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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일을 하는 중에서 수련 하다

글 / 대륙 대법제자 중추웨(鐘秋月)

[명혜망 2008년 11월 8일]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은 노대법제자인데, 줄곧 현지에서 무보수의 보도원 일을 하였다. ‘7.20’에 우리 원래 연공장의 보도원 몇 명과 참장 중 어떤 사람은 노동교양소에 보내졌고 어떤 사람은 유다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곤혹 중에서 소침해져 버렸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나는 곧 자연스럽게 현지의 협조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ㅡㅡ본문 발췌

1. 교훈의 반성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은 노대법제자인데, 줄곧 현지에서 무보수의 보도원 일을 하였다. ‘7.20’에 우리 원래 연공장의 보도원 몇 명과 참장 중 어떤 사람은 노동교양소에 보내졌고 어떤 사람은 유다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곤혹 중에서 소침해져 버렸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나는 곧 자연스럽게 현지의 협조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박해가 가장 엄중했던 나날에 정념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다만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매일 생각하는 것은 방법을 대 그들의 감시를 피하는 것이었고 맴돌면서 끝없이 대법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자료점의 안전 작동과 이전 자료의 전송 및 인원의 교체, 교환과 각종 소식의 소통, 전달 등등이었다. 그 당시 엄혹한 형세는 대부분 동수 사이의 직접적인 왕래가 아주 적어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매 동수들이 나를 만나면 마치 하급이 상급을 만난 것처럼 열정적이었고 이어서 곧 구체적인 일을 말하였다. 점차 나도 습관적으로 임무를 끝내거나 일을 해결하곤 하였고, 일이 없으면서 ‘바쁘다’는 구실을 달았다.

사실 나의 언행은 무의식중에 동수들을 마치 ‘하다’가 곧 수련인 것처럼 생각하게끔 이끌었으며 심성 상에서의 제고와 동수 사이의 교류를 소홀히 하게 하였고 동시에 자아를 집착하는 마성을 자양 시켰다. 오랫동안 이미 무엇 때문에 안을 향해 찾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찾는지를 몰랐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법공부에 바삐 돌며 연공도 종래로 태만하지 않았고 ‘7.20’ 이전에 법을 암송했으며 법을 베껴 기초도 매우 잘 닦아 놓아 오늘까지 수련해 오면서 굽은 길도 걷지 않고 세 가지 일을 하느라고 매우 수고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정진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다. 그리하여 동수에 대해 말 할 때는 수시로 비자각적으로 말투는 명령식이었고 다른 사람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였으며 반대[反面] 의견도 듣기 싫어했다. 후에는 말만하면 폭발하는 상황으로 까지 발전되었다. 일이 지난 뒤에는 후회 하였지만 일에 부딪치면 또 범하곤 하였다. 후에 몇몇 협조인이 나에 대하여 의견이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러 매우 큰 간극을 조성하였고 몇몇 협조인 사이에도 마음을 열고 법에서 교류하지 못했다. 표면상에서는 모두들 진상을 알리고 도처에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하여 법회를 조직하는 등 법을 실증하는 일로 바삐 돌았고 표면으로 볼 때는 기세가 의연히 드높았다. 비록 우리는 매주 혹은 비정기적으로 교류하는 날이 있었지만 거의 대다수는 일을 말하고 일을 논의하였는데, 많은 경우에는 일을 말하다가 쟁론하여 불쾌하게 헤어졌다. 근본 상에서 우리의 환경을 진정 자신을 수련하는 환경으로 간주하지 못했고, 모순이 나타나면 안으로 찾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사실은 의연히 각자가 자신의 집착을 고수하면서 내려놓지 못했다. 더욱이는 나는 늘 비정상이라고 느꼈고 심지어는 매우 고통스럽고 매우 힘들어하며 매우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장기간 자신에게 그리 큰 제고가 없다고 느꼈지만 문제의 근본을 찾지 못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사존께서는 동수들의 입을 빌어 여러 차례 나에게 점오를 해주셨다 – 협조인은 늘 현지의 진상자료를 둘러싸고 움직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매차 회의를 열 때도 절대 일만 말하고 일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법에서 교류하며 법공부도 심성제고에 공력을 들여야만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다 등등이었다. 나는 비록 이런 견해에 동의는 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저촉 정서가 있었는데, 회의를 열면 일을 해결해야 하고 법공부는 집에 돌아가서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한 협조인으로서 말만 하고 실제 일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입만 움직이면 누가 당신을 믿고 따르겠는가 라고 생각하였다. 협조인은 반드시 이신작칙해야 하며(심성의 본보기가 되여야 함을 잊었다) 되든지 안 되든지 가서 해야 한다(일을 하는 것을 실수(實修)로 생각)라고 이렇게 생각하였기에 나는 안팎으로 바삐 돌아다녔다. 집에서는 사람이 오고가면서 법회를 열고, 접대하고 자료를 전하고 또 법공부팀의 일까지 정말 모든 일을 모두 떠맡아 했다(때로는 다른 사람을 찾기도 무엇했다). 나는 이것이 곧 심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아울러 이런 것을 저도 모르게 자본으로 간주하면서 수련의 가장 근본을 잊었다 – 심성을 수련하려면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협조인 사이의 간극 모순이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여 마지막에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 왔다. 우리지역에서의 한 차례 단체 홍법 시 몇 십 명이 납치당했고(그 중에는 협조인 몇 명 포함) 종래로 있어본 적이 없는 엄중한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몇 년간 동수들이 죽음을 넘나들면서 창조한 비교적 안전한 환경이 파괴당했다. 이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 매우 큰 난을 가져 왔다.

비통한 교훈은 나로 하여금 깜짝 놀라 깨게 했고 동시에 반성하기 시작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책임자로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 데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책임이 있다. 이렇게 많은 한 무리 수련생들을 자신이 잘 이끌지 못했으므로 책임이 아주 중대한 바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각지 설법6 >> <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 라고 말씀하셨다. 일의 표면에서는 마치 나의 책임이 크지 않은 것 같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나에게는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 있었다. 뿌리는 나와 몇몇 협조인들이 장기간 엄중한 심성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우리들이 장기간 동수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관용하지 못한 데 있었다. 게다가 당 문화에서 양성한 독단적인 악습은 나와 동수들 간의 간극을 조성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정법에서 잘 협조하거나 일치하지 못하게 하였고 낡은 세력이 틈을 타고 기어들게 하였던 것이다.

사존께서는 “문제가 나타난 후 안을 향해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 지역의 수련 상태는 반드시 매우 좋을 것이며 모순은 꼭 적을 것이다.” (<<각지 설법6 >> <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몇몇 협조인은 고통이 가라앉은 다음 고통을 회상하며 매우 빨리 참답게 엄숙하게 법에서 교류하면서 안을 향해 찾았는데, 최종적으로 문제의 관건을 찾아내게 되었다 – 몇몇 주요 협조인들이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했고 모순이 있어도 안을 향해 찾을 줄 몰랐고 일치하게 협조하지 못했으며, 잘 배합하지 못하고 자아를 집착하며 자신을 실증하려 했음을 인식하였다. 더욱이는 나는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였다. 심성 상에서의 문제가 장기적으로 해결을 가져오지 못하여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 와서 나의 집착을 확대하였는데 이런 방식으로 나를 박해하였고 나를 수련하지 못하게 하였다. 자신은 몇 년간의 박해 중에서 법에 대한 견정함으로 하여 하나 또 하나의 관을 뚫고 나갈 수 있었고 종래로 굽은 길을 걷지 않았으며 심지어 심한 박해를 받지 않았고 수련의 길을 비교적 바르게 걸은 셈이었다. 그러나 사악은 바로 이때 틈을 타고 기어들어 와 나로 하여금 수련의 길에서 한 단락 굽은 길을 가게 하여 대법에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조성하였다. 교훈은 심각하였다. 교훈은 또 나와 동수들로 하여금 청성하게 하였고 자신의 부족함을 귀정하게 하였다.

2. 협조하는 수련의 길을 바르게 가다

(1) 수련이지 사업이 아니다

이 몇 년간 자신이 협조 사업이라는 이 수련의 길에서 걸어 온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우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일은 적지 않게 했고 온 하루를 로봇처럼 바삐 돌아 다녔으나 사존의 요구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정말 사존님을 대면할 체면이 안 섰다. 교훈은 나로 하여금 사업을 수련으로 간주한 것이 근본 원인임을 인식하게 하였다. 바로 나의 그 근본 집착 ㅡ 명을 구하는 마음과 자아의 마음으로 인한 것이다.

수련하기 전 나는 큰 기관의 작은 지도자 간부였다. 후에 당시 시대 조류에 따라 장사를 하였는데 한 시기 떳떳한 여경리였다. 일생동안 이기려고 애쓰고 승부욕이 강하여 사람들은 나를 ‘女 강자’라고 불렀다. 법을 얻은 후에 나는 일생동안 백 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던 수수께끼 ㅡ ‘인생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장사를 걷어치우고(그 당시의 인식) 일심으로 수련하였는데, 수련 중에서의 받은 이익은 끝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아울러 동수들의 승인을 받고 우리 지역 점의 보도원이 되었다.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비록 환골탈태의 변화가 있었으나 나는 깊이 숨어 있는 명리심,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깊게 뿌리내린 사람의 관념을 비자각적으로 대법사업에 사용하게 되었으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일하는 능력을 실증하였다. 예를 들면, 당시 법암송, 법 베껴 쓰기를 할 때에도 다른 사람 보다 더 강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근본적인 집착을 찾은 후, 정념으로 제거해 버리고 법에서 아주 빨리 승화하였다. 나는 동수에게 솔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집착과 착오를 폭로하였다. 과거에 말도 빨리하고 바삐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일에 부딪치면 일을 논하던 상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등등을 고치고 더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중단시키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주의하여 들었다. 명령식 말투를 고쳤고 무슨 일이든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하지 않고 협조인들, 동수들과 많이 상의하여 매한 동수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진정으로 일거일동, 일사일념 상에서 자신을 귀정하였고 수시로 명심 하였다 – “책임자는 실제상 협조인으로서 더 많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참여하도록 하는 이것이야말로 관건이다. 당신 자신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작용을 일으키겠는가? 정체적으로 모두 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야만 비로소 책임자가 잘 한 것이다. 책임자 자신이 아주 잘 하였다면 당신이 아주 잘한 것은 다만 한 수련생이 잘한 것이다. 그럼 한 보통 수련생으로 되는 것이 좋겠다. 관건은 책임자의 책임인데, 이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각지 설법7>> <미국 서부 국제법회 설법>) 자신이 자신을 실증하려 하는 그러한 수련 상태를 개변하였기 때문에 진정으로 모든 일을 정체 상에서부터 고려하였다. 기점이 근본 상에서 위사(爲私)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로 하여금 정체 제고와 정체 승화에 대하여 더욱 새로운 인식이 있게끔 하였다.

예를 들면, 전 한 시기 어떤 동수들 중 올림픽 전후의 각종 심리 표현(열기 전에는 두려워하고 후에는 기다리며 예언에서 말한 것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후에는 낙담하다)을 마주하고는 또 어떻게 정체적으로 올림픽 전에 납치되었던 몇몇 동수들을 구하는가 하는 문제 및 눈앞의 우리 지역 동수들의 병업 상태가 좀 증가하는 상태 등에 견주 하여 우리는 집중 분산의 형식을 채취하였는데, 각 지역의 협조인들은 눈앞의 우리 지역 수련생들에게 존재하는 실제 문제를 견주 하여 교류를 진행할 수 있게끔 크고 작은 교류회를 조직하였다. 아울러 그 중의 문제에 견주 하여 안을 향해 찾았고 정체 교류를 거쳐 동수들로 하여금 진일보 법리를 똑똑하게 하였고 기점을 바로 잡게끔 하였다.

예를 들면, 낡은 세력이 동수를 박해하여 병업이 나타나게 하는 문제에 대하여 동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악이 우리 정체를 향하여 온 것으로 동수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기 위함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시간을 집착하고 예언에 대해 집착하여 올림픽의 결과를 조성하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동수를 구하는 것에 대하여서도 매우 빨리 공동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각자 기능에 따라 지역별로 나누기도하면서 정체와 협조하였다. 여러 사람들의 심태가 바른 것으로 하여 일치하게 협조했으며 기점이 발랐고 정체 상에서의 부족한 점을 귀정하였다. 매우 빨리 동수를 구하는 일에 뚜렷한 진전이 있었다. 이미 불법으로 4년 판결을 받은 한 동수에 대하여 동수들은 몇 년간 태만하지 않고 그저 구하는 활동을 하였을 뿐인데, 결과 이 기간에 일년 반 앞당겨 무조건 석방하여 돌아왔다. 다른 한 분은 8년 판결을 받고 감옥에 보내졌으나 감옥에서 접수를 거절하였다(변호사마저 지금까지 이런 안건을 보지 못했다라고 함). 일체는 모두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 “정체상에서 협조가 잘 될 때일수록 역량도 더욱 크고 역량이 더욱 클수록 일으키는 작용도 더욱 크다.” (<<각지 설법3>> <2003년 미국 중부 법회에서의 설법>)

이번 협조일의 표면으로 보면 마치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았으나 과정 중에서 나는 오히려 감촉이 컸다. 왜냐하면 내가 능히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심태로 진정으로 협조사업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기점을 바로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과거와 부동한 심성, 부동한 심태가 있었고 자신을 집착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수련인의 일종 상화함과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과를 추구하지 않는 결과는 자연히 법의 전현(展現)으로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있고 공은 사부에게 있다” (<<전법륜>>)이기 때문이다.

(2) 나는 끝내 어떻게 안을 향해 찾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의 계속되는 자비한 점오로 ‘안을 향해 찾지 않는’ 것이 줄곧 나의 제고를 저애하고 참답게 수련하지 못한 근본 원인이고,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무엇 때문에 온 하루 바삐 돌아다니면서 세 가지 일을 하느라 몹시 수고하지만 그리 큰 제고가 보이지 않았는데, 원래 내가 속인의 심태로 대법의 일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동수 갑은 나와 늘 접촉하는 작은 지역의 책임자였다. 그가 대법에 대한 금강부동의 신념은 반박해 중에서 사악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어찌할 방법이 없게 하였다. 그의 정념은 일찍 많은 동수들이 집으로부터 걸어 나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게끔 하였다. 그리하여 한 시기 동수들의 숭배를 받았는데(동수 당시의 심성), 이것은 그 동수에게 매우 많은 마난을 가져 왔다. 동시에 나는 그 동수가 자아를 집착하고 자신을 실증하며 쟁투심도 아주 강한 것을 발견하였다. 협조인들의 회의 에서 나와 그는 늘 한 가지 일에 대해 보는 방법이 다른 것으로 하여 서로 날카롭게 맞서 서로 양보함이 없이 쟁론하였다. 나는 늘 동수들 중에서 그가 나에 대한 의견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사실 이 일체는 모두 나의 마음을 향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깨닫지 못했고 수련인의 사상으로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안을 향해 찾는다는 것은 더욱 담론 할 수 없었다. 때로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3자인 당신마저도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ㅡ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좋은가, 이 일에서 만약 나였다면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수련인처럼 비평과 의견에 직면할 수 있겠는가?” (<<로스앤젤레스시 설법>>) 나는 모순의 당사자이기에 더욱 응당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생각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른바 자신을 찾음과 동시에 의연히 상대방에게 옳지 않은 점이 더욱 많다고 생각하면서 의식적으로 그를 회피하였다. 마음속으로는 우리 이 법문은 회피하지 않고 모순을 피하여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강렬하게 자신을 집착하는 마음이 자신으로 하여금 더욱 높은 법리를 인식하는 것을 저애하였고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았으며 안을 행해 찾는 함의를 모르게 했다. 서로 간에 간극을 조성하여 결과는 한 시기 이 작은 지역의 대법 사업이 영향을 받았고 소식의 소통에 저애를 받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양측은 양보 없이 맞서고 있게 되어 사부님께서는 노심초사하셔 한번 또 한 번 유사한 심성관을 안배하여 나로 하여금 깨닫고 안을 향해 찾아 빨리 제고하여 올라가게 하셨다.

한 번은 사부님께서 평소에 나와 매우 가까운 동수, 역시 작은 두 지역의 협조인 을, 병 두 동수를 이용하여 내가 조금도 감지하지 못한 한 가지 일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180도 크게 돌변한 태도로 나를 대하게 하셨다. 한 동수는 회의에서 갑자기 몹시 분개하는 어투로 나에게 질문을 하였고 다른 한 동수는 내가 그 집에 갔는데 나를 집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이 일의 출현은 나의 마음을 매우 심하게 촉동하였다. 처음 시작에 나는 또 사람의 마음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였다 – 나는 그들을 상해하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변하였는가, 나는 그들과 늘 접촉하는 동수들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결과 동수들은 모두 다만 당신이 안을 향해 찾아 보시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동수들의 말은 마찬가지로 나를 촉동하였다. 재차 나타나는 이런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사고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법에서 법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발정념하여 낡은 세력의 간극을 해체해 버렸다.

끝내 사부님의 점오 중에서 참답고 엄숙하게 안을 향해 찾기 시작하였다. 내가 다시 <<전법륜>>을 펼쳐 “우리 이 한 법문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키는 것(直指人心)으로서 개인 이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담담하게 보고 가볍게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이 관건 문제이다.” 이 구절을 보았을 때, 똑똑하고 뚜렷한 큰 글자들이 시야에 뛰어 들어왔다. 이 때 나는 단번에 갑 동수가 나의 앞에서의 일체 집착의 표현은 바로 내가 닦아버려야 할 집착이었구나 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사존께서 을 동수와 병 동수를 이용한 나에 대한 태도는 나더러 안을 향해 자신의 집착을 보게 하며 제고하여 올라오게끔 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심성은 신속하게 승화되어 매우 빨리 세 사람은 모두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나를 대하였다. 사부님께서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친 마난 그것은 마침 당신이 제고하는 기회이다. 만약 당신이 능히 안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침 당신이 난관을 넘기고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하나의 기회이다.”(<<2008년 뉴욕 법회 설법>)라고 하신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존경하는 전 세계 동수들이여, 제가 세계대법제자 교류를 즈음하여 자신이 협조 사업 중에서 한 일을 써내고 일하는 데로부터 수련하여 제고한 이 과정을 써낸 의도는 저의 교훈으로 동수들에게 계발을 주려는 데 있는데, 아마 어떤 동수들에게는 약간 도움이 될 수 있고 더는 자신의 집착으로 하여 대법에 손실을 가져오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과정에서 자신도 심령 상에서 부단한 정화와 심싱의 제고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동수들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련의 길을 잘 걷고 바르게 걸을 것을 희망하면서, 함께 사부님을 따라 돌아갑시다.

(명혜망 제5기 중국 대륙 대법제자 심득 교류회 원고)

발표 : 2008년 11월 08일
갱신 : 2008년 12월 18일 20:21:11
분류 : 제5회 대륙법회
원문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1/8/1881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