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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를 명오(明悟)하고 거난을 뚫고 사부님을 도와 행하다

글 / 하북(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4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52년에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신체가 허약하고 병이 많았다. 나의 부모님도 그러한 약자에 속했다. 나는 고생과 고민 속에서 자랐다. 부친이 늘 한숨쉬며 말씀하시던 “모든 것은 다 팔자에 달려있고, 사람에게는 조금도 달려있지 않다”던 말씀이 생각난다. 부친은 세상을 뜰 때 매우 고통스러워했고 매우 비참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원망했다. 나는 ‘우리 집안 식구들은 모두 아주 성실하여 종래로 나쁜 일을 안 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고생스러운가?’ 하고 생각했다. 오직 하늘에 맡기고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매우 강직했다. 나중에 나는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않았다. 부모 신변에 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웠는데, 이혼한 후에 혼자서 아이를 부양했다. 내가 47세에 법을 얻을 때까지 줄곧 이렇게 지냈다. 수련을 시작한 후 나의 인생은 철저히 개변되었는데 정말 너무 행복하게 느껴졌다.

* 신기한 득법(得法)의 과정

나는 수련 전에 보살을 모셨다. 1998년 음력 3월 15일 저녁에 나는 작은 방에서 보살님께 향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관에 의하면 3대의 향을 피운다. 당시 나는 한 묶음의 향을 올렸다. 내가 향을 향로에 꽂을 때 향이 “콰” 하고 단번에 헤쳐지며 넘어져 책상 보자기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날 새벽 3시에 꿈을 꿨는데 담밖에서 보살이 날아오더니 화를 내며 나에게 “당신이 출근하던 직장은 어찌된 일인가?” 라고 하였다. (당시 나는 다른 직장에 가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좀 지나 꿈에 또 다른 정경이 나타났다. 한 남자와 내가 사업에 대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소복부위에 결인동작을 하고 “당신은 이것을 하는가?” 라고 했다. 당시 나는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수련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부님께서 점화하시어 그때 법을 얻고 외지에 갈 수 없게 하신 것이었다.

이튿 날 출근하여 동료와 이것저것 한담하다가 한 동료가 파룬궁이 어떻게 좋다고 했다. 나는 “당신에게 책이 있는가? 나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그는 흔쾌히 대답했다. 한 주일 지난 후, 나는 『전법륜』을 얻게 되었다. 나는 연속 2~3일을 본 후, 밤에 책을 베개 밑에 놓고 침대에 가서 자려고 베고는 옆을 짚었는데 갑자기 나의 손가락 사이로 반짝 반짝 빛이 뿌려지며 베개 변두리도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을 보며 이것이 어찌된 된 일인가? 왜 빛이 나는가? 한참을 연구해도 알 수 없어 손을 다른 곳에 놓으니 빛이 나지 않았다. 나는 또 『전법륜』을 쥐고 다시 원래대로 손을 짚었으나 빛이 나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후에 나는 그 동료에게, “이 책이 너무 좋다. 내가 알려고 하는 것이 모두 이 책에 있다. 이 책은 긍정코 한 권이 아닐 것이다. 당신이 알아보라 아직 몇 권이 더 있는지, 돈이 얼마든지 다 사겠다.”고 했다. 이 동료는 나를 도와 전체 대법서적을 주문했고, 나에게 『대원만법』을 선물했다.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에너지를 몸에 넣어주시는 느낌이었고 정말 뼈속까지 침투되어 자신이 법에 용해된 것 같았다. 일할 때 머리속에는 다른 일을 생각할 여지가 없이 전부 수련상의 일이었고 사상은 모두 수련에 있었다.

* 박해가 올 때 더욱 정진

1999년 ‘7.20’ 이후, 사당(邪黨)이 대법을 발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산당이 탄압하는 것은 이 공법은 긍정적으로 너무 좋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잘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정진하여 수련하며 다시는 이전처럼 배우고 연공하는데만 그치지 않았다. 이때 공이 자라는 것이 특별히 빨랐고 포룬시 사부님께서 옥침혈로부터 나의 머리속에 무엇이 돌면서 물건으로 누르는 느낌이었다. 이전에 자신에게 나쁜 물질이 있어 사부님의 법신상을 감히 볼 수 없었으나 박해가 시작되면서 나는 사부님의 법신상을 볼수 있었는데, 특별히 친절한 느낌이었다.

나는 대법과 사부님께서는 그런 해명할 수 없는 억울한 누명을 쓰셨으므로 대법제자로서 응당 법을 수호하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대법제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늘 사부님의 안위가 걱정되어 날마다 사부님께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사부님은 우리가 의지하는 분이고, 믿고 의심할 필요 없는 분이다. 당시 대법에 대한 인식이 낮아 사부님께서는 나를 보시며 밤낮으로 점화하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나는 이 공산당이 어찌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가! 고 생각했다. 그 때로부터 나는 이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는 사부님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다.

* 정념으로 마굴을 벗어나다

2001년 10월, 나는 전단지를 붙이다가 변의 경찰한테 발견되어 불법(不法)으로 집을 수색당했고 납치되어 구치소에 갔다. 구치소에서는 상습적으로 우리의 경문을 수색해 갔다. 그리하여 다시 쓰고 다시 베끼고는 하였는데, 나중에는 구치소에서 종이와 볼펜마저 빼앗아 갔다. 말로는 통일적인 관리를 한다고 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다시 베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동수에게, “우리 경문을 외우고 법을 머리속에 기억하자! 그렇게 하면 그것들은 전혀 방법이 없다.” 라고 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법을 외우기 시작하여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웠다. 한 달 동안, 구치소에 전해온 경문을 전부 외웠는데 편폭이 긴 『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도 포함했다. 이것은 이후에 내가 구치소를 뚫고 나오는데 기초를 닦았다.

몇 달 후, 나는 또 노동교양소에 전이되었다. 3년 노동교양이라고 말하며 사악은 나더러 서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노동교양소에 도착한 당일 저녁, 그것들은 “전화(轉化)”를 시작했고 온 밤을 자지 못하게 했는데 내가 졸기만 하면 감방 우두머리가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이모 자지 말라!”고 하면서 머리를 숙이지도 못하게 하고 눈을 감지도 못하게 하였다. 다음 날, 감방 우두머리는 방안 위생청결을 하면서 혼잣말로, “오늘은 정말 신기하다. 나의 발굽이 잠깐 사이에 세 번이나 끼었다.” 라고 하였다. 그것은 그의 발이 침대판을 디디자 단번에 갈라진 것이었고 물론 발을 상했다. 그는 사후에 자신이 보응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에 대한 태도가 좋아져서 나는 새벽에는 좀 잤다. 한 번은 방에서 사오(邪悟)한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 하며 “우리가 금방 왔을 때는 어떤 모양이었는가? 매일 서 있어라! 왜 이리 고운가, 꽃과 같다. 일어섯!” 하고 흉악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도 따라서 나더러 서라고 했다. 나는 정말 일어섰다. 그 감방 우두머리가 들어와서 보고는 “너희들 누가 이 이모를 서있게 했어? 이모, 빨리 앉아요.” 하면서 나의 어깨를 눌러서 앉혔다.

다음 날 아침 식사할 때. 그들은 밥을 들고 들어왔는데 나는 그 죽에 약을 넣었다는 것을 알고(대법제자는 초상적이다), 죽이 너무 걸어 물을 붓겠다는 구실로 죽을 쏟아 버렸다. 우두머리는 즉시 “왜 밥을 버리는가?!”고 소리쳤다. 이때 감방 밖에 숨어 있던 경찰들이 단번에 들이 닥쳤다. 보아하니 그들은 사전에 모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속이면서 그것은 혈압을 낮추는 약이지 다른 약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어떠한 약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악한 환경에서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전화(轉化)”되었다. 사악은 나를 위협하며, “이곳은 백분의 백으로 전화되는 곳이니 여기에 왔으면 전화되어야 한다. 누구도 전화(轉化)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했다. 나는 “전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특별한 압력을 느꼈다. 한 우두머리가 “당신은 그것들의 사상을 접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단번에 그 말뜻을 알아듣고 마음이 확 트였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하신 것이고, 또한 내가 대법에서 수련해낸 정오(正悟)이므로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한무리 사오한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사악한 이치를 주입할 때 나는 근본적으로 듣지 않았고, 그들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당신이 나를 구도하는가? 아니면 사부님께서 나를 구도하시는가?”고 물으니 그들은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사부님께서 나를 구도하는데 당신들은 여기에서 손가락질하면서 무슨 짓을 하는가? 할 일이 있으면 가라!” 라고 했다. 악경은 일찍이 나를 질책하면서 “이 사람은 다루기 힘들다.”고 했다. 나는 “당신들 말이 옳다고 해도 나는 삼서를 바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어떤 악경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단식하는데 당신은 왜 단식하지 않는가? 고 물었다. 나는 단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힘내서 먹고 배불리 먹고 나갈 것이며 당신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너무 연약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으므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지금 회억하면 경찰에 대한 선(善)이 결핍했었다.

노동교양소에서 나는 온종일 머리속으로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면서 일찍이 생사관 밖에 있었으며 생사는 근본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나의 체험이라면 당신이 법에 있고, 바르게 한다면 사악은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교양소에서 한 달 남짓 있는 동안 그 누구도 나를 때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는 도리어 아무 것도 쓰지 않았지만 나왔다. 표면상으로는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지만 사실은 노동교양소에 나를 넣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올때쯤 되어 나는 꿈을 꿨다. 내가 시험에 참가했는데 시험을 마치자 사부님께서 시험지를 말면서 “이 시험 답안을 아주 잘 썼다!” 라고 하셨다.

* 박해를 부정하고 발정념을 많이 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 파출소와 직장에서는 다시 나를 박해하려고 날마다 와서 교란했다. 전화를 걸고, 문을 두드리며 압력이 컸다. 수시로 일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졌는데, 머리속으로는 날마다 사람의 방법으로 그들을 대처하려 했다. 그들이 어떻게 오면 나는 어떻게 피하고 무슨 방법이든 다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할수록 길이 없었다.

어느 하루, 나는 사람의 방법으로는 무슨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므로 나는 법공부, 연공을 잘하여 심성을 제고하면서 자신을 사부님께 완전히 맡기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고 생각했다. 바로 나의 상태는 단번에 변했고 마음은 밝아져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사실 나의 그런 사람의 생각은 모두 사악이 나에게 가한 것이고 그것이 나더러 생각하게 하여 나에게 집착을 조성하고 이 기회를 빌어 나를 박해했던 것이다. 내가 법에서 명백한 순간에 상태는 즉시 변했는데, 어떠한 시간 차이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줄곧 자신의 일사일념의 수련을 중요시하고 있다. 내가 어느 일념이 그르다고 인식하면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 금방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때에는, 정말 안 되면 나는 “파룬따파 하오”를 읽는데 이것은 만능이다.

2003년 가을, 사악이 또 와서 교란하려 했다. 나는, ‘수련인은 모두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대법에서 수련하기에 당신은 나에게 용해되어야 한다. 내가 잘못했다고 나를 박해하고 나더러 수련하지 말라고 하면 이것은 나에 대해 불공평하다! 사부님은 우주의 주이다. 나는 사부님께 당신 낡은 세력을 고소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부좌하고 허스한 후, 사부님께 “사부님, 저는 수련인입니다. 제가 잘못했다면 저에게 수련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두 손을 허스하는 순간, 나의 손이 하나하나 빽빽이 줄을 서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고 층층의 신체가 모두 낡은 세력의 죄증을 국문하고 있었다. 그 시각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샘처럼 솟아나 반나절이나 울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체가 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법 공부와 발정념을 종래로 늦춘 적이 없다. 2003년 가을부터 나는 고밀도의 발정념을 가강했다. 나는 발정념할 때 신(神)의 상태임을 느꼈고, 신이 사악을 제거하고 신이 법을 실증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그 몇몇 사악의 우두머리에 대해 발정념을 할 때, 예를 들면 이 며칠 전문적으로 사악의 우두머리에게 하나씩 바꾸어 가며 발정념을 했는데 발정념을 할 때마다 집안에서 “파” “땅”하는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다음 날까지 발정념을 하면 소리가 없다. 다시 다른 것을 바꾸면 또 이렇게 소리가 들린다. 비록 내가 발정념을 할 때 다른 공간의 진상은 볼 수 없지만 나는 사부님의 위력이 매우 크다는 말씀을 믿는다. 일반적으로 나는 14개 정각 시간 마다 발정념을 한다. 만약 북경에서 사당(邪黨)이 회의를 열 때면 나는 매일 18개 정각 시간에 발정념을 했고, 줄곧 2008년 봄까지 견지했다. 나는 발정념할 때 소유의 간격을 돌파하자는 일념을 가하였다. 최근에 사악은 또 ‘10.1’을 준비하였기에 나는 북경을 향해 발정념을 했는데, 북경이 나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조금도 떨어져진 감이 없이 마치 근거리 발정념과 같았다.

* 고생을 낙으로 여기며 세인을 구도

2002년 하반기에 나는 정념으로 노동교양소를 뛰쳐나온 후 진상을 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거센 물결 속에 들어섰다. 그 몇 년은 사악이 아주 창궐할 때였다. 시에서 늘 사람을 파견하여 나를 감시하고 납치하려 시도했기에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매번 저녁 무렵에 출발하여 2시간 남짓 자전거를 타고 가면 날이 어두워서 농촌에 도착하고 밤중에야 집에 도착했다. 농촌 길은 아주 나빴는데 특히 비가 온 후에는 더욱 나빴다. 사악이 자료를 주워가는 것을 피하기위해 나는 안전하고, 깨끗하고도 합리한 곳에 자료를 놓으려고 많은 길을 걸었는데, 발톱이 빠진 고통도 잊었다.

한 번은 사악이 가상을 연화하여 나를 위협했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는 한편 뒤에서 한 남자가 나의 뒤를 따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교차로 갈림길에서 민첩한 속도로 굽어들어 그를 떼어 놓았다. 일반적인 이치대로 말하면 그는 근본 내가 어디로 굽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계속 자료를 배포하다 돌아보니 그가 또 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되돌아 생각해 보니 바로 사악이 연화해낸 가상이 내가 두려워하는 가를 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7년 까지 직장에서는 나를 박해하여 퇴직절차를 밟아주지 않고 달마다 200여 위안의 생활비를 주었다. 나는 혼자서 공부하는 딸애를 섬겨야 했다. 이웃들은 내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걱정된다고 했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들의 쾌락을 누리고 나도 나의 쾌락이 있었다. 머리속으로 날마다 진상하는 일을 생각하다 보면 무슨 여유가 있어 돈을 생각하겠는가? 사실 생각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사부님의 “어떠한 마음도 내려놓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하노라면, 일체가 곧 그 속에 있다.”(《도항》〈워싱턴 DC 국제법회에서의 설법〉)라는 법이 기억난다.

2년 전에 나는 동수의 도움으로 가정 자료점을 건립했다. 당시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손에 있던 돈으로 컴퓨터를 구입한 후 프린트 기계를 사려고 하니 돈이 없었다. 500 위안이 있었는데 이 돈은 둘째 오빠가 세상을 뜬 어머니의 3년 제사에 쓸 돈이었다. 나는 그 돈으로 프린트기를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사전에 친척들에게 그때 가서 돈을 빌려 쓰면 된다고 했다. 돈을 써야할 때가 되어 집을 뒤지자 돈이 500 위안이 나왔다. 나는 당시 이상하기만 했다. 이전에 여러 번 뒤졌으나 정말 일전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료점을 꾸리는 초기에 동수가 나에게 비품을 주었고 나중에 직장에서 주동적으로 퇴직수속을 했기에 자력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10여 위안의 생활비를 썼다. 만약 어느 날 소모품을 사는데 몇 십 위안을 쓰면 그 다음 몇 일간은 돈을 쓸 수 없었다. 나의 생활은 매우 간단했다. 좋은 것을 먹을 필요 없이 배가 부르면 되었고, 어떤 때에서 1위안의 가격의 야채로 하루를 먹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좋은 것을 사면 나는 차한 것을 샀다. 평소 손에 100~200 위안이 있으면 아껴 쓰면서 며칠간 버티면서 돈이 적지 않다고 여겼다! 지금 되새겨 보면, 나 자신이 이런 긴박한 나날을 걸어 왔다고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매우 기쁘다.

*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려면 생사관을 돌파해야 한다

금년 설날, 오전부터 발열이 시작되어 오후에는 더 심해졌고 저녁에는 온 몸에 식은땀이 났다. 그런 후 연속 3일 설사하더니 온 몸이 무기력하고 정서적으로 가라앉은 상태가 되었다. 이전에 매번 병업관을 넘을 때, 오직 법에서 깨달고, 바로 찾기만 하면 금방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1주일을 끌었다. 안으로 찾았지만 효과가 없어 나는 발정념으로 박해를 제거했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생명의 마지막에 직면하여 수시로 세상을 뜰 가능성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심지어 어떤 때에는 애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들이 생각났다. 나중에는 사람마다 자기 운명이 있는데 그들의 운명은 내가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월 8일, 나는 법 공부 팀에가서 법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법』을 외웠다. 동수가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생명이 마지막인 것 같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흥취도 없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딸애가 애교를 떨었지만 한바탕 말해 놓고 저녁에 목욕을 할 때 자신의 잘못이 생각났다. 대법제자는 누구에게나 자비해야 하고 자기의 자식에 대해서도 자비해야 한다. 이때 갑자기 ‘마지막이란 것은 사람의 것이다. 그가 죽는다, 그는 미래가 없다는 이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함으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죽을 수 없다. 아직도 나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나는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머리속에 쉴 사이 없이 늘 수련 중의 일을 생각하여 적지 않은 법리를 깨달았다. 이 며칠 나는 많은 법리에 대해 돌파하지 못했다. 내가 사람의 것을 사람의 것이라고 인식되었을 때, 이튿 날 상태가 좋아졌다.

또 4일이 지났다. 아침에 애들에게 아침밥을 지어주고 좀 자려고 침대에 눕자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가 나타났다. 온 집안의 물건이 마치 물과도 같이 “쏴” 날아다녔다. 당시 나는 경각성을 높여 “오, 이것이 또 왔구나.” 하고 느꼈다. 나는 “생로병사는 속인의 일이고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깨어난 후, 온 몸이 가뿐하고 심태도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이 또 관을 넘은 것으로 인하여 기뻤다.

나중에 나는 다른 노년대법제자와 교류했다. 그도 생명의 마지막이고, 수시로 세상 뜰 수 있다는 이런 상태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사부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념도 그로 하여금 생사관을 돌파하게 했다.

최근 중ㆍ노년 동수가 먼저 가는 정황이 자주 있기에 나는 이 체험을 써내어 동수들을 깨우쳐 생로병사는 속인의 일이므로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명쌍수의 공법이므로 마땅히 죽지 않는다. 그것은 사부님의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 주려는 것이다. 이런 일에 직면하여 ‘진짜 나’와 ‘가짜 나’를 분별하고 절대 그것을 따라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생각하기만 하면 구하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는 모자라며 그것을 돌파해야 하고, 사람의 생로병사를 돌파해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잃어버릴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당장 일을 하는데 손실을 가져오게 되는데, 대법제자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더 있음으로 하여 아주 많은 세인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금생에 대법수련의 만고기연을 얻고 이런 위대한 대법에서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구도하심으로 하여 나는 너무나 행복하여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금후 대법 속에서 더욱 순정한 대법의 한 입자가 되겠다. 만약 법에 어긋난 인식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이 자리를 빌어 밍후이왕 동수들에게 문안을 전한다. 나는 밍후이주간의 수반으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밍후이왕은 나에 대한 도움이 특별히 컸고, 나로 하여금 많은 수익을 얻게 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고맙습니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4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문장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09/11/22/11254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