”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씻고는 바로 잠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 때문에 화나나서 잠들 수 없었다.
평소 그렇게 나에게 관심을 갖고 늘 잔소리하던 어머니가 오늘은 오히려 내가 어머니를 위하여 그렇게 근심 걱정을 했음에도 어머니는 내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틀 전에도 늦은 밤에 돌아오셨는데 큰 비를 맞아 온 몸에서 빗물이 줄줄 떨어졌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 되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면서 “엄마는 비가 오는데 왜 택시를 타지 않아요.”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비바람 속에서 천지에 행한다.”는 한 마디를 던지고는 또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엄마가 너무 이기적이라 나의 감수를 젼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이때 내 머리에는 잇따라 ‘중생구도’란 몇 글자가 나타났다. 나는 즉각 금방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 사부님의《2005 유럽 스톡홀름 법회에게》를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세상의 일체는 모두 정법을 위해 창립된 것이다. 대법제자는 곧바로 오늘날 풍류인물이다. 옛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계 중생들은 모두 기대하고 바라고 있다. 당신들이 구도할 중생을 받아들이고 구원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나는 어머니에게 화를 낸 것이 아주 미안했다. 어머니는 매일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도 그의 사명이 있다. 나는 정에 대한 집착이 아주 중한 것에 대해 부끄러웠다.
또 한 번은 나로 하여금 인정(人情)에 움직이게 했다. 우리 집은 자료점이었다. 어머니는 컴퓨터 기술을 전혀 몰랐지만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내가 어머니 곁에 있을 때 어머니는 여러 가지 진상 호신부를 복사하고,《9평》을 제작하고, 사부님의 모든 출판된 책, 달력, CD, 《명혜주간》 등을 모두 만들고 싶어 했다. 오직 할 수만 있다면 모두 하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컴퓨터에 대해 조금도 흥취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엇이나 모두 나를 핍박해 하게 하였는데 예를 들면, 파룬, 책표지, 색상 조절, 조판(排版) 등이다.
컴퓨터로 제작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사코 고쳐야 했으며 또 기계도 수리해 주어야 했는데 나는 엄마의 만능기능공이 되어야 했다. 조금만 잘못하면 어머니는 바로 불만을 가졌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나에게 지혜를 주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하나하나의 난관을 돌파 하였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물으면 나는 정말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대답할 수 없을 정도다.
또 한 번을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가 한 외지 동수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소모품을 모두 아주 비싸게 구매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이 외지 동수를 다른 이모한테 소개했다. 이 이모도 외지 동수를 만난 후 소모품을 싸게 샀다. 한 시기 지난 후 이 이모가 다른 한 동수를 찾아가서 어머니가 하고 있는 자료점은 철수하려고 하니 기계 전부 가져와야 한다고 하였다. 원인은 어머니가 외지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왔기에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이모가 다급히 어머니를 찾아와 “동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씨 아주머니가 당신 집의 모든 기계를 전부 철수하려 하고 있어요.”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근본적으로 믿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온 후 이 사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 이 곳은 바로 우리가 사부님의 책을 복사하고, 또 매 주일 백여 권, 게다가 400-500권의 소책자를 만드는데 단번에 다른 자료점에서 이렇게 대량의 자료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저녁, 이(李) 이모가 한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문에 들어서자 바로 기계를 가지러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불러 집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모와 쟁론이 벌어졌다. 그들은 집안으로 막 들어오려고 하고 어머니는 다짜고짜 막아 나섰는데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울음 섞인 어조로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죠? 무엇 때문에 나한테 알리지도 않아요? 무엇 때문에 나와 교류도 하지 않아요?”하고 질문했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한테 괴로움을 당하여 울고 있는 것으로 보고 나는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가서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저 없이 몸을 일으켜 문 입구까지 갔다.
그런데 마침 사부님의 《전법륜》에서 “어떤 경우가 나타나던지 막론하고 꼭 心性(씬싱)을 파악해야 하며 오로지 대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정확한 것이다.” 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나는 여기에 참여하면 안 된다. 이것은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한 가지를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를 제어 할 수 있다!”(《미국중부법회설법》〉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저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조용히 앉아서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의 간격과 대법제자를 사악하게 하는 것을 청리하였다. 순간 어머니는 평정되었고 울지 않았다. 그리고 “가져가려면 가져가세요.”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바로 그들을 도와 기계를 정리하였다. 이때 어머니는 나를 불러 두 대의 작은 차로 아래층까지 내려다 주라고 부탁했다.
내가 안에서 찾고 있을 때 나의 정이 어머니의 일을 하려는 마음을 이끌어 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싶으면 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만족시키려 했다. 우리는 매일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모두 일을 한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만 능히 걸어 나올 수 있겠는가? 나는 어머니에게 이 이틀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바로 법공부만 하자고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하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으며, 法은 일체 정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고 말씀하셨다. 며칠 후 어머니의 마음은 평정해졌으며 자신의 집착을 찾았다. 나는 또 어머니에게 모든 기계와 공구를 새로 설치하여 자료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게 하여 동수들이 자료 제공에 지체하지 않았으며 역시 중생구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3. 동수를 도와 법속에 돌아오게 하다
한 번은 한 동수가 어머니를 찾아와 불법으로 4년 동안 감금 되었다가 돌아왔는데, 줄곧 동수들과 연결이 없었던 대법제자이니 도와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매일 아주 바빠 정말 가서 도와 줄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집에 나와 나이가 같은 아이가 하나 있고 또 어머니와 함께 진상자료를 붙이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를 받아 아이도 큰 상처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즉각 어느 해인가 내가 어머니가 함께 법을 실증하던 일을 생각했다. 아이가 너무 불쌍하게 여겨져 가서 아이를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승낙했다.
그녀의 집에 가보니 다만 여자만 둘(몇 년간의 박해로 부모가 이혼했음)뿐이었다. 어머니는 “내일 우리 아들을 데리고 올 테니 우리 함께 법공부를 하는 것이 어때요?”하고 물었다. 동수 이모는 “우리 아이도 법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예전에 박해하기 전에는 아주 정진했는데 지금은 아예 법공부를 하지 않고 매일 컴퓨터 게임만 하면서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가끔 화를 낸답니다. 밤에는 놀고 낮에는 잠을 자는데 또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는데 완전히 속인과 같으니 나도 더는 상관할 수 없어요.”하고 말했다.
이튿날 저녁 나는 어머니와 그녀의 집에 갔다. 그녀의 어머니가 여러 번 불러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대답이 없었고 한사코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주의하도록 안에서 큰 목소리로 사부님께서 오늘 무엇 때문에 이 법을 전했으며, 우리의 생생세세는 모두 오늘의 이 법을 위해 온 것이다. 무엇 때문에 정법을 해야 하며,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가를 말했다. 나는 또 우리 이 나이에는 흥취를 단절해야 한다는 것도 일부 말했다.
첫날 저녁 그녀는 법공부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튿날 우리가 또 갔는데 그녀는 여전히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나는 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째 되는 날도 그녀는 역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또 전처럼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힘없이 “우리 시간 낭비 하지 말자. 내가 보기에 그녀는 아예 법공부를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어머니에게 “조급해 하지 마세요. 2-3일 더 지나면 틀림없이 들어올 거에요.”하고 말했다.
4일째 되는 날 우리는 또 갔다. 그녀는 동창들과 함께 밖에 놀러 가고 없었다. 5일째 되는 날 우리는 또 갔다. 우리는 함께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법공부를 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공부하지 않고 듣기만 할께요.”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법제자가 어디 법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있어, 공부해야 해!”하고 말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법공부 팀을 시작했다. 이 어린 동수는 들어오자마자 바로 용맹정진하였다.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3가지 일을 참답게 하였다.
지금은 매일 자기 어머니를 이끌고 수련하고 있다. 아침 3시 50분에 연공하고, 5시 50분에 발정념하고, 법을 외우고, 저녁에 《전법륜》과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공부하고 매일 저녁 12시에 발정념하고 또 낮에는 출근한다. 동수가 정진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를 위해 정말로 기뻤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이런 염원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바로 당신을 도와주시는데 넘지 못할 관이 없다.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나 많다. 사존님께 감사한 마음은 인류의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지금 나는 매일 3가지 일을 잘 하면서 대법이 대법제자에게 부여한 신성한 사명을 완성하여 사부님의 자비의 고도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한다.
허스.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제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5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 대륙인터넷법회원고 >제6기(2009년)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5/2116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