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헤이룽장 대법제자 쯔원(子文)
【명혜망 2008년 11월 14일】 2002년 6월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파트 어귀에서 한 사람이 나를 주시하고 있고, 또 주위의 이웃들이 모두 나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정상으로 출입을 하면서 주동적으로 이웃들과 접촉하고 아파트 복도의 위생을 청결하게 하였다. 집에서도 부모를 잘 모시는 좋은 가족으로 되었다. 시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칭찬하였다. 이웃들은 점차적으로 나를 피하지 않았으며 또 주동적으로 나에게 소식을 알려 주었다. 어느 한 번 한 외지 사람이 친척을 찾으러 왔는데 찾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이웃들이 보고서 그에게 나를 찾아가라고 알려 주며 내가 그녀를 꼭 도와줄 것이라고 하였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나의 시어머니는 병이 중하였다. 우리 자녀들은 번갈아 보살피기로 약속하였다. 내가 담당한 날에는 극진히 보살폈다. 간혹 온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에 대해 아주 만족해하였다. 늘 형제들 앞에서 나를 높이 추켜올리면서 좋은 말을 하였다. 어느 날 그들의 가족 모임 회의를 가졌다. 저녁에 남편은 작은 삼촌이 진실한 말을 하였다고 나에게 알려줬다. 내가 1999년에 불법으로 박해 받은 후에 작은 삼촌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거짓말 선전만 들었기 때문에 일찍이 남편에게 이혼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일 년 동안 시어머니를 보살피는 표현에서 그는 나와 대법에 대한 태도를 개변하였다. 회의에서 작은 삼촌은 먼저 “큰형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그래도 그 사람의 파룬궁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본문작자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이다. 일찍이 모 지역에서 보도소 부소장 책임을 담당하였었다. 9년 동안의 정법 수련에서 나는 납치도 당했고 불법으로 감금도 되었으며, 또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박해받은 경력도 있었다. 본인은 마땅히 일찍이 종결하여 수련 심득 교류에 참가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수련이 잘 되지 못한 관계로 관념의 장애가 있었다. 이번에야 이 문제에서 자신을 바로 잡아 9년 동안의 수련 체험을 글로 써서 사존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1.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것 역시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수련은 “속인 중의 어떠한 일보다도 더 어렵다고 나는 말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시에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언행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특히 ‘7.20’ 이후 하늘땅을 뒤엎을 듯한 거짓말 선전의 독해는 세인들에게 파룬궁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신의 행동으로 거짓말을 폭로하고 법을 실증하려고 결심했다.
1999년 10월 8일, 나는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불법으로 납치되어 시의 제1구치소에 구금되었다. 당시 구금된 동수들은 아주 많았다. 우리는 모두 감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였다. 2달이 지난 후에 동수들은 계속 모두 떠났고, 오직 나 한 사람만 남았다. 나는 조금도 다름없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편리를 도모하였다. 생활상에서 곤란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늘 날짜에 맞추어 일용품을 그들에게 주었다. 정신상에서 그녀들에게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었다. 점차적으로 그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나와 이야기하기를 즐기면서 나에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환해진다고 하였다. 감방실의 두목은 호장이라고 부르는데 주동적으로 나에게 법을 외우라고 하면서 자기는 듣겠다고 하였다. 특별히 휴가일의 자유 활동 시에 호장은 여러 번 전 감실의 사람들을 조직하여 나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람됨의 도리를 말하게 하였다.
전 감방의 사람들은 풍기가 아주 좋게 변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문과 《홍음》을 따라 외웠다. 성이 싱(邢)씨인 한 범인은 교관이 불러서 담화하게 되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자신은 대법을 수련함으로 대법제자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호장은 석방된 후에 집으로 가서 《전법륜》을 10번은 보겠다고 하였다. 중형범은 경문을 이불 속에 넣어 봉해놓고 감옥에서 가지고 있으면서 공부하겠다고 하였다. 살인범 장 모는 이번에 법을 얻었으니 죽어도 원이 없으며 내생에는 반드시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했다. 감옥의 소장은 감방의 사람들이 모두 나의 주위에서 돌고 있는 것을 보고 나를 다른 방으로 옮겨 놓았다. 떠날 임박에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 자리를 바꾸어도 나는 여전하였다. 어느 한번 호장이 나에게 고생스러운지를 물었다. 생활은 비록 고생스럽지만 나의 마음에는 햇빛이 충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당신이 늘 즐거워하는 것을 책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2년 6월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파트 어귀에서 한 사람이 나를 주시하고 있고, 또 주위의 이웃들이 모두 나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정상으로 출입을 하면서 주동적으로 이웃들과 접촉하고 아파트 복도의 위생을 청결하게 하였다. 집에서도 부모를 잘 모시는 좋은 가족으로 되었다. 시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칭찬하였다. 이웃들은 점차적으로 나를 피하지 않았으며 또 주동적으로 나에게 소식을 알려 주었다. 어느 한 번 한 외지 사람이 친척을 찾으러 왔는데 찾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이웃들이 보고서 그에게 나를 찾아가라고 알려 주며 내가 그녀를 꼭 도와줄 것이라고 하였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나의 시어머니는 병이 중하였다. 우리 자녀들은 번갈아 보살피기로 약속하였다. 내가 담당한 날에는 극진히 보살폈다. 간혹 온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주 만족해하면서 늘 자식들 앞에서 잘 보살핀다고 나를 칭찬하였다. 어느 날 그들 형제자매들 가족 모임 회의를 가졌다. 저녁에 남편은 나에게 작은 삼촌이 진실한 말을 하였다고 알려줬다. 내가 1999년에 불법으로 박해 받은 후에 작은 삼촌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거짓말 선전만 들었기 때문에 일찍이 남편에게 이혼하라고 부추겼으며, 또 내가 모모모라면 바로 기관총으로 그녀들을 모두 탕탕하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시어머니를 잘 보살피는 일 년 동안의 표현에서 그는 나와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개변했다. 회의할 때 작은 삼촌은 먼저 “큰형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그래도 그 사람의 파룬궁이 좋아요! 우리는 한 사람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자매인데도 그 사람보다 잘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주머니는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아직도 늘 선의로 나에게 진상할 때 안전에 주의하라고 부탁한다.
2. 박해를 반대하는 중에서 자신의 길을 잘 가다
사부님께서는《길》이 한편의 경문 중에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없으며 개개인이 걷고 있는 길이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기초가 같지 않고 각종 집착심의 대소가 같지 않고 생명의 특징이 같지 않고 속인 중에서의 하는 일이 같지 않으며 가정환경이 같지 않은 등등의 요소가 개개인의 수련의 길이 같지 않고, 집착심을 버리는 상태가 같지 않고, 관(關)을 넘기는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음을 결정하였다. 그러므로 표현상에서 다른 사람이 닦아놓은 길을 찾기가 어려우며 편차(便車)에 편승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라고 하셨다.
회억해보면 내가 걸어온 길은 확실히 다른 사람과 부동하였다. 노교소에서 사악은 나를 중점대상으로 삶았다. 그들은 나를 ‘전화’시키면 가히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나는 그들이 박해하는 주요 대상으로 되었다. 여러 가지 ‘전화단’, 각계 층의 ‘610’ 인원, 각급 영도, 노교소의 교도관 경찰을 포함하여 또 기타 각 방면의 인사들이 모두 나를 찾아왔다. 나는 불려 나가서 담화하는 사람 중에서 제일 차수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 노교소의 인원들은 늘 수련생들을 기만하기 위하여 내가 ‘전화’했다고 떠벌렸다.
처음에 나는 아주 심란하였다. 다른 동수들이 부러웠으며 속으로 내가 일반 수련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한 번은 내가 있는 감방에서 악경이 경문을 빼앗은 원인으로 단체 단식으로 항의를 제출하였다. 소장은 나를 찾아 담화하면서 당신은 무슨 신분인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미는 내가 두목이라는 것이다. ‘7.20’ 그 날도 당신은 또 모든 시의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통지하여 시정부 문 앞에서 단체 청원을 하였고, 구치소, 노교소에 와서도 당신은 여전히 연공하고 있지 않은가 라며 당신이 지금 또 감히 움직인다면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시 나의 마음은 진감되었다. 속으로 나는 이렇게 묵묵히 이 일체를 감당해서는 안 되므로 마땅히 주동적으로 사악을 질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들이 사악한 마음이 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실제 행동으로 사악의 음모를 해체하려고 결심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대법이 부여한 나의 자비로 여러 방면에서 나를 방문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하였다. 아울러 매 한차례의 담화에서 사악이 다른 동수들을 박해하려고 공간을 뚫는 데 대하여 엄숙하고 참답게 대처하였다. 견결히 사부님과 법을 믿는 신념으로 이지적으로 온건하게 그 삐뚤어진 사악의 말들을 반박하고 선의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이 “당신의 사부가 미국으로 도망가서 향수를 누리고 있다.”라고 말하면, 나는 “나의 사부님은 동방의 사람들은 구도 하실 뿐만 아니라 또 서방 사람들도 구도하신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당신의 사부님은 책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하면, 나는 “상품은 경제로서 지출이 있으면 반드시 소득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당신을 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나는 “내가 수련한 후에 신심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고, 좋은 사람이 되려면 근본적인 양심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무릇 여러 번의 담화에서 모두 이러한 타당한 말로 사악의 날뛰는 기세를 크게 꺾어 놓는 과정에서 사부님의 보호와 배려의 지혜를 체험하였다. 이렇게 반년이나 박해를 시도하였지만 음모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참혹한 환경 중에서의 수련은 법공부가 기초이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사부님의 경문, 설법을 우리는 모두 얻을 수 있었으며 또 외웠다. 바른길로 가는데 길을 잃지 않기 위하여 기초를 닦았다. 그때 나는 견정한 일념이 있었다. 바로 오직 수련생을 박해하고 비방하고 대법과 사부님을 불경 하는 것은 모두 견결히 제지하고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연공하고 일어나면 법을 외우면서 대법을 모욕하는 문장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 그리고 동수를 박해한 당사자를 찾아 사악한 것을 폭로하고 박해를 제지하였으며, 영도와 말할 때에는 선의로 감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사악하게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장이 그믐날에 우리들에게 이른바 ‘만회’를 베풀 때, 나에게 “당신들의 이 일을 우리도 고려하고 있어요. 그런데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조작되어 나온 후에 박해의 형세는 또 악화 되었어요.”라고 말하였다.
2001년 신년이후, 노교소는 수련생을 집중적으로 작은 방(30여 평방 밖에 안 되는 곳)에 감금하기로 결정하였다. 목적은 우리와 이미 ‘전화’된 수련생들의 접촉을 방지하기 위하여서였다. 우리는 법공부, 교류를 견지하여 두 달이 넘는 기간 제고가 아주 빨랐다. 당시 우리는 사부님의 《건의》한편의 경문을 얻었다. 모두들 교류를 통하여 이미 ‘전화’된 수련생들을 도와주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대량적으로 《전법륜》, 경문을 베껴서 그들에게 보내 주었다.
어느 한 번은 일요일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있을 때였다. 경찰이 준비가 안 된 틈을 타 이미 ‘전화’된 수련생들의 방으로 뛰어가서 절대로 ‘전화’하지 말고 ‘회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고 그들과 포옹을 하였다. 다른 동수들도 내가 나간 것을 보고 모두 뛰쳐나가서 각 방에 물건을 건네다 주었다. 당시 모든 수련생들은 모두 아주 활기찼다. 방향을 잃은 동수들을 도와 되돌아오게 하는 데 적극적인 추진 작용을 일으켰다.
그 후에 사악은 우리 법공부 환경을 파괴하기 위하여 감방 안 3분의 1의 자리에 책상을 놓아 우리들로 하여금 약통을 붙이는 일을 하게 하였다. 당시 나는 이 음모가 이루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와 동수들은 교류한 후에 파업하고 법공부 환경을 개척하려고 하였다. 그 이튿날 파업하여 사악은 또 실패하였다. 그 후부터 사악은 나를 독방에 감금하여 나와 동수들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였다.
2001년 10월전, 우리 여기에서 이미 만기를 초과한 불법으로 감금되었던 동수들은 계속 모두 떠났다. 오직 나 한 사람만 아직도 노교소에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확실히 고독감을 느꼈다. 나는 동수들이 모두 중생구도하러 떠났는데 나도 여기에 묶여 있을 수 없고, 나는 반드시 빠른 시간에 나가서 법을 실증하는 홍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식으로 소장에게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잘못이 없으며 장씨 건달 집단이 무고하게 모함하면서 죄를 뒤집혀 씌운 것이니 반드시 무조건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리하여 2002년 1월 말에 단식으로 불법으로 감금한 데 대하여 항의를 제출한 후 줄곧 6개월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기간에 나는 야만적인 음식 주입과 이름 모를 약물 주사 등의 박해를 경험하였다. 그때 매 3일에 한 번씩 성이 진(陳) 씨인 감옥 의사가 당직이었는데, 나는 입이 마르고 위가 타는 것 같았으며 또 설사하였다. 어느 한번 진 씨가 주입을 할 때 너무 뜨거워서 식기를 기다렸다. 진 씨는 한 형사범에게 맛을 보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한 모금 마셨는데 당시 그녀는 거기에서 넋을 잃고 넘기지 않았다. 진 씨가 그것이 어떠한지 물을 때에야 넘겼는데, 그 후에 그녀는 나에게 이번에야 나는 당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원래 그것은 나의 집에서 배추를 절일 때의 그 물보다도 더 짜다고 하였다! 한 번은 진 씨의 주입이 끝난 후에 줄곧 졸도할 때까지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생활환경이 변하였다. 나는 다그쳐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였으므로 신체 회복이 아주 빨랐다. 능히 걸을 수 있을 때 나는 남편에게 나를 동반하여 나의 친한 친구들의 집으로 진상하러 가자고 하였다. 신체의 건강이 회복됨에 따라 더욱 3가지 일을 잘하기에 노력해야 하였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의 표현이 아주 돌출하였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 아파트 문어귀에서 전문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담당 경찰도 와서 소란을 피웠으므로 마음속에는 또 다시 박해 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나는 법을 외우는 것으로 그것을 배척하고 반대하였는데 두려운 마음이 많이 제거되었다.
2003년 3월의 어느 날, 나의 집 아래층에 3대의 차가 왔는데 10여 명이 내리더니 나의 집으로 곧장 올라왔다. 노교소, 시구역의 ‘610’, 공안국, 파출소 등 사람들로 집안이 꽉 찼다. 그들은 나에게 아직 연공을 하는지 물었다. 그때 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들이 제출한 어떠한 요구든지 모두 견결히 부정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바로 떠났다. 나는 두려운 마음과 안일을 추구한 마음이 화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그쳐 법공부하고 자신을 바로 잡았다. 당시 파출소에서는 나를 극력 노교소에 보내려고 하였으나 노교소에서는 또 받아 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 두 곳에서 배합하여 나를 강제로 병원으로 끌고 가서 신체검사를 하게 하였다. 당시 나의 일념은 나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누구도 나를 박해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검사 결과 병원에서는 입원하여 치료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 후부터 나는 집착심을 내려놓았는데 어떠한 소란도 없었다.
2004년 7월의 어느 날, 하얼빈에서 돌아온 한 동수가 나에게 시에서 세뇌반을 꾸리려고 하는데 대상은 우리 노교소에 갔다 온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하얼빈에서는 이미 몇 차례 진행하였다고 하였다. 혹형으로 전화시키는데 한 사람이 들어가면 한 사람이 전화한다고 하였다. 나에게 다른 동수들에게 빨리 알려서 피신하게 하여야지 앉아서 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시 나의 일념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며 그들을 승인하지 않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견결히 동수에게 정념으로 그것을 대처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당시 바로 안정되었다. 그녀는 이미 어떤 사람은 떠났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분공하여 정체에서 정각 발정념으로 박해를 해체할 것을 통지하였다. 동수는 친히 세뇌반을 꾸리는 것을 책임진 장 모의 집으로 가서 진상하였다. 그 장 모는 절대로 그렇게 천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우리 시에서는 줄곧 세뇌반을 꾸리지 못했다.
이번의 사악 해체를 성공하였으므로 신사신법의 정념이 견정해졌다. 그 후에 우리 시 교구에서 억대가 넘는 지출을 하여 마이크로파점 하나를 꾸려 동북 3성의 컴퓨터를 감시하려고 하였다. 우리 시의 전체 동수들은 정체에서 발정념으로 그것이 폐허로 되게 하였다. 반년이라는 시간을 견지하였다. 결과 마이크로파점은 몇 번의 실험에서 실패하였고 오늘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딸이 하나의 전매점을 꾸렸다. 그때 나는 또 소매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또 영업을 도와줘야 하였다. 그리고 또 시어머니도 보살펴야 하였으니 부담이 아주 중하였다. 나는 시간을 짜내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였다. 진상은 사업 중에서 이야기 하고 평소에는 기회가 있으면 바로 진상을 하였으며, 걸으면서 일을 볼 때에는 자료를 배포한다. 정념은 언제 어디서나 한다. 저녁에 법공부하면서 시어머니를 보살피다 보면 간혹 밤새울 때도 있었다. 매일 자는 시간이 아주 적지만 정신은 충족하여 일할 때 힘들지 않았다.
2004년 5월 4일, 퇴근 할 때 과일을 사면서 과일을 사러 온 사람들이 차에 둘러서 있는 것을 보고 진상을 하였는데 한 악인이 신고하였다. 한 경찰이 뛰어와서 누가 진상을 말하였는지 물었다. 당시 나는 이미 자전거에 올랐다. 그는 더 쫓아오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파출소가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후에 두려운 마음이 또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종래로 심성에서 찾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지나쳐 버리는 그 일념을 바로 잡지 못하였다. 결과 두려운 마음은 바로 은폐되었던 것이다. 일을 할 때 심태가 불온정하여 2005년 전 시 대 수색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남방의 친척집으로 갔다가 돌아온 후에 자료점 일을 하였다.
2006년 3월, 나는 동수의 집으로 갔다가 매복해 있던 악경에게 납치되었다. 나는 파출소에서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면서 어떠한 문의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누군지를 알았을 때 아주 흥분했다. 소장은 기세등등하여 당신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울 수 있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런 말에 흔들이지 않았다. 두 달 후에 나는 뛰쳐나와 또 정법의 홍류 중으로 들어왔다. 금방 나왔을 때 동수들은 나를 집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이는 나에게 좋은 층집을 찾아 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집을 떠나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몇 년 간 비바람 속에서 걸어오면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은 속인에게 부합되는 것이고, 아울러 정정당당하게 속인 중에서 수련해야만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법리가 더욱 명백해졌다. 떠돌아다니는 것은 구세력이 안배한 길이다. 가족들의 생활에 불편을 가져다주며 정신상에서 압력을 조성하고 경제상에서 부담을 조성하며, 당신은 아는 사람에게 우리는 다만 자신의 원만만 생각하는 것으로 착각을 주게 된다. 가족들이 죽고 사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가히 구도될 사람에게 기연을 놓치게 될 수 있다.
돌아온 후에 동수들의 도움으로 나는 법리상에서 점차적으로 인식을 제고하고 두려운 마음을 버렸으며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의 관계를 바로 잡고 당지의 협조인 사업에 참가하였다.
3. 길에 잘못 들어선 동수들을 되돌아오게 하였다
우리는 현재 정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정체에서 제고하고 정체에서 승화하는 길을 걷게 하셨다. 이전의 어떠한 일종의 수련과도 모두 부동하다. 근본적으로 각자가 자기만 관할하는 그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잘못 들어섰거나 혹은 걸어 나오지 못하는 동수들을 도와주는 것은 개인의 선행일 뿐만 아니라 더욱 정법 수련에서의 수요이기도 하다.
2000년에 노교소에 있을 때를 회억하면, 나는 대법 중에서 이익을 챙기고도 도리어 또 대법에 대해 등을 돌리고 사오한 사람들을 비방하였다. 사부님의 《건의》를 본 후에 나는 관념을 개변하였다. 그러한 기만당한 사람에 대하여 혹은 집착으로 양심을 어기고 전화한 사람들에게 자비심이 생겼으며 내심에서 그들을 도와주려고 생각하였다. 내가 노교소에 있을 때에 대다수는 단독으로 감금되었다. 한 명의 형사범 혹은 몇 명의 ‘전화’된 사람들이 나 한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녀들과 교류하면서 그녀들 앞에서 경문을 외우면서 그들의 ‘전화’는 수련에서 걸림이 되며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들을 경시하지 않고 평등하게 선하게 대하였으므로 그녀들 대부분은 관념을 개변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새롭게 대법으로 돌아왔다. 후에 사악들은 한 단락 시간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꾸었다.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나를 ‘전화’시키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야말로 전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일을 잘하였다. 그 후에 사악들은 한 무리의 사람을 바꾸는 시간을 단축하였다. 아울러 나와 말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다만 나를 감시만 하게 하였다.
2001년 5월, 사악들은 또 방법을 개변하였다. 우리들을 분별로 하얼빈 제독(戒毒)소에 보내 세뇌를 실시하였다. 나와 다른 동수 5명이 제일 처음 순번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를 보내는 곳은 ‘전국에서 사오 전화의 표병’ 들이 ‘전화’시키는 곳으로서 효율이 95% 이상에 도달하는 그 사악한 곳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장 장(張) 모모는 파룬궁을 박해하여 상장을 받은 적이 있다. 하얼빈에 도착한 후, 한 성에서 ‘전화’에 으뜸인 왕 모모가 큰 소리로 떠벌리면서 “3일내에 내가 ‘전화’된 답안을 받아 올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새로운 특색이 있는가 생각했다. 결과 아직도 그러한 케케묵은 말만 하였다. 후에 그녀는 한 장의 ‘전화서’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다 보고 그녀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아! 당신 보았나! 봤으면 당신의 것이야!”라며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평정하게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반나절이나 말하지 않았다. 좀 지나서 그녀는 “이모, 당신은 정말로 이성(理性)적이네요.” 라고 말하였다. 3일 후에 그녀는 제풀에 꺾였다.
이어서 바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차바퀴 전술이었다. 도전해도 좋고 몰래 개념을 바꾸어도 좋고 장 씨의 관을 이 씨가 쓰고 허튼소리를 해도 좋고, 나는 모두 흔들리지 않았으며 조급해 하지도 않고 충동하지도 않으면서 사악에게 공간을 뚫을 틈을 주지 않았다. 반대로 기회를 틀어쥐고 그녀들을 설복하였다. 10일 전에 그녀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어서 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그녀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정법 진정에 대해 논하면서 수련의 체험을 말하였다. 나는 그녀들 앞에서 법을 외웠다. 나와 그녀들은 옛이야기를 하였는데 모두 기뻐하였다. 매번 어떠한 사람들로 바꾸어 놓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이러하였다. 나는 그녀들의 상황을 대개 이해한 후에 그녀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에게 자신을 빨리 바로 잡게끔 격려해주고 사부님께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알려주었다. 대다수는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어떤 한 사람은 석방 날자가 되기 전에 엄정설명을 발표하였다. 19명이 돌아가서 바로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주동적으로 나를 찾아 교류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여기 오기 전에 현지 파출소, ‘610’에서 벌금을 물은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서류가 있으면 능히 되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제독소의 악경이 선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녀들은 정말로 파출소에 찾아가서 벌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였는데 결과 해결되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각 지역에서 벌금단 영수증을 가지고 파출소로 가서 당면에서 돈을 모두 되돌려 받았다. 한 반장은 식당의 240명이 바로 밥 먹는 시간을 이용하여 제독소 안의 검은 공장에서는 그녀들을 노예취급한 등을 폭로하였다. 그녀들의 마음은 움직였으며 점차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장 장 모모는 연속 전체 수련생 대회를 열 때 3번이나 울면서 그녀들에게 “떠들지 마시오!”라고 권고했다. 이리하여 후에 그들은 우리들과 그들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제일 높은 층에 감금했는데 형사범을 만나게 되었다. 5일이 지난 후에 노교소에서 우리들을 접수하고 데려갔다.
나의 주위에는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이 많이 있었다. 3가지 일에서 다만 2가지 일만 하였다. 생소한 사람에 대하여서는 당면에서 진상하지 않고, 전단지도 배포하지 않으면서 또 이것이 바로 수련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에 대하여 나는 주동적으로 그들과 교류하면서 동원하여 법공부팀을 꾸리면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 가게 하였다. 나는 그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조건과 물자도 도와주었다. 컴퓨터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하에서 도와서 기계를 설치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두 노년 동수는 ‘7.20’ 전에는 수련을 아주 잘 하여 영향력이 아주 컸다. 박해 후에 가정의 연관으로 자녀들의 전도에 영향이 미칠까 두려워하였다. 내가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갈 때, 그녀들은 나에게 기찻길에 드러눕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내가 대법 수련생들을 실은 열차의 전진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감히 다른 동수들과 접촉하지 못하였다. 나는 나온 후에 여러 번 그녀들한테로 가서 교류하고는 그녀들에게 단체 법공부를 하게끔 격려하였다. 그 후에 그녀들은 주동적으로 나와 연결하였다.
4. 안에서 찾고 자신을 수련
수련인과 속인의 구별은 바로 일에 봉착하면 안에서 찾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과 사람과의 구별이다. 한 수련인으로서 능히 항상 수련인의 심성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데 있어서의 감별은 진수 또는 가짜 수련의 관건적인 문제이다. 어떤 동수는 말하기를 노교소에 있을 때는 아주 잘했는데 나온 후에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안에서 찾으면서 발견하였는데 바로 항상 수련인의 심성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2005년 후에 아주 긴 한 단락 시간 태만하였다. 표면에 아주 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하였는데 두려운 마음, 안일한 것을 구하는 마음, 자신을 수호하는 마음, 질투심, 현시심 등이 나타났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마음을 아직도 제거하지 못하는가? 법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있으나 관건은 수련의 기점이 잘못된 것이었다. 정법수련에 입각해서 중생구도에 대한 기점이 없었다. 그러므로 개인 수련에서 동력이 없었다. 아울러 사악은 또 그러한 집착을 확대하고 가강할 수 있었다. 우리에 대한 장기적인 마난으로 3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효과가 좋지 못하였다. 회억해 보면 그때 당면에서의 진상에서 자료를 적게 배포하였으며 일을 함에 있어서 늘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위축감을 느꼈다. 무엇을 두려워하면 무엇이 오면서 곤혹스럽고 힘들었다. 당시 동수들은 나에게 협조인 사업을 감당할 것을 희망하였다. 나는 주저 하면서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고, 동수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예전에 나는 소장이었다. 사악은 나를 주시하고 있다. 만약 잘 하지 못하면 정체에 손실을 가져다준다. 나는 이것 역시 정체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나는 완전히 이기심에서 자신을 위하는 울타리에 빠져 문제를 사고하면서 구세력의 안배를 승인하고 그 안배에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2006년 나는 여러 번 이웃 시에서 열린 대형 법회에 참가하였는데 나에 대한 진감이 아주 컸다. 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참답게 살펴보고 사고하기 시작했다. 동수들과의 교류 중에서 나는 자신의 사상 의식과 곤혹을 전반적으로 내놓아 동수들의 도움을 청하였다. 동수들이 참답고 성실하게 분석하고 선의적인 비평과 도움을 주어 나는 마음이 탁 트였다. 법리상에서 뚜렷하여 능히 법리상에서 법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신심(身心)이 투명하여 유쾌한 기분으로 달갑게 협조인 사업에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 나는 주동적으로 컴퓨터 기술을 배우고 심도 있게 대면적으로 동수들과 교류하고 연구하였다. 동수들을 구출하는 문제, 법공부팀을 꾸리는 문제, 문제가 나타나면 바로 잡는 것과 다른 협조인의 지지와 서로 배합하면서 사업 방면에서 해야 할 등 문제에서 동수들이 대도무형의 길로 잘 가게 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나는 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점차적으로 자신을 바로 잡았으며 능히 진정으로 정법 수련과 중생구도의 기점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일을 할 수 있었다.
2007년 7월의 어느 날 오전, 갑자기 담당구역 경찰이 다른 한 경찰과 함께 수색한다는 증서를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또 하나는 무슨 증서인지 똑똑히 보지 못했다. 당시 나는 아주 평온하고 담담하였다. 근본 증서에 대한 무슨 이유도 묻지 않고 나는 다만 기회를 다그쳐 그들에게 진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과보응을 말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하였다. 나는 말하고 그들은 듣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바로 가 버렸다.
때로는 사업 중에서 압력을 느끼면서 아주 힘들었다. 처음에는 조급한 정서가 있었는데 사업에서 효과가 없으니 후에는 사람의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사람의 상태로 신의 일의 할 수 없다. 오직 법공부를 잘해야만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법리 중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그쳐 법공부하고 법을 외웠다. 매 단체 법공부 날에는 나는 모두 제시간에 참가하여 제때에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을 보증하였다. 능히 동수들의 비평과 의견을 섭취하고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던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여 온건하게 금후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갈 수 있게끔 이끌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대륙 대법제자들에게 한 차례 교류 기회를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나는 자신의 수련 체험을 동수들과 교류하고 연구하면서 공동으로 정진하려고 한다.
(명혜망 제5기 중국대륙 수련심득교류회)
문장완성 : 2008년 11월 14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8/11/22/102457p.html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14/18923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