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흑룡강 대법제자 명정
[명혜망 2008년 11월 19일] 1998년 대법을 막 접촉했을 때 나는 아직 16살 소녀였다. 그 때 어머니가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어서 더 이상 의사에게 보일 수 없는 형편에서 어머니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래서 나는 또한 기공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나도 따라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연공장에 도착해서 보도원에게 동작을 갓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파룬장법을 모두 할 수 있었는데, 연마를 마친 뒤 온 몸이 홀가분한 게 팔을 오래 들고 있어서 시큼하고 아픈 감각이란 조금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연공장에 가서 단체 연공하는 것을 견지 하게 되었다……
1999년 12월. ……그날 저녁 우리 온 가족을 비롯해 동수까지 모두 8명이 구치소에 불법 수감 되었다. 그들은 내가 제일 어린 것을 보고 나에게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당시 악경은 나를 꼬드기면서 말만 하면 즉각 집에 돌려 보내줄 테니 이곳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협력하지 않자 위선적인 허울을 즉시 벗어 버리고는 나를 무한정 수감하겠다고 위협 하였다. 당시 나는 나이가 어리고 세상 물정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그곳에서 한 평생 갇히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수련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대법이 정법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너 사악이 어떻게 대법을 날조하고 비방하고 박해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자. 사흘 후 무사히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
ㅡㅡㅡㅡ본문작자
사부님께서 말씀 하셨다. “한 대법제자가 걷고 있는 길은 바로 한 부의 휘황한 역사로서, 이 한 부의 역사는 반드시 자신이 증오(證悟)하여 개창(開創)한 것이다. (ㅡㅡ정진요지2》)
1, 대법을 얻는 행운으로 사부님의 끝없는 은혜에 잠기다
1998년 대법을 막 접촉했을 때 나는 아직 16살 소녀였다. 그 때 어머니가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어서 더 이상 의사에게 보일 수 없는 형편에서 어머니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래서 나는 또한 기공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나도 따라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연공장에 도착해서 보도원에게 동작을 갓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파룬장법을 모두 할 수 있었는데, 연마를 마친 뒤 온 몸이 홀가분한 게 팔을 오래 들고 있어서 시큼하고 아픈 감각이란 조금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연공장에 가서 단체 연공하는 것을 견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련하기 시작한 지 약 2달 후인 어느 이른 아침, 꿈속에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커다란 집 안에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사부님을 뵙게 되어 몹시 격동되었다. 어머니가 말씀 하셨다. “사부님, 보십시오. 제 다리는 왜 가부좌가 안 됩니까?” 사부님께서는 미소를 띠우시고 말씀 하셨다. “그렇습니까? 어디 봅시다” 라고 하시면서 오른 손으로 가부좌를 못하고 앉은 다리를 가볍게 흔들어 주시자 어머니는 즉시 가부좌를 똑바로 하고 앉으셨다. 잠에서 깬 뒤 나는 아주 의혹스러웠다. 어머니는 일찍이 풍습과 요간판 돌출로 인해 한 쪽 다리는 길고 한 쪽 다리는 짧아 졌는데 연공할 때 오른 다리를 억지로 겨우 왼쪽 다리위에 올려놓아 반가부좌를 하긴 해도 아주 바르지 않아 마치 고사포 같았다. 설마 ……그래서 나는 얼른 어머니에게 찾아가 말했다. “엄마, 얼른 가부좌 해 보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주 격동돼 말씀 하셨다. “오늘 아침 연공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무척 괴로웠어, 다른 사람은 늙은이도 모두 결가부좌를 그렇게 잘하는데 나는 반가부좌도 이렇게 보기 싫게 하고 있으니. 그래도 앉아서 다리를 틀어봤더니 글쎄 결가부좌가 되더구나!” 말씀 하시면서 이미 꿈에서와 같이 똑 바르게 결가부좌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입으로 중얼 거렸다. “사부님께서,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거예요!”
처음으로 대법의 아름다움과 수성함, 신기함을 감수한 나는 당시의 보도원에게 말하였다. “이 파룬궁은 다른 기공과 같지 않아요. 이는 수련이에요,” 보도원은 놀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학생은 꽤 오성이 좋은데” 나도 수련의 신념이 더욱 확고해 져, 매일같이 등하교할 때와 휴식 시간을 이용해 모두 《정진요지》를 외웠다. 학우들은 내가 연공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어떤 학우는 토요일, 일요일이면 일부러 연공장에 우리가 단체로 연공하고 홍법하는 것을 보러 왔다. 그 후 계속 수련해 나가면서 부모님이 앓던 여러 가지 병들이 치료없이 나았다. 나는 천목으로 다른 공간의 미묘한 정경을 볼 수 있었고, 온 가족은 모두 함께 법에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에 부닥치면 더는 속인처럼 다투지 않게 되었는데, 사부님 끝없는 은혜 속에 푹 잠긴 절실한 감수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 법 공부 팀을 세웠고, 아침이면 부모님이 녹음기를 들고 연공장에 가서 단체 연공을 하였고, 저녁이면 동수들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법 공부를 했다. 매 번 공휴일이면 우리는 함께 주변 농촌에 가서 홍법 하였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과연 연분(緣份)이 있고 능히 깨닫는 자들이 잇따라 모여 와 입도(入道)하여 法을 얻노라.”(《정진요지》) 여서 법을 배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2, 피비린 박해에서 걸어 나와 대법을 수호
(1), 박해가 시작된 초기부터 나는 걸어 나오기로 결심했다.
1999년 7월 22일 오후, 구역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사당의 신문을 보여 주었다. 텔레비전에서 사부님을 모욕하고, 대법을 모욕한 추악한 행위를 보았을 때 나는 그만 대성통곡 하였다. 나는 왜 이런 일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한 번 또 한 번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부모님과 함께 연공장에 나갔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경찰들이 포위하고 있었고, 동수 몇 사람은 연공장에 나왔으나 절대 다수는 오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보도원이 악경에게 공제되어 연공장 부근 호텔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고, 아마 보도원이 잡혔을 것이라는 말도 어느 동수가 했다. 잡혔다고? 간수소로 보내는 건가? 그때 나의 머리가 더 없이 혼란하였고,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더 없는 공포를 느꼈다. 조석으로 함께 지내던 동수들이 더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므로 나는 부모님과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 하였다. 더는 이렇게 집에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거나, 사악이 이렇듯 기세 사납게 마음대로 사부님을 모욕하고 대법을 회멸하게 할 수는 없다. 당시 사악은 이미 우리 집을 중점 대상으로 정했다. 가도 사무실, 구역 경찰이 몇 번이나 집에 와서 조사를 하면서 수련을 포기 하라고 했다. 그 때 우리 온 가족은 심태가 아주 순수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주고 거짓말을 폭로하였다. 그랬더니 결국 그들은 진상을 요해하게 되어 우리 집에 그다지 찾아와 교란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시내 동수들과 연락해 그곳에서 각종 전단지, 현수막을 가져다 그 당시 나올 수 있는 겨우 몇 명 안 되는 동수들과 함께 배포 했다. 1999년 12월, 아버지께서 현수막 한 폭에다 이름을 쓰시고 그런 다음 상방신과 함께 북경 내신 내방 사무실에 보냈다. 며칠 후 우리가 사부님의 결백과 대법의 결백을 돌려 달라는 말을 하러 북경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공안국에서는 이미 우리 집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는 강제로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한 경찰이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갑자기 《정진요지》 한 권을 책상 위에 놓아둔 게 생각났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절대로 경찰이 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과연 그 경찰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우리 온 가족을 비롯해 동수까지 모두 8명이 구치소에 불법 수감 되었다. 그들은 내가 제일 어린 것을 보고 나에게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당시 악경은 나를 꼬드기면서 말만 하면 즉각 집에 돌려 보내줄 테니 이곳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협력하지 않자 위선적인 허울을 즉시 벗어 버리고는 나를 무한정 수감하겠다고 위협 하였다. 당시 나는 나이가 어리고 세상 물정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그곳에서 한 평생 갇히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수련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대법이 정법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너 사악이 어떻게 대법을 날조하고 비방하고 박해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자. 사흘 후 무사히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
(2), 박해 진상 폭로하고 세인의 양지 불러일으키다 중공 사악 집단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갈수록 더 심해져, 2001년에는 “천안문 분신자살”을 만들어 냈다. 학교 환경도 갈수록 긴장되어 갔다. 선생님과 학우들은 사악의 거짓말에 미혹되어 모두 나와 접근하기 싫어하면서 날마다 뒷공론을 하였다. 나는 여러 가지 요언 날조에 직면해 한 동안 소극적으로 변해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하였다. 집에 와서 냉정하게 법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이 법에 대해 아직도 확고하지 못하며, 곤란에 부딪치면 두려워서 감히 직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며칠동안 지속적으로 사부님의 《진성이 보이노라》의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늘 층차를 제고함이 근본이로다 고험앞에서 진성이 보이나니 공성원만하면 불도신이로다” 를 외웠다.
“그러나 한 위대한 수련자는 바로 중대한 고험 속에서 능히 자아(自我), 속인의 일체 사상에 이르기까지 내려놓을 수 있다.” (《정진요지2》)를 읽었을 때 나는 삽시간에 마음이 탁 트이면서, 중생을 자비로 대하는 아주 평온한 심태로 학교 지도부에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는 진상 편지 한 통을 썼다. 동시에 평소 나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일에 부닥치면 안을 향해 찾으면서 곳곳에서 법을 스승으로 모셨다. 점차 나와 함께 학습 문제를 토의하는 학우가 있게 되었고 아울러 진상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 주게 되었다. 반주임은 졸업 방명록에 이렇게 쓰셨다. 너는 속세를 벗어난 여자애다, 너의 몸에서 우리는 순진, 순선한 경지를 보아 냈는바, 이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진상을 제대로 알려 사악의 거짓말에 속은 사람이 진상을 알게 되었을 때, 주변 환경이 뚜렷하게 좋아짐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상을 알게 된 속인도 정의로운 하나의 산 매체가 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예를 하나 들겠다. 2001년 7월 대입 시험이 끝난 이틀 뒤, 나와 어머니는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간수소에 갇히게 되었다. 며칠 후 한 학우가 내가 구속된 소식을 알게 된 후, 다른 학우들에게 얼른 알렸고,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해 내가 간수소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우리 반 친구들 모두 함께 날마다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그들은 매일매일 간수소 대문 앞에 모여 오가는 군중에게 내가 어떻게 박해 받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어떤 학우는 공안국장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날마다 끊임 없이 전화를 걸어 석방을 요구했는데 반친구들의 그러한 활동이 한 때 아주 큰 정면 작용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공안국이 좋은 사람을 감금하고, 아이마저도 내 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회적인 여론으로 인해 반 달 사이에 나와 어머니는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 왔다. 학우들은 나를 보자 몹시 격동된 듯 반응하면서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넌 말이야 우리 속인이 구출해 낸 거야.” 구역 경찰도 우리 집을 방문해 고생시킨 것에 대해 몹시 미안하다는 듯 말하였다. (일년 남짓한 사이에 이 경찰도 이미 진상을 완전하게 알게 되어 남몰래 대법을 지지해 주었고, 이 번 일은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저녁에는 구역 경찰이 자신의 아내와 함께 와 진상을 듣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50위안을 내 놓으면서 말하였다. “형님네 온 가족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이 돈은 나의 조그마한 성의니 꼭 받아서 고기나 사 자십시오. 이건 모모당의 돈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지금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겠소? 그들을 보라구 “며칠 후 진일보 진상을 알려 주기 위하여 이 구역 경찰의 집을 방문 하였는데 집에는 늙으신 부모님들만 계셨다. 우리라는 말을 듣자 기뻐하면서 말씀 하셨다. “아들한테서 자네들 말을 진작 들었네, 그는 당신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였네.” 대학 시험 성적이 내려 왔을 때, 나의 점수를 정법위에서 조작해 원래 입학할 수 있던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자 즉시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아버지도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떠돌고 있었고, 어머니도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그야말로 또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그야말로 뼈를 깎는 듯 괴로웠다. 냉정해 진 후 나는 아직도 엄중한 명리심과 인간의 이른바 행복과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말씀 하셨다. “현재 그것들이 수련생과 대법을 파괴하고 해치는데(破害) 채용한 행위는 모두 극히 사악한 것이고, 면목 없는 너절한 것이라, 노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것들의 사악함을 세인들더러 알게끔 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세인들을 구도(救渡)하고, 사악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동시에 자기를 원만 시키는 것이고, 강대한 법이 세간에서의 체현이다.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정진요지2》) 이는 바로 내가 그것을 이용해 사악을 폭로하고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사악한 당이 좋은 사람을 붙잡을 뿐만 아니라 전도마저 박탈한다고 알렸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는 분분히 모모당은 대법을 박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질책 하였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전해 가다 보니 사악이 이젠 두려워 떨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개학될 무렵 학교에서 나에게 다른 한 부의 합격 통지서를 주면서 가겠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디인지 보니까 계산기에 상관되는 전업이었으므로 배워두면 장차 꼭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배움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게 된 선생님과 학우들 대부분은 여전히 진상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 가르침을 명기 하였다. “당신들의 수련인의 표현은 아주 순수하고 바른 것(純正)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표현을 보고 당신들은 좋다고 느꼈다. 만약 우리 자신들이 평소에 자신의 행위를 주의하지 않으면 당신들의 표현을 속인들은 곧 보게 될 것이며 그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깊이 들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는 바로 당신의 표현을 본다. 당신의 한 마디 말, 하나의 표현은 그로 하여금 제도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대법(大法)에 좋지 않은 인상(印象)을 가져다주게 된다.”(《 각지 설법2》〈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학교에서 나는 학습 성적이 우월하였고, 학우들과 잘 어울렸으며, 따라서 적당한 때에 주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특히 룸메이트는 대법진상을 듣기 아주 좋아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순조롭게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성공적으로 진상을 전파할 수 있었다. 2002년 인터넷 봉쇄가 갈수록 엄중해지면서 국내 사이트에서는 진상을 알리기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스티커 종이를 사서 한 조각씩 베어 낸 후 그 위에 “파룬따파 하오”, “쩐, 싼, 런 하오”, ” 사부님 결백을 돌려 달라,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등등을 써서 붙이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걷기만 하면 단번에 십 몇리씩 걸어갔는데 침실에 돌아오면 9시 반 넘어서 전등을 꺼야 했으므로 나는 복도의 불빛을 빌어 법 공부를 하였다. 룸메이트의 말에 의하면 “나야 말로 진짜 수련을 한다”는 것이었다. (3), 법 공부 홀시하고 일하는 마음으로 해 크게 넘어지다 내가 접촉한 학우들 모두 진상을 요해하였다. 하지만 학교에는 거짓말에 미혹되어 대법에 저촉하는 사람이 많고도 많았다. 나는 손으로 각종 소식을 대량으로 써 내어 학교 주변에다 붙이기 시작 하였다. 손으로 쓰는 소형 신문은 짤막한 진상 단어를 쓰기보다 많이 복잡해서 글씨도 단정하게 써야 했다. 흔히 한 부를 쓰는데 십 여분씩 걸려야 했으므로 하루에 몇 부밖에 쓰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 복도에 나가서 법공부 하던 시간을 “짜내게” 되었고 후에는 갈수록 법 공부를 하기 싫어졌다. 사부님께서는 《미국플로리다법회설법》에서 지적 하셨다. “그러므로 어떻게 박해를 받았든지 간에, 어려운 상황 하에서 여러분은 모두 능히 수련을 견지하고 법공부를 견지하고 자신으로 하여금 정신을 뚜렷이 차리게 하였다.”《美国佛罗里达法会讲法》 일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법 공부를 하지 않다보니 위험은 이미 눈앞에 다가 왔다. 2002년 3월, 시험을 막 끝내자 나는 사전에 준비해 두었던 진상 자료를 총망히 들고 가 붙였다. 그런데 전날 이미 한 동수가 학교 부근에 3백여 장의 시디를 배포하였기 때문에 사악이 이미 숨어서 지키고 있었음을 몰랐다. 두 장밖에 붙이지 못했을 때 사악에게 납치 되었다. 보위과에서 나를 억지로 기숙사에 끌고 가 트렁크를 검사하려 하였다. 그러자 함께 있던 룸메이트가 제꺽 자기 트렁크를 들고 와서 말했다. “이것이 그 애 겁니다” 보위과 사람은 멸시하듯 나는 홀겨 보면서 비웃었다. “너 이 꼬락서니를 봐라” 하지만 가방 밑바닥까지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나를 억지로 끌고 가려 했다. 그러자 룸메이트가 모두가 우~몰려와서 나를 꽉 끌어안고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 그때 또 두 사람이 와서 우리들을 갈라 놓았다. 그날 저녁 학교에서는 “610”에다,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해 나는 간수소로 끌려가던 도중에 다시 학교에 돌아오게 되었다. 학교 지도자는 나에게 하루 저녁 생각할 시간을 주겠으니 만약 내일 공개적으로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다시 간수소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이튿날 새벽에 (토요일이면 학교 정문은 원래 열려 있다) 나는 학교 대문이 닫힌 것을 발견하고는 담을 넘어 그 곳을 떠났다. 난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사람도 땅도 낯선 곳에서 동수 한 사람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때 예전에 인터넷 연계를 통해 알게 됐던 동수가 생각나 옷 몇 가지와 보관했던 대법책을 지고 동수한테 가기로 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 동수는 이미 국안 특무에게 40여일 추적당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어서 나는 또 잡히고 말았다. (4), 자신을 반성하고 정념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 불법 수감된 기간, 나는 이미 중점인물로 불법 판결을 받을 것임을 가족에게 수소문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3서를 쓰면 감형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권고하는 사람에게 나는 말하였다. “판결 한다고? 노교밖에 더 할 것인가?” 바로 자신의 일념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나는 불법 노교를 당하게 되었다. 돌연 간에 나는 일체 모두는 나 자신이 구한 것이며, 구세력의 꼬임에 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동수들은 나에게 능력이 (컴퓨터 지식을 장악) 있는데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일부 상식을 배우는 기회를 이용해, 대대에 내가 여러 사람에게 컴퓨터 기술을 배워주고 싶다고 재기했다. 그렇게 계획을 세웠더니 나는 신변의 동수들과 토의를 통해 오직 정념이 강하기만 하면 꼭 해낼 수 있고, 오늘 인류 사회의 어떠한 환경이든 모두 대법을 위해 개창된 것이며, 따라서 우리 자신의 수련 환경도 법에 대한 확고한 정념에 의해 개창해야 한다는 정념을 지녔다. 나는 평소에 한 사오한 자가 매 주 영어를 강의하던 것을 동수들에게 컴퓨터 기본 지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아주 성공적으로 바꾸었다. 나 자신은 소책자를 모아 두었다가 자신이 쓴 시를 기록한 다음 방법을 대어 전달해 나가게 하였다.
하루는 남자대에 아주 견정한 동수 셋이 왔는데 사악이 여자대의 사오한 사람을 이용해 전향시키려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무심코 들은 말이지만 이는 “미인계”를 쓰려는 것이었다. 나는 사악의 수작이 그야말로 너무도 미련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왜 이런 일이 나타났는가 생각해 보았다. 악경이 주의하지 않는 틈에 한 남 동수가 나에게 가만히 말했다. “경문이 없어요” 나는 곧장 크게 깨달았고, 순조롭게 경문을 남자대의 동수에게 보내 주었다.
모두 함께 날마다 서로 일깨워 주면서 정각 발정념을 하거나 전해 들어온 사부님 새로운 설법을 외웠다. 하루는 내가 가만히 경문을 외우다가 그만 손에 쥐고 있던 원고를 바닥에 떨어뜨려 악경에게 들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창고에 끌려갔다. 악경은 경문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물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 하였다. 네가 이를 뽑는다 해도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게 자칫했더라면 구세력의 꼬임에 속을 뻔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변상적으로 박해를 승인한 게 아닌가? 그 중에는 강렬한 쟁투심이 섞여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확 트이면서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었던 그런 순수함을 느꼈고, 사악이 나에게 접근하기만 하면 분분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 과연 줄곧 가장 사악하다고 불러졌던 악경이 (명혜망에 여러 번 이 사람에 대해 보도됨) 갑자기 나에 말하는 것이었다. “ 됐어, 아무 일 없어, 앞으로 주의하면 돼”(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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