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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당하는 동수의 가족을 열심히 구하자

글/ 흑룡강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11일] 나는 동북 모 시 대법제자이다. 몇 년간 우리 지역 대법제자 중 지금까지 사당의 박해로 노교 당한 동수가 30명이 넘는다. 가장 길게는 9년, 7년 편결을 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동수들의 가족을 방문했을 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들이 수련하는 동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체 원한을 박해 받는 동수들에게 가지고 있으면서 심지어 대법과 사부님을 원망하면서 그들의 힘든처치가 모두 동수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조성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찾아간 동수를 오히려 원수처럼 대했다. 이런 현상을 접한 우리는 가슴이 몹시 아팠는데, 이는 우리가 수련을 잘하지 못해서 생긴 큰 누락이 아닌가?

……우리의 행동은 온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 감동시켰다. 만약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물욕이 범람하는 혼탁한 세상에 참으로 이렇게 많은 순박하고 선량한 좋은 사람들이 아무런 댓가없이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촌 간부마저 모두 말한다. “파룬따파는 정말로 좋구나” 우리는 그 집 일을 다 해주고 쉬는 틈을 이용해 본지 농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3퇴를 권했더니 결국은 몽땅 탈퇴했다. 그렇게 큰 마을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탈퇴한 것이었다.

ㅡㅡㅡㅡ본문작자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동수들 안녕 하십니까!

나는 동북 모 시 대법제자이다. 몇 년간 우리 지역 대법제자는 사당의 박해로 노교 당한 동수가 지금까지 30명이 넘는다. 가장 긴 형기는 9년, 7년 판결을 받았다. 불법 판결을 5년,3년,2년,1년씩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동수들의 가족을 방문했을 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동수들의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체 원한을 잡혀간 동수에게 품고 있었으며 심지어 대법과 사부님을 원망하면서 그들의 힘들게 사는 것은 모두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조성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면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보러 간 동수를 배척하고, 매섭게 쏘아보고, 대지르고, 쫓아내면서 대법제자를 원수처럼 대했다.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몹시 가슴이 아팠다. 날마다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와 특수한 인연을 맺은 가족들이 진상을 몰라 구도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수련 중에 잘하지 못해서 생긴 큰 구멍이 아닌가? 여기에서 나는 동수들에게 일깨워 주는 바, 절대로 가족을 홀시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수련 환경을 잘 열어놓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로서 그렇게 되면 자신에 대한 박해를 감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 실증의 손해도 줄일 수 있다. 이 일은 아주 시급한 일로 한시도 늦출 수 없다. 그럼 동수가 검은 소굴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래에는 우리 지역에서 행한 방법을 써내어 사부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기회를 만들어 우선 소통하다

매 번 설 대목이 다가오면 선물을 사들고 집으로 방문하는 기회를 이용해 그들과 소통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진상을 알렸다. 특히 음력설이 돌아오면 그들에게 쌀, 밀가루, 기름을 사다 주고, 특히 곤란한 집에는 돈도 주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풀어져 냉담하게 한 마디도 안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울분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그들의 마음 속 매듭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현재 그들 가족을 비참하게 만든 것은 혈육이 아니라 사당의 박해가 빚어낸 것이라고 말하면, 그들 또한 수련생인 그들의 가족이 좋은 사람임을 승인한다. 대법제자가 당신들을 버려두고 혼자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며, 완전히 남을 위한 것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오직 이 사당만이 자신들의 탐오 부패를 말하지 않고 도리어 좋은 사람을 잡아 가고, 나쁜 사람은 관할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당신들이 수련생인 가족을 원망하는 것은 잘못 원망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들은 또 “당신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악당이 당신을 잡아갈리 있나? 스스로 찾아 한 일이 아닌가!”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올림픽 기간에 전국에서 거의 1만명 넘는 사람을 잡아 갔는데, 모두들 집에 잘 있던 사람들을 무고하게 잡아간 게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들은 또 연마하지 말라면 연마하지 말지 왜 공산당과 대항하는가? 당신이 그들을 이길 것 같은가? 당신들은 날마다 도처에다 “천멸중공”을 붙이고 배포하는데 누구든 집권자라면 모두 붙잡으러 할 거야! 라고 한다.

우리는 수차례 거듭된 사당의 운동에 겁을 먹은 중국 국민들이 그야말로 가련함을 느꼈다. 그들의 왜곡된 비정상적인 사유방식은 이미 자연스런 것으로 되었다. 이런 것에 직면하면 정말이지 한두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급해 하지 않았고, 그들을 구도해야 할 긴박함을 깊이 느꼈으며, 꼭 그들을 구도하리라 결심했다.

2, 실제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

농촌에서 박해 받는 동수가족들의 원망은 더욱 컸다. 더구나 농번기에 당하는 고통을 털어 놓을 데가 없으니 혈육만 욕을 해댄다.

우리는 7년 판결을 받은 남자 동수의 집에 5,60살 되는 아내만 남아 20여무 밭의 옥수수를 추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돈이 없음은 고사하고 농번기에 매일 50내지 70위안을 주어도 고용할 인력을 찾지 못했다. 바로 그녀가 그렇듯 혼자 고립되어 힘든 시각에 우리 수련생 몇 십명이 한꺼번에 그녀네 집에 가서 하루 만에 옥수수를 수확했다. 하지만 집으로 운반하려 해도 차를 구할 수 없어서 우리 농촌 동수는 자기네 집 밭일을 그만두고 네 바퀴 차를 몰고 와 옥수수를 몽땅 그녀 집에 운반해 주었다. 물론 우리가 먹을 점심밥과 물은 직접 우리가 갖고 갔다. 밭에서 찬밥에 냉수를 점심으로 먹었고, 발정념도 지체하지 않고 했다. 동북의 10월은 이미 춥기 시작했으나 동수들은 모두 고생을 낙으로 여겼다.

그렇게 연달아 2년을 해 주었고, 3년째 되던 해에 이 동수의 가족은 드디어 감동했다. 점심으로 뜨거운 밥과 더운 반찬을 만들어 놓고 꼭 자기 집에 와서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성의를 물리칠 수 없어 그들 집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식사 후 우리는 갖고 갔던 빵이며 햄, 소시지 등, 모두 그녀에게 남겨 주었다. 그녀는 평소 그런 것들을 별로 먹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4년 동안 우리는 줄곧 주동적으로 그녀 집을 도와주어 해마다 그 마을에서 그녀 집이 가장 먼저 가을걷이를 마쳤다. 현지 농촌 동수들은 해마다 먼저 어려운 동수 집의 추수를 끝마쳐야 비로소 자기네 일을 했고, 그러다 보면 어떤 땐 눈이 내리는데도 자기네 밭일을 아직도 다 못할 때가 있었다. 그 동수의 가족은 감동해서 나의 손을 잡아끌면서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모른 채 얼굴에 환한 웃음만 담고 있었다. 그때부터 더는 대법을 반대하지 않았고, 더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우리의 행동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를 감동 시킨 동시에, 그들을 몹시 놀라게 했다. 만약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물욕이 범람하는 혼탁한 세상에 참으로 이렇게 많은 순박하고 선량한 좋은 사람들이 무상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촌 간부마저 모두 말한다. “파룬따파는 정말로 좋구나” 우리는 가을걷이를 다하고 나서 잠시 막간을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3퇴를 권했다. 그 결과 한 사람에게 3퇴를 말해주면 이미 탈퇴 했다고 하고, 또 한 집에 말해주면 온 집이 모두 탈퇴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부근 동수에게 알아보니 몇 년 동안 우리가 한 행동이 모든 마을 사람들을 심심히 감동시켰고, 그래서 그 기회에 마을에 있는 한 집 한 집씩 진상을 알려주어 순조롭게 전부 3퇴를 끝마쳤던 것이었다. 그렇게 큰 마을에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삼퇴를 했을 만큼 대법제자의 형상은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깊이 찍혔던 것이다.

또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쌀, 밀가루, 기름을 가지고 동수의 가족을 뵈러 갔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동수의 손을 잡고는 간곡하게 반복해서 이런 물건은 누가 산 것이냐고 물으며 반드시 이름을 알려주어야 이후 보답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동수는 그런 걸 묻지 마세요, 그도 알려 주지 말라고 했으니 나도 알려 줄 수 없어요, 당신은 그저 대법제자가 당신에게 사왔으며, 우리의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하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눈물만 흘리며 감사드리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그녀는 정말로 남편처럼 수련하는 사람들 모두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요해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 법은 반드시 가장 바른 것임을 인정했다.

7년 판결을 받은 또 다른 한 동수가 있었는데 그의 집은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평소에 연락이 없었다. 동수는 아주 먼 곳에 있는 한 도시의 감옥에서 박해를 받은 지 이젠 5년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몰랐고, 가족도 종래로 그를 보러 간 적이 없었다. 한 동수가 친척에게 진상을 알리러 갔다가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집도 아주 가난해 집이 기울어져 있어서 아무 때건 무너질 것 같았다. 동수의 아내는 열 몇 살 되는 아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비 오는 날이면 집안에 감히 있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몇 십 무의 밭을 경작하고 있었는데 가을이 되어 재빨리 거두어 들여야 할 때면 어려움을 느꼈다. 이 말을 들은 동수들은 단번에 70여명이나 갔다 (모두 자원적으로 갔다) 하루만에 몇 십 무 밭의 곡식을 전부 거두어 들였다. 점심은 여전히 밭에서 찬밥을 먹었고 갖고 간 물이 부족해 우물에서 두 통의 물을 밭에까지 길어다 먹었다. 그 날은 몹시 추웠다. 이 모습을 모두 본 그녀는 “내가 자네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면서 자꾸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녀에게 3퇴를 알려주자 그녀는 아무데도 든 적이 없다고 해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라고 알려 주니 그녀는 기뻐하면서 이번에는 마음속으로부터 “파룬따파 하오‘ ,” 파룬따파는 정말 좋다“고 말한다고 했다.

동수가 설날에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집을 수리할 수 있도록 촌 위원회에 대부금을 요구 했는데, 촌 간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일률적으로 주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수련자의 가족이 아무리 곤란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같은 마을에 사는 살인범과 기타 범죄인 가족도 모두 대부금을 받아서 새집을 짓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 통틀어 그녀가 가장 어려운데 유독 관할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싶었지만 갚을 방법이 없음을 알고 빌려주는 사람도 없다. 동수는 그녀에게 우리 대법제자들도 모두 조건이 좋지 못하답니다. 하지만 가급적 그녀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 주고 돈 5백 위안을 남겨 놓았다.

상황을 알게 된 동수들은 자신들의 실제 능력에 따라 주동적으로 그녀를 위해 돈을 모았는데 모두 7천여 위안을 모아 보내 주었다. 우리의 이런 거동은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로 하여금 모두 대법에 대한 견해를 바꾸어 주면서 수감 중인 제자에 대한 원망도 얼마간 줄어들게 하였다.

또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그녀네 집 옥수수를 추수하던 날, 동수들이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한 40대 남자가 우리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말없이 서서 우리가 일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한 동수가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걸어서야 비로소 그의 밭이 붙어있고, 그도 자기네 밭에서 옥수수를 추수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도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아마 대법제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원래 대법을 수련했는데 후에 납치당한 후 감옥에서 사오했다고 한다. 말 중간에 그에게 수많은 몰이해와 억지사설(歪理邪说)이 침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일을 다 마친 후 일부 동수들은 또 그의 밭에 가서 그를 도와 일하는 한 편, 그와 교류하면서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는 듣고 듣다가 단숨에 명백해져서는 말하였다. 예전에는 사당말만 듣고 동수들과 접촉할 수 없었는데 원래 내가 속아왔구나! 당신들 말을 들으니 원래는 이런 일이었구나. 그는 격동되어 우리보고 책을 달라고 하면서 새롭게 다시 수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가족들도 진상을 알게 되어 3퇴했다.

또 박해로 사망한 뒤 오늘까지도 유체를 화장하지 않고 있는 남 동수네 집이 있는데 42살 아내(일자리 없음)와 15살 딸, 그리고 4노인이 있었다. 남동수가 죽은 뒤 일체 상사일 및 장례에 필요한 옷 등을 모두 대법제자가 해 주었다. 구정이 다가오자, 장사하는 동수는 주동적으로 새 옷을 사서 그녀 집 아이와 어른들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주어 설을 쇠게 하였다. 매 번 아이가 개학을 하기 전에는 주동적으로 학비를 보내며 그녀에게 알려 주었다. “안심하세요, 당신의 아이면 곧 대법제자의 아이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걸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어디까지 공부하면 어디까지 학비를 대 줄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그동안 남동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아주 내향적인 아내로 하여금 생활에 신심을 갖게 했다. 그녀는 견강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가산을 탕진하고 집을 팔아서라도 나는 계속 신고할 것이며 반드시 남편을 위해 결백함을 찾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진상을 알려 그녀로 하여금 남편을 이해하게 했고, 그녀의 가족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지금 그녀 소개로 그녀의 언니와 어머니 모두 《전법륜》을 읽고 있다.

우리는 또 수감되어 있는 여 동수의 남편을 찾아가 매 주 청소를 하면서 평소에도 늘 관심을 가져 주었다. 또 늘 기타 수감된 동수의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주는 등등, 모두 매 가정의 부동한 상황에 따라 알맞게 하였다. 물론 감옥에 갇힌 동수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가졌는데 써 내려면 사실 너무도 많아 단지 몇 가지 사례만 들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지역에서 박해받고 있는 모든 동수의 가족은 기본적으로 모두 진상에 명백하며 우리를 가장 친한 사람으로 여긴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속에 든 말도 모두 우리와 하고, 그 무슨 넘지 못할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도 모두 당신들만 못하다”고 말한다. 어떤 농촌 가족들은 우리가 추수를 하러 가면 닭을 잡고 고기를 삶아서 밭에 보내기도 한다. 이런 가족은 가끔 감옥에 가 친인을 만나는데 친인에 대해 원한이 없고 단지 동정과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옥중의 동수는 이렇듯 가족의 큰 변화를 보고 모두 매우 격동되어 정념이 더욱 족해지고 의지도 더욱 견정해 져, 안에서 아주 잘하고 있는데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며, 3퇴를 권하는 게 이젠 유행이 되었다. 다시 자유를 얻은 동수는 저마다 모두 정진 실수하는 당당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우리의 체험은, 대법제자로서 이러한 과정에서 제고할 수 있었고, 수많은 가족과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원했고, 법을 떠났던 사람을 다시 법속으로 오게 했고, 옥중의 동수가 고생이 얼마나 막심하던지 모두 위안을 얻게 하였다. 이 속에서 깨달은 것이라면 오직 우리 마음속에 비할 바 없이 존경하는 사부님이 계시고, 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덕 높은 대법이 있었기에 비로소 이렇듯 큰 위덕이 있을 수 있은 것이며, 비로소 제자를 끊임없이 제고시킬 수 있었으며, 이들 한 무리의 소중한 사람들을 개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法의 체현 ― 인간세상에서 강대한 佛法의 재현(再現)이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아마 어떤 동수는 생각할 것이다. 당신들에게는 돈이 많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가라고. 아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많은 동수들은 일자리가 없고, 몇 사람이 함께 단기 일을 하거나 시간제 일을 하고 있는데 번 돈은 죄다 대법을 실증하는데 쓰고 있다. 어떤 동수는 일년 내내 너무 바빠서 라면이나 칼국수로 살아가고 있으며 한 해에 그럴듯한 밥과 반찬을 먹을 때가 극히 드물다. 몇 년간 아껴 쓰고 모은 돈을 죄다 대법을 실증하는데 쓴다. 한 퇴직 교사는 한 해에 과일을 한 번도 사지 않았고, 비싼 반찬을 사 본 일이 없으며, 옷을 사 입을 때가 드물었고, 퇴직금을 거의 전부 법을 실증하는데 썼다. 또 한 퇴직 노동자 동수는 반찬을 해 먹을 때가 드물고 짠지 위주로 먹었으며, 대법을 위한 일이기만 하면 서슴없이 주머니를 털어 내 놓았다. 또 한 동수는 임시 일을 며칠 해서 번 돈 37원에서 30원은 대법 실증에 썼고 나머지 7원은 식사하는데 썼다. 어떤 동수는 양말에 구멍이 나면 기워서 다시 신으면서 어쨌든 신안에 있는 거니까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대법을 실증하는데 돈이 수요될 때엔 대범하게 내 놓았다. 또 어떤 동수는 온 가족이 모두 동수로서 자기들은 헌 집에 살면서도 오히려 산과 땅을 판 돈을 통이 크게 법을 실증하는 일에 썼다. 물론 장사를 하는 동수들이 지불하는 돈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총괄하면 여러 사람은 법 공부를 통해 현재 무엇이 가장 중요하며, 무엇이 우리가 가장 마땅히 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으므로 효과도 가장 좋은 것이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정말로 이렇듯 제고하여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하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고 가장 신성한 것이다.”(《정진요지》)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는 깊은 체득이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서 모두 박해 받는 동수의 가족을 구도하는데 관심을 갖기 바라며, 그들 모두 우리가 반드시 가장 먼저 구도해야 할 사람이다 .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1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1/1891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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