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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이 적으면 환경이 좋아진다

글/ 하남 대법제자

[명혜망2008년 11월 15일] 또 한 번은 한 사무실에 동시에 4,5명이 앉아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왕 주임에게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하였다. 왕 주임이 가방에 있는 게 무엇인지 물어 “전단지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전단지를 꺼내 그들의 손에 한 부씩 건네주었다. 그러자 왕 주임이 나를 가리키면서 장주임에게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이 책임진 파룬궁을 수련하는 모모모입니다”고 하자 장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 버렸다. 사실 그는 한 번도 나를 찾아와 대화하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책상위에 “파룬궁 교육 기록본”이 놓인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아직도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했더니 서기가 힐끗 쳐다보면서 “그건 청소할 때 뒤져서 나온 것인데 위에는 아무 기록도 없어요”라고 해서 확인해 보니 확실히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

한 번은 내가 직장에서 쓸데없는 일을 의논하다가(속인의 일) 현장 주임에게 들켰다. 현장 주임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한테 공장이 파산된다는 말을 들었어(지금은 이미 파산 되었음)? 그런 말을 다시 하다간 출근 못할 줄 알아, 그래도 파룬궁 선전은 해도 돼”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네,네,네, 단연코 고치겠습니다” 그 주임은 내가 출근했던 첫 날에 “나의 발목이 삐었어, 이걸 어떡하나?”라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파룬따파 하오를 외우라고 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오후에 발이 나았다. 그는 나를 만나자 기뻐서 한 발로 뜀뛰기를 하기도 하고 두 발로 뛰기도 하면서 다 나아서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늦게 알려 주었다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ㅡㅡㅡ본문 작자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어 지금까지 수련하고 있으니 노 수련생인 셈이다. 말하자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기적거리면서 오늘까지 걸어온 것도 쉽지 않았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아래는 나의 수련 중의 몇 차례 경력인데 써 내어 동수들께 참고로 드린다. 아래 글로 몇 년간의 수련 상황을 사부님과 동수들께 회보하고자 한다.

1, 속인 마음을 내려놓으면 넘어가지 못할 일이 없다

그것은 “7. 20” 후의 일이다. 나는 북경에 상방 갈 때 현지 파출소에 잡혀 간수소에 20개월가량 불법 수감을 당했다. 그 해 우리 아이가 고중 진학 시험을 칠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별다른 많은 생각 없이 단지 일념만 있었는데, 내가 인간세상에 온 것은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 날 저녁 꿈을 꾸었는데 꿈에 당시 밤하늘이 조금도 오염되지 않아 뭇별들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새로운 지구가 나타났다. 어머나, 나는 그만 조급해 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수련을 잘하지 못했는데 어쩌나. 깨어난 후 나는 사부님께서 법을 실증하려 하는 나의 마음을 보시고 고무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후에 불법 수감 당하긴 했어도 아이는 그 해 중점 고중에 합격했던 것이다. 아이는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영향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3년 고중 공부를 마치고 대학까지 갈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불법 수감당한 때였는데 악경과 직장 보위과 과장이 전문적으로 지적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면 장차 당신의 아들은 대학마저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정념이 아주 강한 상태에서 말했다. “애는 혜택 받을 수 있을 뿐,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나는 대법이 좋다는 것만을 믿을 뿐입니다.” 아이는 대학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보호대상자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우리 집은 원래부터 저소득층인데다 몇 년동안 파룬궁 박해로 불법 수감당하고 벌금을 사취당했고, 봉급을 주지 않고, 해고당했다. 남편도 해고되는 박해 등등으로 인해 나는 정말로 비싼 학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저소득층대상자로 학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경제 상황 조사표를 우편으로 부쳐 왔고, 나는 표의 요구대로 써 넣은 다음 사무소에 가서 확인도장을 받으려 하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장이 찍히지 않은 표를 들고 사무소에 가서 진상을 알려 주었다. 장쩌민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가, 파룬궁은 나라와 인민에 이롭다고 말하자 그들은 “당신은 아직도 파룬궁을 연마 하는가? 당신 집에 파룬궁 전단지가 있는가? 당신은 다른 연공인들과 거래하는가?” 나는 아주 엄숙하게 말하였다. “내가 집에서 허리를 펴도 위법인가요? 연공하여 병이 없어졌으니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어요? 전단지는 집의 문틈에, 자전거 광주리에 늘 놓여 있어요. 원래의 연공장에서 연마하던 사람을 나는 죄다 알고 있는데 그들 모두 좋은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과 교제하는데도 당신이 마음놓지 못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거요?” 나는 이어서 또 물었다. 우리 집 경제 상황의 진실여부보다 내가 무엇을 신앙하는지 보아야 한다면, 그럼 만약 파룬궁 수련이 진실한 것이라해도 당신들은 승인하지 않고, 가령 공산당을 믿는다고 하여 진실하지 않은데도 당신들은 승인 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렇죠, 그렇죠, 한데 연결하면 안 되지요, 우리는 절대적으로 당신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사무소란 바로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지요, 무슨 곤란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나는 말했다. “나는 지금 최저 보장금 타는 표가 있는데 ‘가정수입’ 항목을 써 넣기가 힘들어요, 당시 나와 남편은 서로 다른 기업에서 일했는데 그들은 봉급을 질질 끌면서 오래도록 주지 않았어요(후에 다 지불 받았는데 한 푼도 적게 주지 않았다).” 서기가 듣더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나를 직접 전문적으로 최저 보장금을 주는 사무실 책임자에게 데리고 갔고, 책임자는 서기가 데리고 온 사람임을 보고는 아주 열심히 표를 써 넣은 다음 위에 올려 보냈다. 그들도 진상을 듣게 되었고 나도 최저 보장금을 탈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측에서도 2천위안을 보조해 주었고 나는 또 진상자료, 《9평》《장쩌민 그 사람》등을 그들 중 일부에게 보내 주었는데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또 한 번은 한 사무실에 동시에 4,5명이 앉아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왕 주임에게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하였다. 왕 주임이 가방에 있는 게 무엇인지 물어 “전단지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전단지를 꺼내 그들의 손에 한 부씩 건네주었다. 그러자 왕 주임이 나를 가리키면서 장주임에게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이 책임진 파룬궁을 수련하는 모모모입니다”고 하자 장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 버렸다. 사실 그는 한 번도 나를 찾아와 대화하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책상위에 “파룬궁 교육 기록본”이 놓인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아직도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했더니 서기가 힐끗 쳐다보면서 “그건 청소할 때 뒤져서 나온 것인데 위에는 아무 기록도 없어요”라고 해서 확인해 보니 확실히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

보는바와 같이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파룬궁에 대한)그들도 단지 형식만 꾸밀 뿐이었다. 사무소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진상자료를 얻었고 그들도 파룬궁을 인정하여 주었다. 사람에게는 명백한 일면이 있었으므로 사악은 이젠 작용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일은, 내가 자유를 잃었을 때 남편 직장에서 봉급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외지에 가 일을 했는데 직장에서 결석했다고 그를 해고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 온지 얼마 안 된 나는 마땅히 남편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여겨 남편과 같이 직장 상사를 찾아가 진상을 알려 주고 9평, 장쩌민 그 사람 등의 자료를 보내 주었는데 결국 아주 순조롭게 당 소조 회의에서 통과 되었다. 다른 해고자들은 식사를 청하고 예물을 보내며, 관계를 이용하고 뒤문 거래를 해도 모두 안 되었는데 우리는 손쉽게 해결 하였는바, 이 모두는 대법의 위력 이었다! 사실 오직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고,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기만 하면 넘어가지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2.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직장의 환경을 바로잡다

몇 년 동안의 박해와 아이가 대학에 다니게 되어 나는 경제적으로 아주 피동적이었지만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모두 좋은 일이다. 나는 일체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릴 것이다. 일의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직장에서 직원의 위험 보험 저당금을 공제했는데(나는 2천위안을 공제당했다) 나는 이 돈을 찾기 위해 적지 않게 직장 지도부에 진상을 알려 주었다. 어느 날 대법자료, 시디, ‘파룬따파 하오’ 표어 등을 가지고 직장에 가 돈을 돌려 달라고 했더니 공장장이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2층)에서 나와 3층으로 올라가 전단지를 배포하고 표어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한 층도 빼놓지 않고 모두 붙였다. 또 사무실에서 현장(车间) 까지 가는 길에 죄다 배포하면서 붙였다. 그러자 보위과장, 공장서기, 현장서기 모두 몹시 긴장해서 파출소에 전화를 했고, 잠시 후 경찰차 몇 대가 와 내가 지니고 있던 자료를 전부 불법 몰수했다. 또 우리 집에 가서 (이는 내가 잘못 했다. 나는 절대 그들을 우리 집에 가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 대법 책 일부를 파출소에 가져갔다. 그들이 나를 차에 끌어넣기 전까지 나는 줄곧 “파룬따파 하오”, “전 세계에서 장쩌민을 공개 심판한다”를 높이 외쳤다. 그 때 많은 이웃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세인들이 “파룬따파 하오”란 목소리를 듣게 하고 사악을 해체 시켰다. 파출소에서 나와 우리 가족 (속인)모두 사악과 배합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이불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말로는 나를 간수소에 보내겠다고 해 우리 가족은, “우리는 아무것도 그녀에게 주지 않겠다. 당신들께(경찰) 맡겼으니 우리는 아무 상관도 안 하겠다”고 대답하고는 죄다 가버렸다. 경찰은 방법이 없자 밤에 훌륭한 잠자리를 나에게 마련해 주었고, 이튿날 대문이 열리자 나는 떳떳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이웃들은 우리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며느리 나왔어요?” 시어머니는 말했다. “우린 아무런 나쁜 일도 하지 않았으니 파출소도 상관하지 않아요”

그날 저녁 나는 남편 직장에 가서 (사인 기업)또 진상을 알렸다. 그리고 이튿날 나는 자비한 마음으로 또 직장에 가서 지도자를 찾아 진상을 알려 주면서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보위 과장은 내 목소리를 듣자 1급 전투준비 태세처럼 보위과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나를 둘러쌌다. 보위과장이 물었다. “파출소에서 당신에게 뭐라 하던가요?” 내가 말했다. “ 조정에 사람이 없으니 그저 그러고 말았지요” “당신은 전단지를 갖고 있나요?” 뜻인 즉 갖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고 제발 도처에 붙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전단지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내가 공장장을 찾아가지 못하게 했다.(나의 수련엔 아직도 누락이 있었다)그들은 나를 끌고 당기고 하면서 보위과에로 밀어 넣었다. 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곤 그들에게 오전 내내 진상을 말해 주었다. 공장장이 퇴근하고 나서야 그들은 나를 집에 돌아가게 했다.

그 후, 경비는 나를 아예 공장 문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해서 나는 공장 밖에서 진상자료를 배포 하였다. 나는 공장 밖에 세워 놓은 직원들의 자전거 광주리 안에 전단지를 놓았다. 마침 공장 안으로 들어가던 직원 몇 명이 내가 자료를 놓는 것을 보고 무엇인가고 물었다.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전 세계에서 장쩌민을 공개 심판”, “ 장 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한다” 입니다. 아이유, 정말 대담한데, 그리고는 전단지를 집어 들어 보면서 공장안으로 걸어갔다. 세인들이 구도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니까 나는 더욱 중생구도에 조바심이 났다.

나는 다 쓴 재료를 내신내방국(信访局), 정법위 (진상을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지 결과를 바라는 것이 아님)에 건네주었다. 그들은 그래도 열정적인 편이었다. “당신은 자료를 복사해서 한 부는 당신 자신에게 남겨두고 다른 한 부는 신방국에 갖다 주세요. 당신 직장은 우리 관활 범위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신방국에 갔더니 그들은 자료를 보자 사납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말을 감히 합니까, 왜 당신을 노동교양 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자료를 접수한 사람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하는 것을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곤 또 다른 창구에서 진상을 말했다. 당시 다른 상방인원도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조급해 하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 당신은 검을 연마한다거나 다른 기공을 연마한다고 말하세요” 나는 높은 소리로 말했다. “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연공해서 병이 없어진 것은 내가 실천을 통해 얻은 진리입니다.”, “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말인가요? 그들이 물었다. “ 진리는 마난을 겪어도 여전히 진리이고, 거짓말은 천백 번 중복해도 여전히 가짓말입니다. 당장, 헌법을 몇 번을 수개 했던 간에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하고 내가 말했다. 이 때 신방국의 3.4명 사람들도 아무말이 없었고, 자료를 접수한 사람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일을 반영하려고 합니까?, 사실 우리도 당신을 아주 동정합니다. 당신이 집에서 연마한다 해도 당신은 모모모가 공을 연마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인데 하필이면 당신은 한사코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할 필요야 없지 않습니까? “

나는 자료를 공업경제 신방국에 넘겨주었다. 그들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나는 바로 파룬궁 수련을 하여 좋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이렇듯 박해한 것이다. 당시 직장에서는 보험비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퇴직 연령이 넘어도 퇴직을 할 수 없고 또 출근도 시키지 않는데 이건 사람을 막다른 골목에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고 뭔가? 나에게 빚진 돈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전에 나는 직장에 출근할 때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600위안을 받아도 나에게는 200위안 밖에 주지 않았다. 이는 나를 열등 공민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그 일로 인해 나는 출근 하지 않았는데 공장 지도자는 파출소, 사무소, 구역 610에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서(나는 직장보다 일찍 610에 상황을 반영 하였다)결과적으로 “610”서기에게 말문이 막혀 버리게 되었다. “당신들은 남의 봉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도, 그걸 빌미로 사람을 잡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 더는 다른 구실이 없게 되었다.

며칠 후 그들은 또 나에게 출근 문제를 토의하러 오라는 통지를 보냈다. 회의실에 가니 벼슬이 크고 작은 관원들이 가득 앉아 있었는데 사무소 서기, 주임, 파출소 지도원, 보위과장, 공장서기 등 모두 있었다. 말로는 나를 전향반에 보내 며칠 공부를 하게 한 다음 성 검사원에서 검사를 마치면 돌아와 출근하게 하고 봉급도 올려 준다는 것이었다(속임수다). 이 말을 듣자 나는 단호하게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결국 공장 서기는 상급에 회보해 나를 가지 않게 하였다. 학습반 일은 이렇게 나의 정념의 작용하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 나는 출근하게 되었고 봉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공장 지도부는 아직도 나에게 끝이 없었다. 사업상에서 어느 생산 공정에서 퇴근이 늦으면 그들은 나를 그 생산 공정에로 보냈는데 한 번 출근하면 11,12시간을 초과했고, 또 다른 불공정한 대우도 있었다. 나는 서기를 찾아 도리를 말하면서 나의 원래의 일자리를 회복해 줄 것을 요구 하였다. 서기가 틈을 타 말하였다. “당신들 파룬궁은 진,선,인을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당신은 참음을 해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나더러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하게 하는데 《노동법》 규정은 8시간 사업제입니다. 당신이 더 일을 시킨다 해서 내 사상중의 신앙하는 것을 없애 버릴 것 같습니까? 강제로는 인심을 개변시키지 못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위법이며, 나는 당신의 위법에 배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진,선,인을 하지 못했다고요? 내 당신에게 말해주지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위법난기 하는 일을 종래로 하지 않습니다. 개인 신앙, 상방, 이 모든 것은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익인 만큼 내가 이렇게 한 것은 헌법에 대한 수호입니다.” 무엇이라 말해도 소용없었다. 후에 직장에서는 나를 무리하게 공장 문 밖으로 몰아냈다(下岗이라 불렀다)

나는 이어서 신방과(信访科)의 사람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해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말해 주었더니 그들은 듣고 나서 말하는 것이었다, 더 말하지 마시오, 더 말했다간 우리도 파룬궁을 연마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를 타 시 정법위 서기, 사회 최저생활보장부문 등 곳의 책임자를 찾아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야말로 물이 도랑으로 흘러드는 격이었다.

후에 직장에서는 나의 일자리를 회복시켜 주었고, 위험 저당금도 대부분 돌려 주었으며, 몇 백위안의 봉급도 보충해 주었다. 한 번은 내가 직장에서 쓸데없는 일을 의논하다가(속인의 일) 현장 주임에게 들켰다. 현장 주임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한테 공장이 파산된다는 말을 들었어(지금은 이미 파산 되었음)? 그런 말을 다시 하다간 출근 못할 줄 알아, 그래도 파룬궁 선전은 해도 돼”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네,네,네, 단연코 고치겠습니다” 그 주임은 내가 출근했던 첫 날에 “나의 발목이 삐었어, 이걸 어떡하나?”라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파룬따파 하오를 외우라고 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오후에 발이 나았다. 그는 나를 만나자 기뻐서 한 발로 뜀뛰기를 하기도 하고 두 발로 뛰기도 하면서 다 나아서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늦게 알려 주었다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모두다 공개적으로 했다. 현장에서 진상을 모르는 다른 한 주임이 나에게 “출근을 했으면 당신 할 일이나 잘하고 현장에 와서는 전단지를 배포하지 말라”고 해서 나는 “ 늘 파룬따파 하오를 외우면 안전생산에 사고가 적어지는데 당신에게 무슨 나쁜 점이 있는 가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 버렸다. 그 때부터 더는 그 누구도 내가 하려는 일을 가로막지 않았고, 사악은 대법제자 앞에서 어떠한 작용도 일으키지 못하였다. 공장 서기는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무엇을 배우던 모두 사람더러 좋은 것을 배우게 한다” 설에 공장서기, 공회주석은 친히 오리털 솜옷에 돈 백원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여기까지 말하고 되돌아가 이야기하고자 한다. 파출소에서 나의 대법책과 자료를 가져가고 아직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경찰의 당직이 언제인지 알아본 다음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로 갔다. 그들은 내가 책을 가지러 왔다고 하자 사무실 문을 열고 책상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건 나의 책이고, 그건 당신의 책입니다. 하지만 내 책만은 가져가지 마시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사무실에 들어가도록 했고 자신은 다른 사무실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순조롭게 책을 찾아가지고 집에 와서 보니 전단지 위에 나의 이름이 씌어져 있기에 그걸 찢어낸 다음 또 다시 전단지를 배포해 중생을 구도했다.

몇 년간의 수련의 길에서 비교적 잘할 때도 있었고, 아주 부족할 때도 있었지만 금후 나는 수련의 길에서 더욱 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나의 사전 대원을 완수할 것이다.

허스,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5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5/18936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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