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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일을 잘하는 중에서 승화

글 / 료우닝 선양시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2일 】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신을 뒤돌아보니 대법 중에서 수련한지 이미 11년이 지났다. 이 11년의 비바람속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너무 많은 지출을 하셨다. 나는 수련상태가 평범하다보니 늘 뭐 쓸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존의 고도(苦度)에 부끄럽기만 하였다. 오늘 나는 위대한 사존에 대한 비할바 없는 존경심과 은혜에 감동된 마음으로 사존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도(道)에 들어와 법(法)을 얻다

나는 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당(邪黨)에 의해 무신론 교육을 많이 받았으므로 나 역시 무신론자였다. 1998년, 남편이 갑자기 간암에 걸리게 되었다. 베이징(北京)의 모 병원에서 수술하였지만 호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나의 마음은 극도로 공황상태가 되었으며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신(神)에게 보호해 달라고 청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구원을 청하려고 하여도 어떻게 누구에게 기도를 하여야 하는지 캄캄하였다.

바로 이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 회사의 한 동료가 집으로 병문안 왔는데, 파룬궁을 소개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하였다. 우리는 기꺼히 승낙했다. 그 다음날 그는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 몇 권을 가져왔다. 바로 《전법륜》만 없었다. 남편은 집에서 병을 치료하면서 이 몇 권의 책을 보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는 설사하기 시작했는데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약을 먹은 후의 부작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의사와 약사에게 전화하여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약은 그러한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설사가 계속 멈추지 않아 탈수가 오게 되었다. 이리하여 하는수 없이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신체가 호전되었는데 한 달이 지나 바로 출근할 수 있었다.

사실, 나 역시 온 몸은 병투성이였다. 비록 남편처럼 그러한 불치병은 아니지만 사는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느낌으로 나날을 보냈다. 매일 머리가 아파 눈도 뜨기 싫었다. 또 허리와 다리까지 아파 층계를 오르내릴 때마다 아주 힘들었으며 또 변비에 귀도 잘 들리지 않았고 눈도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는데, 원래 근시였다. 온 몸의 부속들이 마치 모두 쇠퇴한 모양으로 매일 이를 악물고 발악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남편의 신체가 호전된 후 나의 부담은 경감되었다. 나도 사부님의 그 몇 권의 책을 보기 시작했다. 보자마자 흡인되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다. 심지어 한 번 다 본 후 책임자에게 돌려 줄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전법륜》을 포함하여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때에야 모든 책을 본인에게 돌려 주었다. 내가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모두 본 후 《전법륜》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바로 신체가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바로 머리가 맑아지고 변비가 없어져 거리를 걸을 때 몸이 너무 가벼웠다. 이때에야 돌이켜 보면서 남편의 병이 급속히 호전되었던 이유는 바로 사부님께서 정화해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어서 나의 두 딸도 연속 대법의 길에 들어섰다. 그들의 신체도 역시 수련을 통하여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전체 가족을 구해 주었으므로 나는 어떻게 보답할지 몰랐다. 오직 능히 더욱 정진하여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밖에 없었다.

2. 대법제자는 마땅히 정정당당해야 한다

1999년 ‘7.20’ 이후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모두 끊임없이 대법과 사부님께 죄를 뒤집어 씌우고 모독하였다. 당시 나는 아직 밍후이왕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부님께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가슴을 태웠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나로서는 오직 천 원 짜리 일제 반도체 라디오를 사서 미국에서의 목소리 혹은 기타 국외 방송에서 알려지는 사부님의 소식을 알아 보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도 얻지 못했다.

어느 날, 전국 각개 부문에서 동시에 회의를 열었는데 개개인에게 태도 표시를 한 다음 상급에 회보하라는 것이었다. 회의에서 누구도 모두 말이 없었다. 나는 모두들 내가 태도를 표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었고 또 나는 온 동네에 대법이 좋다고 선전하였으므로 모두들 내가 연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발언할 수 밖에 없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고 있어요. 저희 가족 환자들은 모두 연공하여 좋아졌고 또 모두들 이 공법의 신기한 효과를 보았지요. 바로 신체를 건강히 하기 위해서이지 그 어떤 다른 목적은 없어요. 만약 누가 나에게 그 어떠한 강박으로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해도 저는 두렵지 않아요. 앞으로 계속 연공할 거예요!”하고 태도 표시를 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좋은 동료가 나에게 “당신은 한 지도간부의 일원(총공정사)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은 상급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예요?”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나의 눈에서는 단 번에 눈물이 샘솟듯 흘러 내렸다. 당시 나는 ‘사부님은 너무 억울하다! 어쩌면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나에게 말했던 그 동료가 연공하지 않겠다고 태도 표시를 하였던 것이었다. 또 몇 명 본래 남몰래 연공하던 사람들도 모두 감히 자기가 연공한다는 것을 승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남편은 어떻게 태도 표시를 하였는지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바로 주요 대상으로 되었다. 그런데 상상외로 회사에서 지방 정보과에 회보할 때 회사에는 연공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미친듯한 박해 가운데에서도 나는 도리어 마치 세상밖의 무릉도원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환경은 사부님께서 만들어 주었으며 이런 좋은 환경을 이용하여 더욱 많은 진상을 알리면서 절대로 안일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사업상 편리를 이용하여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평소 업무상 수요로 늘 일부 외지 고객을 접대하게 되었는데, 당시 밥상에 마주 앉으면 파룬궁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파룬궁을 논할 때 나는 바로 모두에게 솔직하게 “선전하는 말들을 듣지 마세요. 이 공법은 정말로 좋아요. 저희 가족 모두 연공하고 있는데 여하여하하게 신기한 일들이 나타났어요.” 하고 알려주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상을 알게 하였다. 물론 개별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면전이라 무어라고 말하지 못하였다.

동료들에게도 예전처럼, 만나면 바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하였다. 어떤 이는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좋아해요! ” 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지금 사회상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 한 사람을 신고하면 사례금 10원을 준다고 하는데, 당신은 계속 말하고 다닐거예요?” 하고 질문했다. 나는 한 마디로 “누가 그 10원의 돈을 벌려고 하겠어요! 신고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세요!” 하고 몰아부쳤다.

어느 날 저녁, 소장이 전화로 “지금 텔레비전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 발광하고 있어요. 한번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당신은 집에서만 연공하고 더이상 밖에 나가 마구 떠들지 말아요. 그렇게 할 수 있지요?” 하고 말하였다. 나는 소장이 나를 위하여 하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찍이 그에게 진상을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바쁘지 않으면 역시 연공할 것이라고 했었다. 표면상에서 나는 그에게 반박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집에서 가만히 연공하고 있으면 누가 법을 실증하겠는가. 좌우간 그는 속인이므로 이해할 수 없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의 말을 꼭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또 늘 집전화로 먼 곳에 있는 동창에게 진상을 말할 때 마치 아무런 고려도 모두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데 그 무슨 아무런 일도 없었다.

출장갈 때에는 열차에서도 진상하였다. 한 젊은 청년이 대법에 대해 아주 흥취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대법의 신기함을 이야기해주었고 또 과학적으로 무엇 때문에 미신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또 일부 문제들을 나에게 물었다. 나는 모두 그에게 대답해주었다. 열차 안에는 일찍 전등이 꺼져 있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밤중이 되었다. 그는 늘 웃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그의 명백한 일면이 기뻐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무슨 우스운 이야기를 한 것도 없는데 무엇이 그렇게 흥분되었는지 그는 바로 웃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이 그의 명백한 일면이 웃고 있는데 그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생명이 진상을 알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도 따라서 아주 기뻤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사악의 박해가 가장 창궐하였다. 본 지역의 자료점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설비를 전부 몰수당하였으며 동수들도 연속으로 납치되었다. 동수들이 자료의 내원을 잃은데 대해 나는, ‘이곳이 아직 비교적 안전하니 내가 마땅히 주동적으로 가서 동수들의 이러한 난관(이때 나는 곧 퇴직함)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001년 초에 나는 컴퓨터와 레이저 프린터를 각각 한 대씩 샀다. 당시는 컴퓨터 가격이 제일 비싼 때라 나의 부탁을 받은 사람은 지금 시세가 높으니 좀 지나 가격이 떨어질 때 구매하라고 권하였다. 나는 “가격이 높아도 구매할 것이예요.”하고 대답했다. 이렇게 설비도 아주 빨리 구매되었다. 사부님의 가지하에 나는 아주 빨리 본 지역의 연공장의 협조인을 찾아가서 오게 된 의도를 말하였다. 동수는 인력 자원이 부족할 때 사부님께서 마침 이러한 공간을 보충하게끔 안배하셨다고 하면서 아주 환영하였다. 이리하여 일부 배포될 자료와 스티커 표어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대법제자들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가면서 때려도 무너지지 않고 붙잡아도 분산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마치 진정한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이 사부님의 임무를 맡고 내려온 것 같았는데 사악들의 간담이 서늘하게 하였다.

사악의 박해가 가장 발광적인 시기에 능히 이러한 느슨한 환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사악이 어느 사람을 편애한 것이 아니다. 나의 가장 큰 체험으로는 바로 정정당당하게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에 자신은 아직 많은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지만 오직 당신의 층차의 법이 당신에 대한 요구에 부합된다면 역시 바로 관을 넘을 수 있다.

3. 막다른 골목에서 길이 열리다

남편은 법을 얻은 후 신체가 급속히 호전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 그는 앞에서 씩씩하게 걸었는데 마치 건장한 젊은 청년 같았다. 이것이 바로 홍법에서 확실히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다. 그의 이러한 상태는 줄고 3년 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그는 늘 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면서 의사가 그에게 주기적으로 검사하라고 하면 그는 주기적으로 가서 검사하였다. 처음에는 내가 배동하여 갔다. 나중에 내가 그에게 뭐라고 했는데도 그는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없어도 그는 혼자 검사하러 갔다. 그는 또 명(名), 리(利), 직위 등 많은 사람의 마음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2001년 11월경 예전의 병이 끝내 재발하고 말았는데, 그 이듬해 3월에 먼저 돌아가고 말았다.

남편을 간호하는 기간 동안 나는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모든 방법을 대어 그를 잘 간호하면서 일심(一心)으로 그가 호전되기를 희망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돌아가면 법에 대해 많은 손실을 줄까봐 걱정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끝내 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에서 나는 대법은 진정으로 능히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법 역시 엄숙하여 진정으로 그 일보에 도달했을 때에만 비로소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도리는 모두 뚜렷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간 후 나의 정서는 단번에 하락되었다. 마치 일체가 모두 끝난 것 같았다. 또 하나 밖에 없는 딸도 신변에 없다보니 방법을 대어 딸을 신변에 돌아오게끔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주 많은 속인의 마음이 모두 나타났던 것이었다. 하루는 딸이 나에게 “어머니, 제가 꿈을 하나 꿨는데 꿈속에서 저희 집안에 구멍이 있었는데 하나의 큰 쥐가 뚫고 들어왔어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후 나는 즉각 이 꿈은 좋지 않다고 예감했다. 나 역시 자신의 상태가 좋지 못한데, 이런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떤 일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며칠 후 정오에 금방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 동료가 전화로 “오후에 공안국에서 사람이 다녀 갔어요. 당신을 찾았는데 집에 없다고 하면서 여기 당신의 사무실에 와서 문을 봉해 놓았어요!” 하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나에게 점화(왜냐하면 사무실에 나의 컴퓨터와 복사기가 있었음)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즉각 수시로 지니고 다니던 돈과 물건을 준비하고 총망히 집을 떠났다. 집에는 다만 이혼한 딸이 두 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이들을 집에 남겨놓고 가는 나의 마음은 너무도 쓰라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래도 우선 외지에 있는 여동생의 집에 가서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에게 가장 근심되었던 것은 두고 온 아이 뿐이었다. 나는 집전화가 이미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떠날 임박에 딸에게 말하여 내가 전화할 때에는 두 번 울리고 끊어지면 딸이 다시 나에게로 전화하기로 약속하였다. 정(情)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던 나는 늘 딸을 걱정하면서 전화 통화를 하였다. 사실 이것은 아주 안전하지 못한 행위였다. 나중에는 전화 요금도 없어서 얼마 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고 또 100원짜리 새로운 카드를 구입했다. 이때에는 아예 전화가 되지 않았다. 때로는 전화에서 “이 카드는 통화를 제공할 수 없다.”고 알려 주어서야, 나의 안전을 위하여 사부님께서 전화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딸이 전화로, 사악이 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면서 핍박하여 어머니를 돌아오게끔 하려고 감시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상황은 긴급하였다. 여동생은 “언니, 보아하니 용감하게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하고 구원을 요청했다.

그 결과 그날 저녁 바로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나는 한 질퍽한 거리에서 고생스럽게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한 대의 차가 마주 오면서 나의 앞에 와서 “척”하고 멈췄다. 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차에 오르세오. 당신을 맞으러 왔어요!”하고 말하였다. 나는 “아이가 있는데 함께 앉을 수 있어요?”하고 물었다. 그는 즉각 옆에 있는 좌석을 열어 젖히면서 “이 좌석은 굽힐 수 있는 것이어서 능히 앉을 수 있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말로 “엄동설한에 숫불을 보내준”격으로 감동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이 생소한 꿈을 생각하면서 하나의 뜨거운 흐름속에 침투되었다. 바로 그 날 한 동수가 내가 가야할 곳을 연결해 주었다. 그때로부터 나는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쓸쓸함에 의해 하루가 몇 년이 되는 것 같이 힘들었다. 나중에 회사에서의 핍박은 갈수록 심해졌다. 딸은 전화로, 회사에서 나의 월급 지급을 중지하였고 또 방산에서 집을 몰수했고 그후에는 바로 사업에서 제명했다고 하였다. 하나하나의 사악한 소식이 전화로 들려올 때마다 마치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이미 집이 파산되었으니 생존의 길마저 모두 끊어진 것 같아 그야말로 살기 힘들었다. 저의 감당 능력도 거의 한계에 달하였다. 이때 나의 머리에는 이러한 물건들은 모두 사람의 것들이 아닌가? 하는 일념(一念)이 스쳤다. 그 무엇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속으로 ‘됐어! 아무것도 필요없어! 그들이 어떻게 하겠으면 하라지! 오직 사부님께서 나를 버리지만 않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 이 일념이 나오는 순간 사악들은 즉각 끝내 해체되었다. 일체 번거로움을 모두 버리고 나니 어렴풋이 사망한지 한 달도 안 되는 남편이 나타났는데, 마치 하나의 역사 인물처럼 기억속에서 그렇게 멀리 멀리 사라져 버리는데 나 자신마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하루종일 극도의 비통과 고민속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점화시켜 준 것이었다. 비록 오늘날까지 이러한 박해가 여전히 해체되지 않았지만 나는 사는 것이 아주 경쾌하다. 마치 하나의 새로운 수련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울러 내가 어디로 가던지 거기에는 모두 단체 법공부와 수련환경이 있었다. 나중에 본 지역 동수들의 중생구도 홍류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한 번 진정으로 대법수련은 그렇게 현묘하고 일체 변화는 모두 일념중에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4. 수련 중의 몇 가지 일

(1) 다시는 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두 딸은 내가 한 손으로 키웠다. 생활, 공부, 사업 또 그의 자식을 키우는데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이 고생하더라도 아이를 고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속인생활에서의 고정된 관념의 표현이었다. 법공부를 통하여 “사람은 바로 이 한 세의 연분일 뿐 두 눈을 감으면 각기 자기 갈길을 가게 되므로 누가 누군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로 이 정(情)을 내려 놓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련 후 한 시기 딸은 늘 나에게 말대꾸를 하였는데 심지어 아주 독하였다. 가끔 딸은 나보다 더 심하였다. 다만 그에게 한 마디 하여도 즉각 쏘아 붙이는데 “안녕하세요! 왜 아직도 이러고 저러고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내가 그에게 한 마디로 꾸짖었는데 딸은 즉각 “그러면 어머니가 없으면 다른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나요?”하고 대꾸 하였다. 그 한 시기 정말로 아주 힘들었는데 마음속으로 내가 정말 한 마리 ‘승냥이’를 키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죽은 후 두 눈을 감으면 누가 누구인지를 모두 모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눈을 아직 감지 않았는데도 모두 모르고 있으니 더욱 두 눈을 감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부님의 말씀은 너무나 틀림 없었다. 당시 사부님의 법에 따라 자신을 가늠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그를 떠난 후 다시는 모든 것을 아예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번 나와 부딪쳤다. 나는 “어느 때까지나 나는 여전의 너의 어머니야! 너는 절대로 반대로 나보고 너를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하면 안 돼!”하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바로 이 화제가 나를 깨우친 것이었다. 이것은 그래 사람의 말이 아닌가? 수련인이 어떻게 속인의 이치로 좋고 나쁨을 가늠할 수 있는가? 어쩌면 전생에 딸이 나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나는 평시에 남을 잘 질책한다. 자녀에 대해선 더욱 용납하지 않았다. 이것은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존재하는 집착을 버리려고 하니 천천히 무의식중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생각을 아예 버렸다. 바로 좋지 못한 말을 들었어도 역시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반응이 없다. 까다롭던 성격도 많이 좋아져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모른다. 가족도 화목하고 자녀 역시 대들지 않았다.

나는 수련인이 부딪치는 모든 일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다. 당신에게 그 마음이 없으면 당신에게 그러한 일이 올 수 없다. 모순에 봉착하면 문제의 옳고 그름에 의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옳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떤가? 모두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존재하는 그 마음을 찾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보이다.

(2) 엄중하게 삐인 것이 3일만에 사라지다

어느 날 저녁 7시경, 날이 막 어두웠을때 밖으로 진상자료 배포를 위해 나갔다. 한 비탈까지 갔을때 층계로 착각하고 발을 잘못 디뎌 발바닥이 단번에 180도로 돌면서 크게 삐게 되었다. 걸음 속도가 너무 빨랐고 또 관성의 충격에 의해 신체는 중심을 잃고 “팍” 하고 단번에 땅바닥에 넘어졌다. 아주 중하게 넘어진 관계로 순간 바로 인대가 끈어지고 뼈가 부러진 감각으로 인해 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나는 즉각 “사부님 빨리 저를 구해주세요. 저는 다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일반적으로 너무 중하지 않으면 저는 이렇게 쉽게 소리내지 않음).” 하고 구원을 요청했다.

외치고 외치면서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때 다리와 발은 완전히 무감각한 상태여서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시험해 보았는데 아직 능히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사악이 나를 박해해도 오직 능히 일어날 수만 있다면 바로 앞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한쪽 다리를 끌고 한 작은 지역까지 가서 줄곧 가지고 간 자료를 다 배포할 때까지 견지하였다. 배포가 끝나자 다리는 또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집까지 와서 여행용 신발을 벗고 보았는데 발등이 계란 절반만큼 크게 부어 있었다. 신발끈을 풀었을때 이 부은 곳에서 “찍찍”하는 소리가 나면서 잇따리 온 발이 전부 퍼렇게 변하였다. 그날 저녁 발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딸은 앉아서 발을 문지르라고 하였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 정말로 문지른다면 그때는 상처가 아픈 것이 100일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치로 생각한다면 바로 사람의 상태로 되기 때문에 수련인은 바로 마땅히 초상적인 이치에서 보아야 하였다. 저녁에 연공하려고 시도했는데 발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 연공을 할 수 없었다. 그 이튿날 저녁 사부님께서는 나의 신체를 조절하기 시작하셨다. 막 잠이 들었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단번에 발을 빠개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깜짝 놀란 나머지 잠에서 깨게 되었다. 좀 지나 금방 잠이 들었는데 또 한 번 그러했다. 이렇게 5~6차례 반복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시험해 보았는데 능히 가부좌할 수 있었고 능히 설 수 있었다. 예전에 발이 삐었을 때에는 이것보다 많이 경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이번에는 3일도 되지 않았는데 바로 좋아졌다. 나는 또 한번 사부님의 보호하에 대법의 신기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이 지난 후 나는 일부 위축되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는데 사악은 왜 아직도 나를 박해하려고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 한동안 소극적인 태도였다. 나중에 《2008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특히 박해 이후의 이러한 해에 당신들이 한 법을 실증하는 이러한 일들 중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쳤든간에,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이고 아무리 큰 고통이라고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해 올라오게 할 수 있다. 당신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든지, 법을 실증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든지, 혹은 개인의 수련제고를 위한 데서 비롯되었든지 간에, 마난은 같은 것이다. 당신이 여기건대 나는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나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 마난이 마땅히 길을 비켜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사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지만 이 낡은 우주의 세력과 낡은 우주의 생명 그것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 역시 당신들의 어려움이다. 바로 이러하기에 비로소 그러한 마난이 생길 수 있으며, 이 역시 대법제자가 부딪친 가장 힘든 일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에 대한 고도(苦度)를 감수하였다. 중생구도의 어려움에서 자신에게 아직도 그렇게 많은 좋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아내고 정말로 사부님께 부끄러웠다. 사부님의 이번 설법에서 중생구도의 이치를 알게 되어 재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3) 자비로 사람을 구하고 사악을 해체하다

발정념, 법공부, 진상 알리기를 통한 중생구도, 이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남겨놓은 수련의 노정이다. 하나가 부족해도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한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라면 반드시 엄격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해야 한다. 장기적인 진상 과정 중에서 늘 이러저러한 번거로움을 면할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들에게 불법신통을 주셨기에 우리는 마땅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경솔하게 사부님께 요청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너무나 많은 감당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늘 위험한 일에 봉착하면 모두 스스로 해결하였다. 문장이 길어지므로 아래에 그 한 가지 예만 들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소책자 “큰 난이 왔을때 어떻게 자신을 구하는가”를 배포할 때, 이 소책자를 한 고급 승용차 문 유리에 끼워놓은 후, 들고 있던 소책자 한 권을 땅에 떨어뜨렸다.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우려고 하는데 차의 주인에게 발각되어 황급히 주워들고 그 기사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앞으로 걸어갔다. 금방 열 발짝도 못가서 뒤에서 “서시오! 당신이 나의 차에 붙여놓았던 것이 무엇이요? ”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 안의 내용은 아주 좋으니 당신이 한 번 보면 알거예요.”하고 대답했다. 그는 또 음성을 높여 한 마디로 “당신 이리 와보세요!” 하고 말했다. 이때 나의 머리속에는 일념(一念)이 비추었다. 몇 년 동안 진상을 하였어도 모두 무사했는데 설마 이번에 붙잡히겠는가? 안 된다! 이것은 승인할 수 없다. 좌우간 그가 나를 발견했으니 아예 과감하게 말해야지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유 과정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되돌아 몇 발작 가는 중 이미 대처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내가 금방 그의 근처로 갔을때 그는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차문위의 소책자를 뜯었다.

그리고 심문하는 식으로 나에게 “말해요! 이 물건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누가 당신에게 하라고 시켰는가?”고 하였다. 나는 이때 그의 심문을 받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대로 내가 주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나는 허허 웃으면서 앞으로 두 발짝 더 다가가 그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아유! 젊은이 떠들지 말아요. 이 자료가 당신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는것 같은데 한번 보세요! 지금 하늘이 재난을 입고 사람들이 화를 이렇게 많이 입고 있지 않아요? 더욱이 당신은 차를 몰고 다니므로 항상 평안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죠. 당신은 이것을 한번 잘 보세요! 이 자료에서 뭐라고 알려주는가를? 큰 난이 왔을때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왜 아직도 나에게 이렇게 엄하게 대하고 있어요?” 하고 물었다.

내가 그에게 말하는 과정에 그의 얼굴 표정이 적대시 하던데로부터 온화해져 나중에는 웃었다. 그는 웃으면서 “큰 이모, 제가 한 번 큰 이모라고 부를게요. 이모가 말해봐요, 당신들은 XX당을 능히 대처할 수 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젊은이, 그 말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예요. 나는 XX당과 대응하는 것이 아니예요. 나는 이미 퇴직한 사람으로서 어느 정부 인원이 나에게 관직을 줄 것도 아니지요. 나는 오늘 바로 젊은이를 위하여 관건적인 시각에 능히 구도를 얻게끔 한 것 뿐이예요!”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이 없었다. 다만 그 소책자의 외면을 미약한 등광에서 볼 뿐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멍하니 그 소책자만 바라 보고 있었는데 마치 고정된 것 같았다. 그가 지금은 똑똑히 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나 모두 간단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간단하게 지나가고, 엄중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엄중해지는 것이다. 만약 자비로 그의 배후의 사악을 해체하지 않았다면 그가 바로 전화로 신고할 것인데 그때면 문제는 바로 엄중하게 변화한다. 중생구도 중에서 오직 대법제자만이 이 무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

(4) 병업관을 돌파하다

수련인의 길은 모두 부동하다. 때문에 개개인이 봉착하는 상황 역시 각기 부동하기에 참고가 없다. 그러나 지금 주위에는 노년 동수들에게 병업의 교란이 비교적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요한 것은 그래도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병업의 반응이 오면 바로 두려워 하는데 거기에 또 주위 혹은 가족 압력이 첨가되어 바로 약을 먹거나 병원으로 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바로 병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며 나중에는 우울증, 반신불수, 식물인간 혹은 사망까지 초래하게 된다. 예전의 동수들에게 하나 하나 연이어 이런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너무 안타깝다.

왜냐하면 수련인은 전반 수련 과정에서 항상 모두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가 하는 근본적인 고험을 겪게 되는데 가능하게 병업 혹은 심성상에서 나타난다. 병업이 왔을때 일단 자신이 병원으로 가려고 하거나 약을 선택한다면 바로 관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관을 넘지 못하면 다음에는 두 배로 되는 더욱 엄중한 난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 때에는 더욱 넘기 어려워 바로 상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은 병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믿지 못하는가? 나는 이러한 동수들을 위하여 아주 조급하다. 다음으로 동수 특히 노년 동수들에게 내가 병업관을 넘은 체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허리와 다리가 아주 엄중하게 아파서 층계를 오르내릴때 너무나 힘들었다. 수련 후 모두 좋아졌다. 후에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닐때 또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것이 형용할 수 없이 힘들었는데 앉아서 울기까지 하였다. 이상한 것은 낮에 밖에 나가 진상자료 배포할 때에는 가끔씩 7층, 10층의 고층 건물을 능히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집으로 돌아온 후 특히 저녁에 잠들 때에는 잠들 수가 없었다. 후에 가부좌를 하면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가끔씩 저녁에는 세 번이나 일어나 가부좌를 할 때도 있었다. 낮에 무엇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후에 점차적으로 호전되었다가 한 시기 지나 또 재발하였다. 이렇게 세 번이나 반복되었는데 매번마다 그 전보다 경하였다.

바로 나중에 허리와 다리가 아플 때 갑자기 대변에 피가 나왔는데, 피가 절반은 되었다. 나의 두 딸은 놀라서 자주 어디가 아파요? 위, 배가 아파요? 하고 물었다. 또 그 배출된 피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고 이상하여 물어 보았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고 싶으면 어디에서 왔겠지. 너희들은 모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아무 일도 없으니까!” 하고 안심시켰다. 그 결과 3일 동안 피가 연속으로 나온 후 4일째 되는 날에는 정지되었다가 5일째 되는 날 또 피가 나왔다. 그리고 그후부터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을 경과한 후 허리와 다리가 가벼워 감각이 너무 좋았다.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사람의 이치로는 영원히 똑똑한 해답을 얻을수 없으나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해주시기 때문에 보증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우리 수련인은 모두 알고 있다. 지금에 와서 말은 하기 쉽지만 정말로 그때 당시 대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은 그래도 ‘내가 약을 먹지 않았다가 그만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보증한다는 표를 줄 수 없다. 믿고 안 믿는건 본인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수련은 바로 수련하려는 그 마음에 달린 것이다.

5. 맺는 말

수련중에서 봉착되는 일은 아주 많다. 신기한 일 역시 아주 많다. 내가 구체적으로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전반 수련 과정 중에서 어느 곳이나 모두 사부님의 보호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의 월급이 사당에서 정지된지 근 8년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쓰는 돈의 액수는 예년보다 더 많았다. 생활상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곤란하였지만 역시 아주 상쾌하였다. 이렇게 근심 걱정이 없는 환경에서 순리롭게 오늘까지 대법중에서 수련해오게 된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투고는 제가 정성들여 쓴 것으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한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체험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 대륙인터넷법회투고 >제6기(2009년)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2/2115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