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내몽골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0일] 나는 1998년에 친구의 소개로 법을 얻었고,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몇 리 밖에 있는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였다. 하루는 갓 입문한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가까운 곳에 연공장을 세우고 당신이 우리에게 동작을 가르쳐주면 날마다 이렇게 먼 곳에 오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곧 동의하였다. 나는 녹음기를 구입하고 연공 테이프를 구했으며, 이렇게 하여 우리의 연공장이 세워졌던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다섯 명 뿐이었으나, 1999년 “7.20” 무렵에는 이미 60여 명으로 늘었다.
2000년 초 사악의 검은 소굴로부터 돌아온 후 나는 법공부와 발정념 강도를 크게 높였다. 하루는 갑자기 한 가지 염두가 생겨났는데, 파출소 소장에게 편지를 보내 현지 동수(즉 그녀 혼자 거기에서 불법(不法) 수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를 구하고자 하였다. 나는 왜 당시 그에게 편지를 쓰려 하였는가? 어느 날 검은 소굴에서 일하러 가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한 죄수가 알려 주기를 그가 바로 소장인데 특별히 효성이 많아 날마다 출퇴근할 때면 항상 그의 부모에게 인사한다는 것이었다. 이 죄수가 별 생각없이 말한 한 마디 말은 단숨에 나의 머리로 들어와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부모님께 이렇듯 효성스러운 것으로 보아 그에게 아직도 착한 일면이 존재함으로 구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 본문 작가
우선 “제5회 대륙 대법제자 서면수련심득교류회” 기회를 빌어 자비하신 위대한 사부님께 문안을 드립니다! 전 세계 동수들께 문안 드립니다!
아래에 나의 이 10년 동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대법의 가르침 속에서 걸어온 길을 사부님께 회보해 드리고 또한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나는 1998년에 친구의 소개로 법을 얻었다. 친구의 소개에 대해 나는 아주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 집 노선배 가운데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아울러 세세대대로 모두 부처를 믿었고, 평소에 나도 인과보응에 대해 아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책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본 첫번 째 책은 《정진요지》였을 뿐이었는데 그것도 손으로 베낀 것이었다. 저녁에 한 번 보고 나니 너무도 도리가 있다고 여겼고, 아침 일찍 일어나 또 한 번 보았더니 다른 책을 어서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도처로 찾으러 다녔다. 며칠 후 한 친척에게서 《전법륜》 책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해갈을 하듯이 읽기 시작하였다. 출근하여 할 일이 없게 되면 곧 법공부를 바짝 틀어쥐고 통독하고 베끼고 외우고 하여 자신을 법속에 용해시켰으며, 법으로 자신의 행위를 귀정하였고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였다.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몇 리 밖에 있는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였다. 하루는 갓 입문한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가까운 곳에 연공장을 세우고 당신이 우리에게 동작을 가르쳐주면 날마다 이렇게 먼 곳에 오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곧 동의하였다. 나는 녹음기를 구입하고 연공 테이프를 구했으며, 이렇게 하여 우리의 연공장이 세워졌던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다섯 명 뿐이었으나, 1999년 “7.20” 무렵에는 이미 60여 명으로 늘었다.
1999년 “7.20” 에 사악은 천지를 뒤덮을 듯 하였다. 아침에 시 공안국은 연공장에 와서 장소를 제공한 동수를 납치해 갔는데, 당시 백여 명의 사람이 연공하고 있었고, 그들은 뒷문으로 몰래 동수를 납치해 갔던 것이다. 연공이 끝나자 이 일을 알게 된 여러 사람들은 모두 우리는 진선인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분분히 말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해서는 안 되며 가서 동수를 찾아오자고 하였다.
오후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시 정부에 가서 사람을 내 놓으라고 하였다. 그곳에 이르니 마침 텔레비전에서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고 있었다. 북경에서 결정한 것인 바에야 그럼 우리는 북경에 가서 진상을 알려주자 라고 하였다. 나는 몇몇 동수와 의논하고 다음 날 떠나기로 하였는데 그날 저녁에 우리 보도원 몇 명이 납치되었다. 그 이후 한 동안 나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상태가 생겼다. 하지만 법공부만은 줄곧 견지하였고, 동수와 함께 있을 때 만일 전국의 대법제자들이 모두 북경에 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하는 데만 그쳤을 뿐 행동하지는 않았다.
2000년 초반에 나는 외지 동수와 연계를 얻게 되어 그렇게 많은 대법제자들이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즉시 북경으로 가기로 결정하였고 날짜를 정하였다. 가기 전날 저녁에 나는 사부님께 향을 피워 올리고 말씀드렸다. “사부님, 법을 바로 돌려 세우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당시의 상태였다) 그 결과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되어 그 날 저녁으로 납치 당하고 이어서 불법(不法) 노동교양을 당했다.
사악의 검은 소굴에는 16명의 대법제자가 불법으로 수감되어 있었는데 모두들 아주 확고하였다. 진선인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고 속인에게 관심갖고 도와주었으며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려주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녀들 많은 사람에게 변화가 아주 컸는데 아주 오랫동안 싸우고 욕하고, 물건을 훔치고, 양식을 낭비하는 등의 현상이 없어졌을 뿐더러 주동적으로 남을 도와 주었는데 이는 노동교양소가 생긴 이래 여태껏 없었던 일이었다. 한 경찰은 “이 사람(대법제자)들은 참으로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라고 하였다. 경찰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알려주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한 동안 공개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환경을 열어놓게 되었다.
대법에 대한 박해가 끊임없이 심해짐에 따라 노동교양소 환경도 아주 사악하게 변하게 되었고 불법 수감되는 대법제자도 갈수록 많아졌다. 사악은 복도에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그림들을 붙여 놓았는데 날마다 그것들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더 없이 괴로웠고,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사부님과 대법이 모욕과 비방을 받을 때 한 대법제자로서 나와서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지 못한다면 사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장차 무슨 얼굴로 사부님을 대한단 말인가? 나는 그것을 없애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공능과 신통 방면에 관해 하신 말씀을 회상해 보고 신통으로 그림을 없애 버리면 쥐도 새도 모를 것이며 자신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몇 번을 해 보았지만 효과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온 종일 이 일을 생각하였다. 왜 소용이 없을까? 드디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수고만 해도 될 일을 왜 신통으로 하려고 했는가? 왜 감히 정정당당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수호하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돌아서 가려 하는가? 아직도 그래 자기의 사적인 것을 수호하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안전하지 못하고, 자신이 박해받을까봐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그래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는데도 아직 조건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얼마나 더러운 사심(私心)인가?
인식이 제고되자 사부님께서는 곧바로 좋지 못한 그 물질을 청리해 주셨다. 마음은 정말로 아주 순수해져 나는 어서 빨리 그것을 없애 치우고 싶었고, 더이상 남겨 두어서는 안 되며, 그것의 존재가 바로 나에 대한 수치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복도는 아주 길어 동으로부터 서쪽까지 모두 12장을 붙여 놓은데다 매일 저녁이면 두 사람이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혼자서는 할 수 없었기에 여럿이 배합하여야만 하였다. 나는 나의 생각을 동수들과 교류하였고 동수들도 모두 동감하였다. 누군가 먼저 예로 대하고 안될 때 후에 강경한 수단을 쓰는 격으로 먼저 그녀들께 진상을 알려주어 그녀들 스스로 떼내게 하는데, 사흘 시간을 주어 떼지 않으면 행동을 취하자고 하였다. 모두들 일치하게 동의하고 아울러 편지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고 바쳤다.
하루가 지났으나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이튿날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세번 째 날이 되었는데 그녀들은 마치 그 편지를 잊은 듯, 전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하였다. 그녀들 스스로 떼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하였는데 그럼 우리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취침하기 전에 단체로 화장실로 갈 때 한 동수가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퇴출한 사람이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원래대로 한다고 말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약속한 시간이 되자 몇 초 사이에 12장의 사악의 그림이 산산이 찢어졌다. 이번 행동은 사악을 대대적으로 진감시켰고 그녀들의 미친듯한 기염을 타격하였다. 아마 당시의 동수들의 염(念)이 모두 비교적 바른 것이었기 때문에 지난 후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 시 “610”, 가도서기, 주임 등이 집으로 찾아왔다. “610” 두목이 말하였다. “시위 부서기도 함께 오려 하였는데 일이 있어서 오지 못하였으니 며칠 후에 다시 올 것이다. 당신은 시위 조직부의 도움 대상으로 되었다.” 나는 말하였다. “그만 두시오, 당신들은 나를 교육시키지 못합니다. 공산 사당(邪黨)은 나를 40여 년이나 교육해도 잘 교육하지 못했고,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자사자리(自私自利)하게 만들었지만 파룬따파는 나를 개변시켰고, 진선인은 나를 정화시켜 어디에서 잘못했으면 나는 진선인으로 가늠하고 대법으로 귀정하였습니다. 당신들 그 따위는 나에 대해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준 동시에 나에 대한 그들의 박해를 폭로했다. 그들은 더는 있을 수 없어 일어나 가려 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며칠 후 우리는 시위 부서기와 함께 당신을 보러올 것입니다.” 나는 말했다. “만약 당신들이 친구나 손님의 신분으로 온다면 우리 집 대문은 아무 때건 당신들에게 활짝 열려져 당신들을 환영할 것이지만 만약 사업을 할 생각이면 오지 마십시오, 환영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같은 확고하고 순수한 일념으로 나를 박해하려 시도한 사악을 해체하여, 그들은 종적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하지만 현지 동수들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서로간에 내왕이 아주 적었다. 현지에는 자료점이 없었고, 외지와의 연락도 없었으며,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신경문은 모두 두 달이 넘어야 겨우 볼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다만 손으로 베낀 것이 한 두 부 있을 뿐이었고, 《명혜주간》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정법진행은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는 다른 동수와 함께 동수를 찾아가 교류하고, 여러 사람을 인도하여 법공부를 많이 함으로서 법에서 제고하여 올라오게 하였으며, 아울러 외지 동수와 연계를 통해 동수들이 가급적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게 하여 동수들은 재빨리 모두 정진하게 되었고 또한 감히 나와 진상을 알리게 되었다.
2000년 초 사악의 검은 소굴로부터 돌아온 후 나는 법공부와 발정념 강도를 크게 높였다. 하루는 갑자기 한 가지 염두가 생겨났는데, 파출소 소장에게 편지를 보내 현지 동수(즉 그녀 혼자 거기에서 불법(不法) 수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를 구하고자 하였다. 나는 왜 당시 그에게 편지를 쓰려 하였는가? 어느 날 검은 소굴에서 일하러 가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한 죄수가 알려 주기를 그가 바로 소장인데 특별히 효성이 많아 날마다 출퇴근할 때면 항상 그의 부모에게 인사한다는 것이었다. 이 죄수가 별 생각없이 말한 한 마디 말은 단숨에 나의 머리로 들어와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부모님께 이렇듯 효성스러운 것으로 보아 그에게 아직도 착한 일면이 존재함으로 구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바로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에 이 소장의 이름을 듣게 되었는데, 나는 당시 마음속으로 이 일체는 모두 우연한 일이 아니므로 돌아가서 그에게 진상편지를 부쳐 보내 그를 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돌아온 후 이 일을 잊어 버렸던 것이다. 내가 펜을 들고 쓰려할 때, 한 가지 생각이 반영되었는데 그의 효성을 이용하는 것 역시 착한 이 한 점으로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는 혹시 대법을 공격하는 언론을 발표했을 수도 있고,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했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터인데 이런 것을 나는 모두 몰랐다.)
나는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그의 효성심 이 한 점을 틀어쥐고 그에게 진상편지를 쓰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썼다. “노동교양소에는 그렇듯 많은 대법제자가 수감되어 있는데, 아래로는 열 몇 살 되는 어린애로부터 위로는 60여 세 넘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그들은 단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 것 뿐입니다. 바라건대 당신께서 인자하신 부모님께 다하는 그 효성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착하게 대해 주시어 자신의 생명에 아름다운 미래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쓰는 과정에 나 자신마저 모두 몹시 감동되는 감을 느꼈다.
편지를 부친 후 며칠이 지나자 나는 곧 이 일을 잊어버렸다. 얼마 후 나는 그 동수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게 되어 매우 기뻤다. 하지만 그 편지일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며칠 후 그녀가 나를 만나서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내가 밭에서 일하는데 악경이 일부러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우리집 상황에 대하여 물어 보길래(내가 편지에 소개한 상황)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 나더러 집에 가라고 통지하는 것이었어요.” 이때에야 나는 그 편지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2004년,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이 천안문에 갔다가 납치되어 간수소에 불법으로 납치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에게는 일종의 어쩔 수 없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생겼다. 저녁에 주간을 보니 동수들은 모두 법에서 확고하게 그렇듯 잘하였으며 감히 공안국, 간수소, 법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동수를 구하였다. 당시 나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일종의 착오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자신은 중점인물이라 공안국에 가서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내 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잡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연공을 마치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 역시 대법제자인데 왜 할 수 없는가?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두려울 것 뭐냐,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정념이 강해지자 사부님께서 두려워하는 그 물질을 청리해 주셔 몸이 더 없이 가벼워지는 감을 느꼈고, 마음이 아주 순수해져 나는 곧 한 동수를 찾아가 함께 “610”에 갔다. 그들의 사무실은 3층에 있었는데 그들의 그곳에 가서 우리가 온 의도를 말하고는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현지 및 노동교양소에서의 우리에 대한 박해를 적발하였다. 그때 방에는 또 두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가 큰 소리로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듣고 있었고 그 중 한 사람은 우리에게 물을 부어 주면서 우리말을 명심해 들었다. 벽을 사이에 둔 작은 회의실에서는 공안국의 두목들이 마침 회의를 하고 있었다. “610” 사무실 문이 열려져 있었고 우리가 하는 말소리가 아주 높았기 때문에 그들은 완전히 들을 수 있어 때때로 사람이 오가면서 아주 관심을 갖고 방안을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두려움이 없게 되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최후의 집착을 버리자》) 진정으로 대법의 위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사상중에 두려움이란 개념조차 다 없었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 하고 나니 12시가 되어 그들이 퇴근하려 하였으므로 우리는 비로소 나왔다. 우리가 대문을 나와 얼마 안 가서 되돌아 보니 그 몇 개의 창문에 사람들이 가득 서서 모두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부님의 《현지 민중에게 현지 사악을 폭로하자》란 평어가 발표된 후 처음에는 쓸 것이 없다고 느꼈는데 심입되는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하여 그들이 대법제자에게 저지른 일체의 납치, 가택수색, 불법수금, 벌금, 숨어서 기다리기, 집에 와서 소란 피우기, 거주지 감시, 인신자유 제한, 노동교양 등등 이렇듯 많은 나쁜 일, 이렇듯 엄중한 박해에도 어찌 쓸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식이 제고되자 정말로 쓰려고 할 때 은폐된 그 사심이 폭로되어 나왔다. 내가 그들을 폭로하면 그들은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것이고 박해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등의 바르지 못한 염두가 나온 것이었다. 나는 정념으로 그것을 부정하였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삼계의 이치는 반대가 된 것으로 사악을 폭로하는 것은 바로 사악을 해체하는 것이므로 박해받는다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즉시 나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진상자료로 써내어(당시에는 알지 못하여 명혜망에 보내지 않았다) 직접 복사하여 밖에 붙였는데 효과가 대단히 좋았고, 사악에게 지대한 진섭작용을 하였다. 어떤 경찰은 이튿날 주동적으로 대법제자를 찾아가 자신을 표명하였다.
어느 날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시(市)에서 그들이 여기건대 문화수준이 비교적 높고, 지식이 비교적 풍부하고, 도(道)를 능히 말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많이 뽑아서 함께 공부시켰는데 때가 되면 당신들에게 학습반을 꾸려줄 것이다. 당시 나는 사부님의 《정진요지》에서 말씀하신, 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어떻게 배우던, 그들의 고만한 지식은 대법앞에서, 대법제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소아과도 되지 못하는 것으로서 쓰기 불편하여 쓸모없게 될 것이다. 이 일념은 긍정적으로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어느 날 “610”이 나에게 전화로 하는 말이 학습반을 꾸리려고 정법위 서기가 나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하는데 당신은 참가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는 된다고 하였고 이로서 일은 끝난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하여 내가 심각하게 인식하게된 것은, 법을 외우는 것은 수련제고에 대단히 좋은 점이 있으며, 어떤 일을 만났던 간에 법은 수시로 당신이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해 준다는 것이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2》)
2005년 5월에 나는 핍박으로 인해 유리실소하게 되었다(정념으로 부정하지 못하고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었던 것이었다). 나온 후 줄곧 자료를 만드는 이 방면의 일에 접촉하였고, 자료점 설립을 계획하고, 자료를 만들고 송달하며, 설비를 구입하고 소모재료를 들여오고 하는 과정에 나의 아주 많은 집착심, 질투심, 쟁투심, 두려워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과시심, 환희심, 색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등이 폭로되었다. 모순에 봉착하면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라 늘 동수의 부족만 보았고, 모순의 출현을 자신의 제고로 여기고 집착심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지 못하였다. 어떤 때는 일 속에 빠져 생각할수록 집착하여 고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야말로 한 단락 뼈를 깎아내듯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을 걸어 왔다. 어떤 마음은 아직도 깨끗이 버리지 못하여 문제에 봉착하면 여전히 반영되어 나오곤 한다. 하지만 또다시 모순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수련할 수 있게 된다.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방면에 있어서 나는 거리가 아주 멀다. 나는 이번 교류회를 하나의 계기로 삼아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 하여 자신의 부족을 메우려 하며, 머리를 바짝 들고 따라 잡으며, 세 가지 일을 참답게 잘하여 자신의 사전 대원을 실현하고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이다.
(명혜망 제5회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발표문)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0/189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