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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건을 다하여 법 실증, 진상 알려 사람 구원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2일】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님들 안녕하십니까!

나는 직장에서 줄곧 정무(政務) 일을 해온 대법제자이다.

나는 95년에 법을 얻어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부터 몸에 있던 십여 종의 난치병들이 전부 나았고, 몸은 청춘의 활력을 되찾았다.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헤어 나오게 된 그 격동된 마음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길 없었다. 그 때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고, 대법이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으니 나의 생명은 대법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꼭 일과 생활 중의 각종 환경 조건과 기회를 이용하고 각종 방식을 취하여 법을 널리 홍보하고 법을 실증하며, 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아래에 나는 세 가지 면으로 사존님과 동수들에게 회보하고자 한다.

1. 개인수련 시기 : 대법을 널리 홍보하고, 대법 실증을 자신의 맡은 바 직책으로 삼다

(1) 사업 중의 사소한 일, 자신의 바른 몸가짐으로부터 대법을 널리 알리다

나의 신체가 건강을 회복하자 직장의 지도자와 동료들, 그리고 무릇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병을 떼고 몸을 건강히 하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기이한 효과를 목격하게 되었다. 대법은 나의 신체를 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나의 심령을 정화하였다. 나는 사업 가운데서 심성제고에 중시를 돌리고 명리를 담담히 보았으며, 일을 함에 남을 배려하여 지도부의 높은 평가를 받았고, 직장의 사무실 주임, 감찰주임, 공회주석, 여성 직원 주임 등으로 등용되었다. 업무 외의 이 수두룩한 정무는 모두 내가 책임졌다. 나는 사업이 아주 다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수련과 사업〉 가운데서 지적하셨다. “사실 大法의 내포는 아주 깊다.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음은 속인의 사업을 내려놓음을 가리킨 것이 아니며, 명(名) · 이(利)를 내려놓음은 속인사회를 이탈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거듭 제기하였다. 속인사회 중의 수련은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고.”, “속인사회의 지도사업을 모두 개인적인 명(名) · 이(利)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우리 이런 사람이 가서 한다면, 장차 국민에게 얼마나 큰 좋은 점을 가져올 것인가? 만약 탐욕심이 아주 심한 사람이라면 사회에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만일 사업하는 사람이 大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의 기풍은 곧 어떠할 것인가?”, “宇宙大法(佛法)은 최고에서부터 최저의 한 층에 이르기까지 관통된 것이며 완전한 것으로, 속인사회 역시 한 층 法의 구성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大法을 배워서 사람마다 모두 사회의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 속인사회는 곧 존재하지 않게 되며 이 한 층의 法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속인사회 역시 가장 낮은 한 층에서 佛法의 체현이며 또한 이 한 층 佛法 중에서 생명과 물질이 존재하는 형식이다.”

나는 지도자 부서에서 상하로 협조하면 접촉하는 사람도 많을 것인데, 이는 바로 내가 법을 널리 전하고 법을 실증하는 좋은 기회로 될 것이니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법의 기점에 서서 사양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일에서 나는 쩐싼런(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였으며, 많은 직책을 짊어졌다 하여 지도부에 종래로 보수를 따지지 않았고 탐오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바른 몸가짐으로 대법을 널리 전했다.

예를 든다면, 직장에서 물건을 살 때에 나는 종래로 청구표를 더 많이 떼서 지폐를 더 많이 가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지도부의 신임을 얻었다. 지도자는 나에게 일을 맡기면 제일 안심된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이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이라고 알려 주는 동시에 대법 중에서 깨달은 득과 실, 덕과 업에 대해 그들과 담론한다. 직장의 언니 한 분은 나와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나보고 자기 아이에게 잉크 두 병을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기쁘게 대답하고는 이튿날 두 병을 집에서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즉시 내가 연공인이라서 국가의 것은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고는 아주 미안해했다. 우리는 마주 앉았기 때문에 아주 편리하게 나는 그녀에게 《전법륜》 책을 펼쳐 보였다.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면에서 뚜렷한 예는 특히 많다. 한 수련생이 산동(山東) 모모(某某)시(市) 편직물공장에 다녔는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연마(煉)하도록 가르쳐 준 결과,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으며, 어떤 직원 역시 자신이 이전에 가져갔던 것을 모두 공장으로 도로 가져왔는데, 전 공장에 이런 정황이 나타났다.” 이 언니는 이해하였다면서 선생님이 정말 훌륭히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영업 홀에 한 점원이 있었는데, 하루는 직장에서 아이의 연습문제를 복사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기쁘게 받아 들고 문방구에 가서 복사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내가 밖에서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떤 영문인지 알고는 미안하기도 하고 감동되기도 하여 연거푸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아요. 당신은 계산대 앞에서 일에 바쁘니 일이 있으면 내가 처리해 줄게요.”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하여 동료들은 내가 연공인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되어 자연히 나에게 더는 국가의 것으로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요구를 제출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일에서 진실을 도모하고 공평하게 대한다. 시험을 주관할 때에 제도 규정을 위반한 데 대한 벌금을 집행할 때에는 직원이나 지도자나 똑같이 대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의견이 없었다. 일을 함에 진실을 도모했기 때문에 직원의 신임을 얻었다. 한 번은 상급의 요구대로 경쟁을 통해 투표에 따라 임용하게 되었는데 아주 격렬하였다. 직원들은 나를 찾아와 심사위원회에 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고 없다면 지도부를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내가 재삼 있다고 보증해서야 직원은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시름 놓고 찾아가지 않겠어요. 공평하게 초빙하면 우리도 초빙되든 안 되든 인정할 겁니다.”

나는 업무 상 사소한 일을 대법 수련에 스며들게 하였다. 대법의 요구대로 바르게 하면 사람의 미움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대법이 바르고 배우는 사람도 바르니 자연히 대법을 널리 선전하게 된다.

(2) 사람들에게 내가 일에서 성과를 얻은 이유는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이라고 정정당당하게 알려주다

대법은 나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어 사업 중에서 나의 전문기능을 초상적으로 발휘하게 하였는바, 성과가 돌출하여 전 성, 시 동종 업계 지도부와 동료들의 호평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성, 시급 동종 업계 경험 교류 대회에서 전형 발언을 하여 경험을 소개하였다. 발언원고를 쓸 때, 《정진요지》〈법정인심〉에서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였다. “수련이란 위대하고 수승(殊勝)한 일인데, 왜 정정당당하게 취재하는 기자에게 당신은 大法을 수련하여 이리된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는가?” 그리하여 나의 발언 중에는 대법의 요구대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했다는 것이 스며들었다. 발언의 결말에 이런 업무 성적은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결과라며 격앙되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을 때, 장내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가 사업을 잘 전개하였으므로 늘 지도자가 검사를 왔고, 어떤 직장에서는 참관을 왔으며 기자가 인터뷰 할 때도 있는데, 나는 될수록 시기를 틀어쥐고 정정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내가 성과를 취득하게 된 것은 대법을 수련한 이유라고 알려준다.

(3) 현지에서 법을 수호

기억에 박해 전인 어느 해인가 우리 시 신문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소식이 실렸다.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라 생각하고 나는 동수들과 함께 신문사 지도자, 편집자 등을 찾아가 진상을 밝히고 우리들의 요구에 대답하게 하였다. 이튿날 그 신문은 사과를 했다. 우리는 법의 존엄을 효과적으로 수호하였고, 사람들의 의혹을 해체하였다. 96년 《광명일보》 사건 이후에 각지에 연이어 나타난, 사실에 속하지 않는 말에 대하여 나는 대법의 명예를 위해 직접 글을 써내어 법을 수호하였다. 그때 나와 동수들은 사부님의 《대노출》, 《뿌리를 캐다》, 《누구를 위해 수련 하는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등 경문을 반복적으로 학습함으로써 장차 정법시기에 진입하여 확고하게 수련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실천 중 체득 하였는바, 법의 기점에 서서 대법을 중요한 위치에 놓고 속인사회에 부합되게 수련하며, 법 중에 용해하면서 자신의 수련 상태를 업무 중에 반영되어 나오게 하는 것은 수련에 영향이 없다. 출근하여 시간을 교묘하게 안배하면 나는 법공부도 할 수 있고, 법을 선전할 수도 법을 실증할 수도 있었다. 쉬는 날이면 여가 시간에 연공장을 조직하고 법회를 열며, 수련서적을 편집하는 등 홍법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다. 날마다 대법 속에 푹 잠길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비할 바 없는 행복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 시간이 매우 보람찼다고 여길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의 내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2. 정법시기 :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자신의 맡은 바 직책으로 삼다

(1) 성, 북경으로 법을 실증 하러 가다

‘4,25’ 이후 대법이 마난을 당하리라는 예감이 들어 편지로 진상을 알리는 외에도 수시로 법 실증 하러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99년 7월 19일, 나는 고향에 간다는 명의로 휴가를 맡았는데, 단지 이틀만 휴가를 주었으나 나는 갈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20일에 성 정부에 도착하여 나와 동수들은 손에 손을 잡고 어깨 나란히 앉아서 하루 동안에 끊임없이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려 온 장내에 있던 모든 경찰을 감동시켰다. 성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고는 그 날 저녁에 자동차를 타고 닷새가 걸려서야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때 우리는 날마다 사부님의 《홍음》을 외웠고 날마다 천안문 광장에 갔다. 천안문 광장에는 수천만의 대법제자가 모여들어 사부님과 대법에 공정함을 돌려달라고 하여 사악을 굉장히 놀라게 하였다.

20여 일 후에 나는 직장으로 돌아왔다. 지도부에서는 좌담회를 열고 나의 일 성과를 긍정한 한 후에 왜 갔느냐고 물었다. 나는 두 방면으로 말하였다. 하나는 일을 함에 남을 배려하고 지도부를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한 각도로부터 말하였다. “만약 제가 가지 않으면 하늘땅을 뒤덮는 이번 투쟁에 참가해야 합니다. 대법은 저에게 건강을 주었고 저에게 마음을 닦고 착해지며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비판 폭로 투쟁에 참가할 수 없어서 갔습니다.”, 둘째는 “제가 비록 이렇게 여러 날 출근하지 않았지만 저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여러 해 일하면서 휴가일에 쉬지 못한 날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당신들이 가족과 한 자리에 모일 때, 저는 직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특수한 형세 하에서 저는 부득불 이렇게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어떠하든지 간에 절대로 대법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지도자도 나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성의 압력과 요구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하였다. 당시 나는 이번 박해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못했으므로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대법을 연마한다는 연자는 불 화(火)변의 연(煉)자인데 내가 실 사(絲)변인 연(練)으로 당신을 속일지언정 누구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리라. 이리하여 나는 몇 마디 말을 써 넣는 것으로 대처하였다. 후에 나는 텔레비전에서 98%가 전향되었다느니, 완고분자이니 하는 말을 듣고서야 깜짝 놀라 깨어났다. ‘보증’을 쓴 것이 98%안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이른바 ‘완고’가 확고한 것이 아닌가? 나는 잘못했던 것이다. 나는 날마다 법공부, 연공 하면서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려는 마음을 종래로 동요한 적이 없었다. 특히 사부님의 《나의 하나의 소감》을 학습한 후에 나는 걸어 나오지 않는 것은 사람마음이고, 나는 사부님을 걱정하시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상경하여 정법할 준비를 하였다.

(2) 두 번째로 상경하여 호법하다

사부님의 《심자명》, 《원만을 향해 걸어가자》란 경문이 발표된 후, 사부님의 인도가 있음으로 하여 나는 또 다시 상경하려는 결심을 더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업무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을 목적 있게 양성하였고, 최근의 업무를 계획 있게 안배하였다. 당시에 또 몇 시급과 성급의 회의에서 내가 발언해야 했는데, 법을 실증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런 염원을 해결한 후에 나는 15페이지나 되는 편지를 직장에 남겼다. 사람의 도덕 양지로부터 법률 등 7개 방면으로부터 내가 왜 상경하여 대법을 수호하려 하는가를 피력하였다.

2000년에 나는 너비 1미터에 길이가 2미터 되는 현수막을 지니고 정정당당하게 동수와 함께 북경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천안문에 갔다. 중앙으로 보내는 편지를 부친 후에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펼쳐 사악을 놀라게 했다. 사악은 두려워하며 경찰차에 우리를 싣고 북경 공안 분국에 갔다. 당시 경찰 십여 명이 묻는 말에도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두려움 없이 정정당당하게 대답하였다. 그들은 왜 천안문에 왔는지 물었다. 나는 천안문은 중국의 수도이고 전 세계 사람이 다 올 수 있는 곳인데, 내가 중국 사람으로서 왜 올 수 없느냐고 물었다. 왜 현수막을 들었느냐고 묻는 말에 나는 연을 띄우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것을 보고 현수막을 펼쳐 사람들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며, 사람들이 알면 복을 받을 것이고 당신들에게 박해를 정지하라고 알려주려는 것으로서 이는 좋은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사회 공공질서 위반이라는 죄명을 정하고 나더러 서명하라는 것을 나는 거절하였다. 내가 “이런 죄명은 폭력과 위협으로 나라에 위협을 조성해 주는 것인데, 손에 아무 것도 쥔 것이 없는 여인을 어찌 폭력으로 위협할 수 있는가. 반대로 당신들이 총을 잡고 나를 경찰차에 잡아넣은 것인데, 어디 나 한 사람 뿐인가?”라고 하자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법률상에서 왜 죄를 범하지 않았는지를 말하였다. 그들은 또 “당신은 가족을 버리고 상관하지 않으니 자사(自私)적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 나에게는 따뜻한 가정이 있고 훌륭한 일이 있으며 봉급 수입도 괜찮은데, 내가 만약 자사적이라면 나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오면 직면하게 될 것은 일을 잃고, 잡혀서 감옥에 갇힐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바로 대법제자의 성실, 대선, 대인으로 당신들에게 진상을 알려 당신들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해주면 복일 받는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것이 무사적인 것이 아닌가? 어찌 자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늘 조국은 어머니라 말한다. 하지만 오늘엔 도리어 폭력으로 조국의 가장 우수한 아들딸들을 붙잡으며 설 자리도 없게 한다. 천안문 광장의 국기 게양 의식을 볼 때, 내 마음에선 피가 흘렀다! 나라 국장을 머리에 이고 평안을 지켜준다는 이런 인민의 위병들은 이번 박해에 직면하여 손에 총대를 부여잡고 폭력을 실시할 때에 치욕을 느끼지 못했는가? 모두 한 뿌리에서 태어났다! 당신들은 착오적인 공무를 집행하고 있으며, 진정으로 법을 위반하고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남과 자신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의 가지와 내 마음에 자비를 품은 강개한 진술에 그들은 아주 감동을 받았다. 한 경찰은 당신은 정말 말을 잘한다고 하였다.

북경에서 압송돼 돌아온 후에 우리 현지의 공안이 나에 대한 불법 심문을 기록할 때, 나는 이지적으로 조리 있게 내가 왜 북경에 갔는지를 말하였는데, 그들은 다섯 페이지나 기록하였다. 나는 누가 보든 이는 법을 수호하고 법을 널리 알리며 법을 실증하는 자료이므로, 누가 보면 누가 진상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은 “당신은 확실히 말을 잘 했지만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상급의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니까.”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 이것은 착오적인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 것이라고 참을성 있게 알려 주었다. 구치소에 나는 45일 갇혀 있었는데, 그 기간 나는 죄수들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한 패 또 한 패씩 대법제자를 접촉하였으므로 대법제자는 진리를 견지하기 위하여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소장에게 진상을 알려 주어 그도 더는 대법제자를 위협, 핍박하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어떤 대법제자는 교관에게 특별하게 공손히 대했는데, 무슨 당신들에게 번거로움을 주어 미안하다는 둥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이 법에 있지 않다고 느끼고 제때에 동수와 교류하여 우리가 그들에게 시끄러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이 우리에게 시끄러움을 주었으며, 이는 불법적인 수감이고 우리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법에서 제고해 올라 와 정정당당하게 교관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사당은 내가 보증서를 써야만 면회를 허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면회를 못하다고 규정하였다. 나는 견결히 쓰지 않았고 후에 가족이 와서 사람을 찾자 비로소 만나게 하였다.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여 화를 냈다. 당시 구치소의 교도원과 기타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는데, 나는 “당신들 보라. 내 남편을 이토록 화나게 만들었다. 나에 대한 불법 수감은 우리의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파괴하였다. 이는 박해다!”라고 떳떳하게 말하였다. 하루는 시 정보국에서 와서 불법 심문을 하였다. 당시 사부님의 《홍음》〈위덕〉이 떠올랐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거니 진선인(眞善忍)이 마음속에 있네. 세상에 대 나한을 귀신도 굉장히 두려워하네” 나는 꼭 이 장을 대법을 실증하고 수호하는 바른 장으로 되게 하리라. 그들이 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으나 나는 도리어 그들에게 이름이 뭐냐고 반문하였다. 그들은 당신들의 사람이 당신을 팔아먹었다고 말했고, 나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였다. 자료 일 때문이라고 하기에 나는 자료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는 것이고, 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는지와 선한 원인과 선한 후과에 대해서 말하였다. 동수의 안전을 위하여 나는 영민하게 그들에게 대처하여 동수를 보호하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이 두 사람은 아주 흉악하다고 했으나 사부님의 가지로 나의 앞에서는 어쩌지도 못하고 아주 공손하였다. 어쩌면 그들의 명백한 일면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구치소를 떠날 때, 한 경찰이 나를 보면서 노래 한 구절을 불렀다. “아무 것도 말하지 마시라, 조국은 당신을 알고 있노라.”

파출소로 돌아오자 나더러 보증금을 바치라면서 또 나보고 보증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엄숙하게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나에게 문건을 보여 달라. 나더러 보증을 쓰라고 하는데, 당신들은 나를 45일이나 수감하여 나의 가정생활, 일, 경제상, 정신상 모두 막대한 손해와 상해를 빚어냈으니 당신들이야 말로 마땅히 나한테 이후에 다시는 나를 소란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해야 한다.” 그때 동료와 직장의 지도자, 동수들이 와서 나를 마중해 갔는데, 나는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3) 일과 생활 중에서 시시각각 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인연 있는 사람이 대법에 죄를 짓는 것을 제지하다

첫 번째로 북경에 갔다 되돌아 온 후에 직장에서 초빙 경쟁을 하였는데, 나는 여전히 나의 원래의 직무에 초빙되어 원래하던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비록 재차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상경하기 전에 나는 하루 출근해도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해야 했다. 나는 업무의 편리를 이용하여 여전히 끊임없이 진상을 알렸다. 무릇 나와 접촉하게 되는 지도자와 동료는 모두 파룬궁을 이해하였다. 그때는 사당이 조직한 활동이 종류가 많았는데, 지도자가 강화를 하면 지도 그룹의 사람들은 발언하여 태도 표시를 해야 했다. 무슨 보고요, 총화요, 경험이요, 심득 체험이요 하는 것들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자료로 만들어 상급에 바쳐야 했다. 내가 최고 책임자에게 자료 및 직장의 자료를 써 주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어서 다른 지도자들도 모두 나에게 자료를 써달라고 한다. 그때는 무슨 자료를 쓰거나 학습을 조직할 때, 대법을 모욕 비방하는 것은 그야말로 문장 첫 시작의 상투어로 되었다. 나는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 다 써주겠다고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쓰면 회의에서 어떻게 읽고 어떻게 바치기 때문이다. 자료 쓰는 것이 너무 많아 밤을 지새워야 했으므로 몹시 힘들었지만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이 업을 짓지 않게 한다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한 면으로는 내가 대법을 수호할 수 있고, 다른 한 면으로는 다른 지도자들도 나에 대해 아주 감격해 하고 나를 존경하였다. 우리는 관계가 아주 좋았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진상 자료를 주어 보게 하였다. 직원을 조직하여 학습할 때면 무릇 파룬궁 비방에 연루된 문건, 신문이면 나는 죄다 없애 버렸고,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파룬궁에 관한 무슨 심득 같은 것을 써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면 조직하지 않았고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의 일은 내가 주관했기 때문이다. 사당의 매체가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선전하고 대법을 박해할 때, 나는 우리 직장의 지도부와 동료들이 대법에 죄를 짓는 것을 유력하게 제지하였다. 어떤 동료는 남몰래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면서 “당신은 정말 잘해. 우리 직장은 다른 직장과 달라서 그따위 짓은 안 한다니까!” 하고 말했다. 동료의 명백한 일면을 보면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다. 우주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나의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므로 잘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정진요지2》〈길〉에서 지적하셨다. “대법제자로서 법을 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로 상경하여 무죄 석방으로 다시 출근한 후, 직장의 주관 지도자가 나를 찾아와 내가 상경한 일로 시에서 회의를 열고 여러 번 비평했다고 했다. 나는 지도자에게 이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대법제자인 내가 상경하여 법을 수호하는 것은 한 가지 위대한 일이라고 알려 주었다. 지도자는 나의 공직을 보존하기 위하여 나의 당적을 제명하여 상급 당위원회에 보고하기로 결정하였다. 후에는 누구도 상관하지 않으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원래대로 임직하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여전히 사당의 당무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은 지도자가 또 나를 찾아와 시의 문건을 들고 와서는 법제 학습반을 열어 전향시킨다고 하면서 나더러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보세요. 우습지 않아요?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전향시키려 해요. 그래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전향시킨다는 건가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이 오면 저한테 보내세요. 제가 말해 볼게요.”라고 했다. 그는 나더러 절대로 아무 짓이나 하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안심하세요. 대법제자가 하는 일은 모두 좋은 일이랍니다.”라고 웃으면서 그에게 알려 주었다. 사부님께서 내 온 몸에 정기가 넘치도록 가지해 주셨기에 이 일도 이렇게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한 번은 한 직원이 입당을 하려고 정치 심사표에 파룬궁 활동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써 넣었다. 나는 그때 ‘파룬궁 세 글자가 어찌하여 사당에 입당하는 파일에 들어 있는가? 이건 안 된다. 대법을 모욕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구(區)의 구위원회 서기에게 전화를 걸어 선의적으로 그에게 다시 쓰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절하지 않고 즉시 대답하였다. 나는 즉시 갔는데 그는 사무원을 시켜 자료 한 부를 다시 쓰라고 분부하였다. 동료가 신청서를 쓸 때나 사상회보를 쓸 때, 나는 대법을 모욕한 말이 있는지 진지하게 훑어본다. 몇 년 동안 단 한 사람에게서만 발견하였는데, 내가 그에게 다시 쓰라고 하니 자기는 인터넷의 것을 그대로 다운하다 보니 보지 못했다며 다급히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왜 쓸 수 없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도 알게 되었다.

거짓말 선전이 창궐할 때였다. 한 번은 우리 집 부근 가까운 건물에 위에서 아래로 대법을 중상 모략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아주 눈에 띄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우리 집 부근인데다 또한 나더러 보게 하였으니 이건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나더러 없애라는 것이며, 여기에 걸려 중생을 독해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형을 살펴보았는데 줄곧 1층 창문 아래까지 내려와 걸려 있었고, 이 창문은 바로 경비실 창문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대법제자이다. 대법을 모욕하지 못한다.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나의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다. 나는 범의 입안이라도 이를 빼야 한다! 저녁에 검은 먹과 걸레를 준비해 놓고 이튿날 아침 3시에 나갔더니 그 현수막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전법륜》)였다.

또 한 번은 시에서 대법을 모독한 선전사진을 내려 보내어 직장 책임자는 그것을 상급의 요구대로 영업 홀에 걸었다. 내가 보니 이렇게 많은 날조 사진이었다. 홀에는 날마다 업무처리 하러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이게 어디 될 일인가. 그래서 나는 그 동료를 찾아 말하였다. 우리 조직의 각도에서 말하지 말고 우리 개인적인 관계로부터 말해보자고 하였다. 나는 진심으로 동료를 위해서 알려주었다. – 이것은 업을 짓는 것으로서 상급에서 당신에게 걸게 하여 당신이 그 업을 감당하게 한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젊어 앞길이 창창한데, 어서 벗겨내라. 그는 나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즉시 떼어내어 대법의 존엄을 효과 있게 수호하고 또 중생에 대한 독해를 제지하였다.

3. 일상 업무, 생활가운데서 부동한 형식을 이용하여 기연을 틀어잡고 진상 알리어 사람을 구원

사부님께서는 《각 지역 설법 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 자신의 수련 외에 현재 가장 큰 일이 바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중생을 제도하고 그가 직접 미래의 사람을 구원하고 있고 동시에 그는 대법과 대법제자의 위대함 ― 즉 이런 어려운(艱苦) 환경 하에서 당신들은 아직도 중생을 구도(救度)하고 있음을 체현하고 있다.”, “이지(理智)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眞象)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써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救渡)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威德)을 세우는 것이다.” (《정진요지2》〈이성〉) 이 단락 법은 나를 깨닫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속인 사업의 각종형식으로 이지적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1) 직원과 편하게 담화하면서 진상을 알려주다

진상을 알리는 데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규정한 사업 규장 제도에는 담화제도가 있다. 나는 이 유리한 조건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정기적으로 직원을 나의 사무실에 불러다 담화하였다. 직원을 도와 실제 곤란을 해결해 주는 등 방면으로부터 조리정연 하게 쩐싼런(眞善忍)을 말하고 파룬궁을 말하며, 공산당의 여러 차례 운동으로부터 파룬궁 박해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이렇게 편안한 담화가운데서 자연히 대법진상을 알게 되었고, 무릇 내가 시간이 없어 진상을 알리지 못한 직장의 직원은 모두 사업시간에 담화형식으로 진상을 알려 주었다. 대학생이 실습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직장의 누구나 모두 대법이 좋다는 진상을 듣게 되었다.

(2) 고객에게 열정적으로 대하고 진상을 알리다

직장 직원이 진상을 들을 수 있었다면, 고객은 또 어떻게 진상을 듣는가? 나의 업무 특성 상 고객과 구체적으로 접촉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우수 서비스 감독이란 명의를 지혜롭게 이용하여 봉사상의 문제 해결을 도와주었다. 나는 카운터 밖에서 열정적으로 봉사하였는데 고객들이 아주 만족해했고, 자연히 쩐싼런(眞善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와 박해진상을 얘기하게 되었다. 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어떤 때에는 손님을 아주 멀리까지 바래다준다. 특히 연세가 있는 노인들은 감동되어 나를 정말 좋다고 한다. 나도 그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감사드리려면 우리 이(李) 선생님께 드려야 한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한번은 한 여 경찰이 점심 퇴근 때 와서 줄곧 가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었어도 그냥 홀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뭘 하러 왔지? 나 때문에 온 걸까? 나는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즉각 깨우치고 그녀는 진상 들으러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녀와 인사하면서 점심시간인데 아직도 안 돌아 가느냐고 물었다. 원래 그녀는 업무를 처리하려고 왔는데 하지 못해서 오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아울러 이 일은 처리하기 아주 어렵다고 하였다. 그녀는 우리 시에서 꽤나 먼 곳의 한 구역에서 왔으므로 이곳을 잘 알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오후에 직원더러 처리해 주라고 하겠으니 조급해 하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으면 내가 식당에 가서 밥을 주문해 오겠다고 하자 먹었다고 하였다. 그럼 내가 여기에서 말동무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몇 마디 안 해서 아주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자기는 경찰이니 파룬궁을 알고 있겠죠? 그녀는 안다고 하였다. 파룬궁 사건을 처리해 봤어요? 해 봤다고 했다. 이거 제대로 만났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대법이 널리 전해진 것부터 오늘의 박해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알아듣게 말해 주었다. 오후 출근이 되자 나는 직원을 시켜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의 난을 해결해 주었다. 그녀는 몹시 감동을 받았고 나는 그녀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는 기뻐하면서 내가 한 말을 꼭 명심하겠다고 나에게 알려 주었다. 진상을 알게 된 그녀를 보면서 나는 무척 기뻤다.

(3) 모순 충돌 중에서 심령을 열어주고 진상을 알려 주다

또 한 번은 한 말단직원과 40대 여성 고객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져 고객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이튿날 직장에 찾아와서는 홍반성낭창이 도졌다면서 용서 없이 기소하겠다고 하였다. 비록 그녀에게 도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녀는 너무 무지막지하여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직원이 돈으로 배상 하겠다 해도 안 된다며 사람들을 바쁘게 했고 지도자도 난감해 했다. 이런 정경을 본 나는 그녀를 나의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자신이 수련 중에서 깨달은 법리로 인연관계,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등 도리를 말해 주었다. 그녀는 듣고 나서 화해하려 했고 진상을 알고 나서는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2004년 11월 말, 《9평》이 세상에 나온 후에 3퇴하여 사람을 구하였는데, 내 신변의 지도자와 동료들은 기본상 모두 3퇴하였고 함께 사업하지 않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기연을 놓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나는 나의 직장을 이용하여 사부님의 가지 하에 홍법, 법 실증하고 법을 수호하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환경을 열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명분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일‘ 이고, 한 방면으로는 속인 사회 상태에 부합되게 일을 잘하여 지도부와 동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사악의 박해기간 지도부에서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백분의 3이라는 상여금 월급을 올려 주었다.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내가 싫다고 할까봐 그랬다는 것이었다.

가정생활에서 나는 3퇴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을 생활의 세세한 부분에 스며들게 하였다. 시장에 가거나 백화점, 차를 타고 차를 기다리거나를 물론하고 기회만 있으면 3퇴를 말하는 것은 이미 자연적인 것으로 되었다. 오직 만나서 말을 하게 된 사람이면 가급적 그들을 구도하였다. 친척의 경사, 장례에 가면 인연 있는 사람을 구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70여 명을 탈퇴시켰다. 큰 언니가 입원했을 때, 나는 병실의 모든 사람을 3퇴 시키고 그들더러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를 묵념하라고 알려 주었다. 언니가 곧 임종하려 할 때도 나는 복도에서 여전히 3퇴를 권하고 대법은 사람을 구한다고 말해 주었다.

일과 생활 중에서 나는 각종 환경조건을 이용하여 시기를 틀어잡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였다. 비록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조금 하긴 했지만 회상해 보고 안을 향해 찾아보면 아직도 많은 부족과 유감이 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가급적 빨리 찾아내고, 그리고 일체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사부님 말씀대로 빨리 말하여 구도를 바짝 틀어쥘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의 사전 서약을 실현하여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명후이왕 제 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2/2113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