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둥 대법제자 청청(澄澄)
【명혜망 2008년 11월 8일】 나는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대법제자이다. 대법 실증에 수요 될 때면 나는 동수와 배합하고, 배합이 수요 되지 않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는 혼자서도 잘 한다. 대법의 수련 형식은 대도무형이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 역시 이러하다. 모아 놓으면 모양을 이루고 헤쳐 놓으면 알갱이다. 매 한 대법제자는 모두 각자 법 실증 무대의 주연인 동시에 또한 각자의 환경 속에서 묵묵히 우리의 정체에 배합하고 있다.
ㅡㅡ본문작자
나는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대법 제자이다. 대법 실증에 수요 될 때면 나는 동수와 배합하고, 배합이 수요 되지 않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는 혼자서도 잘 한다. 대법의 수련 형식은 대도무형이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 역시 이러하다. 모아 놓으면 모양을 이루고 헤쳐 놓으면 알갱이다. 매 한 대법제자는 모두 각자 법 실증 무대의 주연인 동시에 또한 각자의 환경 속에서 묵묵히 우리의 정체에 배합하고 있다.
1999년 ‘7,20’ 후, 비록 나도 베이징에 가서 호법 하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만 이번 박해를 제지 할 수 있겠는가는 여전히 내가 날마다 사색하는 문제여서 속으로 대법 관련 소식에 대해 아주 관심을 가졌다. 99년 10월에 나는 일부 교류 문장을 보았는데, 이런 자료들이 명혜망에서 왔다는 주석이 달려있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나는 꼭 명혜망에 접속하는 방법을 배울 테다.” 나에게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을 보신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훌륭히 안배해 주셨다. 내가 2000년에 대리 복무기로 명혜에 접속하는 것을 배워 내게 하셨다. 그 때, 사부님께서는 마침 한 편 또 한 편의 신경문을 잇따라 여러 편 발표 하셨고, 나는 다운로드 하여 동수들에게 주었다.
한 번은 우리 지역에 가짜 경문 한 편이 나타났다. 협조인은 여러 갈래의 경로를 통해 대법제자를 찾아 나를 포괄하여 명혜망에 올라 대조해 보고 가짜 경문이란 것을 실증 하였다. 중대한 문제에서 명혜망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우리 지역에는 명혜망을 볼 조건이 구비되었으므로 우리 지역은 그때부터 명혜망에서 발표한 경문만 보았고, 명혜망에서 발표한 교류 문장만 보았으며, 명혜망에서 발표한 진상자료만 배포하여 가짜 경문과 난법한 그런 것들은 줄곧 현지에서 발붙일 시장이 없었다.
2000년 말에 이르러 원래의 방법으로는 명혜망에 접속할 수 없었고, 그때 많은 동수들이 납치 되었으며 많은 동수들이 연락이 끊어졌다. 유일하게 나에게 기술 도움을 줄 수 있었던 동수는 기술배양 회사의 직원이었는데, 그가 “명혜망이 봉쇄되어 전자우편을 전송해도 명혜망은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당시 나는 몹시 괴로웠다. 내가 믿고 있는 이 기술 동수가 안 된다고 하고, 내가 믿고 있는 견정한 한 협조인도 안 된다고 말하는데,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법이 박해 받고 있고 납치된 동수들이 지금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도 오히려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이것은 내가 도저히 접수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드시 사악을 폭로해야 하며, 반드시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마음을 이 일념에 고정했을 때, 전자우편을 명혜 공공우체통에 시험 삼아 전송 했더니 비록 전송이 실패한 듯이 나타나긴 했지만, 나는 더는 가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꼭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드디어 명혜의 회답을 받게 되었고, 명혜와 단선 연계 통로를 건립하게 되었다. (이 통로는 약 3년간 사용하였다. 최초의 그 몇 년간 우리에게 아주 커다란 도움과 지지를 준 해외 제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 방법을 협조인에게 알려 주었고 협조원이 직접 나서서 널리 보급 하였는데, 인터넷 봉쇄 기술이 발명되고 응용되기 전까지 우리 지역과 명혜와의 연계가 줄곧 끊어지지 않도록 보증하였다.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박해사건은 언제나 가장 빠른 시간에 명혜에 전송되어 제때에 보도되었다. 이곳에서 사람이 납치된 지 며칠 안 되어 그 쪽 해외 동수들의 진상 전화가 곧바로 오곤 해서 사악을 지대하게 두려워 떨게 했다. 물론 이런 일은 모두 우리 지역의 다른 동수들이 하였지 내가 한 건 아니다.
이 동안의 경력이 나에게 준 다른 하나의 체득은, 바로 얼마나 대단한 협조인이든 얼마나 능력이 있는 기술 동수든, 또한 보통적인 수련자이든지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은 모두 법 실증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그 무슨 누가 누구보다 ‘높다’고 비길 바가 못 되며,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러한 원칙을 좇았으며, 얼마나 대단한 협조인이고, 얼마나 능력이 있는 기술 동수이든 그들이 알지 말아야 할 것은 나도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하든 나는 그들에게 이끌리지 않고 오직 법으로만 가늠하였다.
나와 협조인은 배합이 잘 되었다. 우리가 일치하게 인식한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사람이 알게 할 필요가 없으며, 두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제3자가 알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합하는 일을 다른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하였다. 협조인과 배합하는 일을 제외하고, 나의 기타 일을 협조인은 몰랐고, 협조인의 기타 일을 나도 묻지 않았다.
동수 집에 가서 문에 들어선 후, 객실 문어귀에 잠깐 멈추어 서서 동수가 어느 방으로 가라고 암시하면 나는 비로소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익숙한 동수라 해도 동수의 허가 없이 동수의 방에 들어가지 않으며, 호기심을 느끼지 않고 물어보지 않으며 교류 중에는 다만 법리상 교류만 할 뿐, 기타 동수가 하는 일을 담론하지 않으며, 동수의 전화번호에 비밀번호를 달아 보관 하거나 마음속에 기억한다. 동수의 안전에 불리한 정보는 보존하지 않는다.
수구 방면에서 나는 일상생활 중에 시시각각 중에 일사일념은 모두 자신의 실수(實修)에 중시해야만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다고 여긴다. 사존님께서는 《전법륜》제8강에서 말씀 하셨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할 때 모두 연공인(煉功人)의 心性(씬씽)에 따라 말하고 시비를 일으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며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 말을 마땅히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마땅히 말해야 하는 것은 법으로 가늠하여 연공인의 心性(씬씽)표준에 부합되면 문제가 없다. 또한 우리는 법을 말하고, 법을 선전해야 하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수구를 말함은, 속인 중의 그런 내려놓지 못하는 명리와 사회의 실제 사업 중에서 수련자와 관계가 없거나,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 간에 쓸모없는 잡담을 하거나, 집착심으로 자신을 과시하려 하거나, 주워들은 풍문으로 일부 골목소식을 전하거나, 사회상의 기타 일부 일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곧잘 흥분하고 아주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내 생각에 이 모두 속인의 집착심이다. 이런 방면에서 나는 우리가 마땅히 입을 좀 닦아[修]야 한다고 보는데, 이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수구(修口)이다.”,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의 心性(씬씽) 표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여, 마땅히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마땅히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잘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 (《전법륜》) 가령 평소에 우리가 동수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 살며 어디에서 사업하는가······를 물어보기 좋아하는 것, 동수가 무얼 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동수와 잡담하기 좋아하고, 동문제자 중 서로 간에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 평소에 좋지 못한 습관을 양성하면 관건적 시각에 동수의 상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다고 어찌 보증할 수 있는가?
우스개 소리를 하나 하겠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비밀을 지켜줘야 했다. 다른 사람은 또 걱정이 되어 절대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건 일종의 부담이 아닌가? 그러므로 아는 일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안전방면에서 많은 때에 우리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기 때문이지 결코 우리 자신이 고명해서가 아니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명은 더구나 아니다. 만약 자신을 아주 고명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고집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건 아주 위험하다. 사부님께서는 ‘선타후아’하라고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든 모두 먼저 동수의 감당 능력을 고려해야 하며, 동수의 감수를 고려해야 하며, 동수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우주(新宇宙)는 남을 위하는 것이며, 수련의 목적은 선타후아, 무사무아한 정각으로 수련성취 하려는 것이다. 만약 남을 먼저 배려할 줄 모른다면, 우리가 수련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예전에 동수와 배합하는 중, 나는 남에게 말해줄 수 없는 그것 때문에 매우 깊은 고통을 느꼈다. 사람마다 모두 남에게 해석해 줄 수 없는 어려운 것이 있고, 동수의 이해와 협조를 얻으려면 아주 어려워 몰이해와 불협조를 극히 쉽게 조성하게 된다. 나는 안을 향해 찾아보았는데, 남을 개변시키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내적인 소모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안을 향해 찾은 체득을 솔직하게 동수에게 들려주면 모순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는 내가 독립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전에 나는 늘 동수는 왜 남의 어려운 점을 생각해 주지 않느냐고 여겼는데, 아주 오랜 후에야 내가 외적인 조건에 너무도 의뢰하고, 동수와의 배합에 너무도 의뢰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래 자신을 장애하고 자신을 속박하는 것은 자신의 집착이었다.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은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자신이 원래 의식하지 못했던 집착을 보게 하신다. 법을 실증하는 일은 비록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는 그걸 빌미로 자신의 집착을 닦아 버리지 않아서는 안 된다. 나는 늘 자신을 조그마한 한 조연의 위치에 놓고 정체와 배합하는 데 습관이 되어 대륙 대법제자의 주연 작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법을 실증하는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 내야하며, 나도 독립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후에 나는 혼자서 묵묵히 진상을 알렸으며, 늘 스스로 진상을 알리는 각종 방식을 생각해내곤 하였다. 사실 많은 것들을 혼자서 사색해 냈는데, 얼마를 쓰겠으면 얼마를 만들고 쌓아두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 매 번 물건을 살 때마다 한 장의 진상 화폐를 썼다. 비록 한 번에 한 장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 번마다 모두 썼다. 날마다 달마다 해 가노라니 수량도 아주 많았다. 집을 나설 때면 늘 진상자료 몇 부씩 지니고 나가는데, 나간 김에 배포한다. 가늘게 흐르는 물이 길게 흐르고, 물건에 습기가 차도 소리가 없는 것이다.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안을 향해 닦으면 갈수록 우주 특성에 순응할 수 있고, 법을 실증하는 일도 할수록 순조롭다. 밖을 향해 찾으면 갈수록 우주 특성과 뒤틀리게 되고, 동수와 소통하던지 아니면 대법일에 협조하던지 모두 순조롭지 못하다. 남이 일하는 데, 남의 집착을 지적하는 데 열중하는 이 자체가 어쩌면 남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다. 우리는 늘 동수의 일에 대해 토의하곤 하는데, 왜 종종 효과가 나쁜가? 우리는 “남을 제고시키기 위해서, 남이 정법진행을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이 바로 자신을 남의 위에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나는 명혜망에서 문장 한 편을 보았는데, 사악의 화상(畵像)을 제거할 방법을 쓴 것이었다. 나는 이 방법을 다른 동수들에게 알려주어 동수들과 함께 현지 사악의 화상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나는 모 동수는 먼 길 걷기를 달가워하지 않으니 이 동수는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발견하였는데, 사악의 화상은 이미 제거 되었던 것이다. 바로 내가 절대적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동수가 그런 방법으로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 이 동수는 묵묵히 일마다 착실하게 해나갔는데, 비겨보면 나는 어떠했는가? 수련이 어떠하였는가? 동수를 제고하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제고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는 늘 하나의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남이 개변되기를 기다리며, 남이 자기와 한 마음이 되고 일마다 자기와 배합하여 간격이 없는 정체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먼저 자신이 다른 사람과 한 마음이 되도록 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속에 남에 대한 불만, 편견, 배척을 지니고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의 정체로 될 수 없을 것이다. 안을 향해 찾아야만 비로소 불순한 것을 닦아 버릴 수 있고 순선한 것을 수련해 낼 수 있으며, 오직 선이 있어야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사람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지, 사람의 수단으로는 영원히 안 된다. 안을 향해 찾아야만 모순, 간격이 없어지고, 동원하지 않아도 자연히 협조하는 정체가 있게 될 것이다.
(명혜망 제5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월 8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원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8/188307p.html