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1일】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대법제자)의 인도하에 대법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러나 99년 “7.20” 이후 나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말하는 거짓말에 기만 당하여 심지어 할머니에게 대법을 포기하라고 권고까지 하였다. 후에 할머니의 영향하에 나는 대법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에 갓 들어간 후 진정으로 대법 수련 중에서 어떻게 걸어 가야 할지 잘 몰랐다.
처음에 자신은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집착심을 버리기가 아주 힘들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을 본 후에는 발정념시 조용해 지지 않고, 법 공부가 지체되며, 연공도 지체되었다. 일찍이 몇 번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는데 그러나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바로 참을 수 없어 계속 보게 되었다. 후에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나는 “반드시 다시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겠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이것으로 교란을 받으면 안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에 부끄럽지 않게 하겠습니다.”하고 다짐했다. 그 다음 오직 누가 텔레비전을 켜면 나는 바로 피하여 다른 방으로 갔다. 점차적으로 나는 다시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본문작자
우선 자비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법제자는 이 몇 년 동안에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모두 친히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부님의 자비로움을 감수하였다. 나는 지금 이미 고중 일학년에 다니고 있다. 여기서 나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근 3년 동안의 수련 상황, 자신이 자료를 배포한 경력, 3퇴를 권한 체험 등을 써서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려고 한다.
법을 얻고 마음을 수련하여 중생구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대법제자)의 인도 하에 이 법을 접촉하였다. 그러나 99년 “7.20”이후 나는 거짓말에 기만 당하여 텔레비전 방송에서 말하는 것을 믿고 심지어 할머니에게 대법을 포기하라고까지 권고했다.(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사부님께 부끄러운 일이었다.) 후에 할머니의 영향하에 나는 대법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오직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연공과 법 공부를 착실하게 잘 하지 않았기에 마음 수련은 잘 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무의식중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자신에게서 제일 어려운 것은 텔레비전에 대한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을 보고 나면 발정념시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았으며 법 공부와 연공도 지체하게 되었다. 일찍이 몇 번이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려고 다짐은 하였지만 그러나 일단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참지 못하고 보았다. 당시 여동생(미수련자)은 늘 텔레비전을 보았다. 발정념시 모두 텔레비전에서의 줄거리들이 생각나면서 엄중한 교란이 조성되었다. 이리하여 일찍이 몇 번이나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자신을 원망하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후에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반드시 다시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겠습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이것으로 교란을 받아서는 안되며, 사부님께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하고 다짐했다. 그 다음 오직 누가 텔레비전을 켜면 나는 바로 다른 방으로 피하였다. 귀가 듣지 않으니 조용했다. 나는 점차적으로 다시는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없었다.
당시 학교에 건물 몇 개 동이 있었다. 나는 체육시간을 이용하여 진상자료를 고무밴드로 잘 묶어 교복에 싼 후 한번에 10부씩 배포하였다. 주민 건물동은 운동장과 아주 가까웠다. 이 건물에 들어갈 때 주위의 익숙한 사람을 보게 되면 바로 발정념하여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바로 이렇게 나는 학교의 6 – 7개 동의 거민 건물 동에 모두 배포하였다. 이것이 가장 처음으로 단독으로 자신이 진상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배포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어떤 교란에도 부딪치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나에 대한 사부님의 격려였다. 그 후 나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선생님들의 사무실에 자료를 배포하였다.
중학교 2학년 하반기 여름 방학 때 나는 할머니와 함께 농촌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었다.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데 나의 외사촌 누이동생(동생은 이미 진상을 알고 3퇴도 하였고, 당시 대법을 수련할 염원이 있었다)도 있었다. 외사촌 누이 동생의 길안내에 따라 당시 우리가 길을 이리저리 다니고 있을 때 한 집의 개가 짖기 시작했다. 이 개 짖는 소리에 다른 집 개도 함께 짖었다. 처음에는 거기에 잠시 섰다가 개가 짖지 않을 때 가려고 생각했는데 좌측 집 개가 짖지 않으면 우측 집 개가 짖으면서 이렇게 번갈아 짖는데 어떤 때는 두 집의 개가 함께 짖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발정념을 하였다. 외사촌 누이 동생은 발정념 할 줄 몰랐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염(念)하라고 하였다. 후에 개 주인이 집 등을 켠 후, 손전등을 들고 우리 있는 곳으로 와서 몇 번 비췄다. 그때 나는 흰 옷을 입었는데 우리를 비추지 못하였다. 거기에 서 있다 보니 두려운 마음이 약간 생겼는데, 또 모기가 나의 몸을 물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마음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니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정진요지2》〈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는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중생이 대법에 죄를 짓게 해서는 안되며, 우리의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구세력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우측 집의 그 남자 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왔다. 오토바이 앞에 달린 전조등으로 우리를 비췄다. 이때 할머니가 걸어 나오더니 줄곧 앞으로 걸었다. 나와 사촌 누이동생도 뒤에서 손을 잡고 따라 나왔다. 그 주인은 뒤에서 우리를 쫓으면서 또 위협적인 말로 계속 앞으로 가면 바로 개를 부추겨 물게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 무서워서 몇 발짝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사촌 누이 동생도 나를 따라 멈춰 섰다. 이때 개가 따라왔는데 거리가 두 발짝 사이였다. 당시 할머니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 견정한 발걸음에서 나는 순간 수치를 느꼈다. 할머니는 멈춰서지 않았다. 같은 대법제자인데 내가 어찌 구세력의 배치에 따를 수 있는가? 그것들에게 교란 당할 수 있는가? 가상에 미혹될 수 있는가? 나는 사촌 누이동생을 끌고 앞으로 걸었다. 이렇게 우리는 이 작은 거리를 나와서 원래의 길로 되돌아 갔다. 다만 아직 2, 3부의 자료를 배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집으로 왔을 때는 이미 새벽 한 시였다. 우리 셋은 대법의 위대함과 사부님의 자비에 감탄하였다. 개와의 거리가 그렇게 가까웠는데도 나를 물지 않았으며, 그 집의 남자 주인도 우리를 더 쫓아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중에 우리들의 부족함이 반영되었다. 당시 개가 짖어도 당연히 걸어야 하고, 거기에 서서 머물지 말아야 하며 개에게 물릴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사촌 누이동생은 비교적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그 후에 더욱 사부님과 대법을 믿을 수 있어 두렵지 않다고 말하였다.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을 인식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나는 할머니와 함께 외지의 친척집으로 놀러 가서 거기에서 설을 지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적었다. 교구로서 집 한 채가 2-3층으로 되어 있는데 단지 한 가구가 살고 있었다. 집으로 오려고 할 즈음에 짐을 정리하면서 아직 20여 부의 자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와 할머니는 함께 배포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점심 시간이 다 되었으니 반찬을 만들어야 했고, 밥 먹은 후에는 바로 떠나야 했다. 이리하여 나는 혼자서 배포하려고 다짐했는데 할머니도 동의하였다. 나는 먼저 십 몇 부를 가지고 배포하러 갔다. (왜냐하면 당시 집으로 가는 열차에서 배포할 필요가 있어 몇 부를 남겼다) 배포하는 과정이 비교적 순조로웠는데 자신도 이렇게 할머니가 없어도 배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온 후 환희심이 나타났다. 집안에 아직 몇 부의 자료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또 나가서 배포할 생각이었다. 겉으로는 의젓하게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겠다는 마음, 사심, 현시심 등의 좋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당시 즉시 안에서 찾지 못하고 자신이 정념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다. 사실 당시 이미 12시가 다 되었다. 만약 다시 배포를 시작한다면 12시 정념 시간을 놓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교란으로 나는 시계 보는 것을 지나쳐 버렸는데 이러한 좋지 못한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집에서 나왔을 때 좌측에 있는 한 건물 앞에 한 대의 차가 서 있었다. 나는 자료를 차의 뒷좌석 쪽 문에 끼워놓고 앞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돌 때 금방 그 건물에서 사람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머리를 돌리지 않고 자료를 한 집의 우편물 안에 넣으려고 할 때 뒤에서 사람이 나왔다. 나는 재빨리 자료를 몸 뒤에 숨기고 발정념으로 “사부님, 이들을 여기서 나가게 하고, 내가 자료를 우편물에 넣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해주세요.” 하고 청을 올렸다. 그들은 과연 되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의 두려운 마음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당시 할머니는 반찬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 사람이 있어서 할머니와 말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간 후 침대에서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하였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할 수없이 발정념을 정지하였다.
어머니가 나간 후 나는 조심스레 창문을 조금 열고 아래로 내려다 보았는데 5-6명이 밖에 서서 마침 여기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급히 커튼을 당겼다. 안에서 찾으면서 나는 마땅히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 한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자체가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닌가? 나는 사부님의 대법제자이다. 그래 구세력이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이 일체는 모두 가상이다. 바로 내가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하는 그 마음을 보려고 한 것이다. 나는 수련인으로서 그러한 마음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나는 자신에게 “내가 문을 나갈 때에는 아무것도 모두 없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사부님의 법에서 두려운 마음을 버리는 것에 관한 말씀을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 정념을 하였다. 내가 발코니에 옷을 걷으러 나갔을 때 밖에는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사부님은 정말로 너무나 자비하셨다! 제자가 이런 집착의 교란으로 잘하지 못해도 사부님께서는 이 제자를 버리지 않고 또 제자를 위하여 이 일체를 감당하시면서 끊임없이 제자에게 점화해주셨다. 동시에 여기에서 동수들로 하여금 자료 배포시 순조롭다고 환시심이 나타나거나, 자료 배포하는 것을 자기를 실증하는 것으로 하거나, 사업을 한다는 마음이 생기거나 하는 등등의 사심에 대해 각성하게 하였다. 사부님의 가지가 없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이 우리들이 또 무엇을 능히 할 수 있단 말인가?
파란곡절에서 심성을 제고
중학교 졸업 예비시험이 끝난 후 우리는 한 친척집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동생이 아직 방학하지 않았기에 할머니는 동생을 보살펴야 했다. 나는 먼저 차를 타고 가면서 자료도 함께 가지고 떠났다. 거기에 도착한 후 나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법공부할 때 조용하지 않고 형식에 흘렀다. 연공할 때도 마음이 더욱 안정되지 않아 잡념의 교란으로 머리가 아팠다. 그 당시 집착심의 표현이 아주 강렬했다. 발정념시 사상은 바다를 뒤엎을 듯, 더욱이 그 현시심, 정에 대한 집착이 특별히 강했으며 두려움 마음 역시 중했다. 비록 그때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마음은 전혀 조용해 지지 않았다. 설령 자신에게서 집착을 찾았다 해도 내려 놓을 수 없는 이러한 상태에서 2-3일 지났다. 4일째 되던 날 나는 “할머니가 아직도 오지 않으니 아무래도 나 먼저 일부를 배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는데 두려운 마음이 즉시 튀어 나왔다. 왜냐하면, 배포하려고 준비한 곳은 바로 내가 머무는 건물 동 숙소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기 배포한 자료가 어떤 사람이 내가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봐 우려되어 배포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점심 시간의 잠을 자고 깨어나서 나는 그러면 나를 알지 못하는 다른 동에 가서 배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상태는 배포하려고 생각했지만 또 감히 배포하지 못했다. 배포하려고 생각한 것은 완전히 중생구도를 위해서가 아니고 아직도 자신의 사심을 위해서였다. 그 결과 두려운 마음과 사심에서 그 중 2개 동만 (모두 5개 동) 배포하였다.
배포한 후 나의 두려운 마음이 움직이는 게 아주 심하였다. 당시 오직 두려워하면 안되며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도리어 무엇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게 이렇게 심한지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안에서 찾지 않았다. 사실 자신의 기점이 순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번의 자료 배포를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저녁에 숙소와 약 200미터 떨어진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외삼촌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할아버지가 나를 데려오라 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아주 궁금하였는데 더 생각할 겨를 없이 가는 중에 ‘할아버지가 내가 배포한 자료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식당에 도착한 후 할아버지는 처음에 말로 하다가 손을 대었다. 원래는 한 사람이 자료를 보고 전화로 공안국에 신고한 것이었다. 현재 마침 110호의 사람들이 거기에 둘러서서 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왜냐하면 자료를 배포할 때 어떤 사람이 일찍 층계 중간에서 나를 보았던 것이다.) 나는 단번에 머리가 흐리멍덩했다. 나는 아직 이러한 일에 봉착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서 안으로 찾으면서 한편 발정념을 하였다. 나는 갑자기 나의 보따리에 아직 몇 부의 자료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즉시 그것을 잘 챙겨 놓았다. 후에 생각하면 할수록 적합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숨겨놓아야 하는가? 사부님께서 그런 악경이 와서 여기를 수색하게 놔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느 때 《명혜주간》에서 본 그 동수와 나의 상황이 비슷한 것이 생각났는데 “그녀는 바로 서랍에서 책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사부님에 대한 나의 바른 믿음이 오직 이것뿐이었는가? 고 생각하고, 책을 정정당당하게 집에다 놓고 갔는데 악경은 그의 집에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지금 내가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오직 이것뿐인가? 할아버지는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이 자료를 가져갈 기회가 없어 할아버지가 보고 없애 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나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나에게는 확실히 누락이 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을 것이다. 구세력은 나에게 손을 뻗칠 자격이 없으며, 배치할 자격이 없다. 나는 오직 사부님이 안배한 노정으로 갈 것이다!
나는 또 자료를 보따리에 넣었다.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 “깨달은 자 세속 벗어남을 높이 보나니 정진한 자 마음이 독실하여 원만하노라. 큰 난 중에서 견정해야 하거늘 정진의 뜻은 돌릴 수 없노라”(《홍음2》〈견정〉) 그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심장 박동이 아주 빨랐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고 이러한 두려운 마음과 사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법제자는 마땅히 생사를 내려 놓아야 한다! 할머니도 당시 집에서 사상을 집중하여 발정념을 하였다. 후에 할머니는 “본래 다른 동수를 찾아 함께 발정념을 하려고 하였는데 다른 동수에 의거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혼자 발코니에 앉아서 발정념을 하였는데 발정념시 자신이 아주 높고 커서 위력이 비할 바 없는 느낌이었다. 발정념이 끝난 후 온 몸이 아주 가벼운 감각으로 아주 평온하였다.”고 말하였다. 후에 공안국에서 나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나는 또 한차례 대법의 신기를 목격하였으며 또 한차례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을 감수했다.
여기서도 동수들이 무엇을 보았든지, 무엇을 들었든지 막론하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사악의 배치를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쳤다. 우리는 신의 길로 가는 수련자인데 인간 세간에서 그 무엇이 우리를 능히 움직일 수 있겠는가? 동수들도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법공부를 많이 하면서 자료 배포에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배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대법과 중생에게 아주 큰 손실을 가져다 준다.
사상업을 제거
중학교 3학년 1학기에 나는 아주 큰 관에 봉착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아주 검은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또 아주 많은 일들이 발생하였다. 그때는 정말로 마음에 아주 큰 압력을 느끼면서 힘들었다. 사부님께 불경하고 법에 불경하는 좋지 못한 사상 염두가 아주 많이 나타났다. 왜냐하면 평시에 법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않은 그 짧은 기간, 사상 중에서는 일찍이 몇 번 수련을 포기하려는 염두가 우뚝 솟았다. 정말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어떻게 힘들던지 막론하고 제자는 반드시 대법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다짐했다. 세간에서 법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일찍이 윤회의 간난신고를 경력하면서 원망도 없고 후회도 없이 중생을 이끌고 기대하였다. 우리들은 여기까지 와서, 세간에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고 또 무량한 생명은 고통 속에서 우리가 구도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사부님께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마땅히 수련의 이 길에서 확고히 걸어가야 한다. 여러 번의 방황에서 결국에는 걸어 나왔다. 지금에 와서 당시의 상태를 회상하면 정말로 매 일보 모두가 사부님의 보호와 갈라 놓을 수 없었다.
당시 할머니는 나의 상황을 잘 몰랐다. 그때 나는 매일 점심 시간에 한 시간 법공부 하였다. 표면에서는 어떠한 심상치 않는 일을 보아낼 수 없었다. 후에 할머니는 “마음에 두지 않고 바로 잊어 버렸다.”고 말하였다. 자신도 완전히 할머니에게 똑똑히 말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도 어른 동수들이 어린 동수들과 많이 교류하고,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어린 동수들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으므로 일부 일에서는 아직 확고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 제자 역시 의거하는 마음을 양성해서는 안되며,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자기를 수련하는 것이다.
“정(情)”이 자신을 교란하지 못하게 하다
중학교 3학년 후 나는 과시심과 정에 대한 집착이 비교적 중하였다. 어떤 때에는 진정으로 매우 심오하고 허황한 생각을 하였다. 이 교류 문장을 투고하면서도 늘 과시심이 나타났다. 늘 자신이 어떠어떠하게 많이 했으며, 어떠어떠하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모두 집착으로서 기타 동수들과 비길 때 나는 정말로 해놓은 것이 없었다.
내가 정에 대하여 아주 집착하고 있을 때 사부님의 “탁세(浊世)에 핀 청련 같은 매화 억 만송이 그 자태 찬바람에 더욱 어여뻐라 연일 내리는 눈비(雪雨)는 신의 눈물이요 부처의 눈물이라네 매화 돌아와 피어나기 바라네 세상사 집착에 미혹되지 말고 정념을 견정히 하거라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름은 오로지 이 한 차례 위함이어라”(《홍음2》〈매화〉)는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이 좋지 못한 사상은 내가 아니므로 나는 이것에 이끌려 움직여서는 안되며, 이것을 억제하고 소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한시기 할머니는 집에 없었다. 나의 연공은 아주 보증하기 힘들었다. 방학 기간에는 분명히 연공할 시간이 있는데도 도리어 구실을 찾아 연공하지 않으면서 3일은 고기를 낚고 2일은 그물을 말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하여 이렇게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데 제자는 아직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이러한 조그마한 난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7.20”이후 동수들은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두 아주 잘 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느슨한 환경 중에서도 모두 정진하지 못해서 사부님께 부끄러웠다. 연공은 수련의 일부분으로서 연공을 잘 하지 않으면 번티의 전화(轉化)가 느리어 발정념시 염력(念力) 역시 강하지 못하다. 연공하기 싫어하는 본신이 바로 나태한 마음과 안일한 마음의 농간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교란이 있어서는 안되며 연공을 견지하고 이러한 집착심을 수련해 없애 버려야 한다.
평상시 생활 중에서 나는 할머니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떤 때에는 마음에서 일부 내키지 않았다. 이때 나는 즉시 사부님의 《미국서부법회설법》중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럼 이 과정에서 우리들도 그의 잘못을 몹시 집착하는 데로 변하여 자기 마음속에서 내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집착으로 변했고 당신은 밖을 향해 찾는 것이 된다. 당신은 그의 잘못을 왜 당신에게 보게 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가? 그의 잘못이 왜 당신 마음속에서 그처럼 괴로운가? 그 중에 당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이 일을 대단히 크게 보는가? 각종 방면에서 무슨 문제에 부딪힐 적에 모두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자신을 봐야 한다. ” 나는 동수가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이성으로 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여기서 말 나온 김에 말하는데 일부분의 어린 대법제자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임 혹은 속인들의 텔레비전, 연애소설 등에 빠지고 있다. 지금의 시간은 정말로 아주 제한되어 아직도 정진하지 못하고 있으면 어떻게 우리의 위대한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대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에 대한 무한한 희망을 기대한 중생을 대할 것인가? 나는 일반적으로 컴퓨터 중의 QQ게임은 모두 삭제하였으며 속인들의 게임 홈페이지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QQ채팅은 되도록 적게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2003년 《애틀란타법회설법》에서 “현재 매분 매초가 모두 매우 주요하다. 이 한 단락 시간을 지나치면 바로 일체를 지나치게 된다. 역사는 다시 오지 않는다. 우주의 역사, 삼계의 역사는 이미 그렇게 많고도 그렇게 오래고 먼 연대를 걸어 지나왔다. 중생들은 모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모두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살고 있는가? 바로 이 몇 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오히려 이 몇 년 중에서 생명을 황폐시키고 있으며 다그칠 줄 모르는데, 그러나 당신은 오히려 어깨에 중생과 역사의 그렇게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고 말씀하셨다.
비록 우리는 어린 대법제자이지만 그러나 정법의 표준은 우리들의 연령이 어리다 하여 낮출 수는 없다. 우리도 법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의 학교는 아주 문란하다. 동성애가 도처에 모두 나타나고 있다. 만약 평상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바로잡기 아주 힘들다. 그때는 모두 속인들과 접촉하여, 사상이 또 비교적 낮아 늘 일부 난잡한 일만 논하였다. 자신에 대해 오염되지 않게 하려면 아직은 일정하게 힘이 들었다. 그러므로 평시에 되도록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3퇴를 권하다
학교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제 3자의 각도에서 진상을 하였다. 나는 그녀들에게 “나는 일찍이 모모곳에서 한 부의 팩스를 받았는데 그 위에는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거짓말이라고 했고, 대법의 진상은 홍대하게 전파되고 있는 것이 들어 있었다. 이 한 부의 팩스도 홍콩으로부터 왔는데 홍콩 거기에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부에서도 허용하고 있었다. 나의 친척 한 분이 거기에 갔다 왔는데 이것을 보고 “나는 이것을 보았어요 팩스에 쓴 것이 모두 진짜예요.”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6.4로부터 파룬궁을 진압한 것, 쓰촨 지진, 장자석(藏字石) 등을 이야기 하였다. 나는 또 직접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모두 진상을 알고 3퇴를 한다. 그러나 일부 사당의 독해를 비교적 깊이 받은 사람들은 3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무신론의 영향하에 신을 믿는 정도가 너무 낮다. 일부는 여러 번 진상해도 3퇴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 3퇴를 하지 않은 학생과 모든 선생님들의 핸드폰 번호를 명혜망에 올려서 해외 대법제자들이 전화로 그들에게 진상을 하게 하였다. 이것이 다만 나의 약간의 체험이다. 어떤 때에는 내가 잘하지 못하여 3퇴를 권하기 쑥스러웠으며 중생의 구도에 교란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앞으로 법으로 가늠하여 잘하면서 사람을 구도함이 긴박함으로 더는 그 무슨 쑥스러울 것이 없게 하려고 한다. 희망하건대 더욱 많은 어린 대법제자들이 자기가 3퇴를 권한 경험을 써서 모두 함께 참고로 하기를 부탁한다.
이렇게 많이 썼지만 사실 아직 많은 것을 쓰지 못했다. 또 아주 많은 일들은 써낼 방법도 없었다. 사부님의 자비, 부처의 넓은 은혜, 사부님에 대한 감지덕지를 언어로 표달할 수 없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였을 때, 능히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으로 가늠한다면 진정으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을 (柳暗花明又一村).” 발견할 수 있다.
처음으로 펜을 들었으므로 만약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명혜망 제5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완성: 2008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11/18941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