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무사무아로 수련된 참다운 깨달음(正覺)

글/허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9일 】나는 한 보통 대법제자로서 그 무슨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적도 없다. 평탄하지 않은 수련 노정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나로 하여금 비교적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오게 하였다. 나는 바로 나와 같이 평범하게, 대법에 대한 반석 같은 확고한 믿음을 가진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세간에서 대법을 견고한 초석(基石)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눈물이 참을 수 없이 두 눈에서 흐른다. 능히 대법제자의 하나의 입자로 되었다는 것으로 하여 나는 진심으로 긍지와 신성(神聖)함을 느꼈다.

수련 중에서 나는 거의 매일 명혜망에 들어가 동수들이 정진한 것을 보면서 나의 수련의 발걸음을 다그쳤다. 후에 나도 투고하기 시작하면서 수련 체험을 쓰는 본인도 역시 하나의 아주 좋은 수련 과정이라고 느꼈다. 문장을 쓰는 중에서 생각의 갈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도역시 하나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는 과정이었다. 아주 많은 집착심을 타자할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쓰고, 쓰다 보면 바로 그것을 잡아내게 된다. 문장이 발표된 후 나는 발표된 것과 초고를 구별하면서 자세히 비교하였는데 동수가 수정한 편집이 왕왕 어구에서 더욱 정결하였고, 법리가 더욱 뚜렷하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느 한번 나는 문장을 매끈하게 만들기 위하여, 허다하게 사소한 부분을 썼는데 편집에서 삭제되었다.

——본문작자

나는 한 보통 대법제자로서 그 무슨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적도 없다. 평탄하지 않은 수련 노정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나로 하여금 비교적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오게 하였다. 나는 바로 나와 같이 평범하게, 대법에 대한 반석 같은 확고한 믿음을 가진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세간에서 대법을 견고한 초석(基石)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눈물이 참을 수 없이 두 눈에서 흐른다. 능히 대법제자의 하나의 입자로 되었다는 것으로 하여 나는 진심으로 긍지와 신성(神聖)함을 느꼈다. 내 기억에 수련과정의 짧은 단락을 실증하여 명, 리, 정이 엄중히 많은 한 속인이 모순 앞에서 능히 자신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변하였고, 중생을 위하여 능히 자신의 일체 이익을 내려 놓는 초상적인 사람으로 변하였으며, 생사 윤회와 생명의 진정한 의의를 꿰뚫어 보는 미래의 각자로 변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대법의 무한한 법력이고,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이다.

1. 정념으로 “병업”을 대하여 순조롭게 관을 넘었다

1.

2007년에 나는 며칠 동안 허리가 쑤시고 아팠다. 그래도 나는 근본적으로 개의치 않았다. 신경을 써서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수련하면 일체 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루는 내가 화장실에 가서 배설하고 일어났는데 변기 안이 이미 벌겋게 물들었다. 나는 좋지 못한 것이 많이 청리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을 틀어놓고 할 일을 계속하였다. 그때부터 허리가 아픈 것이 일부 나았다.

2007

며칠 후 가부좌를 하는데 하나의 칼날 같은 물건이 왼쪽 갈비 부위를 빠르게 도려내는 것 같이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즉시 발정념으로 나의 연공을 교란하고, 나의 신체를 박해하는 일체 사악 생명 및 요소를 제거하였다. 그 후 또 한번 변기에 벌건 피가 나온 현상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이 좋아졌다. 그 다음은 허리가 아프지 않았으며 일체는 정상으로 돌아갔다. 전 과정에서 나는 이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또 이에 대하여 특별히 발정념을 한적도 없었다. 이런 까닭으로 아주 빨리 지나갔다. 나는 내가 무위의 상태였으므로 구세력이 뚫을 공간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요구한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2004년 시카코법회설법》)는 말씀에 따라 가히 자신을 내려놓고 일심으로 수련하고, 일심으로 사람을 구하는 데서 구하는 것 없으니 자득이었다.

금년 가을에 들어서서는 나와 관계가 좋은 한 동료가 감기에 걸렸는데 의자에 삐뚤게 앉아서 아주 힘들어 하였다. 당시 나는 속으로 ‘그 옹졸한 모양을 보아하니, 신체가 그렇게 허약하여, 바람이 불면 풀이 움직이기를 거듭하는 듯 한데 정말로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 내가 잠에서 일어나자 온몸이 떨리고, 콧물이 났다. 회사에 출근한 후 한 동료가 나의 코 막힌 소리가 엄중한 것을 듣고“당신, 감기인가요?”하고 물었다. 나는 즉시 “아니요”하고 대답했다. 나는 구세력이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나에게 승인 받으려고 하고 있기에 나는 절대 이것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앉아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수련한지 이렇게 오래되어 신체는 이미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 되었는데 어떻게 “감기”라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반드시 가상이다. 그러면 내가 여기에서 빠뜨림이 있어 공간이 뚫렸는가? 나는 애써 이 이틀 동안의 일을 상기하면서 어제 그 한 장면이 생각났다. 나는 즉시 안에서 찾으면서, 자세히 당시의 일사일념을 살펴보았는데 그러한 생각은 속인의 마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그 옹졸한 모양을 보아하니”이것은 사람을 업신여긴 것이다. 자신은 수련인으로서 병에 걸릴 수 없으니 대단하다고 자처하였는데 자비심이 없었다.“신체가 그렇게 허약하여 바람이 불어 풀이 움직이는 모양을 거듭한다는 것” 이것은 속인의 사유에 의한 “병”이었다. 사실 “병”의 근원은 업력이다. 바람이 불어서 서늘하다는 것은 다만 이 공간에서의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의 머리는 확연히 맑아졌다. 신체가 즉시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 콧물이 났다. 나는 안에서 찾았는데 자신에게 아직도 속인 공간의 일부 이치를 승인하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감기는 약을 먹든 먹지 않든 모두 7일이 지나야 호전된다. 감기에는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 좋으며, 더운물을 많이 먹으면 빨리 호전된다……. 나는 이것들을 부정하고 제거하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자신에게 아직도 하나의 결과에 대한 마음의 집착심에서 마치 자신에게 모두 잘 하였으니 마땅히 좋아져야 하지 않는가? 하고 말한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 마음을 내려놓고 상관하지도 않고 바로 해야 할 일을 하였다. 그 결과 어느 때인지도 모르게 “감기”가 철저히 다 나았는데 전후 3일이 걸리지 않았다.

내 개인의 체험으로는 병업관을 넘을 때 관건은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내려놓아야 하는데 진정으로 내려 놓았을 때에야 만이 막다른 골목에 꽃이 피는 격이었다.

2. 자신을 내려놓고 중생을 구도하다

2.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사명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나의 두 가지 진상하는 방식은 주요하게 자료를 배포하고 당면에서 진상하는 것이다. 매번 자료를 배포하기 전에 조용히 앉아서 발정념으로 가려고 하는 지역의 일체 사악한 생명 및 요소를 제거한다. 정념이 그곳에 도달하면 하늘이 순간 아주 맑아진다. 설령 밤중이라 해도 거기가 밝기로 대낮 같고, 깨끗하기로 마치 한 마리의 파리, 모기도 없는 것 같았으며, 사방의 천공에는 또 마치 많은 호법신들이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나는 가서 자료를 배포하는데 마음이 담담하여 무인지경에 들어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자료를 배포하고 한편으로는 발정념으로 연분이 있는 사람들이 자료를 볼 때 즉시 그의 배후의 공산사령의 요소를 제거하여 그로 하여금 탈당하여 생명을 보존하기를 바랬다. 이렇게 자료를 배포함으로써 나는 문제에 봉착한 적이 없었다.

3퇴를 시작한 후, 나는 먼저 주위에 있는 친인과 동료들에게 진상하기 시작했다. 원래 제일 말하기 힘들었던 사람이 부친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사당에 가입한 지 몇 십 년이 되었고 또 간부도 하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나는 줄곧 발정념으로 고향의 공간 마당내의 일체 사악한 생명 및 요소를 제거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역시 집중하여 내내 정념을 하였다. 집에 도착한 후 나는 다만 부친에게 한마디로 “아버지, 지금 모두 탈당하여 생명을 보존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탈퇴하세요.”하고 말하였더니 그는 흔쾌하게 “탈퇴하지 뭐, 공산당은 이젠 망했어.”하고 말하였다. 집안의 기타 사람들 역시 아주 흔쾌히 사당에서 탈퇴하였다. 현재 무릇 내가 능히 접촉할 수 있는 친인들은 모두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였다. 그 중 두 사람은 또 대법의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기타 몇 명 동수들과의 공동 노력 하에 나의 회사 직원 대부분도 사당에서 탈퇴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탈퇴를 권하면서 나는 생소한 사람들에게도 진상하기 시작했다. 생소한 사람에게 진상하면서 약간 “행각”한다는 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나 모두 봉착할 수 있기에 사람의 심성을 아주 많이 연마[魔煉]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능히 자신에 대한 관념을 버릴 수 있고, 구별하는 마음 없이 오직 일심으로, 순정한 자비로 중생을 구도한다면 진상의 효과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해도 능히 그를 제어하여, 그가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를 구도했다.

한번은 내가 어느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 언니에게 진상을 하였다. 그녀는 처음에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그의 얼굴에 곰보가 있는 것을 주시하게 되었다. 바로 이 하나의 그릇된 염(念)으로 인해 그의 눈빛이 즉시 변하였다. 이때 차가 왔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저으면서 “나는 차가 왔으니 가요”하고 말하였다. 나는 조급히 그의 손을 붙잡고 “탈퇴(사당)하세요!” 하고 말하였다. 그는 손을 빼면서 차에 올랐다. 차는 아주 빨리 떠났다. 나는 후회막급으로 자신을 한바탕 꾸짖었다. 그녀의 곰보를 봐서는 뭐하는가? 안에서 찾아보니 확실히 하나의 집착을 줄곧 깨끗이 없애지 못했었다. 바로 피부에 대한 집착, 늘 자신의 피부가 하얗기를 추구했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얼굴색에 대하여 아주 주시하게 되었다. 사실 바로 색심을 깨끗이 없애지 못한 것이다. 찾았으니 바로 없애 버려야 한다. 계속 앞으로 갔는데 또 한 언니가 거리 변에 서있었다. 나는 걸어가서 아는 체 하였다. 그는 힐끗 보면서 나를 가늠하는데 아주 업신여기는 듯 했다. 나는 줄곧 웃으면서 그녀에게 진상하여 3퇴를 권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머리를 흔들어 3퇴에 동의하였다. 나는 기뻐하면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런 다음 나는 집으로 와서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서야 내가 그날 정말로 난감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아주 짙은 안개 속에서 머리는 적어서 착 달라 붙었고 얼굴은 얼어서 검고 푸르스름했는데 옷에는 먼지가 가득하였다. 이 언니가 힐끗 나를 볼 때 긍정적으로 나의 난감한 모양을 보고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업신여김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여 끝내 그녀를 구했던 것이다. 시간은 아주 긴박하다. 그러나 구한 사람은 또 이렇게 적다. 나는 늘 해 놓은 일이 너무 적다고 느꼈다. 이 천금으로도 살수 없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범위를 더욱 넓혀 더욱 좋은 효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이것은 우리가 사고해야 할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3. 사부님과 법을 믿고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다 최근 많은 동수들이 모두 신통을 사용하여 사악을 제거하고, 박해를 부정한 사실들이 많다. 나 개인의 느낌은 만약 우리들의 심성이 법의 요구에 도달하고, 능히 자신을 내려놓고, 내심에서 진정으로 중생 구도를 위하여 사심의 목적이 없으면 “힘”들이지 않고, 항상 신통을 사용할 수 있는데, 신통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한다. 진정한 신통은 “힘” 들이지 않아도 나온다. 왜냐하면 신통은 바로 우리들의 팔, 다리와 같다. 우리들이 걸으려고 생각하면 다리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우리들이 물건을 가지고 가려면 손 그 자체가 바로 내밀어진다. 만약 우리들이 걸으려 할 때 열심히 힘을 넣어 다리를 들라 명령하고 생각해야 한다면 그 다리가 아직도 우리의 다리인가? 그러므로 발정념이 잘 되게 하려면 관건은 우리의 그 마음이다. 수련인의 심태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인가? 사람의 마음이면, 그것은 힘을 내어 생각해도 헛수고이다. 수련인의 심태이면, 특별히 발정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생각하면 그 신통이 자연스럽게 가서 하는데 일념(一念)으로 즉시 성공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당신이 사람 마음일 때면 힘을 넣어 생각해도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불법신통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당신이 수련인의 심태일 때에만 불법신통이 뜻대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주대법은 일체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 법리를 깨달은 후 창밖에 있는 사당의 깃발에 대해 발정념을 했는데 하루 지난 후 그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생소한 사람에게 진상하는 과정에서 나는 악을 행하려는 사람을 만났다. 당시 나의 심태가 아주 평온하여 근본적으로 무슨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일심으로 그를 구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앞에서 핸드폰으로 전화 번호를 누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생각해 보세요 나는 무엇을 위하여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겠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의 심태는 아주 자유롭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로 사람을 불렀다. 나는 이지적으로 그 자리를 떠났는데 그도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당시 애써 신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념이 바로 박해를 부정했다. 왜냐하면 “그를 위하여”란 심태 그 자체가 바로 강대한 정념 마당이기에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은 것이다. 그의 배후의 사악은 즉시 회멸되어 그의 나쁜 생각은 갑자기 개변된다. 설령, 개변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능히 그를 제어하여 그로 하여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대법이 제어하는 힘의 체험이다. 올림픽 전에 회사에서는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하면서 만약 쓰지 않으면 감금한다고 위협했다. 나는 찾아 온 사람에게 진상을 하여 단호히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나중에 회사 상급의 지도자가 나에게 한번 오라고 불렀다. 나는 가는 길에 정념을 하면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도자는 나에게 아주 예의 있게 차를 따라주면서 앉으라고 하고는 서명하지 않은 원인을 물었다. 나는 구세력이 중생을 통제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려고 하기에 그들에게 절대로 이것들이 나를 박해할 구실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박해를 받는다면 눈앞에 있는 이 몇 사람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갚을 수 있는가? 나는 “99년 우리가 북경에 간 것은 법을 믿고 청원하러 간 것이다. 우리들은 대법을 수련하면서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데 베이징(정부)가 진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에 베이징에서는 명확한 태도로 바로 진압을 시작했기에 우리는 바로 청원하러 가지 않았다. 9년 동안 나 자신이 본분을 지키면서 일을 하였다. 집에서 부모와 아이를 돌보고, 회사에서는 맡은 바 사업을 잘하면서 조금이라도 법을 위반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현재 올림픽을 시작하면서, 오직 우리 때문에 불안하여, 한 장의 양식(表格)을 작성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서명하게 하는데 우리들의 생활은 너무 존엄이 없다. 나는 한평생 간부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생각한 적 없이 다만 조금이나마 존엄이 있고, 인권이 있게 살아 보려고 생각하였다.” 나의 마음은 담담하고 평온하였으며 조금의 모호함 없이 결코 서명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줄곧 나를 이해시키는 것이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에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도법》에서 “제자로서 시달림(魔難)이 올 때, 정말로 능히 탄연하게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끔 마음을 놓는다면, 족히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더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심성 또는 행위에 기타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꼭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치한 틈을 탄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니다. 그럼 본성의 일면은 왜 법을 바로잡지 않는가?” 어물적 거리자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사부님의 몇 마디 말씀이 생각났다. 맞다. 나는 이미 담담하게 움직이지 않았으며, 능히 자신을 내려놓고 중생을 위하여 고려면서 사악이 중생을 조종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박해는 아직도 끝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악이 나의 방임(放任)한 공간을 뚫은 것이 아닌가? 나의 눈시울은 직접 지도자의 배후에 있는 다른 공간을 겨냥하여 신념이 움직였다.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중생을 박해하고, 제자를 박해하는 사악한 생명 및 요소를 제거해 주세요” 하고 청을 드리려고 염두를 금방 움직이려 하는데, 그 지도자가 “이렇게 합시다. 우리들이 당신에 대한 신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우리가 대신 서명할게요” 하고 말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가려고 하는데 지도자가 급히 나를 불러 세우면서 다시는 서명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다만 “우리들이 당신을 믿어요.”라고 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믿으세요, 나는 더욱 노력하여 맡은바 사업을 잘하겠습니다.”고 말하였다. 사무실 대문을 나오면서 나는 하늘은 높고 구름이 거의 없는 감각으로 온 몸이 가벼웠다. 나는 사악은 이미 소멸되었고 박해는 이미 종말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 생명의 최고 경지는 무사무아, 선타후아이다. 이러한 생명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실과 득을 생각하지 않고 완전히 법의 요구에 따라 한다. 사부님과 법을 믿으면 모르는 사이에 신통을 응용하여 자기를 보호함에 성공한다. 더욱이 현재 능히 심태의 경지로 담담하게 법을 실증하는 노정에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체현된다. 자신의 감수를 내려놓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명, 리, 생명을 내려놓고 무사무아의 바른 깨달음으로 수련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수련 목적이다. 수련의 노정을 회고하면 우리는 줄곧 반복적으로 체험한 것이 아니다. 반복적인 실천, 이것이 법리인가? 박해는 이미 9년이 되었다. 동수들은 줄곧 어떻게 철저히 박해를 결속 짓겠는가 하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만약 우리 모두 능히 철저히 박해 받는다는 두려운 마음을 내려 놓고, 박해 일념을 내려 놓고, 자신을 보호하는 사심을 내려놓고,바로 진상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진정으로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깨달음으로 수련한다면 사악은 바로 대법제자의 강대한 정념의 마당에서 형체가 소실되어 박해는 자연히 종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어린 제자를 데리고 대법을 실증하는 아름다움 내 아이는 나와 함께 대법을 얻었다. 역시 10년이 넘었다. 노정에는 역시 풍파가 많았다. 오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아이의 중학교 진학 고시 전후의 체험을 교류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아이와 어떻게 중학교 진학시험을 치러야 하는가에 대해 교류했다. 마지막에 공동 인식을 하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수련 노정은 사부님께서 이미 안배하셨다. 어느 중학교에 가게 되면 자연히 거기로 가야 한다. 어디로 가나 모두 수련이며, 모두 거기의 중생이 우리가 가서 구도할 것을 필요로 한다. 성적은 우리가 집착할 것이 아니다. 다만 대법제자가 어디로 가든지 모두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리가 뚜렷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중학교 진학시험을 앞두고 숙제 분량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아이는 비록 공부에는 느슨했지만 숙제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다만 그가 종래로 법공부를 느슨히 한 적은 없었다. 저녁밥 먹는 시간이면 사부님의 광주설법 CD를 틀어놓고 매일 한 시간씩 공부하는데 어떤 때에는 역시 나와 함께 발정념을 한다. 총체적으로 그의 심태는 아주 평온했다. 중학교 진학 15일을 앞두고 국가급 명문 중학교에서 학생을 앞당겨 모집하였다. 나의 아이가 평시에 표현이 특히 우수한 것에 의거해 그에게 시험을 면제하고 입학할 것을 허용했다. 나는 법으로 가늠해 볼 때 가히 갈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와 토론했는데 아이도 역시 마땅히 가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집착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비도 나 역시 능히 부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어 아이는 가히 중학교 진학 시험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진학시험 성적은 선생님의 평균성적에 영향이 있을 따름이어서 우리는 역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아이가 말한 한마디가 기억이 아직 새롭다. “나는 진학시험을 반드시 능히 잘 할거에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이기 때문이에요.”라고 하였다. 중학교 진학시험 7-8일을 앞두고 아이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열이 오르고 있으니 집으로 데려 가라고 하였다. 나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병업”의 원인을 분석하였다. 환시심, 현시심을 찾은 후 아이는 약간 정신을 차렸는데 다만 머리가 아직도 뜨거웠다. 나는 또 그를 도와 분석했다. 또 부모가 이혼한 데 대한 원한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지? 그는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당시 이혼한 것은 어머니가 수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너도 대법제자인데 마땅히 어른들의 고초(苦楚)를 이해해야 한다. 마땅히 자비심으로 이 일을 대해야 한다. 속인들의 아이처럼 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의 감수에 대한 집착, 속인 생활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있다.” 이때는 다만 아이가 “나는 없애 버렸어요”라고 한 말을 들었을 뿐이다. 아이는 바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말하면서 손으로 아이의 머리에손을 얹었는데 아이의 머리에서 한 층의 구슬땀이 송송 맺혔는데 열은 이미 내렸다. 아이는 몸을 일으켜 저녁 밥을 먹었다. 그 이튿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아이는 기분이 상쾌해 하였다. 연이어 며칠 식욕부진, 떨리는 등 상태가 전부 소멸되었다. 중학교 진학 시험이 끝난 후 아이는 나에게 가히 하나의 상당히 높은 점수를 따낼 것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웃음으로 응답했다.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결과 시험성적이 나왔는데 아이가 말한 점수에서 4점이 모자랐는데 전교에서 일등을 따내어 이름이 첫 자리에 나붙었다. 아이의 성적이 뛰어나, 그 중점 중학교에서 또 감면을 받게 되었는데 대부분 고액의 학비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를 교육한 경험을 물었다. 나는 모두 적당한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대법의 위력이고, 늘 ‘파룬따파 하오, 쩐, 싼, 런 하오’를 염(念)하면 가히 복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5. 명혜망에 원용하여 투고하는 중에서 승화 수련 중, 나는 거의 매일 명혜망을 본다. 동수들의 문장은 나에게 거대한 계발을 준다. 동수들의 정진 역시 나의 수련의 발걸음을 촉진시킨다. 나도 역시 투고하기 시작했다. 수련의 체험을 쓰는 자체, 역시 한차례 아주 좋은 수련 과정이다. 문장을 쓰면서 사로(思路)를 정리하는 과정 역시 수련을 바로 잡는 하나의 일사일념의 과정이다. 많은 집착심, 타자하면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쓰고 쓰다 보면 바로 그것을 잡아내게 된다. 문장이 발표된 후 나는 발표된 것과 초고를 구별하며 자세히 비교하는데, 동수가 수정한 편집이 왕왕 어구가 더욱 정결하였고, 법리가 더욱 뚜렷하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느 한번 나는 문장을 매끈하게 만들기 위하여, 허구적으로 세부적인 것을 썼는데 편집원들이 삭제해 버린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이며, 역시 바로 이것을 빌어 나에게 투고의 엄숙성을 알려 주었다. 그 후부터 나는 투고에서 쓰기 싫은 부분은 가히 쓰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쓴 것은 바로 마땅히 진실이었다. 역시 발표되지 않은 문장도 있었다. 무릇 발표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는 한 동안 보류했다가 무엇 때문에 문장이 발표되지 않았는가를 반복해서 법으로 가늠해 보았다. 두 번이나 내가 법리에서 일부 극단적이었기에 명혜망에 발표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즉시 의식하고 자신의 수련 노정에서 바로 잡아 불필요한 손실을 방지했다. 어떤 동수가 “명혜문장은 수련인이 쓴 것이므로 역시 참고로 삼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틀리지 않는다. 우리 수련인은 법을 믿고 사부님을 스승으로 해야 한다. 다만 사부님께서 명혜망을 긍정 하셨다. 정법시기에 나타난 대법 사이트가 능히 우연히 나타나서 있었다 없었다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명혜망을 보는데 주의해야 한다. 《명혜주간》을 공부하면서 한 수련생을 따라, 사람을 배우면서 법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명혜망의 태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련 상태를 동수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수련에 대하여 하나의 촉진 작용을 하는 것이다. 대법 사이트는 모두가 함께 원용될 것을 필요로 한다. 현재 명혜망을 보고, 명혜투고를 하면서 이미 나의 수련에서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어떤 때 나는 만약 나의 문장이 정말로 능히 동수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한 건의 얼마나많은 기쁨과 위안이 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생각한다. 맺는 말: 매번 션윈(神韻)만회를 볼 때마다 나는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 그 순정하고 아름다운 화면, 그 자비로운 노래 소리, 오직 신의 경지에서만 능히 소유할 수 있다. 생명의 깊은 곳의 그 기억 속에서 노래 소리는오랜 역사 중에서 차례차례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의 표면까지 왔는데, 수없이 많은 말에서 도리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지만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맺혔다. 중생들은 주불이 세간에 내려와 제도하는 화폭에 따라 움직였는데, 그렇게 아득히 멀면서도 도리어 마치 어제 발생한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이 그 중의 일원으로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는긍정적으로 금생에 대법제자로 된 것은 나의 영생영세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다. 만약 다시 한번 온다고 해도 나는 의연히 나의 모든 복덕(福德)을 가지고, 일체 고난을 겪으면서 금생의 대법제자의 칭호로 바꾸려고 한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 하면서 중생을 구도하는 한 대법제자로서 나는 영원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명혜망 제5회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8년 11월 8일문장분류: 수련마당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11/9/188302.html

시간은 아주 긴박하다. 그러나 구한 사람은 또 이렇게 적다. 나는 늘 해 놓은 일이 너무 적다고 느꼈다. 이 천금으로도 살수 없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범위를 더욱 넓혀 더욱 좋은 효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이것은 우리가 사고해야 할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3. 사부님과 법을 믿고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다

3.

최근 많은 동수들이 모두 신통을 사용하여 사악을 제거하고, 박해를 부정한 사실들이 많다. 나 개인의 느낌은 만약 우리들의 심성이 법의 요구에 도달하고, 능히 자신을 내려놓고, 내심에서 진정으로 중생 구도를 위하여 사심의 목적이 없으면 “힘”들이지 않고, 항상 신통을 사용할 수 있는데, 신통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한다. 진정한 신통은 “힘” 들이지 않아도 나온다. 왜냐하면 신통은 바로 우리들의 팔, 다리와 같다. 우리들이 걸으려고 생각하면 다리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우리들이 물건을 가지고 가려면 손 그 자체가 바로 내밀어진다. 만약 우리들이 걸으려 할 때 열심히 힘을 넣어 다리를 들라 명령하고 생각해야 한다면 그 다리가 아직도 우리의 다리인가?

그러므로 발정념이 잘 되게 하려면 관건은 우리의 그 마음이다. 수련인의 심태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인가? 사람의 마음이면, 그것은 힘을 내어 생각해도 헛수고이다. 수련인의 심태이면, 특별히 발정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생각하면 그 신통이 자연스럽게 가서 하는데 일념(一念)으로 즉시 성공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당신이 사람 마음일 때면 힘을 넣어 생각해도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불법신통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당신이 수련인의 심태일 때에만 불법신통이 뜻대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주대법은 일체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 법리를 깨달은 후 창밖에 있는 사당의 깃발에 대해 발정념을 했는데 하루 지난 후 그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생소한 사람에게 진상하는 과정에서 나는 악을 행하려는 사람을 만났다. 당시 나의 심태가 아주 평온하여 근본적으로 무슨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일심으로 그를 구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앞에서 핸드폰으로 전화 번호를 누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생각해 보세요 나는 무엇을 위하여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겠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의 심태는 아주 자유롭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로 사람을 불렀다. 나는 이지적으로 그 자리를 떠났는데 그도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당시 애써 신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념이 바로 박해를 부정했다. 왜냐하면 “그를 위하여”란 심태 그 자체가 바로 강대한 정념 마당이기에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은 것이다. 그의 배후의 사악은 즉시 회멸되어 그의 나쁜 생각은 갑자기 개변된다. 설령, 개변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능히 그를 제어하여 그로 하여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대법이 제어하는 힘의 체험이다.

올림픽 전에 회사에서는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하면서 만약 쓰지 않으면 감금한다고 위협했다. 나는 찾아 온 사람에게 진상을 하여 단호히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나중에 회사 상급의 지도자가 나에게 한번 오라고 불렀다. 나는 가는 길에 정념을 하면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도자는 나에게 아주 예의 있게 차를 따라주면서 앉으라고 하고는 서명하지 않은 원인을 물었다. 나는 구세력이 중생을 통제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려고 하기에 그들에게 절대로 이것들이 나를 박해할 구실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박해를 받는다면 눈앞에 있는 이 몇 사람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갚을 수 있는가? 나는 “99년 우리가 북경에 간 것은 법을 믿고 청원하러 간 것이다. 우리들은 대법을 수련하면서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데 베이징(정부)가 진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에 베이징에서는 명확한 태도로 바로 진압을 시작했기에 우리는 바로 청원하러 가지 않았다. 9년 동안 나 자신이 본분을 지키면서 일을 하였다. 집에서 부모와 아이를 돌보고, 회사에서는 맡은 바 사업을 잘하면서 조금이라도 법을 위반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현재 올림픽을 시작하면서, 오직 우리 때문에 불안하여, 한 장의 양식(表格)을 작성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서명하게 하는데 우리들의 생활은 너무 존엄이 없다. 나는 한평생 간부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생각한 적 없이 다만 조금이나마 존엄이 있고, 인권이 있게 살아 보려고 생각하였다.” 나의 마음은 담담하고 평온하였으며 조금의 모호함 없이 결코 서명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줄곧 나를 이해시키는 것이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에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도법》에서 “제자로서 시달림(魔難)이 올 때, 정말로 능히 탄연하게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끔 마음을 놓는다면, 족히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더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심성 또는 행위에 기타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꼭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치한 틈을 탄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니다. 그럼 본성의 일면은 왜 법을 바로잡지 않는가?”

어물적 거리자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사부님의 몇 마디 말씀이 생각났다. 맞다. 나는 이미 담담하게 움직이지 않았으며, 능히 자신을 내려놓고 중생을 위하여 고려면서 사악이 중생을 조종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박해는 아직도 끝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악이 나의 방임(放任)한 공간을 뚫은 것이 아닌가? 나의 눈시울은 직접 지도자의 배후에 있는 다른 공간을 겨냥하여 신념이 움직였다.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중생을 박해하고, 제자를 박해하는 사악한 생명 및 요소를 제거해 주세요” 하고 청을 드리려고 염두를 금방 움직이려 하는데, 그 지도자가 “이렇게 합시다. 우리들이 당신에 대한 신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우리가 대신 서명할게요” 하고 말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가려고 하는데 지도자가 급히 나를 불러 세우면서 다시는 서명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다만 “우리들이 당신을 믿어요.”라고 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믿으세요, 나는 더욱 노력하여 맡은바 사업을 잘하겠습니다.”고 말하였다. 사무실 대문을 나오면서 나는 하늘은 높고 구름이 거의 없는 감각으로 온 몸이 가벼웠다. 나는 사악은 이미 소멸되었고 박해는 이미 종말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 생명의 최고 경지는 무사무아, 선타후아이다. 이러한 생명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실과 득을 생각하지 않고 완전히 법의 요구에 따라 한다. 사부님과 법을 믿으면 모르는 사이에 신통을 응용하여 자기를 보호함에 성공한다. 더욱이 현재 능히 심태의 경지로 담담하게 법을 실증하는 노정에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체현된다. 자신의 감수를 내려놓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명, 리, 생명을 내려놓고 무사무아의 바른 깨달음으로 수련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수련 목적이다. 수련의 노정을 회고하면 우리는 줄곧 반복적으로 체험한 것이 아니다. 반복적인 실천, 이것이 법리인가?

박해는 이미 9년이 되었다. 동수들은 줄곧 어떻게 철저히 박해를 결속 짓겠는가 하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만약 우리 모두 능히 철저히 박해 받는다는 두려운 마음을 내려 놓고, 박해 일념을 내려 놓고, 자신을 보호하는 사심을 내려놓고,바로 진상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진정으로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깨달음으로 수련한다면 사악은 바로 대법제자의 강대한 정념의 마당에서 형체가 소실되어 박해는 자연히 종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어린 제자를 데리고 대법을 실증하는 아름다움

내 아이는 나와 함께 대법을 얻었다. 역시 10년이 넘었다. 노정에는 역시 풍파가 많았다. 오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아이의 중학교 진학 고시 전후의 체험을 교류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아이와 어떻게 중학교 진학시험을 치러야 하는가에 대해 교류했다. 마지막에 공동 인식을 하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수련 노정은 사부님께서 이미 안배하셨다. 어느 중학교에 가게 되면 자연히 거기로 가야 한다. 어디로 가나 모두 수련이며, 모두 거기의 중생이 우리가 가서 구도할 것을 필요로 한다. 성적은 우리가 집착할 것이 아니다. 다만 대법제자가 어디로 가든지 모두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리가 뚜렷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중학교 진학시험을 앞두고 숙제 분량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아이는 비록 공부에는 느슨했지만 숙제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다만 그가 종래로 법공부를 느슨히 한 적은 없었다. 저녁밥 먹는 시간이면 사부님의 광주설법 CD를 틀어놓고 매일 한 시간씩 공부하는데 어떤 때에는 역시 나와 함께 발정념을 한다. 총체적으로 그의 심태는 아주 평온했다.

중학교 진학 15일을 앞두고 국가급 명문 중학교에서 학생을 앞당겨 모집하였다. 나의 아이가 평시에 표현이 특히 우수한 것에 의거해 그에게 시험을 면제하고 입학할 것을 허용했다. 나는 법으로 가늠해 볼 때 가히 갈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와 토론했는데 아이도 역시 마땅히 가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집착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비도 나 역시 능히 부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어 아이는 가히 중학교 진학 시험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진학시험 성적은 선생님의 평균성적에 영향이 있을 따름이어서 우리는 역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아이가 말한 한마디가 기억이 아직 새롭다. “나는 진학시험을 반드시 능히 잘 할거에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이기 때문이에요.”라고 하였다.

중학교 진학시험 7-8일을 앞두고 아이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열이 오르고 있으니 집으로 데려 가라고 하였다. 나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병업”의 원인을 분석하였다. 환시심, 현시심을 찾은 후 아이는 약간 정신을 차렸는데 다만 머리가 아직도 뜨거웠다. 나는 또 그를 도와 분석했다. 또 부모가 이혼한 데 대한 원한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지? 그는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당시 이혼한 것은 어머니가 수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너도 대법제자인데 마땅히 어른들의 고초(苦楚)를 이해해야 한다. 마땅히 자비심으로 이 일을 대해야 한다. 속인들의 아이처럼 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의 감수에 대한 집착, 속인 생활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있다.” 이때는 다만 아이가 “나는 없애 버렸어요”라고 한 말을 들었을 뿐이다. 아이는 바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말하면서 손으로 아이의 머리에손을 얹었는데 아이의 머리에서 한 층의 구슬땀이 송송 맺혔는데 열은 이미 내렸다. 아이는 몸을 일으켜 저녁 밥을 먹었다. 그 이튿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아이는 기분이 상쾌해 하였다. 연이어 며칠 식욕부진, 떨리는 등 상태가 전부 소멸되었다. 중학교 진학 시험이 끝난 후 아이는 나에게 가히 하나의 상당히 높은 점수를 따낼 것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웃음으로 응답했다.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결과 시험성적이 나왔는데 아이가 말한 점수에서 4점이 모자랐는데 전교에서 일등을 따내어 이름이 첫 자리에 나붙었다. 아이의 성적이 뛰어나, 그 중점 중학교에서 또 감면을 받게 되었는데 대부분 고액의 학비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를 교육한 경험을 물었다. 나는 모두 적당한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대법의 위력이고, 늘 ‘파룬따파 하오, 쩐, 싼, 런 하오’를 염(念)하면 가히 복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5. 명혜망에 원용하여 투고하는 중에서 승화

5.

수련 중, 나는 거의 매일 명혜망을 본다. 동수들의 문장은 나에게 거대한 계발을 준다. 동수들의 정진 역시 나의 수련의 발걸음을 촉진시킨다. 나도 역시 투고하기 시작했다. 수련의 체험을 쓰는 자체, 역시 한차례 아주 좋은 수련 과정이다. 문장을 쓰면서 사로(思路)를 정리하는 과정 역시 수련을 바로 잡는 하나의 일사일념의 과정이다. 많은 집착심, 타자하면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쓰고 쓰다 보면 바로 그것을 잡아내게 된다. 문장이 발표된 후 나는 발표된 것과 초고를 구별하며 자세히 비교하는데, 동수가 수정한 편집이 왕왕 어구가 더욱 정결하였고, 법리가 더욱 뚜렷하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느 한번 나는 문장을 매끈하게 만들기 위하여, 허구적으로 세부적인 것을 썼는데 편집원들이 삭제해 버린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이며, 역시 바로 이것을 빌어 나에게 투고의 엄숙성을 알려 주었다. 그 후부터 나는 투고에서 쓰기 싫은 부분은 가히 쓰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쓴 것은 바로 마땅히 진실이었다.

역시 발표되지 않은 문장도 있었다. 무릇 발표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는 한 동안 보류했다가 무엇 때문에 문장이 발표되지 않았는가를 반복해서 법으로 가늠해 보았다. 두 번이나 내가 법리에서 일부 극단적이었기에 명혜망에 발표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즉시 의식하고 자신의 수련 노정에서 바로 잡아 불필요한 손실을 방지했다. 어떤 동수가 “명혜문장은 수련인이 쓴 것이므로 역시 참고로 삼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틀리지 않는다. 우리 수련인은 법을 믿고 사부님을 스승으로 해야 한다. 다만 사부님께서 명혜망을 긍정 하셨다. 정법시기에 나타난 대법 사이트가 능히 우연히 나타나서 있었다 없었다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명혜망을 보는데 주의해야 한다. 《명혜주간》을 공부하면서 한 수련생을 따라, 사람을 배우면서 법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명혜망의 태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련 상태를 동수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수련에 대하여 하나의 촉진 작용을 하는 것이다. 대법 사이트는 모두가 함께 원용될 것을 필요로 한다.

현재 명혜망을 보고, 명혜투고를 하면서 이미 나의 수련에서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어떤 때 나는 만약 나의 문장이 정말로 능히 동수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한 건의 얼마나많은 기쁨과 위안이 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생각한다.

맺는 말:

매번 션윈(神韻)만회를 볼 때마다 나는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 그 순정하고 아름다운 화면, 그 자비로운 노래 소리, 오직 신의 경지에서만 능히 소유할 수 있다. 생명의 깊은 곳의 그 기억 속에서 노래 소리는오랜 역사 중에서 차례차례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의 표면까지 왔는데, 수없이 많은 말에서 도리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지만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맺혔다. 중생들은 주불이 세간에 내려와 제도하는 화폭에 따라 움직였는데, 그렇게 아득히 멀면서도 도리어 마치 어제 발생한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이 그 중의 일원으로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는긍정적으로 금생에 대법제자로 된 것은 나의 영생영세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다. 만약 다시 한번 온다고 해도 나는 의연히 나의 모든 복덕(福德)을 가지고, 일체 고난을 겪으면서 금생의 대법제자의 칭호로 바꾸려고 한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 하면서 중생을 구도하는 한 대법제자로서 나는 영원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명혜망 제5회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8년 11월 8일문장분류: 수련마당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11/9/1883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