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몸과 마음을 전부 대법에 바치다

글/ 중국 서남지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4일】밍후이왕 제 6기 법회 원고모집통지를 보고 나는 이번 기회를 다시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참가한 적 없기 때문이다. 전 몇 기 법회의 동수들 교류문장은 나를 매우 감동시켰으며 나도 참가하고 싶었다. 비록 초등학교 2학년 교육수준이고 수련에서 정진하는 동수에 비하면 많은 거리가 있지만 사부님께서 10여 년간 나에 대한 걱정과 자비로우신 고도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 사부님께 회보하려고 자신의 수련과정을 열심히 총결했다.

1. 기쁘게 대법을 얻다

나는 97년에 수련에 입문했다. 수련 전에는 온 몸이 모두 병든 사람이었다. 늘 온 몸이 아프고, 부인과병, 신장병 등이 있었다. 97년 10월, 또 병에 걸렸는데 병을 고칠 돈이 없었다. 돈을 빌려 한 달 동안 링거를 맞았지만 병이 호전되지 않았고 두 손이 부어 혈관을 찾을 수 없었으며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잘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도 곤란하고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연루되지 않으려고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루 밤 내내 울고 난 이튿날 아침,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와 “좀 괜찮은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래에 파룬궁 연공장이 있다는데 연공하면 병이 있는 사람에게 좋다고 하니 가지 않겠니?”하고 물었다. 나는 즉시 “가겠다!”고 말했다. 저녁에 그는 나를 데리고 갔다. 당시 거기에는 15명 남짓 연공하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사람은 일주일간 가고는 다시는 가지 않았지만 나는 날마다 다녔다.

나는 학력이 낮아 책을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전법륜』을 보는 것이 너무 느려서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동수에게 묻고 딸에게 물으면서 더듬더듬 다 보았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임을 알았다! 나는 대법을 찾았다! 나의 인생은 희망이 보였다! 나는 즉시 ‘나는 대법을 선택한다. 누구도 나를 관할하지 못한다. 나는 몸과 마음을 대법에 바치고 사부님께 바친다. 누구도 개변하지 못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교육수준이 낮았지만 법공부를 가장 즐겼고, 또 사부님의 소전(小傳) 보는 것을 즐겼으며 늘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법을 얻은 두 달 후, 나는 큰 소업이 시작되어 7 일간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밥도 먹을 수 없어 사과 한 쪽씩 먹었다. 나는 이것이 소업이므로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공부와 연공은 한 번도 빼놓지 않았다. 7일이 지나 좋아졌다. 원래 가부좌를 못하던 것이 이번에는 가부좌를 반시간이나 할 수 있었다. 99년에 또 세 번이나 큰 소업을 했다. 처음에는 7 일간, 두 번째는 5 일간, 세 번째는 3 일간했다. 그때는 법리가 명백하지 못하여 다만 『전법륜』에서 말한 수련 중에 소업이 있을 수 있다, 소업은 병이 아니라 신체를 정화하는 것이라는 것만 명백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고, 수련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했다. 소업에서 나는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아주 순조롭게 지나왔다.

가정 형편이 매우 곤란했다. 남편은 실직을 당하고 딸은 8 개월 되는 손자를 나에게 맡겨 부양하게 했으며, 매 달 200위안의 돈으로 생활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법을 얻은 후, 나는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어떤 때에는 돈이 없어 야채 살 때 한 푼이라도 아껴 쓰면서 장래에 대법을 위해 쓰려고 했다.

2. 박해 중에서 더욱 견정했다

법을 얻은 지 18 개월 후 사악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99년 ‘7.20’ 저녁, 내가 아는 두 대법제자가 텔레비전을 보고 나를 찾아와 “지금 정부에서 연마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연마하고 말고는 자신에게 달렸으니 더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얻기 전에 죽은 목숨이었다. 지금 사부님을 찾았고 대법을 찾았으니 나는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고 생사를 내려놓고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가겠다고 생각했다.

형세가 돌변하자 우리 여기에 원래 십여 명이 수련했던 것이 지금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수련을 포기했다. ‘7.20’후 나는 생활 습관을 개변하여 가족이 잘 때면 일어나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아침에 늦게 기상했다. 동수들과 연계할 수 없고 자료도 볼 수 없었으므로 밖의 형세를 전혀 몰랐다. 오직 법을 스승으로 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때 아무런 교란도 없었고 다만 경제적인 압력이 컸을 뿐이다.

대략 2002년에 나는 아는 사람을 통해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자료를 얻지 못해 조급했고, 잠도 이루지 못하면서 눈물만 흘렸다. 후에 이전에 협조인을 하던 동수가 갑 동수를 데리고 나를 보러 왔다. 갑 동수가 나에게 경문을 주면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니 오늘 가져오면 내일은 가져가서 다른 동수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학력이 낮아 느리게 보기 때문에, 내가 한 번 보고서는 늘 명확히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가져가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손으로 베꼈는데 쓴 글자가 곱지 않았고, 느렸으며, 많은 글자를 쓸 줄 몰라 남편과 딸의 도움을 받아썼는데, 그들이 귀찮아하며 쓴 글자를 나는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매우 조급했다!

후에 갑 동수가 불법납치 당하여 나의 자료도 중단되었다. 그때 진상자료를 배포함이 매우 적었다. 나는 나 스스로 써서 배포하려고 종이와 볼펜을 사려 해도, 긴장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왔다. 나는 두 달 남짓 걸려 다 쓴 후 딸에게 되겠는지 보아달라고 했더니 딸아이는 “엄마, 엄마가 쓴 것이 문장부호도 없고, 틀린 글자도 이렇게 많은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보겠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이전에 알고 지낸 동수를 찾아가서 쓰려고 했지만 그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읽고 딸아이가 베끼고 그것을 타자할 줄 아는 동수를 찾아 프린트 한 후 배포하려 했다. 한 동수가 보더니 잘못 썼다, 너무 높아서 속인에게 배포하기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다만 입으로 진상했는데 진상 효과가 그리 좋지 못했으므로 정말 조급했다. 2004년 갑 동수가 나왔고 나에게도 자료 공급원이 있게 되었다.

2005년 8월에 나는 이미 천 위안을 모았다. 나는 동수 갑에게 “이 돈으로 복사기를 살 수 있는가, 만약 돈을 많이 요구한다면 감히 생각할 수 없지만 나는 대법제자들이 경문을 보기 어렵고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고 말했다. 갑 동수는 놀라며 “당신 이런 형편에서 돈을 내어 대법의 일을 하다니 정말 쉽지 않다. 당신보다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아까워 대법의 일에 내놓지 못하는데!” 이렇게 되어 우리는 800위안을 주고 복사기를 샀다. 설날이 다가 올 무렵 남편이 복사기를 발견하고 어디서 온 것인가? 물었다. 내가 말하지 않자 그는 나에게 끝없이 잔소리 하면서 분명히 갑 동수가 가져온 것이라며 다음에 그를 보면 신고하여 붙잡히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건을 버리든지 이혼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에 머물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나는 오직 내가 이 집에 있는 한 법공부, 연공, 대법의 일을 하는 것을 누구도 관할하지 못한다,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대법의 물건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때 복사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나와 갑 동수는 경험이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나중에 갑 동수가 가져갔다. 우리 부근에 젊은 동수가(‘7.20’후 그는 연마하지 않았으나 내가 가져간 자료를 보고 다시 연마하기 시작한 동수)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복사기를 사서 우리 둘이 합작했는데, 내가 자료를 복사하면 그가 배포했다. 복사잉크가 떨어지면 을 동수가 나를 데리고 컴퓨터상가에 가서 잉크를 넣었는데 비싸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했다. 매번 복사잉크를 바꿀 때마다 나는 자세히 본 후 집에 돌아와 스스로 넣는 연습을 했는데 집안과 나의 옷은 온통 검은 색 투성이였다. 몇 번 지난 후, 나는 끝내 배워내고 말았다. 당시 을 동수가 돈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문화도 없는 내가 어찌 이런 신형을 다룬단 말인가?

나의 수련이 부단히 승화됨에 따라 남편도 변하여 다시는 그렇게 나의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다. 2006년 6월 나는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에 가 고향 형세를 보고, 대법이 고향에 전해졌는가를 보려고 생각했다. 나는 60여 부의 소책자를 준비해 가지고 고향에 도착했다. 나는 모든 친척과 친구들에게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그들은 대법의 진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5 ~ 60 명을 3퇴 시켰다. 돌아온 후 나는 대법이 고향에 전해지지 못했고, 이번에 가지고 간 자료가 적어 마땅히 배포해야 할 곳에 배포하지 못했고 마땅히 탈퇴해야 할 사람이 탈퇴하지 못했기에 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11월이 되어 나는 『전법륜』, 설법과 연공CD, 『9평』책과 CD, 진상소책자, 진상호신부, 진상CD를 큰 주머니로 두 개를 넣었는데 아주 무거웠다. 가기 전날 밤에 꿈을 꿨는데 경찰이 와서 나의 자료를 다 가져갔다. 꿈에서 깨어나니 잠들 수 없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두려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들더라도 대법제자가 감당해야 할 짐을 당연히 져야 한다. 차에 오를 때 남편이 도와주었고 차에서 내릴 때 낯선 아가씨가 도와주어 아주 순조롭게 고향에 도착했다.

고향에 도착한 후, 먼저 근처 친척들에게 이야기하고 그 다음 먼 곳에 있는 친척집에 갔다. 그들 거기는 작은 향진인데 파출소가 길가에 있었다. 나는 이전에 알고 있던 집에 갔는데 그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모녀는 나에게 식사하라고 하여, 나는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더니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파출소에서 파룬궁이 있으면 신고하라고 했다고 했다. 중간에 그의 어머니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갔으나 사실 나를 신고하러 갔다. 그는 돌아왔고 우리 둘은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몽롱한 상태로 잠들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아파트에서 내려와 그의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그 결과 경찰차가 왔다. 나는 즉시 발정념을 했다. 경찰은 계산대 안으로 들이 닥쳤지만 나를 보지 못했다. 사실 나는 아주 두드러진 위치에 앉아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했던 것이다. 이튿날 내가 골목을 나오자 경찰차가 거기에 서 있었다. 나는 당신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차에 올라갔다. 이번에 고향에 갔다 온 20일 간에 이야기 할 것은 다했고 탈퇴할 사람도 모두 탈퇴했으며 자료도 전부 배포했다.

금년 여름,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고향에 가고 나 혼자 집에 있게 되었다. 하루는 자료를 보내려다가 교통사고로 길에 쓰러졌는데 허리를 다친 것 같았다. 운전기사는 급히 차에서 내려 나를 부추기며 “병원에 갑시다” 고 말했다. 나는 숨을 겨우 몰아 쉬고 천천히 “괜찮으니 가라”고 했다. 운전기사는 나에게 돈 몇 백 위안을 주려 했다. 나는 “나는 당신의 돈을 받을 수 없다. 오늘 당신은 좋은 사람을 만났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당신들은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고 대법을 위해 바른 말을 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 온 후, 온 몸이 정말 아파 움직일 수 없었다. 5 일째 되던 날 파룬이 온 몸에서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7 일째 되던 날 남편이 돌아 왔는데 나게게 병원에 가서 마사지하자고 했다.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도 받고 약도 발랐다. 집에 돌아온 후 심상치 않았는데 내가 그것을 병으로 간주한 것이 아닌가? 나는 발정념으로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했다. 발정념을 하고나니 좋아졌다. 그러나 심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전후로 한 달 가량 시간을 지체했다.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므로 어느 때든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3. 정에 대한 집착을 놓다

2002년, 남편이 고향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다가 한 여자를 사귀었는데 2003년에 아들에게 발견되어 나에게 알려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점화하시어 마음을 내려 놓으라고 했다. 나는 그 여자를 거주지로 돌아가게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6년 11월, 내가 고향에 가서 진상할 때, 금방 도착하여 땀도 식지 않았는데 낯익은 사람이 나에게 “당신네 집에 지금 한 여자가 살고 있을 것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 집 부근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작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가보라고 했더니 정말이었다. 나는 마음이 혼란했지만 진정하고 마음속으로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중생을 구도하는 대사를 다 하고 다시 자신의 사적인 일을 처리하자고 생각했다. 일을 끝낸 후 내가 그 사람을 찾아보았는데 그는 또 상세한 것을 이야기 했는데 그들이 어디에 가 놀았고, 남편이 그녀에게 무슨 물건을 사주었으며 돈을 얼마 주었다….. 고 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셨다.“자비는 안 좋은 일체를 용해시켜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할 수 있도다” 『홍음2』 〈법정건곤(法正乾坤)〉 대법으로 가늠해야지 사람의 마음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선으로 화해하려고 결심했다. 집에 도착한 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고, 그에게 내가 알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는 모두 승인했다. 나는 그에게 여기까지 끝마치자 했고 다시는 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체가 모두 좋았다.

2007년에 『수심단욕』 소책자가 나온 후, 나는 이 문제는 확실히 단절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일찍이 이 일을 생각지 않았지만 남편이 속인이니 어찌한다? 나는 발정념 할 때 ‘제욕(除欲)’이란 일념을 가했더니 정말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정말 단절했다. 그러나 어떤 때, 해이해지면 그가 와서 교란한다. 지금 나는 정념이 강하므로 우리는 이미 철저히 단절했다.

4, 자료점을 건립

비록 나에게 복사기는 있지만 원고가 필요했다. 동수가 쓴 『꽃 향기가 정원에 가득히』이란 문장을 보고 동수 을과 나는 상의하여 컴퓨터를 사기로 했다. 그의 집 여건이 좋지 못했는데 집식구들이 대법 수련을 반대했다. 만약 컴퓨터를 산다고 해도 우리 집에 놓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별 문제가 아니다. 내가 주요하게 걱정하는 것은 내가 배워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루는 동수 을과 함께 소모품을 사러 갔는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인지 컴퓨터를 잘 하는 동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마치 전문적으로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린 것처럼 을 동수가 말하자 그는 즉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튿날 컴퓨터를 구입해도 되었다. 원래는 좀 우려했지만 지금은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집의 모든 돈을 다 꺼내어 컴퓨터를 들여 왔다. 동수는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빨리 인터넷 선을 준비해라, 다음에 올 때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가르치겠다.” 고 했다. 나는 인터넷을 하려면 돈이 들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때 집에는 이미 일전 한 푼도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금방 사귄 병 동수에게 전화를 걸어 정황을 이야기 했더니 병 동수는 즉시 돈을 보내왔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여 100위안이 모자라 또 다른 곳에서 빌려서야 겨우 인터넷을 설치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또 나에게 문제가 나타났다. 컴퓨터를 설치한 이튿날 딸아이가 8개월 되는 손자를 돌봐달라고 했다. (나의 생활비는 모두 딸아이가 섬긴다) 나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두 아이를 돌보며 어떻게 컴퓨터를 배우고 자료를 하는가! 바로 이렇게 난감할 때, 병 동수가 나에게 정 동수를 소개했다. 정 동수는 젊고, 기초가 있어 배우는 한편 작업할 수 있어 재빨리 자료 점을 운영할 수 있었다. 또한 병 동수도 정 동수를 금방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묘하게 안배하신 것이 아닌가?

2007년 7월 1일, 우리 집에서 집수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문적으로 방 하나를 내가 자료를 만드는 데 달라고 상의했는데,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고 딸도 반대했다. 나는 남편에게 귀찮게 계속 말했더니 남편은 “알았어, 당신이 온 종일 울상인 것을 보기 싫어서 해준다. (나는 법공부 할 때 와 자료를 보면서 늘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집수리가 끝나서 비록 나에게 크지 않은 방을 주었지만 기계와 설비를 적당하게 정리해 놓을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복사만 할 줄 알았고, 동수 정이 책임지고 내려 받기를 하고 프린트를 했다. 나는 컴퓨터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한 동수의 ‘호미로부터 마우스로’가 생각이 났고, 한 문장에서 연세가 많고 교육수준이 부족한 동수가(내 정황과 비슷하다) 컴퓨터를 배운다고 하니 딸아이가 비웃으면서 엄마가 컴퓨터를 배워내면 성을 고치겠다고 했다. 결과 그가 정말 컴퓨터를 배워내자 딸들은 탄복되어 대법은 정말 대단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도 컴퓨터를 배울 결심이 있다. 나는 마우스를 쓰는 것부터 일부 일상적인 내려 받기, 프린트, CD제작을 이미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 나는 자료 점을 하면서 동수들과의 협조와 조율이 아주 중요한바, 만약 약간의 마찰, 논쟁이 있기만 하면 기계가 고장 난다. 우리가 안으로 찾고 심성을 지키면 일체가 정상화된다.

자료 점을 건립한 이래 나는 종래로 두려워한 적이 없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전법륜』 “마음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만 가지 움직임을 제지시킬 수 있다(一個心不動, 能制萬動).” 『정진요지2』〈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법을 첫 자리에 놓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첫 자리에 놓았다.

나는 손자를 데리고 법공부, 연공, 발정념, 자료 보기, 자료 만들기, 가사를 돌보면서 매일 바삐 보냈다. 나는 발정념과 단체연공을 따라 하기 위해 알람시계 3개를 사서 하나는 아침 6시, 하나는 저녁12시, 하나는 새벽 3시 반에 놓았다. 법공부는 매일 한 강을 보장했다. 어떤 때에는 법공부를 제때 하지 못하거나 혹은 발정념을 몇 번 놓쳤는데 책을 들면 졸렸고 손자들도 쉽게 병이 나고 기계도 고장이 났다. 한번은 손자가 밤중에 고열이 났다. 이튿날 남편은 나에게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를 놓으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병원이 매우 멀다. 이틀 연속 병원에 갔지만 열이 내리지 않았고, 나는 법공부도 못하고, 연공도 못하고, 자료는 더욱 할 수 없었으며 이리저리 다니고 나니 힘들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여 머리가 혼미해졌다. 저녁에 나는 연공하는 사람이 그들에 의해 좌우지 당하여 세 가지 일을 못해서야 되겠는가? 안 된다고 생각하여 발정념으로 교란을 제거했다. 이튿날 나는 남편에게 나는 안 가겠으니 가려면 당신이 가라고 했다. 남편도 가지 않았다. 결과 손자의 병이 나았다. 이런 예는 너무 많다. 수련은 정말 엄숙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수련에서 나는 사부님의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전법륜』 말씀을 명심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늘 나의 신변에 계신다고 생각하며 나의 일사일념 일거일동 일언일행은 모두 법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순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데 주의하고, 대법의 일, 가사 일을 모두 타당하게 배치하여 지체하지 않았다. 나의 생활환경, 일체도 모두 점차적으로 개변되었다. 남편은 갈수록 좋아져서 상냥하게 변하여 말을 잘 듣고 내가 자료하는 것을 교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를 도와 손자를 돌본다. 대법의 일에서 그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소모품을 받고, 동수를 배웅하고, 수시로 부르면 수시로 나타나면서 경제적으로도 천천히 여유가 있게 되었다.

나는 오직 신사신법을 첫 자리에 놓는다면 무엇이든 모두 잘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다 넘어 갈수 있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말하던 김에 근간에 인터넷 봉쇄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분명히 낡은 세력이 우리 정체에 누락이 생긴 틈을 노리고 있다. 대륙의 모든 동수들은 발정념 할 때 사악의 인터넷 봉쇄를 해체하자는 일념을 가하기 바란다.

개인의 체험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11월 4일

문장분류: 밍후이왕 제 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4/2113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