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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싼런으로 심령을 다시 빚다

글/ 중국 후베이(湖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7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교사이다. 1998년 대법을 얻은 후 대법의 요구에 따라 사업에 노력하고 열심히 인재를 양성했기에 동료와 학부모들의 호평을 받았다. 나는 3년이란 시간을 들여 ‘후진반’을 가장 우수한 반으로 개변시켰고, 80 여명 ‘열등생’을 보는 사람마다 귀여워하는 ‘작은 천사’로 교육해 냈다. 아이들의 전변은 거대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학부모들이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법보가 바로 ‘쩐(真), 싼(善), 런(忍)’이다.

‘눈을 뻔히 뜨고 절벽에서 뛰어 내려’ ‘후진반’을 맡다

가을학기가 개학하기 전 날, 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내가 4학년 1반의 국어과를 맡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이는 한 ‘후진반’으로서 성적이 낮고 기강이 나쁜 반이다. 전반 학생 학부모들이 단체 행동으로 선생님을 쫓아냈다. 학부모들은 만일 학교에서 선생님을 바꾸지 않는 날엔 아이들을 단체 전학 시킬 것이라고 학교 지도부에 말했다. 나는 진작 소문을 들었고 교장의 난처해하는 모습도 보아왔다. 나는 누구도 이 반을 맡기 싫어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을 먼저 배려하고, 고생을 낙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다. 사부님은 『전법륜』 가운데서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으며, 공장의 경제효율도 좋아졌습니다.” 고 말씀 하셨다. 나는 사업에선 쉬운 일을 택하고 힘든 일은 피하며, 이것저것 골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교를 위해 생각해야 하고 학부모를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한 마디로 대답하고서 얼마동안을 맡아야 하는가를 물었다. 교장은 떠보는 투로 말했다. “한 학기 맡아보세요.” 나는 확고히 말하였다. “졸업할 때까지 맡게 해 주십시오, 한 학기만 맡고 선생님을 바꾸면 애들 교육에 불리하고, 학부모들 의견도 더 커질 것입니다. 저 역시 학부모인 만큼 저의 애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게 소원입니다. 저는 꼭 있는 힘껏 애들을 잘 이끌 것입니다.”

교장은 무거운 짐이나 내려놓은 듯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동료들은 알고 나서 나를 바보라면서 ‘눈을 뻔히 뜨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고 하였다. 한 지도자는 완곡한 말로 권하였다. 자네가 이젠 전문 업종에 익숙해서 하기도 쉽고 또 괜찮은 성적도 따냈는데 국어로 바꾸어 가르친다니 참으로 아쉽다, 일체를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으니 얼마나 고생스럽겠나.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괜찮을 겁니다.”

어떠한 방법도 다 소용없어 조급한 나머지 눈물을 떨구다.

수학 선생님은 퇴직할 때가 되어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책임감이 아주 강한 선생님으로서 한 평생 글을 가르쳤는데 그녀는 이 ‘마지막 제자’들을 아주 불만스러워 하였다. 그들이 자기 한 생의 명성을 더럽혔다고 여겼다. 내가 자기와 합작하려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냥 남아서 강산을 다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우리 학교의 관례는 수학 교사가 담임교사를 맡는다. 그녀가 연세가 많고 몸이 허약한 것을 보고 아예 내가 담임교사를 맡고 그녀를 고문으로 초빙하였다.

이는 어떠한 학급인가! 교실은 더럽기로 쓰레기 더미 같았다. 바닥은 발이 떡떡 붙었고, 복도 바닥은 질퍽한 두유에 젖어 있었다. 전 반 83명 학생 가운데 70여명이 숙제를 하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며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좋은 습관이란 하나도 없었고, 히히덕거렸다. 열 몇이 물건을 훔치는데 금방 갖고 온 문구는 눈 깜짝 새에 없어진다. 전임 담임교사의 돈지갑도 도둑맞았다. 학교 밖 노점의 물건도 훔친다. 무리를 지어 죄를 저지르는데 합작이 분명하다. 이미 전교에 소문이 자자하다. 어쩐지 학부모도 교육에 협력하지 않고, 날마다 학교에 와서 트집을 잡은 것이구나! 십년 넘도록 글을 가르친 나는 처음으로 이런 학생들을 만났다. 반으로 들어간 첫 날 나는 확실히 후회했다. 어떻게 하는가? 이런 반을 맡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얘들은 또 얼마나 불쌍한가, 더는 바른길로 이끌지 않다간 일생은 끝장날 것이다. 한 집에 하나뿐인 애들인데!

내가 첫 숙제를 거둘 때 전반적으로 다 닳아빠진 숙제 책 몇 권 밖에 못 거두었다. 마치 개고기 장부 같았다. 내가 숙제를 바치지 않은 학생들 일어나라고 하니 ‘우루루‘하고 모두 일어났는데 저마다 얼굴에 남을 공경하지 않고 업신여기는 건달 같은 표정이 서려 있었고, 죽을 돼지가 끓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자세였다. 분명 많은 전투를 겪어온 병사 같이 선생님과 한 번 겨루어 보자는 심사였다!

나는 화가 치미는 것을 억누르면서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들을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달리기를 시켜 본때를 보여주려 하였다. 그들은 그래도 히히덕거렸다. 교장이 나를 말렸다. 달리기를 다섯 바퀴 초과하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다간 애들이 쓰러지면 나한테 시끄러움이 있을 거라고. 그 순간, 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나는 몸을 돌려 학교 담장을 마주섰다. “마음 흔들리지 마라!” 나는 자신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대법제자다, 대법은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념이 나가자 냉정해 졌다. 나는 운동장에서 애들에게 ‘입목취신’(立木取信)이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애들에게 알려 주었다. 말하면 말한 대로 해야 한다. 날마다 제때에 숙제를 해야 한다. 애들은 도리어 조용해 졌다.

‘쩐,싼,런은 진정한 법보이다’

학생의 악습을 바로잡기 위하여 나는 늘 수학 선생과 기타 경험 있는 선생님들을 초빙하였다. 그들에게는 방법이 많아서 애들도 순순히 들어줬다. 이를테면, 서있는 벌, 숙제를 주는 벌, 밥을 먹이지 않기, 방과 후 남아서 반성문 쓰기이다. 또 풍자조소하고 욕하거나, 몇 대 때리거나, 심지어 꿇어앉히기도 하였는데 보통 별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고 뚜렷한 상처도 없었으므로 학교에서도 못 본 척 하였고, 애들도 집에 가서 부모에게 벌을 받을까 두려워 말하지 않았다, 더 많은 선생들은 권력을 ‘학급위원’에게 주어, 학급위원은 욕할 수도 때릴 수도 있었으며, 숙제를 내고, 굶기게 할 수 있어 선생님들이 쉬워졌다. 가령 문제가 나타난다 하더러도 애들이 덤벼서 그랬다고 밀어버릴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제일 나쁘고 제일 악독한 학생을 구슬려 ‘검은 것이 검은 것을 먹어버리는’ 식의 악으로 악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은 진작부터 ‘너를 관할하는 것은 너 좋으라고 하는 것’이라는 관념에 주입당해 맞아도 찍소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폐단은 갈수록 많아졌다. 학급위원은 학교에서 폭력의 집행자가 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뇌물’도 받을 수 있었으며, 마음대로 집행하는 가능성이 아주 커서 숙제를 백번 베껴 쓰는 벌을 줄 수도 있고 그런 벌을 ‘한꺼번에 다 없앨 수’도 있었다. 어떤 ’학급위원‘은 심지어 선생님의 ‘관계자’로 되었다, 학교는 엉망이 되어 마치 작은 사회와도 흡사하였다 .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사람을 욕하지도 때리지도 않으며, 악으로 악을 다스릴 수도 없었다. 나는 사부님의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이야기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사업 중의 어투, 선한 마음, 게다가 도리(道理)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마음속에서는 불복하고 다만 표면적으로 복종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청성하라》)나는 ‘어투’, ‘선한 마음’, 그리고 ‘도리’로 사람마음을 바르게 하리라 결심 하였다.

나는 정견망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수집하여 분류를 나누어 큰 노트에다 이야기 개요를 적어 두었다. 예를 들면, 성실, 선량, 너그럽고 참으며 양보하는 것, 인과, 청렴, 정직, 질투하지 않음, 신선 이야기, 과학발견, 사전문명……. 을 적어놓고 늘 뒤져보곤 하는데, 학생에게 무슨 문제가 나타나면 나는 이야기를 골라내고, 이야기를 통하여 도리를 말해준다. 애들은 듣기 좋아하며 집에 가서는 학부모에게도 들려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뿐더러 애들의 자존심도 상하지 않는다.

학생이 규율을 위반하면 나는 될수록 학생의 각도에 서서 그의 맘속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원인과 결점을 찾는다. 그런 다음 우리는 함께 고친다. 예를 들면 숙제를 하지 않는 것도, 어떤 때는 새로운 과제여서 할 줄 모른다. 어떤 때는 국어, 수학 숙제가 너무 많아 다 할 수 없다, 어떤 때는 기초가 부족하여 신심을 잃는다. 어떤 때는 놀다보니 숙제를 까먹는다……. 나는 구체적인 원인에 따라 일일이 인도하고 또 애들에게 왜 숙제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효과 있는 학습방법을 알려 주면서 공부를 꼭 잘 할 수 있다고 고무해준다.

나는 아이들의 좋은 친구로 되어 귓속말도 소곤소곤 한다. 날마다 수업이 끝하면 애들은 집에 가기 싫어하고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 우리 반은 제일 훌륭한 반으로 되었고 동료들은 나에게 ‘신기한 힘’이 있다고 한다.

내가 잘못했을 때면 사부님께선 교묘하게 나를 점화해 주신다. 한 번은 전교적인 대형 활동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운동장에 줄을 섰다. 내가 책임진 여섯 줄의 학생은 모두 ‘귀족반’이었는데 평소에 아주 버릇없이 자라서 말을 듣지 않아 관리하기 어려웠다. 곧 나가서 연기를 해야겠는데 우리의 대오는 아직도 정돈이 되지 않았다. 무척 화가 나서 나는 금방 손에 들었던 우산으로 뒷줄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는 학생을 치려고 하는 순간 우산이 저절로 두 동강 나는 것이었다. 내 손에는 우산 자루만 쥐어져 있고 그 쪽은 땅에 떨어졌다. 학생들은 모두 웃었고 나도 웃었다. 우리 사람은 사람의 조그마한 일을 아주 중하게 보지만 고층 각자들은 덕을 제일 중하게 본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사람을 때려 덕을 잃게 하려 하지 않으셨다! 또 한 번은 수업할 때인데 화가 나서 나는 강의도 듣지 않고 우스개 말을 하느라 신이 난 그 두 학생을 책으로 때리려 복도를 가로질러 갔는데 채 가기도 전에 허벅다리가 책상에 호되게 부딪혔다. 나는 즉각 사부님께서 내가 사람을 때릴까봐 제지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놀라 깨어났다. 진수제자답게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라, 왜냐하면 자신의 일거일동, 눈 빛 하나마저도 모두 대법의 진상을 대표하고 있는 만큼, ‘진, 선, 인’의 아름다움을 학생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이야기 몇 가지

첫 번째 작문과

학생들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것이 작문이다. 원인은 세 가지이다. ‘두려움’에 가로막혀 감히 쓰지 못한다. 방법을 장악하지 못하여 쓸 줄 모른다. 당문화의 영향으로 제목이 가짜이고 허위적이어서 애들이 필을 댈 수 없고 쓰고 싶지 않아한다.

내가 반을 넘겨받을 때 우리 반의 학생작문은 제일 많아야 세 마디 말인데다 표점부호도 없었다. 한 번은 수업하는데 ‘구구’ 하는 소리가 나기에 소리를 따라 바라보았더니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산비둘기 한 마리가 학생의 서랍 안에 숨어 있었다.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산비둘기야, 작은 목숨 하나가 즉시 죽게 되는구나, 얘들아, 너희들은 살생이란 큰 죄를 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설교해도 별 작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의 대륙에서 무신론 독해를 받은 사람들 그 누가 살생이 업을 짓는 것임을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산비둘기를 주연으로 되게 하고자 종이위에 올려놓고는 아이들한테 보내어 자세히 보게 하였다. 애들이 그의 보드라운 털을 만져보게 하였다. 애들마다 산비둘기를 귀여워하였다. 하지만 산비둘기는 겁에 질린 두 눈을 크게 뜨고 절망적으로 울어댔다. 나는 애들에게 비둘기 울음소리를 잘 듣고 그가 뭐라고 말하는지 상상해 보라고 하였다. 어떤 애는 비둘기가 무서워서 엄마를 부른다고 했고, 어떤 애는 집에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애들은 꼬마비둘기를 불쌍히 여기기 시작했다. 꼬마 비둘기는 어디서 왔지? 애들은 50전을 주고 학교 문 앞의 한 장사꾼한테 샀다고 한다. 꼬마 산비둘기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애들은 모두 비둘기가 며칠 안가면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꼬마 산비둘기를 사랑하지만 우리가 그를 해쳤다. 나는 흑판에 50전 =목숨하나를 써 놓고는 생명이 이렇게도 값이 없는가라고 하였다. 당시 정경은 애들에게 심각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많은 애들은 더는 작은 동물을 사지 않았고 그들도 그 장사꾼이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한다고 비난 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 보고 들은 것, 느낀 것들을 작문에 쓰라고 하였다. 이번 작문은 제일 빠르고 제일 성공된 것이었다.

후에 나는 식물은 감각기관이 있다는 실험을 계속 말하였고, 또 컴퓨터를 열고 《물이 알고 있는 답안》 중의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애들은 만물에는 생명이 있으므로 마땅히 아껴야 하고, 자연과는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봄나들이를 갔을 때 우리 반 애들은 꽃을 사랑하나 꺾지 않았고 주동적으로 쓰레기를 주어 청소 하였는데 참으로 사람을 감동케 하였다.

햄 두 개

6학년에서 봄나들이를 가게 되었는데 식당에서 아침 식사 때에 햄 두 개를 더 배급하였다. 이 두 개 햄은 교단에 조용히 있었지만 몇 주일이 지나도록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 햄 두 개를 추켜들고 물었다. 누가 먹겠습니까? 애들은 웃으면서 머리를 저었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께서 드세요! 하고 말하였다.

나는 눈시울이 젖어났다. 얘들아, 이 햄 두 개는 선생님의 가장 훌륭한 상장이고 내가 제일 좋은 선생님이란걸 증명한다. 이 햄 두 개는 너희들의 가장 훌륭한 사장이기도 하며, 너희들은 가장 성실한 학생이란걸 증명한다!

많은 애들의 눈에도 이슬이 반짝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내가 반을 맡기 전에는 전혀 나타날 수 없는 일이었고, 다른 반에도 전혀 나타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내가 반을 넘겨받을 때, 우리 반에는 12명 학생이 물건을 훔쳤다. 그들은 학우의 아침 밥 용돈을 훔쳤고, 전임 담임교사의 돈 지갑도 훔쳤으며, 조반부의 콩 볶음도 훔치고, 학교 문어귀의 노점의 물건도 훔쳤다 ……

내가 넘겨받은 이튿날, 반에서 한 애가 물건을 도둑맞았는데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나는 애들에게 류짜이(聊斋)의 이야기 ‘오리를 욕하다’를 들려주었다. 이야기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왕가네 다섯째는 일하기 싫어하고 먹기를 좋아하였다. 장 할아버지네 오리 알과 오리를 훔쳐다 먹었더니 후에 몸에 오리털이 자라나 아프고 가려웠지만 누구도 치료하지 못하였다. 토지신이 그더러 장 할아버지를 찾아가 그를 욕하라고 점화했다. 하지만 장 할아버지는 사람을 욕하면 덕을 잃는다면서 안 된다고 하였다. 할 수 없게 된 왕가네 다섯째는 스스로 착오를 승인하고 또 징을 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잘못을 고쳐 새사람이 되겠다고 해서야 오리털이 빠져 나왔다. 애들은 신기해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였다.

나는 늘 신전문화로 애들에게 인의도덕 교육을 하였다. 나는 애들에게 ’정관의 통치’를 이야기할 때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는다.’로 세상이 태평하고 사회풍조가 매우 정직하다는 것을 묘사하면 애들은 늘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언제가야 문을 잠그지 않고 잘 수 있나요? 우리 집 문은 여러 번 잠갔는데도 도둑에게 도둑맞아요! 나는 늘 그들을 고무해준다. 우리 저마다 모두 덕을 중히 여기고 선을 행할 때면 천하가 정말로 태평해진단다.

나는 두 번이나 아침식사 후 남은 찐빵을 이웃에게 가져다주었다. 우리 동료는 늘 이렇게 한 꾸러미씩 집으로 가져갔다. 법에 비추어 보니 잘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반회의에서 애들에게 잘못을 사죄하고 그 자리에서 돈으로 갚았다.

나는 학부모의 선물을 받지 않았고, 보내온 것은 다 돌려보내고는 직접 학부모에게 알려준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예물을 받지 않습니다. 식사에 청해도 사절했으며, 학부모에게 일을 처리해 달라고 한 적은 더욱 없었다. 정말로 되돌릴 수 없을 때면 나는 시장가격으로 쳐서 책을 사서 애들이 보게 하면서 이 책은 모모 학부모가 우리 반에 기증한 것이라고 알려준다. 시간이 가면 학부모들도 모두 알게 되어 더는 선물을 가져오는 사람이 없었으며, 애가 업신여김을 당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이번에 애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더는 전학하려 하지 않았고 시끄러운 일도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애들은 철이 들게 되었고, 더는 남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다.

이 햄 두 개는 나중에 우리의 학급위원이 가져다 식당에 돌려주었다.

반장 소옥

반을 막 넘겨받은 어느 날 아침식사를 나누어 줄 때, 케이크 두 조각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쟁반을 나르던 애가 훔쳐 먹은 것 같았다. 한 여자애가 주동적으로 자기 케이크를 내 놓았다. 나는 그를 칭찬 하였다. 나는 그 애가 다른 애들보다 사리에 밝은 것을 보았다. 그 애 아빠는 청부업자로서 외지에서 우리 이 곳에 와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애는 확실히 남과 관계가 좋았고 참고 양보할 줄 알았으며, 자기를 단속할 줄 알았으므로 학우들에게서 반장으로 뽑혔던 것이다. 반장은 직무와 책임을 다하였다. 그녀는 한 무리 학급위원들을 거느리고 나의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매 주말 오후 방과 후면 우리 반 간부들은 남아서 회의를 한다, 간부를 선발할 때 나는 덕행을 비교적 중시하고 성적과 사업능력만 중시하지 않았으며, 관계 같은 건 더구나 살피지 않았다. 나는 반 간부 양성에도 아주 주의를 돌렸다. 매 번 회의 전에 나는 제목에 알맞는 관리 혹은 임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남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당태종(唐太宗), 정기호연한 문천상(文天祥)、나라에 충성한 악비(岳飞), 병사를 자식처럼 사랑한 이광(李广)…… 등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문제에 봉착하면 먼저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는가를 찾아보고 다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알려 준다. 물론 자기 잘못을 찾아내게 되면 문제도 해결 되는 것이다.

나는 학급위원은 욕도 하지 않고 때리지도 않고 도리로 사람을 설복하며, 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제도로 사람을 관리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숙제를 베끼게 하는 벌, 바닥을 쓸게 하는 벌 등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과 노동을 싫어하고 사랑하지 않는 관념을 양성하게 된다. 우리의 징벌 요구는 일정한 기교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학생들로 하여금 착오를 인식하고 착오를 고치게 하며 타인에게 경고를 주려는 것이다. 이러자면 요구가 아주 높아야 한다, 우리의 학급위원은 규율을 위반한 학우에게 교육의의가 있는 이야기나 본 것 혹은 명인명언 같은 것을 해석해 주고 그런 다음 여러 사람은 토론을 진행하여 시비를 분명히 가른다.

우리의 학급위원은 올라 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는데 사업성적을 보고 결정한다. 어느 해 우리는 번갈아 당직서기를 실시하였는데 하루에 한 사람이 당직반장을 맡아 학생마다 단련 받게 하였고, 학급위원으로 일하는 어려움도 체험하게 하였다.

무엇을 심으면 무엇을 거두어들이기 마련이다. 반 간부도 내가 바랐던 것처럼 뜻이 있고, 덕이 있으며 재간이 있게 되었다. 우리의 학급위원은 자신 소질도 제고가 아주 빨랐고, 흉금이 넓고, 사리에 밝으며, 책임감이 강하고, 인내력이 오래가며, 사업에 민첩하고, 머리쓰기 좋아하며 학습 성적의 제고가 아주 빨랐다. 일년 후 선생님은 홀가분해진 감을 뚜렷하게 느꼈고, 학급위원은 관리를 아주 잘하였으며, 학생들도 양호한 습관을 양성하였다.

소옥의 협조능력은 아주 강했고 위신이 아주 높았다. 무릇 학교에서 조직한 단체 활동에서 소옥은 언제나 학우들을 이끌고 일등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불행을 당하였다. 그녀 아빠가 엄마를 버리고 두 번째 부인을 맞아들이고 엄마를 천리밖에 있는 고향 집으로 보내버렸다. 그 애 오빠와 그 애를 우리 이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그 애는 아빠가 돈을 주지 않아 날마다 십 여리 길을 걸어서 학교로 오가야 했고, 날마다 건설 노동자들과 함께 큰 솥의 밥을 먹어야 했다. 유일한 텔레비전마저 둘째 부인이 안아갔다. 나는 딸을 아침 자습에 보낼 때 늘 오토바이에 그 애를 태워다 학교에 실어가고 오후 방과 후 또 집에 태워다 주었다. 나는 그 애에게 건설 노동자들을 따라다니지 말고 집에서 책을 보든지 아니면 나에게 다니라고 당부하였다. 그 애는 늘 나의 집에 왔는데 딸과 같았다.

그 애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그 애와 오빠 보러 왔다. 풍습병이 도졌지만 돈이 없어 치료도 못하였다. 엄마는 글도 모르고 표준어도 할 줄 몰라 일자리 찾기도 어려웠다. 소옥은 둘째 부인과 아빠가 미웠다. 이 여자는 날마다 마작하러 다니고 노래방, 미용실로 드나들며, 옷 한 벌에 수백 원씩 주고 사 입으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그 애와 오빠, 엄마는 도리어 거지신세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여자의 부추김을 받아 아빠는 갈수록 나쁘게 변하였으나 누구도 아빠의 마음을 돌려 세울 수 없었다. 큰 아버지는 아빠를 때리면서 그 여자와 관계를 끊고 집을 돌보라고 했으나 아빠는 듣지 않았다. 소옥은 작문에 무수한 ‘?’와 ‘!’를 써 넣고는 이를 갈면서 여러 번 그들을 보복하려 하였다.

나는 소옥을 아주 동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륙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국민의 도덕은 이토록 상실 되었다. 유일하게 구원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 소옥을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다. 나는 늘 그 애와 담화하면서 그 애가 재난 속에서 헤어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 애에게 대법진상을 말해주어 그 애에게 사투리로 엄마에게 진상을 알려 주라고 하였다. ㅡ 오직 쩐, 싼, 런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 그 애에게 사당의 사악함을 말해 주고 아빠 역시 사당의 피해자로서 그는 지금 불장난을 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아빠와 그 여자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을 징벌하지 말며, 자신은 언제나 선량과 정의를 지키고 있노라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일깨워 주었다.

소옥은 나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아주 믿는다고 하였다. 그녀 사촌오빠가 18, 9세때 물건을 훔치다가 차에서 뛰어내린 것이 차에 깔려 죽었다고 하였다. 그녀는 중학교에 다닐 때 고향에 돌아가서 나에게 문안 전화를 하면서 자기는 꼭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애들은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재빨리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선생님들하고는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수련에 더욱 주의하였고 될수록 대법제자답게 하였다. 날마다 아침이면 경전 낭독 시간이 있는데 학생들은 자기들이 얻은 《밍후이주보》와 진상 소책자를 가져다 읽었다, 왜냐하면 이런 문장들은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면 그들은 늘 교류하였고, 어떤 애는 대법 호신부를 공개적으로 걸고 다녔는데 자기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친척이 있는 것으로 인해 자랑을 느꼈던 것이다.

하루는 사사가 두 눈이 벌겋게 부어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대법이 좋다’를 읽어주면 작용이 있습니까? 원래 그녀 엄마가 몰래 남동생을 낳았던 것이다,(계획생육 초과) 그런데 동생의 머리가 집게에 집혀서 출혈이 심해 성(省)병원의 구급실에서 구급 받고 있고 엄마는 고혈압이어서 현지 병원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조급해서 어쩔 바를 모른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너 성심성의로 읽어 봐, 네 동생이 인연이 있다면 사부님께서 꼭 그 애를 구해 주실 것이다. 며칠이 지나서 그 애가 얼굴에 웃음을 함박 싣고서 내 입에 커다란 사탕을 밀어 넣으면서 동생과 엄마가 다 나아서 모두 집에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천천(晨晨)이 볼을 싸쥐고 나에게 자기는 이하선염에 걸렸다고 두 번이나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말해서 병원에 가보렴 하고 말했다. 그들은 상관도 안 한다고 그 애가 말했다. 그럼 ‘파룬따파 하오’를 외우면 안돼요? 돼!돼! 그 애의 오성은 나보다 강했다. 그 애는 체육시간에 담장 곁에 앉아서 전 한 시간을 외우더니 다 나았다. 얼굴이 부은 것이 내리고 아프지도 않았다.

유독 시시만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이 아이는 늘 계단에 붙인 진상자료를 찢어낸다. 몇 번이나 말해줘도 웃기만 할 뿐 믿지 않았다. 나는 늘 사부님, 그에게 믿을 기회를 주십시오,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한 번은 봄놀이에 가서 등산을 하였는데 나와 시시 등 5, 6 명 남자애들이 막 산꼭대기에 이르려는데 갑자기 시시가 배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이구 아이구 하고 외치고 있었다, 얼굴이 백지장 같이 질리고 이마에는 콩알 같은 땀방울이 내 돋쳤다. 나는 그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시시야, 여긴 황량한 교외여서 의사도 약도 없는데 넌 또 배가 아프다지, 네가 내 말을 믿는다면 ‘파룬따라 하오’를 성심으로 외워 봐. 우리 사부님이 꼭 너를 구해주실 거야. 시시는 너무도 아픈 김에 이번에는 외쳤을 뿐더러 큰 소리로 외쳤다. 결과 즉시 너저분한 물질을 한 무더기나 토하더니 나아졌고 얼굴도 붉어졌다. 이렇게 되자 그는 믿게 되었고 더는 진상표어를 찢지 않았으며, 진상시디마저 다 보았다. 나는 내심으로부터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로 또 한 생명이 구원된데 대해 감사를 드렸다!

한 번은 게양의식에서 우리 반의 소방과 사사가 ‘3호학생’ 으로 당선되어 주석대에 올라 상장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부 교장은 많은 학생들이 붉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것을 보더니 몹시 화를 내면서. 붉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상장을 발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 반의 대부분은 모두 매지 않았다. 소방과 사사는 어쩌면 좋은 가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소곤소곤 말하였다. 너희들은 속으로 ‘따파하우’를 외우면서 대범하게 올라가 상장을 받아라, 부 교장은 너희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과연 상장을 받아왔는데 너무도 신기하였다.

《9평》 이 발표된 후 나는 몹시 조급 하였다. 애들을 탈대 시켜야 하겠는데 또 사악에게 박해받을까 두려웠다. 연 며칠 나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어느 날 소경이 갑자기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9평을 보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 바삐 물었다. 너 봤니? 그 애가 말했다. 책에다 뭐라고 썼는지는 아직 몰라요, 그런데 양 엄마가 나더러 소선대에서 꼭 퇴출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하기에 전 탈퇴했구요. 두리 반의 문문도 탈퇴 했어요,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나의 학생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자신의 딸마저 진작 탈퇴했는데 나는 도리어 학생들에게 감히 말도 못하고 있으니 이건 자신의 사심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 반 간부 회의에서 그들하고 말하리라 결정 하였다.

회의 전, 나는 먼저 발정념 하고 사부님 가지를 청하였다. 애들도 컸으니 과학이 발견한 데로부터 천멸중공(天灭中共)을 말해보려 하였다. 나는 교실의 컴퓨터를 열고 ‘바이두’(百度)에서 ‘장자석’(藏字石) 사진을 검색하여 애들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또 ‘우담바라꽃’ 사진도 검색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당, 단, 대에서 퇴출해야만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또 그들에게 박해가 두려워 질질 끌면서 우리 일가는 진작 탈퇴하였지만 너희들에게는 알려 주지 못했다는 것을 사과하였다. 애들은 아주 통쾌하게 화명으로 탈대 하였다. 나중에 진진이 말했다. 누구도 밖에 나가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누가 소문을 내고, 누가 선생님을 말하면 누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 엄마에게도 말하지 마. 그날 저녁 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 나는 아이들 한 무리를 데리고 좁다란 계단으로 땅을 기어 나왔는데 그 중 누군가 재잘거리며 말을 하니 진진이 ‘쉬’ 하자 애들은 말을 그쳤다.

반 간부들이 탈대 할 때, 소걸은 교실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애에게 말은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그 애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가 엄마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하였다. 이튿날 그 애는 엄마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나의 일념이 그를 가로 막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한 동안 나는 날마다 발정념을 많이 하였다. 대륙 사이트에는 언제나 3퇴를 말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었는데 소옥 반장은 검색해서 학우들에게 보여 주었다. 흑룡강 한 초등학교에서 순간적으로 몇 백 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또 7월 1일 그 날 낮 12시에 지현 재정국 초대소 식당이 갑자기 무너진 일, 하남정세 화학공장 직원들이 배를 타고 저수지를 유람할 때 갑자기 7급 대풍이 불면서 배를 뒤엎어 당원간부 몇 십 명이 빠져 죽은 일…… 서서히 우리 반 애들 절대 대부분이 탈대 하였다. 후에 중학교에 가서 모두 공청단 입단을 거부하였다.

학생이 나를 보호해 주다.

어느 주말에 한 교사동수가 뛰어와서 교육국에서 문서를 발급했는데, 어느 한 학교 교사가 강단에서 대법진상을 말하고 3퇴를 권하여 노동 교양을 당했다면서 각 학교에서는 모두 정황을 조사하라는 통보가 내렸다고 나에게 알려 주었다. 당시는 바로 ‘쑤자툰’에서 파룬궁 생체 장기 적출이 막 유포된 때였는데 사악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나는 동수와 교류하였다.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게 아닌가? 사악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승인하지 말자. 동수가 간 후 나는 진상을 똑똑히 말하면 악행을 제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요일 반회의 때, 나는 애들에게 중공의 하늘에 사무친 죄악을 말해 주었다. 아이들은 몹시 놀랐고, 몹시 분개하였다. 이어서 나는 또 한 정의의 교사가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하다가 박해 당했다는 소식을 말하고, ‘610’과 국안 특무가 늘 쓰는 기만수단도 알려 주었다. 어떤 애는 그들을 깡패라고 욕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애들이 우루루 몰려와 나를 둘러싸고 왁자지껄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점 칠 줄 알지 않나요? 어제 부 교장과 주임이 와서 우리와 담화하고, 또 우리 어문 필기장을 보자고 했어요.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 너희들 뭐라고 대답했니? 사사가 말했다. 부 교장은 당신이 수업 할 때 무엇을 말하는 가고 물으니 저는 어문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어문을 가르친다고 말했어요, 비웅은,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책의 것이고, 책에 쓰인 대로 경을 읽는 셈이지요! 하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필기장에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평소에 《홍음》을 흑판에 써놓고 그들이 보게 했을 뿐 베끼지 말라고 했는데 원인은 애들이 아무데나 놓아두면 법을 존중하지 않아 업을 짓게 되기 때문이었다.

한 주일 후 부 교장이 새 오토바이를 학교 문어귀에 잠가 놓고 경비가 보고 있었는데 훤한 대낮에 도둑 맞혔다. 몇 분 사이에 8천 위안을 손해 봤다. 소옥이랑 그 애들은 소식을 듣고서 보응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한 통의 감사편지

우리 반의 변화가 아주 컸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나에게 특별장려를 주었다. 나는 사양할 수 없어 교장에게 감사편지를 썼다. 나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에게 얻기 어려운 기회를 주시어 저더러 이 중임을 짊어지게 해 주신 저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신임에 더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중국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장 7년에 달하는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과 모욕 비방 속에서도 당신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저의 사업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정의와 선량은 당신과 가족에게 반드시 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저는 또 저의 위대한 사부님께 감사드리려 합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쩐, 싼, 런’을 가르쳐 주셨고, 이는 제가 이 반을 잘 이끌게 된 ‘법보’입니다……

나의 교장은 확실히 훌륭한 분이다. 한 번은 다른 학교에서 사악한 사진 전시를 거행했는데 나는 이 일로 교장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내가 아직 말을 채 끝맺지도 않았는데 교장이 말했다. 그건 동의할 수 없어, 그건 애들을 해치는 게 아닌가!

우리의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한 학생이 쓴 작문이 밍후왕에 발표되었다. 또 몇 명 학생이 장편을 쓴 것도 있다. 법정인간 때면 이런 애들이 긍정적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십시오!

문장발표 : 2009년 11월 7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7/211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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