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연화
[명혜망 2008년 11월 19일] 한 달 남짓 지나서야 자료점은 합당한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물건을 집안으로 옮겨 갈 때 어떤 사람이 사악의 지시를 받은 듯 머리를 내밀고 기웃거리며 살펴 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법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사악 너 아직 날 잡지 마라. 잡으려면 내가 천 명을 구할 때까지 기다려라. 그래야 나도 가치가 있다. 며칠 안 걸려 천여 부의 자료가 사람을 구하러 갔다. 나는 또 생각했다. 사악 너 아직 날 잡지 마라. 내가 또 2천 부를 만들 때까지 기다려라. 몇 사람 더 구하고 보자! 그때는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고, 구세력이 뭔지 얼떨떨했으나 어쨌든 자료 만드는 일은 옳은 일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 2003년에 와서야 나는 내가 하는 중생구도를 구세력이 박해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 경문이 발표되었을 때인데, 나는 점심 시간에 자료점에 가서 복사 하다가 다 하지 못하고, 저녁 퇴근 후에 또 가서 6시 반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편이 아이를 안고 서 있다가 슬리퍼를 쥐어 나한테 뿌렸는데 “탕” 하고 내 곁의 문짝에 가 부딪혔다. “썩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말아” 나는 속으로 기뻤다. 사부님 경문을 동수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가서 얼른 복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가라고 했어요. 그럼 난 가요!” 나는 자료점에 돌아와 설법과 전단지를 10시까지 찍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바깥에 CD를 붙일 때 나는 모 아파트에 파룬궁을 연마했던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 집 문에 붙여 놓아 그녀에게 대법제자가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게 하고 그녀로 하여금 급히 사람을 찾아 자료를 요구하게 하려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자 후에 어느 동수가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CD를 주었는데 집에 VCD가 없어 남의 집 것을 빌려서 보았다고 하였다. 나는 듣고 나서 기뻤다.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본문작자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존님, 안녕 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오늘 나 자신의 10여 년간의 심득체험을 써내어 동수들과 함께 이 만고의 기연으로 정법시기 대법도가 된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동시에 사존님의 생명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사 드리며, 제자는 사존님의 구도를 저버리지 않고 용맹정진하여 전 세계 대법제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법정인간의 도래를 맞이 하겠다.
1997년 아직 가정도 이루지 않은 나는 쓰라림과 고통 속에서 생명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우월한 가정 환경과 속인이 부러워하는 사업이 있었고, 또 재기가 한창인 젊은 여자애였으나 아름다운 인생은 나하고는 거리가 그렇게도 멀었다. 내가 바라는 사랑은 잔혹한 현실 사회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졌고, 맥을 끊어 자살하려 할 때 대법이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고, 생명이 승화되고, 반본귀진이 시작 되었다.
꼭 동수들이 사부님 경문, 명혜주간을 볼 수 있게 하겠다
1999년 “7.20” 이후, 나의 숙모 동수는 우리 현지 자료 원천의 유일한 경로였다. 그 때 나는 이미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도 한 살 넘었다. 어떤 때 나는 밤중에 스프레이를 갖고 나가 “파룬따파 하오”를 스프레이로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주택 복도에 진상자료를 붙이기도 하였다. 나갈 수 없을 때면 집에서 애를 보면서 《전법륜》을 읽는데 이틀 연휴이면 하루 종일 읽는다.
2000년 ~ 2001년 사이에 숙모는 두 번 사악에게 잡혀 불법 노교를 당했다. 나의 마음 속에는 오히려 비할 바 없는 확고한 정념이 솟아 올랐다. 나는 사부님께 여쭈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칼산, 불바다가 놓였다 할지라도 제자는 꼭 동수들이 모두 경문, 주간을 보게 할 것이며, 동수들을 빼놓지 않을 것입니다! ”
하지만 나는 기술을 몰랐고 단지 2, 3명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동수를 알고 있을 뿐인데 그들은 수시로 사악에게 잡힐 수 있었다. 바로 이 때에 사존께서 지금 나와 합작하고 있는 오랜 파트너 갑 동수를 만나게 해 주셨다. 갑 동수는 50여 세로서 정념이 아주 충족하다. “7.20” 후 북경에 청원 갔다 무사히 돌아 왔는데 내가 자료를 만들려 한다는 말을 듣자 그녀는 자기가 바깥으로 송달하는 일을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두 7천원 뿐인 돈을 꺼내고, 또 어머니의 혼수품인 팔찌를 팔아서 프린터와 복사지 열 박스를 샀다. 을 동수가 집을 세내어 얻자 나는 물건을 옮겨 갔다. 첫 번째 자료점은 이렇게 성립 되었다. 며칠 안 되어 을 동수가 사악에게 잡혀갔다. 갑 동수는 안전이 제 1위라면서 그 자료점은 이제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오직 내가 살아 있기만 하면 자료점은 손실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낮에는 출근하고 여가만 있으면 자료점에 가서 일을 하였다. 며칠 안 되어 을 동수가 무사히 돌아 왔다.
사부님 경문이 발표되었을 때인데, 나는 점심시간에 자료점에 가서 복사 하다가 다 하지 못해 저녁 퇴근 후에 또 갔다가 6시 반이 넘어서 집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 서자 남편이 애를 안고 서 있다가 슬리퍼를 들어 나한테 휘둘렀는데 “탕” 하고 내 곁의 문짝에 가 부딪혔다. “썩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말아” 나는 속으로 기뻤다. 사부님 경문을 동수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가서 얼른 복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가라고 했어요. 그럼 난 가요!” 나는 자료점에 돌아와 설법과 전단지를 10시까지 찍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 때는 몰랐는데 방음장치도 없었고, 이웃에서 듣지나 않는지도 생각 못했으며, 아래 윗 층에서 의심하지 않는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전단지를 봉투에 넣어 한 가방 가득 멘 다음, 신을 바꿔 신고 어두운 밤길을 떠났다. 방금 비가 내렸고 캄캄한 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울퉁불퉁한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홍음》을 소리 내어 외웠다. 세상의 대나한을 귀신도 굉장히 두려워하네 이렇게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면서 자료 하나하나를 배포하였다. 날 밝을 무렵에 나는 집에 돌아 왔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자료점을 보살펴 주시다
2002년 7월 벽을 사이에 둔 이웃집에서 툭 하면 와서 문을 두드리고는 이사 가라고 하였다. 후에 알아 보니 집 주인이 외출하면서 벽을 사이에 둔 이웃에게 집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갔는데 이웃은 집세에서 이익을 좀 얻어내려고 나를 내쫓으려 한 것이다. 그때 나에게는 핸드폰도 없었고 내가 또 날마다 가는 것도 아니어서 며칠에 한 번씩 가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자료점 문에 갑자기 쪽지가 붙었다. 3일 내에 즉시 집을 나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후과를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온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어디로 이사한단 말인가? 이렇게 많은 물건은 어디에 놓고? 그 때 직장에선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다. 나는 컴퓨터 등 물건을 직접 직장 사무실에 옮겨다 놓았다. 이렇게 하루 사이에 물건을 곳곳에 갖다 놓았다. 이튿날 일찌감치 나는 열쇠를 이웃에게 주려고 갔더니 문이 이미 비틀려 열려 있었고 자물쇠도 바뀌었다. 나는 다행스럽기 그지 없어 속으로 사부님께 감사 드렸다. 사부님, 당신이 없었다면 이 자료점은 사악에게 파괴되었을 겁니다!
한 달 남짓 지나서야 자료점은 합당한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물건을 집안으로 옮겨 갈 때 어떤 사람이 사악의 지시를 받은 듯 머리를 내밀고 기웃거리며 살펴 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법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사악 너 아직 날 잡지 마라. 잡으려면 내가 천 명을 구할 때까지 기다려라. 그래야 나도 가치가 있다. 며칠 안 걸려 천여 부의 자료가 사람을 구하러 갔다. 나는 또 생각했다. 사악 너 아직 날 잡지 마라. 내가 또 2천 부를 만들 때까지 기다려라. 몇 사람 더 구하고 보자! 그때는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고, 구세력이 뭔지 얼떨떨했으나 어쨌든 자료 만드는 일은 옳은 일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 2003년에 와서야 나는 내가 하는 중생구도를 구세력이 박해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나는 시간외 근무를 하였고 갑 동수도 자료점에 가는 것을 깜박 잊었다. 내가 갔을 때 복도가 모두 젖어 있었는데 듣자 하니 더운물 공급을 할 때 개폐기를 닫지 않아 물이 아래층 몇 층까지 흘러 내려 갔다고 한다. 내가 가서 문을 열었으나 열리지 않았다. 원래 집 주인이 우리를 찾을 수 없었고, 들어갈 수도 없었으니 그는 다른 자물쇠로 잠갔던 것이다. 이때 나의 첫 번째 일념이란 바로 반드시 자료점을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갑 동수를 찾아 먼저 발정념을 하고 다시 방법을 토론한 다음 이웃집에 집 주인의 주소를 알아내어 열쇠를 얻으려 하였다. 이웃은 마침 파출소에 신고하여 경찰에게 문을 비틀어 열고 집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야말로 위험하였다. 반 시간만 더 늦었더라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경찰이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발정념 하였다. 왜냐하면 집안에는 컴퓨터, 인쇄기, CD, 사부님 법상 등 무엇이든 다 있었고 모두 보이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정말로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고 문어귀에 서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흙탕물이 기계와 복사지가 있는 주변에 와서는 무슨 물건에 막힌 것처럼 굳어있었고 종이는 단지 몇 장만 못쓰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래층에서는 침대 몇 개가 모두 흠뻑 젖었고 마루 바닥들이 모두 젖어서 들떴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살핌이 없었다면 우리 이 관을 어찌 넘을 수 있었겠는가?
사심을 버리고 정체적으로 제고하여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게 하다
바깥에 CD를 붙일 때 나는 모 아파트에 파룬궁을 연마했던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집 문에 붙여 놓아 그녀로 하여금 대법제자가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게 하고 그녀로 하여금 급히 사람을 찾아 자료를 요구하게 하려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자 후에 그 동수가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CD를 바닥에서 주었는데 집에 VCD가 없어 남의 집 것을 빌려서 보았다고 하였다. 나는 듣고 나서 기쁨을 느꼈다.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다.
후에 을 동수 부부가 자료제작 중임을 맡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시간이 있고 기술이 있으며, 컴퓨터도 알고 씬씽도 높았다. 그들의 참여로 인해 자료가 몇 배로 늘어나 2, 3백 명 동수들에게 공급 되었고 매주 천여 부씩 만들어 내었다. 컬러인쇄도 소량으로 시작하였다. 나의 의존심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는지 을 동수 부부가 갑자기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알아야 할 기술들을 다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에 사부님 경문이 왔고 아이가 갑자기 열이 올랐다. 남편은 속인 일의 야근을 하러 갔는데 아이가 이때 열이 나니 어떻게 하겠는가? 필연코 구세력의 교란일 것이다.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아이를 이용하여 내가 하는 대법 일을 제지하려는 것을 제거하였다. 정념을 마치니 아이의 체온이 36.5도로 내려가 정상이었다. 나는 사존님의 무변한 법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물병, 보온병, 솜이불, 옷, 장난감 등을 넣은 가방을 두 팔과 심지어 목에까지 걸고서 아이를 업고 내려가서 복사지 두 묶음을 넣은 다음 자료점으로 갔다. 바닥에 깔개를 펴고 아이를 재운 다음 나는 한편으로 보면서 한편으로 조판하였다. 그 웹 페이지 식의 빈 칸은 어찌해도 올릴 수 없었다. 새벽 3시가 되자 아이가 또 열이 올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동수에게 미안하다. 나에겐 이런 능력밖에 없어.” 날 밝을 무렵, 나는 집에 가려 했는데 골목에는 차도 없었고, 엄동 설한에 아이를 안고 먼 길을 걷고 나니 이젠 꼼짝할 힘도 없었다. 이때 사부님 법신은 한 속인을 파견하여 내 곁으로 보내 주셨다. “제가 물건을 들어 줄까요?”
2004년 명혜에서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날 것을 제창하였다. 이때 우리는 체적이 크고 무게가 4백여 근 되는 기계를 폐기시키고 십여 대의 각 가지 모양의 작은 기계를 사들여 컬러인쇄를 시작하였다. 2005년까지 진상 자료는 전부 천연색이었다. 몇 개 중요한 가정자료점도 점차 완벽해지기 시작하였고 《9평》책도 만들어 내었다.
시간은 나로 놓고 말할 때 아주 중요하였다. 사부님 안배로 일년 반이란 시간에 나는 매 달 반달씩 출근 하였다. 나와 동수 갑은 최근 3년간의 시간에 《9평》책을 얼마나 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보수적인 추산에 의하더라도 6천여 권은 될 것이다. 일체 소모품은 우리 자체적으로 해결하였다. 돈이 부족하게 되면 사부님은 동수를 안배하여 3천, 5천 위안씩 보내오기도 했다. 외지 동수도 우리 이 곳에 와서 진상 자료를 가져 간다. 그것은 오직 나와 동수 갑만이 《9평》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번은 갑 동수가 90여 근인 5백 권의 《9평》을 내가 직접 송달하러 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 눈물을 떨구면서 동수들이 너무도 자료점에 의지하고 자료점의 동수를 위해 생각할 줄 모른다고 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상태는 자신의 집착심으로 인해 조성된 것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에 집착하여 손을 놓으려 하지 않은데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실 사심이다. 나중에는 정체상으로 아래 동수들이 주동적으로 법을 실증하는데 장애가 나타나 2007년 가을에 가서 우리 현지의 자료점 협조인 7, 8명 동수가 잡혔고 몇 개 중요한 자료점이 전부 마비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위사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제일 시작에는 동수들 모두가 자료점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단선 연계를 취하다 보니 나도 아래의 일에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단지 자신만 잘하면 된다고 여기고는 나머지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실 것이고 동수들에게도 법이 있으니 나는 그저 동수들과 무조건 협조만 하면 된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자료점의 작은 울타리에 봉폐 시켜 놓았던 것이다. 사실 이는 동수에게 기대를 하는 얼마나 큰 마음인가. 자신이 7년 넘어 자료점을 한 과정을 회고해 보면, 신변에 있는 몇 동수만 생각했지 정체가 모두 제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고, 단지 자신의 이 한 곳만 제고하면 된다고 생각 하였을 뿐이다. 한 사람의 힘은 필경은 제한이 있는 것이며, 만약 법 공부를 통해 마음을 닦아 여러 사람이 법을 실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작용을 모두 발휘한다면 그 에너지는 한량 없을 것이다!
최근 일년 동안에 사부님의 안배로 많은 50여 세 대법제자들이 모두 와서 참여하여 단번에 7, 8개의 자료점이 세워졌다. 자료를 만들려는 사람이 많아지자 기술을 아는 동수도 관념을 전변하여 가급적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모두 내 놓아 가르쳐 주었다. 종래로 자료를 만들어 보지 못한 노년 대법제자들이 지금은 모두 CD를 구울 줄 알게 되었다.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의 부담도 없어지고 나도 한가하고 유쾌해졌다. 사실 더는 감히 예전의 그 힘들어서 손목이 아파 물건도 들 수 없던 정경을 상상할 수 없다. 신변의 수 많은 노년 동수들이 법공부하고 연공하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격차도 보아냈다. 사부님께서 내가 법공부가 적고, 연공도 적게 하는 것을 보시고 나더러 더 많이 자신을 수련하도록 나에게 시간을 열어 주신 것이다. 나는 이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태만히 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
문장완성: 2008년 11월 17일
문장발표: 2008년 11월 19일
문장갱신: 2008년 11월 23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9/1899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